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7)
그날 오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평소처럼 린을 대동했다.
물론, 오식이와 왕울이는 카드 속에 봉인한 채였다.
“언제 오려나?”
수시로 시간을 체크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주시했다.
약속된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상대방이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20대 초반쯤 됐을까?
아담하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얼굴마저 예쁘장한 남자였다.
특히나 웃을 때 깊게 들어가는 보조개와 무엇을 바른 것인지 생생하도록 붉은 입술이 그의 성별을 더욱더 헷갈리게 했다.
“물건부터 볼 수 있을까요?”
남자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린이 들고 있던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당연히 상자 안에는 AIR WIND–31이 잘 포장되어 있었다.
“꺼내 봐도 되죠?”
남자는 신중하게 물건을 살폈다.
전문가의 포스가 진하게 느껴졌다.
‘하긴,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니까.’
꼼꼼하게 AIR WIND–31을 들여다보던 남자가 얌전히 상자에 다시 내려놨다.
“맞네요, 바로 거래하시죠.”
“네.”
남자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고는 내게 내밀었다.
그리 두툼한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 100만 원입니다.”
“네?”
“아, 나머지는 지금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아아….”
“계좌 좀 주시겠어요? 아니면, 헌터 등록증을 주세요.”
간단한 어플을 사용해 헌터 등록증을 스캔하면 연결된 계좌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별다른 의심 없이 지갑을 꺼내려던 그 순간!
“…?!”
근처에서 뒤통수를 짜릿하게 하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린과 눈도 마주쳤다.
“왜 그러세요?”
린은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대놓고 나의 착각임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언젠가부터 내게 생긴 변화 때문이었다.
‘동물적 감각’이란 것이 있다.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는 뛰어난 감각으로 상황과 사물 등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내게 생겼다.
정확히는 왕울이와 서약을 맺은 후부터였다.
다들 알겠지만, 나는 서약을 맺은 녀석들이 가진 능력을 공유했다.
오식이로부터는 힘을 얻었고, 린에게서는 민첩성을 얻었다.
왕울이에게서 얻은 능력은 동물적 감각이었다.
제일 먼저 확인된 감각은 후각이었다.
늑대와 개는 같은 과라 후각이 예민했으니까.
처음에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리 맡고 싶지 않은 냄새까지 죄다 맡아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뭐, 이제는 좀 적응이 된 상태였다.
이후로 기척이나 살기 등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감지 능력이야 원래도 가지고 있던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고,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처음에는 무척이나 지랄 같았다.
1층에서 잠결에 들썩이며 뿜어내는 오식이의 거친 기척에 깜짝깜짝 놀라며 깨기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나름의 적응과 컨트롤이 필요했고, 아직도 연습하는 단계였다.
갈 길이 먼 수준이었지만, 능력치는 뛰어났다.
오식이나 린은 상대도 되지 않았고, 이러한 능력을 얻게 해 준 왕울이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서약과 함께 녀석들에게서 뭔가를 얻긴 하지만, 당사자가 가진 능력치와 비교해서는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힘에서는 오식이를 이기지 못했고, 민첩성에서는 린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달랐다.
제일 처음 발현된 후각은 왕울이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기척과 살기의 캐치 능력은 정말로 비등비등했다.
이유는 45와 50이라는 레벨 차이 때문이었다.
어쨌든.
때아닌 상황에 살기… 그것도 여러 개나 되는 살기를 감지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터였다.
생각도 많아졌고,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뭐지? 어째서? 왜?’
티가 나지 않게 남자를 쳐다봤다.
별다른 낌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어서 계좌를 달라는 눈빛을 하고만 있었다.
‘아닌가? 하지만….’
계속해서 의심을 하기에도 그렇고, 그냥 넘어가기도 그런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지갑을 꺼내기 위해 뒤적이던 손길을 급히 두드림으로 바꿨다.
“어? 어어?”
내 행동에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응했다.
“왜 그러시죠?”
“아… 지갑을 차에 두고 왔나 보네요.”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력을 뽐냈다.
남자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그냥 계좌 주세요.”
“죄송한데, 제가 계좌를 외우지 못해서요.”
“앗….”
“금방 차에서 지갑을 가져오도록 할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아, 그러면 같이….”
“아닙니다, 금방 다녀올게요. 이거….”
남자에게 받은 돈 봉투를 다시 건네줬다.
어깨를 으쓱한 남자가 돈 봉투를 받았다.
린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린!”
“네? 아, 네….”
상황 파악이 안 된 린이 허둥지둥 내 뒤를 따랐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남자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발걸음을 빨리하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뒤따르던 린이 물어왔다.
“무, 무슨 일이시죠?”
목소리를 낮추며 빠르게 답했다.
“쉿! 낌새가 이상하다. 주의해!”
“아, 네!”
린이 붙잡힌 손에 살짝 힘을 주고는 긴장과 경계의 반응을 드러냈다.
….
무사히 차를 주차시켜 놓은 곳까지 왔다.
흐트러진 감각을 집중시켰다.
별다른 기척도, 살기도 느낄 수 없었다.
‘흐음… 괜한 오해였나?’
살짝 민망해졌다.
살기를 느꼈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인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어떤 이들의 감정싸움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느낌이 조금 지랄 맞았을 뿐이었고, 기우 같은 의심에 오버했을 수도 있었다.
‘어쩌지?’
고민과 갈등이 일었다.
괜한 오해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돌아가서 거래를 마치는 게 옳았다.
그것이 아름다운 직거래의 예의였으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남아 있는 찜찜함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흐음….”
잠시간의 고민이 이어졌다.
그때였다.
