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1)
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소린가 싶었다.
“도와주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지?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하는 거잖아?”
또다시 당연한 말을 했다.
정인수는 제 머리를 감싸 쥐고서 괴로워했다.
사박사박….
그 사이, 일을 모두 마친 린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끝났습니다.”
린의 말에 시선을 멀리 줬다.
고통과 괴로움에 버둥거리는 놈들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오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할까요?”
다시 들려온 린의 말에 시선을 거뒀다.
일단, 린을 한 번 쳐다봤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정인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정인수는 여전히 제 머리를 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 정인수의 멀쩡한 발모가지를 비틀고 놈들과 함께 던져둔다.
둘째,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애초의 생각은 첫 번째 선택지였다.
짧지만, 깊게 고민했다.
고민이 생겼다는 것은 마음이 흔들렸다는 뜻.
“가자.”
끝내는 정인수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
5구역을 빠져나왔다.
멈칫.
스윽….
걸음을 멈추고 정인수를 돌아봤다.
여전히 온갖 번뇌와 고민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고개를 살짝 가로저은 뒤, 녀석 앞으로 다가갔다.
“…??”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아….”
“약간의 보험도 필요해.”
“…헉!”
정인수의 표정이 급변했다.
눈알이 쏟아질 듯 튀어나왔고, 혀도 반쯤 빠져나왔다.
이어,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한 것만 같은 원망의 눈길로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스윽….
그런 정인수를 내려다보며 녀석의 옆구리를 가격한 주먹을 거둬들였다.
뭐, 한두 시간쯤 지나면 깨어날 것이다.
오식이에게 당한 어깨와 방금 내가 부러뜨린 갈비뼈 때문에 다시 5구역으로 들어가 깽판을 치는 일도 불가능.
혼자서 던전을 빠져나와야 할 것이고, 산을 내려가 마을까지 가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뒤의 행보는 오로지 정인수의 몫이었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 이번 일을 고하고, 나를 잡으려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했던 말대로 조직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뭐, 알아서 하겠지.’
부디, 후자의 길을 선택하길 바랄 뿐이었다.
….
왕울이를 타고서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녀석을 봉인한 뒤, 바로 게이트를 넘었고, 다시 소환하여 올라타고는 산에서 내려왔다.
“고생했어.”
헉헉대는 녀석의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카드 속에 봉인했다.
이후,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음….”
난장판이었던 집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탑차와 물품들을 주문했던 업체에 부탁해 둔 일이었다.
깔끔한 일 처리에 흡족함을 표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차는 집 앞에 주차해 뒀습니다.”
“네, 곧 수거하겠습니다.”
“깨진 거실 창문은 언제쯤 될까요?”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제작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마무리될 겁니다.”
“그렇군요.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말씀하세요.”
“처리하라고 하신 보호 장비들 말인데요.”
“아, 네.”
“저희 쪽에서 바로 구매해도 되겠습니까?”
“그런 것도 하시나요?”
“저희는 뭐든 다 합니다, 하하.”
“뭐, 알아서 하세요.”
“그럼, 가격 책정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10분쯤 뒤에 다시 전화가 왔고, 책정된 보호 장비 금액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이었다.
탑차 렌트와 물품 구매, 청소 등에 쓴 비용을 제외하고도 꽤 남을 정도였다.
“후훗!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네.”
뭐, 생난리를 겪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 보상이나 나름 고급 인력인 우리들의 인건비를 따진다면 한참이나 모자란 금액이긴 했다.
‘괜찮아, 나중에 다 이자 쳐서 받아 낼 거니까!’
….
장거리 운전에 행군까지… 피곤이 어깨를 짓눌렀다.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고, 코를 찔러 오는 맛있는 냄새에 1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린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어, 일찍 일어났네? 피곤하지 않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흠… 다른 녀석들은?”
물음과 동시에 오식이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굳게 닫혀 있는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거의 다 된 거지? 내가 깨워 올게.”
“네.”
오식이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향하는 복도의 시작점부터 들려야 할 녀석의 코골이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응? 이상하네….’
고개가 절로 갸웃해졌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방문을 열며 녀석을 깨웠다.
벌컥!
“오식아, 일어….”
이미 깨어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말문이 막혔다.
녀석도 흠칫했다.
활짝 열린 냉장고 문과 그 안에 들어 있던 햄과 육포 등의 껍질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형님….”
오식이가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멋쩍어했다.
입맛을 두어 번 다시고는 방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조용히 말했다.
“린이 아침 차려 놨어, 치우고 나와.”
“크륵….”
보통 때 같았으면 폭풍 같은 잔소리를 날렸을 것이다.
녀석도 알았으니, 그런 표정과 반응을 보였겠지.
“흠….”
방문 앞에 잠시 서서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그래,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
린이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잘 먹었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공인 중개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예? 갑자기요?”
집을 내놓는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날아온 반응은 컸다.
뭐, 집을 산 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최대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아니, 급히 내놓는 만큼 ‘최대한 빨리’가 정답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잘’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또한, 내가 샀던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싸게 내놓았다.
언제든 제멋대로 오르고 내리는 게 집값이긴 했지만, 처한 상황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또한, 위험했다.
