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8)
사마귀 놈들이 더는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어리둥절함을 감추지 못하고 내달림을 멈췄다.
린이 헐떡이는 숨을 다스리면서 물어왔다.
“하아, 하아… 다, 다시 갇힌 건가요?”
내 눈에도 그래 보이긴 했다.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어 대답을 흐렸다.
“그런 것 같긴 한데….”
제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사마귀 놈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역시나, 파탄 때문에 경계선의 벽이 뚫리기 전처럼 놈들의 추격은 가로막혀 있었고, 이유나 영문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대로 두는 게 좋겠지?”
사실, 조금 더 귀찮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쪽이 나은 건 분명한 일이기에 더는 괜한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
“다들 고생했다.”
오늘도 무사히 사냥을 마무리했다.
오전에 두 타임, 오후에는 네 타임을 뛰었다.
경계선의 벽은 온전히 막혀 있었다.
정글 안으로 돌아왔다.
어제처럼 오식이와 린이 먹을 것을 구해 오기로 했고, 나는 왕울이와 함께 물가로 향했다.
“오늘은 속옷이라도 좀 빨까?”
찝찝함이 도를 넘고 있었다.
더 미루다가는 곰팡이가 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깨작댈 수밖에 없는 샤워와 함께 속옷을 빨았다.
“허전하구만… 키킥!”
손에 들린 젖은 속옷을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허전함과 섭섭함(?)을 느끼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오식이와 린이 먼저 와 있었다.
“주인님!”
린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다가왔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내가 ‘뭐지?’라는 표정을 짓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다.
“신기한 것을 봤어요.”
“엥? 무슨….”
“어제 딴 과일들이요, 그것들이 새로 다 열려 있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놀란 듯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해서, 약간의 무안함이 들 정도로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원래 열매는 새로 열리는 거잖아?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호들갑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요….”
린이 억울하다는 뉘앙스로 답답해했다.
이어, 손짓에 발짓까지 곁들여 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과일들이 온전하게 다시 열렸다니까요? 하루 만에 그 큰 열매가 다시 자랐다는 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주렁주렁하게요.”
듣고 보니 이상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뭔가 착각했거나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에요. 직접 가서 보시겠어요?”
억울해하는 린을 위해 직접 확인에 나섰다.
사실,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마음이 조금 더 컸다.
하지만….
“헐….”
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분명, 어제 아침에 확인했던… 그러니까 오식이가 처음으로 과일이 매달려 있다고 알려 주고, 내가 가늘게 뜬 눈으로 확인했던 나무의 열매.
그것을 죄다 따서 어제저녁 식사로 먹었었다.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식사 도중 과일의 출처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었다.
“에이, 아니겠지… 다른 나무에서 딴 걸 착각한 거 아니야?”
여전히 의문과 의심이 들었다.
진정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내 말에 린은 더욱더 억울함을 드러냈다.
“정말 아니에요. 분명히 이 나무에서 열매를 딴걸요.”
“그래? 흐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헛! 서, 설마….’
겨우 두 번뿐이라 확정 짓기에는 좀 뭣하지만, 사마귀 놈들의 사냥을 나서면서 이상하다 여긴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다란 풀숲의 원상 복구….
사냥하기 수월하도록 매번 왕울이가 윈드 커터로 잘라 내 꽤 넓은 공간을 확보하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빽빽하게 자라나 있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 만에 막혀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경계선의 벽도 떠올랐다.
역시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확인해 봐야겠다.’
결론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오식아, 저 과일들 모두 따 봐!”
나무에 열린 과일들을 모조리 땄다.
아수라 스워드로 나무에 상처도 크게 냈다.
내친김에 주변의 나뭇가지를 티가 나도록 쳐 내기도 했고, 몸통이 가는 나무 한 그루는 허리까지 꺾어 놨다.
“이렇게 표시를 해 두면 확실하겠지?”
린이 내 의도를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자리로 돌아왔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는 휴식을 취했다.
어제처럼 먼저 잠을 청했고, 새벽녘에 일어났다.
“한번 가 볼까?”
표시를 해 둔 나무로 향했다.
“음….”
달라진 게 없었다.
실망감과 함께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린의 얼굴에도 당황과 실망이 깊게 새겨 있었다.
“뭐, 이게 정상이긴 하지… 돌아가자.”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린이 긴 한숨을 여러 번 내쉬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후우… 아깝네….”
아쉬움을 작게 흘렸다.
….
다음 날.
“다녀오겠습니다.”
“응… 그래, 다녀와.”
린과 오식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나섰다.
어제 따 온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한번 더 확인을 해 보겠다며 고집을 부리기에 그냥 그러라고 했다.
‘쩝….’
당연히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주인님! 여, 열매가… 열매가 다시 열렸어요!”
린이 격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표시를 해 둔 곳으로 달려갔다.
“헐….”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딴 열매들이 다시금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그것도 따기 전에 확인한 모양새나 수량 등이 복원된 것처럼 그대로 말이다.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불어 아수라 스워드로 낸 나무의 상처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잘라 낸 나뭇가지들은 물론, 허리를 부러뜨린 나무도 멀쩡해져 있었다.
“허, 대박… 열흘이 아니라 몇 년도 있을 수 있겠는데?”
