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4)
힐끔….
내 시선을 눈치챈 린이 나를 힐끔거렸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제스처를 건넸다.
이어, 음식들과의 살벌한 전투를 거의 다 끝낸 오식이를 쳐다봤다.
“이제 좀 배가 부르냐?”
“우적우적, 꿀꺽! 잘 먹었다. 꺼어어어억!”
녀석이 우렁찬 트림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만족한 듯이 의자에 잔뜩 뒤로 몸을 기댔다.
곧 터질 것처럼 빵빵한 배를 당당히 드러낸 채였다.
삐거걱….
녀석의 덩치와 비교해 의자는 작디작았다.
또한, 연약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던 의자는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우지끈… 콰직!
쿠웅!
엉덩방아를 찧은 오식이가 당황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린이 ‘풉!’하며 입에 있던 음식물을 발사했다.
“어머… 죄, 죄송합니다.”
제 행동에 놀란 린이 황급히 사과했다.
이미 나는 피식하다가 함박웃음으로 변한 뒤였다.
“하하! 괜찮아, 괜찮아… 넌 괜찮니? 물도 좀 먹고….”
“네, 네….”
정말로 괜찮다는 미소를 건넨 뒤, 다시 오식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였다.
“너도 괜찮아?”
“크륵… 괜찮다.”
“응, 다행이네.”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와는 다른 내 반응이 어색하고,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혀, 형님….”
“응?”
“정말 괜찮냐?”
“응, 괜찮아.”
“진짜냐?”
“그렇대도… 얼른 일어나서 얼굴이나 가려.”
여전히 못 미더운지, 제 머리통을 긁적이며 눈치를 보던 녀석이 보호 장비를 얼굴에 뒤집어썼다.
끝까지 확인을 한 뒤에 벨을 눌렀다.
이번에는 20여 초 만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열렸다.
“부르셨습니… 헛!”
난장판이 된 룸 안을 확인한 식당 직원이 양쪽 손바닥으로 제 입을 가렸다.
역시나 그런 반응을 예상하였기에 침착함을 뽐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기 포장도 되죠?”
“네? 아, 네… 되, 됩니다.”
“그럼, 아까 여러 개 시켰던 것들 두 개씩 포장해 주세요.”
“네….”
“저기 부서진 의자값도 알려 주세요.”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말투에서 다소의 안정을 되찾은 줄로만 알았던 식당 직원이 삐걱거리는 몸짓을 선보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음식값과 의자값을 모두 내고는 식당을 빠져나왔다.
멀리서도 보이는 호텔의 간판을 확인하고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호텔 근처의 건물을 지나칠 즈음, 오식이를 카드 속에 잠시 봉인했다.
이어, 호텔로 들어섰고, 체크인을 마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룸으로 향했다.
두 개의 침실과 욕실, 커다란 거실 하나에 한 쪽에는 미니 바까지 마련된 스위트 룸이었다.
룸을 한 번 빠르게 둘러보고는 오식이와 왕울이를 소환했다.
린이 알아서 포장해 온 음식들을 바닥에 펼쳐 놨다.
말없이 기다리던 왕울이가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맛있냐? 이게 더 맛있다.”
오식이가 옆에서 부러운 듯이 쳐다보며 찝쩍거렸다.
코끝을 찡긋거리고는 포장된 요리 하나를 가리켰다.
“오식아, 이건 네 거야.”
“엇! 정말이냐, 형님?”
“어. 대신에 저쪽 냉장고랑 저기에 비치된 것들은 절대로 먹으면 안 돼!”
안에 든 것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냉장고와 미니 바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놓고 눈탱이를 때리겠다며 유혹을 해대는 유료 상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린, 네가 저쪽 방 써. 난 이쪽 방. 오식이랑 왕울이는 거실!”
빠르게 잠잘 곳도 정해 줬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린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방에는 샤워실이 따로 있을 거야, 얼른 쉬도록 해.”
“네, 주인님.”
무릎 인사를 한 린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린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시선을 돌렸다.
오식이가 진정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포장된 음식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야? 왜 안 먹고서 쳐다보고만 있어?”
“먹을 거다. 나중에… 혼자서….”
“어, 그래. 그건 네 맘대로 하고… 나 먼저 씻을게. 너희들은 알아서 순서 정해.”
왕울이가 음식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식이는 오로지 들고 있는 음식에 집중한 터라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왕울이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녀석이 절대 저것들 먹지 못하게 해. 낌새라도 보이면, 바로 짖어! 아니, 그냥 콱 물어 버려!”
말을 마치고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맡기며 다사다난했던 하루의 피로를 씻어 냈다.
“으으, 좋다아아아!”
….
샤워 후에는 곧장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를 파고들었다.
푹신하고, 아늑한 것이 기분을 좋게 했다.
바로 잠이 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후우우….”
나른한 한숨과 함께 오늘 있었던 일들을 차례대로 떠올렸다.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만큼 새로웠던 하루였다.
‘내일도 그렇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심장이 살짝 요동쳤다.
“….”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커다란 알 속에 갇혀 있었다.
조금씩 알의 껍데기를 깨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이상한 꿈이었다.
* * *
다음 날.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대자로 뻗어 있는 오식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코골이에 잠꼬대까지 해대고 있었다.
“드르렁… 푸후우우… 다… 내 거다… 음냐음냐….”
더 웃긴 건, 나중에 먹겠다던 포장된 음식이 뜯기지도 않은 채 녀석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것이었다.
