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1)
“까, 깜짝이야! 뭐야?”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초소의 문이 열리며 안에 있던 관리원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죄라도 지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시만요. 뒤로 한 발짝만 물러서 주세요.”
관리원의 말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끄럽게 울리던 경고음이 두어 번쯤 더 울리다가 멈췄다.
“무슨 일이죠?”
내 물음에 관리원이 대답 대신 손에 든 넓적한 봉을 들이댔다.
공항 검색대 같은 곳에서 쓰는 휴대용 금속 탐지기와 흡사한 모양새였으며, 몸의 이곳저곳을 훑는 것도 비슷했다.
‘뭐지?’
이곳 던전을 이용한지 겨우 두 번… 왔다 갔다 포함, 네 번째 통과였을 뿐이지만 고막을 자극하던 경고음도 그렇고 관리원의 검색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전에 이용했던 다른 던전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해서, 놀람과 의아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삐삐삐….
또다시 경고음이 울렸다.
관리원의 손에 들린 탐지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라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바짝 긴장시키기에는 더없이 충분했다.
“가방 좀 벗어 주시겠습니까?”
진심,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고,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지만, 크게 망설여졌다.
혹시라도 내가 실수로 어떤 짓을 저지르지 않았나 빠르게 되돌아보기도 했다.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쿵쾅대며 두근거렸다.
깊게 심호흡을 하며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관리원은 내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고, 느긋하게 기다려 줬다.
부스럭….
천천히 배낭을 벗었다.
“가방을 열어 주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안에 든 것들을 꺼내 주세요.”
역시나 관리원의 말대로 배낭 안에 든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먹고 남은 통조림과 육포, 회복 물약 몇 병과 마정석 몇 개, 그리고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이 반쯤 담긴 병 하나와 빈 병들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거나 트집 잡힐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다 꺼냈습니다.”
내 말에 관리원이 배낭을 한 번 더 눈으로 살폈다.
사실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의미로 배낭의 입을 크게 벌려 줬다.
관리원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확인되었습니다. 물건들 챙기셔서 돌아가도 좋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끝난듯했지만, 여전히 찜찜함과 의문은 남아 있었다.
일단은 꺼내 놓은 물건들부터 챙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물건을 챙기던 중,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물건 정리를 마쳤다.
배낭을 다시 짊어진 뒤,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관리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
“처음이라 그런데… 무슨 상황이었던 거죠?”
관리원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잠시 틈을 준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소 귀찮음이 포함된 말투의 설명이 이어졌다.
난데없이 삑삑거린 경고음과 관리원의 탐지기는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에 반응한 것이었다.
또한, 던전에서 밖으로 나올 때만 작동하고, 경고음이 울리면 검색의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유는 자이언트 샌드 웜의 반출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랬다.
이곳 던전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하고, 가격마저 비싼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국가의 관리 품목 대상이었다.
진액을 소지한 채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그 양에 대해서는 딱히 문제와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진액을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에는 제한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양이 정해져 있었고, 개인당 두 병 정도가 최대치였다.
그 이상의 진액은 국가에 무상으로 반납해야 했다.
뭐, 일종의 고액 세금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랬구만?’
값비싼 진액을 인심 좋게 나눠 준 이의 말이나 행동도 이에 비롯된 것이었다.
어차피 들고나와도 득이 될 게 전혀 없었으니까.
“췟! 알수록 더 마음에 안 드네.”
고생은 고생대로 해야 하고, 돈은 또 돈 대로 써야 하며, 그나마 수익이라고 여기는 것에는 지랄 같은 제한까지 있다니….
이건 뭐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을 수가 없었다.
“아니, 대체 왜 거기서 사냥을 하는 거야?”
데이터를 중시하고, 수지타산에 능하다는 일본인들이 하는 짓치고는 뭔가 맞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커 보였다.
또한, 그것을 알아내기가 힘들 거라는 것도 예상됐다.
“하아… 그냥 다른 곳을 알아볼까?”
어차피 던전은 널리고 널렸다.
그나마 한적하다는 이유로 이곳 던전을 고른 것인데, 딱히 그래 보이지도 않았고, 이런저런 문제들만 가득한 것이 영 선택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흐음… 그래, 한 번만 더 들어가 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도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소금부터 사고….”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할 테니, 나름의 수확이 있을 거라고 애써 위안을 한 채였다.
* * *
며칠 후.
우리는 아직 이곳에 있었다.
샌드 웜과 자이언트 샌드 웜이 있는 사막형 던전 말이다.
얼마 전, 마지막 한 번이라 여기며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이곳 던전에 들어왔다.
충분한 휴식을 빌미로 다른 이들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왕울이를 이용해 그들과의 속도를 맞췄고, 다시금 컨디션을 조절한 뒤, 자이언트 샌드 웜 사냥에 나섰다.
소금의 효과는 끝내줬다.
소금 세례를 받은 자이언트 샌드 웜은 미친 듯이 괴로워하며 온몸에서 진액을 질질 흘려댔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거나 허물을 벗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에 우리가 쏟아 낸 공격… 단순한 칼질에도 놈의 몸은 난장판이 됐고, 너무나 쉽게 쓰러져 버렸다.
처음엔 뭣도 몰라 아깝게 소금을 낭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적정량을 계산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다른 이들에게 소금을 부탁했을 때, 예의 없고, 정신 나간 놈 취급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를 말이다.
