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7)
상점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샀다.
물과 식량, 화살과 ‘그것’ 등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어.”
빵빵하게 찬 배낭을 둘러메고는 던전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어제 던전을 나서던 시간쯤 되어 있었다.
“역시….”
그렇게나 한적하기 그지없더니만, 던전 앞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초소 앞의 관리원 또한 셋으로 늘어나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출입 확인을 마치고는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 안에도 여럿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은 혼자 움직이는 게 좋겠어.’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녀석들을 소환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당분간은 혼자 움직이기로 하고는 배낭을 뒤적였다.
녀석들 몫까지 충분히 사 둔 여러 병의 ‘그것’들 중 하나를 꺼냈다.
진한 녹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이었다.
뽕!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 좋지 않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코끝을 찡긋거리다가 액체를 조심스레 손에 따랐고, 온몸 구석구석에 발라댔다.
더욱더 진한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크으….”
주변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나와 다른 이들이 하나같이 몸에 처바르고 있는 녹색 액체의 정체는 ‘진액’으로 좀 더 정확한 명칭은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이었다.
놈은 자이언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처럼 어제 우리가 상대하던 샌드 웜의 3배쯤 되는 크기를 자랑했으며, 이곳 던전에서 서식하고 있었다.
드넓은 모래밭을 가로질러 한참을 가면 놈들의 서식지가 나타난다.
이미 눈치를 챈 이들도 있겠지만,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몸에 바르면, 샌드 웜들로부터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고 차단할 수 있었다.
그것도 100%의 확률로 말이다.
이는, 샌드 웜이 자신보다 상위 종인 자이언트 샌드 웜의 체취에 몸을 사리고 물러나는 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적 행위였다.
해서,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꽤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뭐, 어떤 이들은 샌드 웜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 다른 이들은 놈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사막을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정도 가격은 합당해 보였다.
어쨌든 간에 샌드 웜의 껍질처럼 딱히 쓸데라고는 없던 잡템의 유일한 사용처, 그로 인한 몸값 상승은 과히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 가져다 붙여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저녁에 확인된 놀라운 사실 하나.
당연히 정화 던전인 줄 알았던 이곳 던전이 글쎄, 활성화 던전이란 사실이었다.
맞다.
코어가 아직 파괴되지 않은 던전 말이다.
활성화 던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던전 안의 괴물들이 계속해서 생성되며, 그 수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던전 입구쯤에 서식하는 괴물… 이곳에서는 당연히 샌드 웜이 게이트를 넘어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괴물들이 마음껏 게이트를 넘나드는데, 버젓이 출입 관리 초소가 마련되고, 관리원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 바로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 때문이었다.
내가 직전에 했던 것처럼 던전에 들어선 이들 대부분이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몸에 바른다.
당연하게도 그 와중에 진액이 흐르고 떨어지며, 입구 주변을 적신다.
그랬다.
그렇기에 샌드 웜들이 던전의 입구 주변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고, 게이트를 넘는 행위조차 막아내게 된 것이다.
더불어 관리원들이 수시로 던전을 드나들며,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뿌려대기도 한단다.
아예, 작정하고 활성화 던전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그럼, 출발해 볼까?’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온몸에 바름으로써 샌드 웜으로부터의 찝쩍거림을 차단했으니, 마음 놓고 모래밭을 활보해도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치를 보다가 슬슬 이동하려는 무리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진액의 효과는 진심으로 탁월했다.
츠츠츠….
츠츳! 츠츠츠츠….
이동하는 이들의 움직임과 발걸음의 진동을 느낀 샌드 웜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나타났지만, 일정 거리… 약 2에서 3미터 반경의 거리를 두고는 전혀 다가서지 못했다.
‘크으! 보여 주지 못한 게 아쉽네.’
녀석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끝까지 비밀에 부쳤던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게 진정으로 아쉬웠다.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조만간 기회가 올 터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는 무리를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렸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계속 직진만 하면 되는 건가?’
온통 모래밭뿐인 지형이었다.
해서, 딱히 이정표로 기억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행히 직진만 하면 되는지라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길을 모르기에 지금은 무리를 따라 이동하지만, 다음부터는 혼자 또는 녀석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길만 알아 둔다면, 왕울이를 타고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으니, 어느 모로 보나 이득이었다.
아차!
말해 줘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낮부터 린이 걱정했음에도 느긋하게 대처하고, 느지막이 던전에 들어선 이유 말이다.
이 또한, 벌써 눈치를 챈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막 지형의 특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랬다.
사막이란, 낮에는 미친 듯이 내리쬐는 태양열에 모래가 달궈지면서 가열된 오븐처럼 뜨겁고,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온이 떨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뜨거운 낮이 아닌 저녁부터 시작해 밤을 지나 새벽에 이르도록 이동을 한다.
사냥은 밤에는 보이는 것이 없기에 위험할 수 있으니, 동이 트고부터 정오가 되기 전까지, 막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만 하고 말이다.
‘무식하긴 했지… 쩝!’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숨조차 쉬기 답답할 정도로 뜨거운 뙤약볕에서 뭐가 좋다고 그리도 신나게 사냥을 했는지 원….
역시나 사람은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하며, 아는 것이 힘이었다.