“뭐야? 피곤했었나?”
비행기며 택시도 나 혼자 탔고, 나름의 체력 소모(?)도 나 혼자 했었다.
거의 카드 속에 봉인된 채, 한 거라고는 식당에서의 전투적인 식사와 의자 하나를 부숴 먹은 게 전부인 녀석이 그토록 환장하는 먹을 것을 두고서 잠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사고는 안 쳤으니 다행이네.”
밤사이, 내 말을 어기고 미니 바와 냉장고를 털지 않은 것이 최고로 기쁜 일이었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린이 살짝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어났어?”
“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응, 잘 잤어.”
가벼운 아침 인사를 나눴다.
조금은 흐트러진… 그래서 더 인간미가 느껴지는 린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더불어 그러한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 주는 린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 이거지!’
늘 꿈꾸고, 동경했던 하나쿠 짱과의 미래가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시금 머저리 같았던 나를 꾸짖었다.
….
룸서비스를 이용해 조식을 시켜 먹었다.
가격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왕울이를 포함해 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아,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뭐, 쓴 만큼 벌면 되니까 괜찮아!’
그랬다.
그러면 될 일이었다.
해서, 부랴부랴 체크아웃을 하고는 가장 가까운 던전으로 향했다.
아! 한 가지….
일본의 던전 이용 방법은 대한민국과 조금 달랐다.
어떤 던전이든 간에 특별한 제재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의 던전은 꼼꼼한 출입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이는, 내가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던전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이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뭐, 후에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내용으로는 레벨이나 클래스에 맞지 않는 던전에 들어갔다가 괜한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보호 시스템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하고, 귀찮았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괜찮은 시스템이라 여겨졌다.
‘이런 건 좀 배워도 좋으련만….’
예나 지금이나 성격 급한 것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도입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긴 했다.
더불어 통계적으로도 훨씬 많은 수의 던전과 게이트가 생성되는 터라, 설비의 설치나 인원의 투입 등을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기는 했다.
….
던전 안의 상황이나 전경은 비슷해 보였다.
이건 뭐,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힐끔힐끔….
왕울이인지, 오식이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를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날아들었다.
레벨과 클래스를 따지고, 확인받은 뒤에 들어올 수 있다지만, 던전의 초입은 확실히 레벨이 낮은 헌터들이 많았다.
해서, 우리를 힐끔거리는 시선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쩝!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겠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오식이와 린을 봉인하고, 왕울이의 등에 올라탄 채 던전의 안쪽 깊은 곳으로 내달렸다.
두어 개의 구역을 지나자,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서식하는 괴물의 수준도 높아졌다.
‘조금만 더….’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아예,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서식하는 괴물의 수준도 더 높아졌다.
그래 봤자, 우리에게는 껌이나 다름없는 놈들뿐이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어.’
뭔가 좀 아쉽기는 했지만, 사냥을 마친 후 돌아갈 때의 일도 생각해야 했기에 이쯤에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소환!’
오식이와 린을 다시 불러냈다.
왕울이는 잠시 쉬도록 하게 두고는 녀석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죄다 쓸어버려! 아낌없이, 깔끔하게!”
“네, 주인님!”
“간다아아아!”
어째, 두 녀석 다 신이 난 듯했다.
하긴, 본능과 본성은 어쩌지 못하는 것일 테니까.
더불어 던전 밖보다 던전 안에서 훨씬 더 생기가 돌고, 활기차지는 녀석들의 특성 또한 무시할 수 없을 터였다.
“크르르….”
쉬라고 한 왕울이가 으르렁거렸다.
미친 듯이 신을 내며 괴물들을 때려잡고 있는 오식이와 린이 부러워 보인 모양이었다.
뭐, 녀석의 본능과 특성 또한 매한가지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았어, 너도 가 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울이가 냅다 앞으로 달려 나갔다.
괜히 씁쓸해지려는 입맛을 다시고는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래, 다들 열심히 해라!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련다.”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수준이었다.
게다가 직접 괴물들과 맞서지 않아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꼼꼼하고 똑똑한 린이 있기에 아이템 수거나 나름의 작전 지시도 필요치 않았다.
더없이 편한 마음으로 느긋함을 즐겼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리고 있었고, 그런 나를 향해 살짝 상기된 얼굴의 린이 다가왔다.
머리를 흔들며 멍해졌던 정신을 차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응? 그럼 왜?”
“아, 다 끝났는데요.”
“엥? 아아… 벌써?”
상체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린의 너머를 살폈다.
바글바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숫자가 꽤 됐던 괴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착실하게 마정석과 아이템 등을 수거하는 오식이의 모습이 흐뭇함을 자아냈다.
“음… 마저 정리하고 와.”
“네, 주인님.”
린이 오식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아이템을 모두 수거한 녀석들이 다시 내 앞에 섰다.
“더 할 거지?”
하나 마나 한 물음을 던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그래, 어제랑 오늘 쓴 돈 모두 메우려면 아직 멀긴 했어.”
흔쾌하게 결정을 내리고는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아자자자자! 다 쓸어버린다!”
“아우우우우우!”
“같이 가요!”
다소 짧은 시간인 듯했지만, 첫 번째 사냥으로 인해 완전히 몸이 풀려 버린 녀석들이 더욱더 신을 내며 활개를 쳐댔다.
역시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녀석들의 활약을 편하게 감상했다.
“그래그래, 열심히 해라. 예쁘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아. 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