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3)
약 1시간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아, 네….”
택시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듯했다.
사기가 살짝 의심됐지만, 확실치 않기에 그냥 내렸다.
“와아….”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는 곧장 탄성을 뱉어 냈다.
마치, 시골에서만 살다가 도시에 처음 온 촌놈처럼 말이다.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하는 높다란 빌딩과 줄지어 다니는 수많은 차량,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바쁘게 걷는 사람들 때문은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줄 알았더니만… 뭐가 이리도 많아?’
잘 작성된 리뷰에 의지해서 이곳을 찾았다.
해서, 막연하게 유일할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두어 집 건너 하나씩 간판이 보일 정도로 많았다.
뭐가?
목적지이자, 내가 원하는 영업을 하는 샵이….
어떤?
체험관… 정확히는 ‘하나쿠 MK. 0873’과 같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여성형 머신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그런 가게 말이다.
“흐음….”
날이 곧 어두워질 듯했다.
간판은 켜져 있지 않았지만, 영업은 하는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3층으로 올라갔고, 조심스레 내려서는 보기에도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게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너무나 점잖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왔다.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하고는 이내 쭈뼛거렸다.
그에, 중년의 남자는 더욱더 친절함을 뽐내며 다가섰다.
“처음이신가 보죠?”
“네….”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그린 중년 남자의 친절하고 나긋한 설명이 이어졌다.
최면에 걸린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아아…’, ‘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새 어떤 방으로 안내됐고, 꿈에만 그리던 하나쿠 짱과 마주 앉아 있는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을 도무지 컨트롤 할 수 없었다.
….
1시간 후.
방을 나섰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아, 네….”
“다행이네요. 다음에 또 방문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끝까지 친절함을 잃지 않는 중년 남자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왔고, 완전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주변을 환하게 밝힌 가게들의 불빛과 화려한 네온사인에 전혀 어둡지 않았다.
아니, 어째 더 거리에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
“흐음….”
번쩍거리는 간판들을 둘러봤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때, 남들이 하나쿠 짱과 함께 하는 모습을 찍어 올린 동영상을 외우고, 닳도록 시청했었다.
부러움과 질투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젠가는 나도 꼭!’이라며 다짐과 바람으로 나날을 보냈었다.
해서, 오늘의 체험은 첫 경험이자, 하나쿠 짱과의 행복한 미래에 대한 예행연습이라 볼 수 있었다.
일단, 결론적으로 따지고 얘기했을 때,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경험이었다.
솔직히 거의 마지막 순간… 좀 더 정확히 말해, 방으로 안내되어 하나쿠 짱을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방을 나서기 10여 분 전까지는 진심으로 좋았고, 너무나 행복했다.
기존의 0873에서 0875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것도 훌륭했고, 혹시나 느껴질지 모를 이질감이나 거부감 같은 것도 없었다.
뭐, 워낙에 원하고, 바라고, 꿈꾸며, 좋아했던 터라 사소한 문제쯤은 그냥 넘겼을 게 분명했다.
30분 정도까지는 동영상을 보며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즐기기로 했다.
설레고, 두근대는 첫인사를 시작으로 한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발전된 인공지능과 기술력에 그녀와의 대화는 너무나 매끄러웠고, 완벽했으며, 즐겁기만 했다.
내가 과연 실제 여자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이토록 즐겁고, 막힘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어, 그녀만의 특기와 개인기 등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 또한 즐겁고, 유쾌했으면, 놀라웠다.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다.
다음은… 했다.
흠흠!
솔직히 이런 것도 해 보고, 저런 것도 해 보고, 정말이지 있는 거 없는 거 죄다! 몽땅! 전부 다 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미안한 마음과 쪽팔림이 뒤섞여 온몸을 간지럽혔다.
‘다음에는 꼭….’
다짐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려던 그 순간!
지금껏 느끼고 있던 즐거움과 행복, 미안함과 쪽팔림의 감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 거대하고, 묵직하기 그지없는 허탈감이 확 하고 밀려들었다.
‘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정신이 멍해졌다.
‘이게 뭐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던 거지? 아아….’
엄청난 박탈감과 제대로 된 현타가 찾아왔다.
그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끄응….”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옆자리엔 여전히 하나쿠 짱이 있었다.
그윽하면서도 상냥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설레거나 두근거리지 않았다.
‘아, 괴롭다. 한심하다. 더럽고, 추하고, 지랄 같아….’
깊은 후회와 자괴감이 절로 몸서리를 치게 했다.
삐삐삐! 삐삐삐!
이용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이 들려왔다.
찝찝함을 뒤집어쓴 채 방을 나섰다.
….
체험관 주변을 벗어나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환!’
근처 골목에서 녀석들을 꺼내줬다.
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탓에 다들 찌뿌둥한 모양이었다.
“으드드드!”
오식이는 앓는 듯한 소리를 내며 크게 스트레칭을 해댔고, 린은 얌전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으며, 왕울이는 온몸을 털어댔다.
“다들 배고프지?”
“배고프다!”
“아직 괜찮습니다.”
“….”