이런 식이라면… 몇 번 더 확인해 보는 게 좋겠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식량 문제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조바심을 낼 이유도 없고, 한층 더 여유롭게 사마귀 놈들을 상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피라미드까지 진출… 클리어를 목표로 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때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확인해 보자!”
제대로 된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
일과에 큰 변화는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사마귀 놈들 사냥에 나섰다.
그 전에 다시금 몇 그루의 나무들에 열린 과일들을 죄다 털어 냈고, 일부의 표시들을 남겨 놨다.
오전의 사냥은 이전과 똑같이 진행했다.
여유롭게 1시간 정도를 사냥하고, 언덕에 올라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한 뒤, 다시 사마귀 놈들과 맞섰다.
두 차례의 사냥을 끝내고는 점심을 먹었고, 힘차게 오후 사냥에 나섰다.
오후 사냥은 네 번이었다.
빠듯하게 하면 다섯 번도 가능했지만, 무리하지 않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이제 것처럼 평범하게 진행.
세 번째 사냥에서는 경계선의 벽에서 아우성치는 사마귀 놈들을 향해 일부러 파탄을 쐈다.
쐐애액! 쐐액….
툭… 툭….
퍼어어어어엉!
강렬한 폭음과 함께 파탄이 터졌다.
이내, 경계선의 벽이 사라지며, 사마귀 놈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오식이와 린이 놈들의 대가리를 똑똑 따 버렸다.
네 번째 사냥에서는 당연히 경계선의 벽 자체가 없는 것처럼 사마귀 놈들의 추격이 바짝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진행한 상황에 경험도 했던 터라, 별다른 문제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후우… 결과는 내일… 자, 돌아가자!”
살짝 괜한 짓을 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솔직히 기대가 더 컸기에 편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
며칠 후.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이곳의 모든 환경은 원상 복구 되고 있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영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그렇게 된다는 데, 어쩌겠는가?
며칠 동안 확인해 본 결과, 나름의 룰도 있었다.
일단, 복구되는 시점은 다음 날 동이 트면서였다.
직전까지도 아무런 반응이나 변화가 없다가 날이 밝아지면, 순식간에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대신에 한 가지!
일정한 거리 이상… 정확지는 않지만, 시야에 절대로 닿지 않는 거리 차를 둬야만 복구가 이루어졌다.
바꿔 말해서, 아무리 동이 트고, 며칠이 지나도 일정 거리를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전혀 복구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알아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것이었지만, 정글 안은 완전한 안전 구역이라는 점.
정황상 있을 법한 들짐승이나 새 따위는 물론, 날벌레조차 없이 깨끗한 곳이었다.
더불어, 우리 넷 외에는 그 누구도 이곳에 없었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왔던 입구에서부터 역방향으로 1시간 이상을 전진한 곳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었다.
좌우로는 끝까지 확인해 보지 않아,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해서, 어림잡아도 상당한 넓이로 추정되는 정글이었고, 날을 잡아 일대를 돌아보며 나름의 신호를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보다 먼저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게이트를 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이곳에 그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마주치거나 기척이라도 느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냥을 마친 그들이 이곳을 빠져나갔거나, 우리와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거나 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지금 이곳에는 우리 넷만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흐음….”
처음에는 왠지 쓸쓸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편안함이 찾아왔다.
이미 몇 년간, 우리끼리만 던전을 독차지하고 생활했던 가락이 있기에 이런 상황이 더없이 편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서, 그 후로는 마음 놓고 모닥불을 피웠다.
그동안 ‘어쩔 수 없다’ 내지는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하며 넘겼던 축축함과 습함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고, 밤사이 떨어지는 기온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옷도 마음껏 빨 수 있었다.
“음… 내친김에 침대 같은 거라도 좀 만들어 볼까?”
마음 같아서는 멋들어진 집이라도 한 채 짓고서 본격적인 터전 만들기와 완벽한 야생 적응기를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아무래도 오버 같았다.
결국엔 튼튼한 나뭇가지와 커다란 나뭇잎 등을 이용해 간이 침대를 만드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이 오식이를 졸라, 나무로 된 식기와 숟가락, 젓가락 등을 만들기도 했다.
* * *
다시 며칠이 흘렀다.
이곳에 들어온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사이, 레벨이 올랐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52레벨을 찍었고, 이틀쯤 지나 린과 오식이도 52에 올랐다.
뭐, 왕울이는 여전히 45레벨이었다.
레벨 업이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몰이 사냥으로 샌드 웜을 잡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52레벨이 되었으니 말이다.
끊임없이 들이대는 사마귀 놈들과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사냥 시간 등을 따진다 해도 놈들이 주는 경험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 늦어도 한 달 반 후에는 53레벨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빠르긴 한데….’
하지만, 목마름은 있었다.
아직 반의반도 넘지 못한 사마귀 놈들의 서식지 정복.
그렇게 잡아댔는데도 전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마정석.
해서, ‘혹시 놈들은 마정석을 주지 않는 것인가?’라는 불길한 불안함과 ‘그렇다면 클리어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가져다준 조바심 때문이었다.
“하아아….”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뱉어 내며, 오늘도 사마귀 놈들을 조지러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