이미 내 거처가 놈들에게 드러난 상태인 만큼, 언제 다시 놈들이 쳐들어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놈들을 왕울이가 있던 던전에 처박아 둔 터였다.
‘이르면 오늘이라도… 늦어도 일주일 후에는 놈들의 액션이 있겠지.’
그 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떠나는 게 옳았고, 무조건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라면, 내가 중개 사무소에 전화를 해, 집을 내놓은 앞선 과정에 모순이 생긴다.
손해를 좀 보더라도 후딱후딱 처리하고 이곳을 뜨는 게 마땅했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연히 이유는 있었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을 만큼 마음에 쏙 든 집이었다.
또한, 내 생애 최초! 더불어 내가 노력해 번 돈으로 산 내 집이었다.
가구며, 집기며, 인테리어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만큼 애정이 넘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어휴!”
놈들과 이번 사건만 아니었어도 절대 팔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진정,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개X씨X레… 삐삐삐에 삐삐삐, 삐삐삐삐삐 같은 놈들이었다.
해서, 한 가지 보험을 들었다.
맞다.
앞서 말했듯 집값을 대폭 올린 채 내놓는 것이다.
이대로는 집이 팔릴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
대신에 내가 없어도 중개인이 알아서 관리를 할 것이다.
물론, 추가적인 보험… 집과 재산 등에 관한 ‘진짜 보험’도 하나 들어 둘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내가 없는 사이, 놈들이 다시 쳐들어와 지랄을 한다 해도, 중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피해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내가 없다는 걸 알고 별다른 해코지를 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정말로 희박한 일이지만, 내가 내놓은 가격에 집이 팔린다면… 뭐,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곳과 비슷한 형태로 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집에 관한 걱정과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
“아, 이 씨방X들… 왜 괜한 짓을 하게 만들고 지랄이야!”
전부 다 뒤집어엎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는 탓에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언젠가 반드시! 꼭! 무조건 받아 낸다!’
놈들에게 청구할 빚이 이미 한도 초과였고, 이자도 상당했지만, 금리를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
바로 짐을 쌌다.
번잡스럽지 않게 챙길 것만 챙겼다.
“가자!”
트럭을 몰고는 A-111… 서울로 향했다.
3시간 남짓 달려 A-111의 중심지에 도착했다.
“봉인!”
녀석들을 카드 속에 봉인한 뒤, 드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그냥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후아… 끝내주는구만!”
앞에 선 것만으로도 기가 죽을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입구였다.
큼직하고 당당하게 박혀 있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 현판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설치된 CCTV 카메라와 최첨단의 방어 시스템. 그것도 모자라, 적재적소를 넘어 과하다 싶을 만큼 배치된 경비 요원까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관저보다 훨씬 더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닌 듯싶었다.
혀를 내두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 요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헌터 등록증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갑에 들어 있는 헌터 등록증을 꺼내 줬다.
등록증을 확인한 경비 요원의 눈빛과 표정이 아리송함과 의심으로 변했다.
몇 번이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도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시큰둥한 투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재빨리 눈빛과 표정을 바꾼 경비 요원이 옆에 놓인 기계에 내 헌터 등록증을 가져다 댔다.
삐빅….
지이잉….
기계에서 영수증 같은 것이 뽑혀 나왔다.
경비 요원이 등록증과 그것을 함께 내밀었다.
“2관으로 가시면 됩니다. 2관은 쭉 직진하시다가 우측으로 돌아 좀 더 가시면 나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는 둥 마는 둥 인사치레를 던지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새끼… F라고 무시하나? 쩝!’
헌터 등록증을 챙기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등록증 가운데에 박힌 ‘F’ 표시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크고, 빛났다.
‘온 김에 재등록도 할까?’
각성과 함께 헌터 등록을 했었다.
특성 개화 전이라 나는 등급 자체가 없었다.
어차피 최하가 F인지라 F 클래스로 일단 처리되어 등록증이 나왔다.
나중에 재등록을 할 수 있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5년간 그럴 일이 없었다.
5년 후, 특성 개화를 했고, A 클래스가 됐다.
바로 재등록을 해야지 싶었지만, 이 또한 다들 알다시피 이런저런 사건들로 오늘에 이르렀다.
‘아, 맞다. 재등록하려면 검사부터 다시 받아야 하지?’
클래스 측정을 다시 해야 했다.
테스트는 나름 까다로웠다.
귀차니즘이 확 밀려왔다.
‘에이, 됐어! 시간도 없는데….’
재등록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테스트를 받고, 등록증을 갱신해야만 했다.
“발급받으시려는 출입증은 B 클래스 이상부터 가능하십니다.”
“읏!”
친절한 여직원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결국, 2시간에 걸친 피곤한 테스트를 받고서 새로운 헌터 등록증을 받았다.
정말로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번쩍거리는 ‘A’가 나름 뿌듯했다.
괜히 어깨도 으쓱해졌고 말이다.
이어, 헌터 협회를 찾은 진짜 목적도 이루어졌다.
“발급받으신 해외 던전 출입증은 타인에게 양도가 불가하며….”
숙련된 듯 막힘없이 늘어놓는 설명을 모두 듣고는 헌터 협회를 빠져나왔다.
“자, 다음은 공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