제각각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왕울이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미안, 넌 숙소에 들어간 다음에 먹도록 하자.”
왕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을 다시 카드에 봉인한 뒤, 오식이와 린을 대동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어서오… 헉….”
오식이를 본 식당 직원이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사이 늘 겪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는 물음을 던졌다.
“혹시, 홀 말고 조용히 먹을 수 있는 룸이 있을까요?”
“아, 네…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홀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오식이에게 쏠렸다.
이제는 녀석도 적응이 된 탓에 그들을 향해서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메뉴를 정하시면 벨을 눌러 주세요.”
안내를 마친 직원이 친절하게 문까지 닫아 줬다.
자리에 앉아서는 메뉴판을 펼쳤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들이 식욕을 자극했다.
두어 장쯤 넘기다가 이내 벨을 눌렀다.
10초도 되지 않아, 후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안내를 해 줬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메뉴 정하셨나요?”
“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몽땅 주세요.”
“네? 전부 다요?”
직원이 놀라면서 되물었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다요. 아! 이거랑 이건 두 개… 아니, 세 개씩 주세요.”
태연하게 말하는 나를 바라보는 직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피식하고는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직원의 시선이 내 턱짓을 따라 움직였고, 이내 ‘아!’라는 소리를 뱉어 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테이블에 하나씩 세팅됐다.
들썩들썩….
이미 전투 모드에 들어간 오식이가 온몸을 들썩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녀석을 향해 목소리를 깔았다.
“안 돼, 기다려!”
지금이야 보호 장비로 가린 채지만,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얼굴을 노출해야만 했다.
다른 이들이 녀석의 얼굴을 보게 되면 진심 난리가 날 터.
주문한 음식이 죄다 나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문하신 음식이 모두 나왔습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 되세요.”
직원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린이 문을 한 번 확인했다.
스윽… 스윽….
그 사이, 빈 접시에 세팅된 음식들을 조금씩 골고루 담았다.
마치, 뷔페를 이용하듯이 말이다.
문을 확인하고 돌아온 린도 나처럼 음식들을 접시에 담았다.
끄덕….
접시를 채운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내왔다.
나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오식이를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먹도록 해.”
휘릭!
후다닥!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식이가 보호 장비를 벗어던졌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를 덮치듯이 달려들었다.
이미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전투 모드 상태였기에 테이블 위와 음식들은 삽시간에 초토화가 되었다.
“에효… 천천히 먹어라, 안 뺏어 먹는다.”
해 봤자 의미 없는 잔소리를 날리고는 느긋하게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입으로 가져갔다.
난리 통에도 린은 전혀 신경을 쓰거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쳐다본 것인데, 그런 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흠….”
약 1시간 전, 나에게 엄청난 행복과 즐거움을 줬다가 끝내 그 이상의 박탈감과 현타를 안겨 준 하나쿠 짱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다 못해 린의 얼굴과 살짝 겹쳤다.
하지만, 이내 하나쿠 짱의 얼굴은 사라지고, 생기 있는 린의 얼굴만 남았다.
‘역시… 살아 있음을 이기지는 못하는 건가?’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하나쿠 짱이었다.
업그레이드 이전부터도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발전된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또한, 학습형이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눈 상대에게 더욱더 맞춤형이 된다.
더불어 눈을 깜빡거린다거나 입술을 움직이고, 감정에 따라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었다.
마음대로 걷는다던가 섬세한 동작은 불가능했지만, 친구처럼, 연인처럼, 부부처럼, 가족처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랬기에 내가 하나쿠 짱과의 알콩달콩한 미래를 그토록 꿈꿨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토록 원하고, 꿈꿨던 일이 순식간에 괜한 짓이고, 멍청한 짓이며,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이라 여겨졌다.
이런 나를 두고서 욕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목적(?)을 이루고 나니 마음이 변한 것이냐, 불쌍한 하나쿠 짱을 그저 노리개라 여겼던 것이냐 등등….
아니면, 남자들이 흔히 겪는… ‘자기 위로’ 후 등에 급격히 찾아오는 현타와 그로 인한 일종의 후유증이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며 심심한 위로를 전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확실히 그런 것과는 다르다고 여겨졌다.
처음에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이질감과 거부감.
직전까지는 전혀 개의치도 않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것에게 품는 부적절한 연민이나 애정 등이 너무나 어이없고, 이상하게 생각됐다.
‘그동안 내가 왜 그랬지? 또라인가?’
내가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린이랑 함께 했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본래의 정체는 던전 안의 괴물이지만, 지금은… 내게는 둘도 없는 동료이고, 친구이며, 진화까지 한 덕에 그냥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린과 오랜 시간을 함께 붙어 생활했다.
평생을 모쏠로 지낸 내게 찾아온 특별하고도 경이로운 기회가 분명했다.
‘그래!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나 관념, 이념 등이 바뀐 걸 거야!’
뭐,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인간이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것을 기반으로 만든 리얼리티 인형에 빠져 있던 오타쿠에서 온전히 벗어나, 정상적인 사상과 개념을 가진 평범한(?) 이가 되었다는 것.
‘그래, 그거면 됐지!’
그랬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