….
그리 빠르지 않은… 하지만, 딱히 쉼 없는 이동이 계속 이어졌다.
아는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를 보거나 구경할 것도 없는 길이었다.
게다가 혼자서 묵묵히 앞사람의 뒤를 쫓고만 있자니, 이것 또한 곤욕스러울 수 있었다.
해서, 약간의 짜증과 지루함이 찾아들 즈음이었다.
톡톡….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살짝 놀랐고, 뒤에서 따라오던 이라 여기며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내 또래쯤 되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했다.
그러자 그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네….”
“혼자십니까?”
“네?”
“아, 혼자 들어오셨는지 묻는 겁니다. 혼자서 사냥하시는지를요.”
뭔가 기대에 찬 남자의 눈빛이었다.
남자의 뒤로 비슷한 눈빛들 몇 개가 더 느껴졌다.
불현듯 지랄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요, 동료가 있습니다. 나중에 합류할 거에요.”
거부의 의사를 담아 사실을 말했다.
남자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남자는 순순히 물러났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살짝 벌어진 앞사람과의 거리를 서둘러 좁혔다.
다시금 지루함과의 싸움을 이어 나갔다.
‘정보도 얻을 겸 말동무라도 할 걸 그랬나?’
살짝 후회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괜히 쓸데없는 연을 만들 필요는 없지.’
….
6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 행렬을 이탈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나도 좀 쉴까?’
아직 체력이 달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에 살짝 흔들렸다.
그때였다.
내 고민을 알기라도 한 듯이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팀원들을 격려하는 힘찬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앞으로 2시간이면 도착이에요.”
흔들리던 마음이 다 잡혔다.
샘솟듯이 돋아난 생기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우….”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탄사를 뱉어 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마을 같았고, 줄줄이 늘어선 야영장 같았다.
곳곳의 천막과 모닥불, 꽤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것이 꼭 그래 보였다.
‘안전하긴 한 건가?’
던전 안이었다.
아무리 여럿의 헌터들이 모여 있다지만,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새 한 가지를 까먹은 탓이었다.
사람들이 진을 치고 모여 있는 곳은 샌드 웜 밭의 끝자락이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는 동안, 놈들의 공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이유인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이 이곳에서도 크나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텐트와 천막, 주변에 이르기까지 아예 통째로 진액을 부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은 가격이 꽤 비싼 편이었다.
몸에 한 번 바를 수 있는 양이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니, 고가인 회복 물약보다도 비싼 축에 속했다.
그런 것을 텐트와 주변에 마구 뿌린다?
누가 봐도 돈 지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잊고 있는 게 또 있었다.
바로 이곳… 조금 더 앞으로 가야 하긴 했지만, 이곳이 바로 자이언트 샌드 웜의 서식지이며, 그 비싸다는 진액을 무한정에 가깝게 얻을 수 있는 곳이란 것이었다.
해서,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나 금액에 상관없이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남발했다.
뭐, 탁월한 효과에서 비롯된 안전과 휴식… 던전 입구에서부터 이곳까지 오가는 시간 등을 따진다면, 절대로 아깝지도 않고, 오히려 득이 됨을 금세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흠….”
후에 알게 된 ‘아지트’란 이름의 장소를 천천히 둘러봤다.
대부분이 팀을 이루고 있었으며, 팀들끼리도 견제보다는 서로서로 알고 지내는 느낌이 강했다.
‘텃세는 없겠군.’
일부의 힘센 무리가 던전을 독점하거나 장악하려는 모습이 없기에 그 부분은 안심이 됐다.
아지트의 중심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끝까지 이동했다.
마지막 천막까지 온 뒤에는 잠시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그림자 숨기기를 시전하여 기척을 감췄다.
계속해서 눈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후에는 그림자 숨기기를 해제하고, 걸음을 빨리해 아지트와 더 멀어졌다.
‘이쯤이면 되려나?’
아지트의 불빛이 가물거리는 지점까지 온 뒤에야 걸음을 멈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왕울이로부터 얻은 동물적 감각도 높였다.
역시나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소환!’
녀석들을 차례대로 소환했다.
츠츠츠… 츠츠츠츠….
당장에 샌드 웜들이 반응을 보였다.
소리를 낮춰 빠르게 외쳤다.
“다들 내 옆으로 모여!”
녀석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하나씩 그린 듯했지만, 이내 내 곁으로 바짝 붙었다.
“잠시만 그대로 있어.”
배낭을 풀고, 안에 든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꺼내 한 병씩 나눠 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발라.”
내친김에 나도 진액을 덧발랐다.
“주인님, 오식 씨는 모자라는데요?”
일찌감치 제 몸에 진액을 바르고, 이어 왕울이의 몸에도 진액을 발라 준 린이 오식이를 돕다가 난감함을 표했다.
“가방에 있어. 하나 더 꺼내서 발라 줘.”
“네.”
그렇게 오식이까지 자이언트 샌드 웜의 진액을 모두 발랐다.
진액의 효능과 효과를 전해 듣고, 직접 확인까지 한 녀석들이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 이제 돌아가서 좀 쉬자. 아침부터는 거대한 놈과 싸워야 하니까.”
녀석들을 앞세우고는 아지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