팀의 인원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쨌거나 던전 안으로 들고 들어올 수 있는 소금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해서, 그것을 나눠 준다는 것은 사냥의 시간과 횟수, 경험치 등을 뺏기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서는 위험한 상황과 목숨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을 처음 보는 이가 달라고 했으니… 뭐,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또 하나, 내가 착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여러모로 나를 난감하게 했던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놈의 진액을 그냥 평범한… 아니, 값은 비싸지만, 드롭률이 좋은 잡템류로 생각했다.
해서, 극악이라는 마정석보다는 쉽게 얻을 수 있겠거니 했고, 그것을 팔아 경비 등을 충당하려 했었다.
하지만, 자이언트 샌드 웜을 몇 마리 잡았음에도 단 하나의 진액도 얻을 수 없었다.
뭐, 상상도 못 했던 일본의 국법과 관리로 애초의 계획 자체가 헛짓거리이긴 했지만….
아무튼.
단 하나의 진액도 얻지 못한 것을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여겼었다.
틀린 것이었다.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놈이 죽으면서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채취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소금 세례를 받은 놈이 미친 듯이 괴로워하며 온몸에서 질질 흘려대는 것을 빈 병에 담아 모은 것이 바로 그 진액이었다.
굳이 놈이 활기차게 버둥거릴 때 채취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사투 중에 놈이 이리저리 뒹구는지라 주황색의 모래가 범벅되어 뒤섞이기도 하고, 목숨을 잃은 놈이 금세 녹아내려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다.
워낙에 큰 덩치에서 엄청난 양의 진액을 흘려대는 통에 그저 빈 병을 가져다가 쓱 하고 긁어내는 것만으로도 가득히 채울 수 있었다.
“도둑놈의 새끼들….”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 가격이 비싼 것은 순전히 일본 정부의 지랄 같은 관리법 때문이었다.
….
그렇게 제대로 된 자이언트 샌드 웜의 사냥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스스로 알아가며 하루를 보냈다.
꽤 많은 수의 자이언트 샌드 웜을 잡을 수 있었다.
경험치를 얼마나 얻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 좀 더 해 본다면 계산이 나올지도….
적정량의 진액도 모았다.
혹시 몰라 세 병까지만 모은 뒤, 그 뒤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것인데, 굳이 힘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최대의 수확은 마정석이었다.
덜렁 한 개뿐이었지만, 일곱 명인 팀이 열흘 가까이 사냥했음에도 구경조차 못 했다는 극악의 드롭률을 뚫고서 마정석을 얻었다는 것은 절로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뭐, 그 때문에 하루… 한 번 더 자이언트 샌드 웜 사냥에 나섰지만, 결과는 헛수고였을 뿐이었다.
….
‘얻을 게 없겠어.’
자이언트 샌드 웜 사냥의 최종적인 결론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었다.
진액이나 소금, 식료품을 사는데 쓴 금액의 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먹거리 비용은 어디를 가도 많이 쓰니까 패스.
소금이야 그리 비싼 게 아니니까 역시나 패스.
진액 또한 제한된 양으로 내가 먼저 사용하고, 나머지는 놈들을 사냥한 뒤에 얻으면 되니까 문제가 없었다.
내가 문제로 삼는 실은 시간적인 손해를 말함이었다.
던전의 입구에서부터 자이언트 샌드 웜 밭까지 도달하는 시간.
강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뜨거운 태양과 온도를 피해 쉬는 시간.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소금과 식량이 떨어져 다시 던전의 입구까지 되돌아가야만 하는 시간.
맵의 크기와 비교해 현저하게 적은 개체 수, 더불어 놈들을 사냥하는 이들의 수는 또 많은… 그러한 불균형에서 비롯된 기다림 내지는 허투루 보내는 시간까지….
진심으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뭐, 그래서 결론은 ‘때려치우자!’였다.
미련 같은 게 남을 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사냥 이틀 만에 쿨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한 뒤, 던전 입구로 향했다.
그렇게 던전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츠츠츠츠….
츠츠츳….
나와 일정 거리를 두고 땅속에서 꿈틀거리던 샌드 웜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했다.
‘아, 벌써?’
바로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 효과가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아까운데….’
던전 입구까지의 거리가 진짜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있는 힘껏 뛰어간다면 5분? 길어도 10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진액을 사용한다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오전 사냥을 마치고 쓴 한 병을 뺀… 배낭 속에 든 두 병의 진액은 못 해도 200만 원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냥 뛰자!’
다리에 힘을 더하며 힘껏 내달렸다.
다다다닷….
사방으로 튀는 모래알과 힘찬 내딛음의 진동에 샌드 웜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 뒤를 줄줄이 따라붙었다.
츠츠츠….
츠츠츠츳….
내달림을 멈추지 않은 채 힐끔 뒤를 돌아보니, 그 수가 열은 족히 넘을 듯했다.
‘아, 무린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쩔 수 없지!’
결국에는 내달림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사이, 샌드 웜의 수는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소환!’
재빨리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오식이를 먼저 불러냈고, 다음은 린, 다음이 왕울이 순으로 불러낼 생각이었다.
츠츠츠….
츠츳….
놈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내 앞을 막아서도록 불러낸 오식이를 피해 양옆으로 흩어지다가 빙 돌아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형태였다.
‘아, 녀석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구나?’
오식이에게 진액의 효과가 남아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
재빨리 오식이의 등 뒤로 붙었다.
이어, 린과 왕울이도 소환했다.
“처리해!”
명령을 내렸다.
린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파앗! 팟! 팟….
린이 빗자루를 이용해 모래밭을 들쑤셔 놨다.
그러자 샌드 웜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뿐… 진액 때문에 달려들지는 못하고 우왕좌왕해댔다.
“?!… 앗!”
순간, 기가 막힌 생각이 번쩍하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