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8)
아지트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챙겨 온 육포와 통조림으로 식사를 했다.
배부름과 피곤함에 졸음이 쏟아졌다.
“난 좀 쉬고 있을 테니까, 날이 밝아오면 깨워 줘. 무슨 일이 있어도 깨우고.”
“네, 주인님.”
아무것도 깔지 않은 바닥에 벌러덩 누워 잠을 청했다.
곧장 잠이 빠져들었다.
“주인님, 일어나세요.”
10초도 되지 않아, 린이 나를 깨웠다.
잠투정을 하며 돌아누웠다.
“으으음… 뭔데?”
그 짧은 사이에 오식이가 사고를 쳤나 싶었다.
그리 큰 사고는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버텼다.
그만큼 피곤했고, 일어나기가 싫었다.
“날이 밝아 오고 있어요.”
“…??”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주인님.”
“…??”
계속해서 한 박자 늦은 의문과 의아함이 이어졌다.
린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겨우… 10초… 였는데?’
눈을 떴다.
서너 번도 넘게 깜빡거렸다.
취했던 잠에서 깨어나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면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스으윽….
어렵사리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껌뻑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녀석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
그제야 정신이 확 돌아왔다.
“으드드드드!”
괴상한 소리를 뱉어 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찬 바닥에서 자서 그랬는지 온몸이 찌뿌드드했고, 뼈마디 마디가 다채로운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풀렸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다시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스윽….
린이 곁으로 다가왔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은 린이 눈가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 사이 낀 눈곱을 떼어 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에 미소를 그리고는 얼굴을 맡겼다.
“크륵….”
오식이의 움찔하는 반응이 들려왔다.
….
팀을 이룬 이들이 하나씩 아지트를 떠났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도 그들을 따랐다.
50미터쯤 가자, 발소리와 진동에 반응하던 샌드 웜들이 사라졌다.
다시 50미터쯤 가자, 노랗던 지면의 모래색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여기로군!’
누가 봐도 자이언트 샌드 웜의 서식지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샌드 웜 밭처럼 별다른 장애물 없이 드넓게만 펼쳐져 있다는 것도 파악됐다.
“조심들 해,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가장 가까운 무리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자이언트 샌드 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린은 살짝 긴장한 듯했고, 오식이는 의욕을 내비쳤다.
왕울이는 조용히 따르기만 했다.
1분쯤 지나, 저 멀리서 괴성이 들려왔다.
“…?!”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샌드 웜을 목격할 수 있었다.
“와우!”
놀라움의 탄성을 나도 모르게 내질렀다.
괴성을 질러대며, 요리조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작은 실루엣과 비교되는 놈의 대략적인 크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괜찮겠지?’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다.
….
5분쯤 더 이동했다.
우리가 뒤를 따라가던 무리는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다른 이들도 무리끼리 일부러 더 거리를 벌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통의 사냥터처럼 북적거릴 일은커녕, 내 것이냐 네 것이냐 하는 몹 스틸의 다툼이 이는 일 또한 절대로 없을 듯했다.
‘도와주지도 못하겠군,’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뭐, 그건 어느 던전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으로 사냥을 온 본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운명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작정 전진했다.
그때였다.
“크륵!”
내 뒤를 바짝 따르던 왕울이가 반응을 보였다.
즉시,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어디지?”
“저, 정면… 빠르다.”
시선을 앞으로 보냈다.
빠르게 움직이는 뭔가가 포착됐다.
“응?”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약 50센티미터 크기의 둥그런 일렁임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너무 작은데?’
정보를 통해 놈의 대략적인 크기를 알고 있었다.
멀리서긴 했지만, 놈의 실물도 확인한 터였다.
그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원형의 일렁임은 너무나 작았다.
더욱이 충분한 거리였음에도 왕울이를 통해 얻은 나의 동물적 감각에 잡힌 놈의 기척이나 기운도 현저하게 약했다.
‘뭐지? 맞나? 아닌가? 크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 사이, 원형의 일렁임은 지척으로 가까워졌다.
“무, 물러나!”
일단,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앞서 있던 린과 오식이가 재빨리 양옆으로 거리를 벌리며 멀어졌다.
나도 재빨리 뒤로 점프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땅이 솟구쳐 올랐다.
푸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굉장하고, 웅장하고, 압도적이었으며, 경악스러웠다.
정면의 시야를 모두 가릴 듯한 거대한 원형의 몸뚱이가 그랬다.
빠르게 솟구쳐 오르며 퍼 올린 주홍빛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며 만들어 낸 멋들어진 모래 폭포가 그랬다.
당장에 목표를 정한 듯이 큼직하게 벌린 채, 오식이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하고, 흉측한 주둥이가 그랬고, 달려듦에 힘을 더하듯 격하게 꿈틀대는 몸뚱이의 굵은 주름과 마디들이 그랬다.
“오식아, 피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늦어 버렸다.
샌드 웜 밭의 모래보다는 단단한 터라 발이 잘 빠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곳도 모래밭은 모래밭이었다.
그에, 뒤로 물러나던 오식이는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춰야 했고, 그대로 자이언트 샌드 웜의 공격을 받아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콰아아아아아악!
소리만큼이나 강렬한 충돌이 일었다.
절로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는 그 광경을 주시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명장면을 볼 수 있었다.
충돌 직전, 오식이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앞구르기 형태… 자연스럽게 모래 속에 박힌 발이 빠져나왔고, 자이언트 샌드 웜의 공격 범위에서 일부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빠르게 양손을 뻗은 오식이가 놈의 아래턱… 주둥이의 제일 바깥쪽 표피를 붙잡았다.
놈은 그대로 지면에 주둥이를 처박았고, 오식이는 한 번 더 앞으로 몸을 굴렸다.
