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0)
“그건… 소금인데요?”
“에? 소, 소금이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대답에 당황스러웠다.
뭔가를 숨긴다거나 절대 비밀스럽지 않게 툭 내던지는 것이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소금이란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사기 위해 들렀던 시내의 상점 몇 군데서 소금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팔던 광경이었다.
‘바닷가도 아닌데 웬 소금?’
처음엔 지역의 특산물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곳은 소금을 특산물로 정할 만큼 바다와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호기심을 가질 법도 한데, 이미 머릿속에는 진액의 효능과 기대감, 녀석들이 깜짝 놀랄 반응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당장에 소금의 기능과 효과… 비법마저도 파악이 됐다.
‘하긴, 지렁이 같은 놈들한테 소금이 쥐약이긴 하지!’
지렁이나 달팽이, 문어나 오징어처럼 촉촉하고 미끈한 표피의 것들에게 소금을 뿌렸을 때 벌어지는 일을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왔다.
소금 세례를 받은 자이언트 샌드 웜이 보여 줬던 엄청난 꿈틀거림도 딱 그런 모습이었었다.
‘그래도 그렇지… 소금 좀 뿌렸기로서니, 그 단단한 껍데기가 그토록 쉽게 뚫린다고?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이해가 되면서도 어이가 없는 부분이라 살짝 혼란스러웠다.
다른 것들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질문 대신에 그들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좀 하기로 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
“혹시, 소금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내 부탁에 그들의 표정이 적나라한 언짢음과 노골적인 불쾌감으로 하나가 됐다.
대번에 내가 실수했음을 강제로 깨닫게 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건 곤란합니다.”
무리의 리더가 나서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무리를 이끌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그들로부터 힐끔거림을 동반한 핀잔이 들려왔다.
“부탁할 걸 부탁해야지.”
“그러게, 소금을 달라고 하다니 생각이 없는 건가?”
“그만! 듣겠다.”
“들으라지?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인지 알아야 할 것 아냐?”
듣다 보니 훅하고 끓어 오르는 게 있었다.
‘크, 저것들을 그냥….’
하지만, 사고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참아야만 했다.
….
“칫! 난감하네.”
일단 방법은 알았다.
그러나 당장에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근처에서 기웃거리다가 자이언트 샌드 웜을 몇 마리 더 잡았다.
끝내는 고개를 내저으며 포기했다.
“아, 이건 아니야….”
한 마리를 잡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소금을 이용해 잡는 것을 보고 난 터라 더 그렇게 느껴졌다.
위험도도 컸다.
그나마 한 마리씩 상대했기에 망정이지 사투 중에 다른 놈이 덤벼든다면 답도 없었다.
효율성도 낮았다.
같은 시간이라면, 샌드 웜을 잡는 게 경험치 면에서 훨씬 이득이었다.
더불어 가성비도 더러웠다.
몇 마리 잡지는 않았지만, 자이언트 샌드 웜 자체가 워낙에 짜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해서, 애초부터 마정석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진액 정도는 좀 떨어질 줄 알았다.
뭐, 가격이 후하다 보니까 그거면 충분하다고 여긴 터였는데 재수가 없는 것인지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다.
“아, 젠장! 쓴 돈이 얼만데….”
어느 모로 봐도 완전히 적자인 판이었다.
“날은 또 왜 이렇게 더워?”
태양이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겨갈수록 기온도 빠르게 상승했다.
짜증 때문인지 체감 온도나 불쾌지수도 더 높은 듯했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결국에는 아지트로 돌아왔다.
* * *
우리가 아지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팀들도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식사와 휴식을 위해서였다.
기온이 높은 오후는 그대로 쉬다가 초저녁에 몇 시간 더 사냥을 하러 나가거나 왔던 길을 돌아 던전을 빠져나갔다.
“흐음….”
선택을 해야 했다.
미련과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선택지였다.
“하, 짜증….”
치솟는 짜증에 애꿎은 모래밭을 발로 차며 괴롭혔다.
눈치 없는 오식이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내 시선을 피하며 얌전히 있었다.
그때였다.
힘껏 발로 찬 모래가 몇 미터쯤 앞으로 날아가 흩어지나 싶더니만, 그 근처의 모래밭이 꿈틀거렸다.
츠츠츠….
샌드 웜이 반응한 것이었다.
“쯧!”
어차피 달려들지도 못할 것들이 지랄이다 싶어 혀를 찼다.
그러나 놈들의 반응은 내 생각과 달랐다.
츠츠츠츳….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못하던 놈들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왔다.
“어라?”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손이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향했다.
파아앗!
내 앞에 다다른 샌드 웜이 모래를 뚫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내며 가로로 휘둘렀다.
촤아악….
전해진 손맛만큼이나 깔끔하게 샌드 웜의 몸뚱이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툭, 툭!
아수라 스워드를 털어 내며 내 몸을 슬쩍 훑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진액의 효과가 끝났음을 파악한 것이었다.
“젠장….”
짜증이 더해졌다.
될 놈은 뭐를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뭐를 해도 안 된다는데 오늘의 나는 완전히 안 되는 놈이었다.
절로 미간이 좁혀지려는 찰나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벌어졌다.
“거, 남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진액 좀 미리미리 챙겨 바릅시다.”
그리 달갑거나 친절하지 않은 말투에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말을 던진 이와 눈이 마주쳤다.
상대는 뭘 쳐다보냐는 눈빛과 표정이었다.
빠직!
이마의 핏대가 튀어나오려 했다.