스스슷! 스슷!
좀 전에 느꼈던 지랄 맞은 살기들이 멀리서부터 다시 느껴졌다.
빠른 이동과 함께였다.
“린, 차에 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바로 시동을 켜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끼기기기기기기긱….
고막을 자극하는 타이어의 끌림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어, 몸이 뒤로 훅 밀리며, 트럭이 힘차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부아아아아앙….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누가 보내는 것인지는 뻔할 뻔 자였다.
확인은 뒤로 미룬 채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린 후에 차를 갓길에 세웠다.
“후우….”
짧은 한숨과 함께 시트에 몸을 기대며 긴장을 풀었다.
바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나를 노린 게 맞겠지?’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분 나쁜 살기를 대놓고 뿌렸을까.
‘그런데 왜?’
당장에 명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얼핏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사기 거래’가 그것이었다.
사기 거래란 말 그대로 거래를 하며 사기를 치는 경우를 말한다.
더불어 판매자 쪽에서 사기를 치는 게 대부분이었고, 직거래보다는 택배 거래에서 많이 벌어진다.
돈을 받고는 아예 물건을 보내지 않거나 택배 상자 속에 다른 물건… 예로 벽돌이나 쓰레기 등을 넣어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해서, 직거래를 선호하는 것이다.
물건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이니, 그런 뭐 같은 상황은 당할 우려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직거래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상대에 대한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서로 만나서 물건을 거래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돈도 있고, 물건도 있고… 어느 쪽이든 마음을 이상하게 먹는다면, 당할 가능성은 크다.
아닌 말로, 갈취나 폭행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납치나 있어서는 안 될 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
애초에 다른 범죄를 계획하여 직거래를 유도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진짜로 일어난 사건들이었고, 중고 거래 사이트마다 조심하자며 박제된 얘기가 수두룩했다.
‘흐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나와 거래를 하려 했던 남자와의 연관성도 떠올렸다.
‘같은 편이었겠지?’
그렇다고 보는 게 옳았다.
내가 고가의… 그것도 한창 입소문을 타고 있는 AIR WIND–31을 갖고 있으며, 그 자리에 나온다는 걸 아는 이는 그 남자뿐이었으니까.
“이런, 썩을 놈!”
이를 갈았다.
그제야 주머니에 든 아이퐁도 생각났다.
바로 꺼내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언제 오시죠?]
[왜 안 오세요?]
[어디 가셨나요?]
[무슨 일이시죠?]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이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잠시지만, 그를 향했던 의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는 답장 하나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이내, 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러셨군요. 그럼, 거래는요?]
[죄송합니다.]
[아니,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나 참,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지금 장난하세요?]
딱히 마음에는 없었지만,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음에도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로도 끈질기게 메시지를 보내며, 다시 거래하기를 원했다.
내가 확인만 하고서 답장을 하지 않자, 끝내는 욕도 하고, 협박도 했다.
그러다가 또 사정하며 거래를 이어 가자고 해댔다.
‘거참, 생긴 거 답지 않게 입이 더럽네….’
사기 거래나 살기를 떠나 기분이 잡쳤다.
해서, 그냥 대꾸 하나 없이 차단해 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고래 심줄만큼이나 집요하고, 끈질겼다.
몇 번이나 다른 번호로 계속해서 연락을 해 왔고, 늦은 밤이나 전화 통화도 서슴지 않았다.
“하, 뭐 이런….”
그의 가상한 끈질김과 노력에 감복… 아니, 항복했다.
[그럼, 택배 거래로 합시다.]
나름의 절충안을 내놨다.
그런데 그건 또 싫단다.
직거래가 아니면 안 된다나?
“아아, 뭐, 어쩌라고!”
짜증이 났다.
바닥에 깔려 있던 의심이 다시금 들고 일어났다.
“이것들을 그냥 쓸어버릴까?”
속셈이 뻔해 보였기에 그냥 만나서 혼쭐을 내줄까도 싶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난데없이… 그것도 여러 개의 살기가 날아든 것에 당황했고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경황이 없었다고 할까?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다지 겁낼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적합한 곳을 약속 장소로 정하고, 오식이와 왕울이까지 소환한 상태라면, 오히려 도망치거나 삥을 뜯길 쪽은 놈들이었다.
“에휴… 그냥 착하게 살자.”
부질없는 짓이라 여겼다.
화를 삭이고는 아이퐁727의 전원을 당분간 꺼 두기로 했다.
“그래, 나중에 팔면 되지!”
추세로 봐서, AIR WIND–31의 인기가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더 값이 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문제 없이 일이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아니었다.
아이퐁727을 꺼두고, 한 3일쯤 지났나?
이 미친놈들이 끝내는 나의 넓은 아량과 관용을 개무시하고,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모두 곤히 잠든 새벽.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머릿속으로 음성 하나가 전달됐다.
음성의 주인은 왕울이였다.
―일어나라아우! 침입자다아우.―
참으로 오랜만에 겪는 현상이었다.
오식이와 린이 진화를 한 이후에는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또한, 원체 과묵한 타입의 왕울이는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는지라 쓸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침입자란 소리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아수라 스워드를 챙겼다.
이어, 오식이와 린의 카드를 꺼낸 뒤, 봉인 스킬을 사용했다.
각각 제 방에서 잠든 탓에 내 눈에 보일 리 없으니 스킬은 발동되지 않았다.
하지만, 징징거리는 진동과 느낌이 전달되어 녀석들의 잠을 깨울 정도의 신호를 보낼 수는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아직 밤이다. 배 안 고프다.―
킁….
일단, 깨우는 것에 성공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