주우우우욱!
놈의 두꺼운 가죽이 길게 늘어났다.
하지만, 잠시뿐… 오식이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히고, 가공할 힘에 탄력으로 버티던 놈의 주둥이는 결국, 부드드드득 거리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뜯겨 나갔다.
데굴데굴….
이내, 오식이는 몸을 옆으로 굴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자이언트 샌드 웜이 뜯겨 나간 주둥이의 고통에 미친 듯이 퍼덕이며, 온몸을 비틀어댔다.
자칫 휘말리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굉장한 몸부림이었다.
쪽팔린 일이지만, 그 모습에 잠시 할 말도 잊고, 몸이 살짝 굳기도 했었다.
“비켜라!”
전에 없던 왕울이의 외침에 잠시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왕울이가 높게 쳐든 앞발을 힘차게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파아앗!
짧은 번쩍임과 함께 푸르른 빛을 띤 3미터짜리 윈드 커터가 여전히 야단법석 중인 자이언트 샌드 웜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촤아아아아아아….
탁월한 절삭력으로 웬만한 건 그대로 통과하듯 잘라 버리는 왕울이의 윈드 커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정확히 자이언트 샌드 웜의 몸뚱이로 날아든 윈드 커터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잃고는 멈춰 섰다.
즈즛….
약간의 대치 상황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실패? 패배?
뭐가 됐든, 오식이조차도 정면에서 맞서기 꺼리던 윈드 커터는 자이언트 샌드 웜의 몸뚱이를 가르지 못했고, 그저 기다란 상흔만을 남긴 채, 푸르른 빛을 서서히 꺼드//트리며 소멸했다.
“….”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만 깜빡거렸다.
“크륵!”
화가 난 듯한 왕울이의 반응이 이어졌다.
녀석이 곧장 앞발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고오오오오오오….
강렬한 기운이 녀석의 앞발에 모여들었다.
이내, 두 번째 윈드 커터가 자이언트 샌드 웜을 향해 날아갔다.
촤아아아아아….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크르르르!”
왕울이가 진짜로 열이 받은 듯 으르렁거렸다.
이어, 다시금 윈드 커터를 날리려고 준비를 했다.
바로 녀석을 제지했다.
“그만! 흥분하지 마!”
억지로 멈춰선 녀석을 확인하고는 엘프의 활을 꺼내 들었다.
화살을 장전하고, 곧장 자이언트 샌드 웜을 향해 발사했다.
쐐애애액!
투웅….
둥그런 놈의 굴곡 면에 맞아서였는지 화살이 보기 좋게 튕겨 나갔다.
“췟!”
한 번 더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날아간 듯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뚫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젠장! 그렇다면….”
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옆으로 크게 돌아 자리를 잡았다.
놈의 몸뚱이가 아닌 쩍 벌어진 주둥이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겉껍데기는 몰라도 속살은 부드럽겠지!’
거침없이 더블샷을 날렸다.
쐐애애액! 쐐애액….
빠르게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놈의 벌어진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움찔….
놈이 작은 반응을 보였다.
‘따끔했냐? 아직이다, 요놈아!’
회심의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이어, 강렬한 폭발음이 놈의 주둥이를 타고 터져 나왔다.
퍼어어어어엉!
최대치로 날린 파탄이 먹혀든 모양이었다.
놈이 오식이에게 주둥이가 뜯겨 요란법석을 떨었을 때보다 한층 더 강렬한 몸부림을 쳐대는 것이 말이다.
퍼득! 퍼득….
푸더덕! 푸더더덕!
꿈틀꿈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놈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고통 때문에 버둥거린 것이 5할을 넘는 듯했지만, 거대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꿈틀대면서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피해!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거대한 크기에 비례하는 묵직함과 넓은 공격 범위에 피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야 했다.
왕울이의 윈드 커터조차 먹혀들지 않는 터라 린의 공격은 해 보나 마나였고, 패턴 없는 버둥거림에 당할까 싶어 오식이의 접근전도 금지했다.
그나마 통용되는 건 파탄뿐이었다.
억지로 기회를 보고, 틈타 결국에는 몇 발의 파탄을 놈의 주둥이 속으로 처박아 넣은 후에야 어렵사리 끝장을 볼 수 있었다.
“후아아… 겁나게 힘드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만큼 완전히 진이 빠졌다.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뭐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이언트 샌드 웜의 레벨은 40이었다.
50레벨인 우리가 이토록 힘겹게 잡을 수준이 아니란 소리다.
그런데, 놈은 너무나 강했다.
무식한 덩치에서 폭발시키는 가공할 공격력도 문제기는 했다.
하지만, 45레벨의 왕울이가 날리는 윈드 커터를 거뜬히 막아내고, 최대치로 당겨 쏜 내 화살을 튕겨 내는 껍데기의 방어력은 진심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런 놈을 그냥 날붙이로 때려잡는다고?’
분명, 다른 이들이 들고 있던 무기는 검이나 둔기, 창과 활 같은 일반적인 것들뿐이었다.
딱히 레벨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아, 말이 안 돼… 뭔가가 있을 거야.’
의심이 샘솟았다.
내가 놓친 것이 있음을 확신했다.
‘확인하자.’
결론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당장에 녀석들을 카드에 봉인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무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러다가 놈이 달려들기라도 하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상을 애써 지우고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다행히 중간에 자이언트 샌드 웜을 만나지는 않았다.
또한, 무리에게 다가설 즈음, 자이언트 샌드 웜이 바닥을 뚫고 치솟아 오르며 사냥의 시작을 알렸다.
‘앗싸, 나이스 타이밍!’
쾌재를 부르고는 부릅뜬 눈으로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