속에서는 욱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이내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재수 없고 지랄 같기는 했지만, 그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더불어 그나 그의 동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말하지만,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비싸다.
그런 것을 나만 바를 수 없기에 꽤 많이 샀다.
물론 지금껏 벌어 둔 돈… 아니, 일본에 와서 모은 돈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당하기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들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던전으로 들어와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 혼자 바르고, 이곳에 도착해서는 녀석들에게 바르도록 나눠 주다 보니 더는 남은 게 없었다.
‘녀석들의 덩치가 워낙 커야 말이지… 쩝!’
오식이와 왕울이를 힐끔거렸다.
처음부터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이 모자랄 것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는 소리다.
못해도 두 번 내지는 세 번의 식사를 해야만 했다.
다들 알고 있는 왕성한 식욕의 오식이 때문에라도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녀석들과 짐을 나눠 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던전의 출입 절차에 일단은 나 혼자 짐을 들어야 했고, 그것에 따른 한계는 있었다.
해서, 식량으로 배낭을 가득히 채운 뒤, 나머지 공간에 들어갈 만큼의 진액을 샀다.
‘가방도 무거운데 많이 살 필요는 없지. 어차피 놈들을 사냥하다 보면, 저절로 모일 테고 말이야.’
그랬다.
얻을 확률이 극악에 가깝다는 마정석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잡템류인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충분할 만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앞서도 잠시 말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당이나 경비를 충당할 수 있겠다 싶었음은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부분도 넉넉할 테니, 딱히 문제 삼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정말이지 젠장 중의 젠장 이었다.
어쨌든.
재수가 없긴 했지만, 그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좀 더 머물든, 아니면 던전을 빠져나가든 간에 진액이 필요했다.
게다가 나와 녀석들이 서 있는 곳은 샌드 웜 밭.
사정을 하든가 웃돈을 줘서라도 진액을 얻어야만 했다.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이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기… 처음이라 넉넉히 준비를 못 해서 그런데요. 남는 진액이 있으시면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그가 굳히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상황임을 이해한 듯했다.
돌아온 대답 또한 전혀 날이 서 있지 않았다.
“네 병… 아니, 다섯 병이면 됩니까?”
내 뒤로 서 있는 오식이와 왕울이를 의식한 것이 분명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가 옆에 있던 다른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가 즉시 가방을 뒤적여 진액이 든 병을 꺼냈다.
그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액 다섯 병이면 500만 원이 넘었다.
그만큼의 현금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비상금처럼 가지고 다니는 마정석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500만 원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 죄송한데요.”
“…??”
“한 병… 아니, 두 병만 주시겠어요?”
내 말에 그를 포함한 다른 이들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뭐, 인원수와 비교해 맞지 않는 수량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당연했지만, 솔직히 내게 필요한 진액은 한 병… 넉넉잡고 두 병이면 족했다.
녀석들을 카드 속에 봉인한 뒤, 나 혼자 움직이면 될 테니 말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그가 물어왔다.
“왜요?”
“아, 돈이 부족해서요.”
“…??”
의아하게 묻던 그가 내 대답에 더욱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반응에 나도 눈을 깜빡이며 의아해했다.
“…??”
“…??”
잠시간 의아함의 대치가 이어졌다.
그가 고개를 크게 갸웃하고는 입을 열었다.
“돈은 무슨… 얼른 가져가서 바르기나 해요.”
혼잣말과 핀잔이 깃든 그의 말에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해야만 했다.
‘아무리 남아돈다고 해도 이 비싼 걸 그냥 준다고?’
얼핏 본 그들의 배낭 속에는 상당량의 진액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해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 뭐 하고 있습니까?”
높아진 그의 언성에 정신을 차렸다.
일단은 챙겨야 했기에 그가 건네 진액을 받아들었다.
“고, 고맙습니다.”
어리바리한 투로 인사를 하고는 뒤로 물러난 뒤, 곧장 녀석들과 함께 진액을 발랐다.
그러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돈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뭐지?’
그들과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도 의심과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다행히 이와 관련된 문제는 전혀 없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생각은 많았다.
‘에이, 모르겠다.’
결국에는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둔 채 고개를 가로저어야만 했다.
* * *
숨 막히도록 뜨거운 기온이 떨어질 때까지 아지트에 머물렀다.
해가 어느 정도 기울자, 아지트에서 쉬던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자이언트 샌드 웜을 사냥하기 위해 채비를 하는 이들이었다.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볼까?”
아지트를 떠나 던전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여러모로 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더는 머무를 수도 없었고, 있고 싶지도 않았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자, 가자!”
딱히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던전 입구로 돌아가는 이들은 조금 더 기온이 떨어진 후에 움직인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이들과 반대쪽으로 향하려는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개의치 않고 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아지트에서 충분히 멀어진 뒤, 오식이와 린을 카드 속에 봉인했다.
곧장 왕울이의 등에 올라탄 채 빠르게 이동했다.
중간에 지친 왕울이 대신해 오식이를 소환하고는 등에 업혀 이동해 봤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빠지는 통에 바로 봉인해 버렸다.
남은 거리는 혼자서 내달렸고, 결과적으로 갈 때보다 반도 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후우우….”
헐떡이는 숨을 조금 진정시킨 뒤, 게이트를 넘었다.
그렇게 던전을 빠져나와 초소 옆을 막 통과할 때였다.
삐삐삐! 삐삐삐!
고막은 물론, 신경까지 자극하는 요란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