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6)
새 보금자리의 정리를 모두 끝낸 후에는 동네 적응에 나섰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적응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적응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린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낮과 컴컴한 밤을 가리지 않았고, 혼자서 돌아다녀도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혼자 다니면 은근 찝쩍대며 추파를 던지거나 음흉하고, 야릇한 눈길을 주는 남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나와 함께 다닐 때는 더욱더 문제 될 게 없었다.
이따금 ‘신혼부부? 아니면 연인 사이?’라든가, ‘둘이 참 잘 어울린다’라는 말에 미소로 답해 주며 으쓱해지는 어깨와 기쁨을 만끽하면 그만이었다.
그 와중에도 살짝 난감한 때가 있기는 했는데….
린이 나를 부르는 호칭인 ‘주인님’ 때문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있을 때는 최대한 호칭의 자제를 부탁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터라, 그걸 들은 이들이 ‘어머, 어머!’라든가 뭐를 좀 알겠다는 듯한 이상한 시선으로 보며 키득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뭐, 그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어가도 될 일이긴 했다.
딱히 사고를 친다거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식이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밝은 대낮에는 조금 덜했다.
하지만, 컴컴한 밤에는 절대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으슥한 곳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혼자 걷는 여성이나 겁이 좀 있는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오식이를 발견하고는 냅다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살려 달라는 고함과 찢어지는 비명은 기본이었고, 신고를 하는 이들도 대다수였다.
‘하긴 나라도 밤에 너랑 맞닥뜨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튈 거야… 쩝!’
대낮에는 조금 덜하다고 했지만, 말 그대로 밤보다 조금 더 나을 뿐, 상황과 문제는 비슷했다.
“잘 좀 입어 봐! 얼굴은 모두 가리고!”
완전 무장으로 얼굴과 피부색은 가렸지만 큰 키와 우람한 덩치는 수습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어른들은 괜찮… 말이 그렇지 표정과 안색은 쩝….
어린아이나 작은 애완동물들은 오식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고 미친 듯이 짖어댔다.
예민한 것들은 그 자리에서 똥과 오줌을 질질 지리기도 했다.
뭐,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이따금 상대의 반응에 기분이 상한다거나 욱하는 마음에 녀석이 저도 모르게 으르렁거릴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제일 문제였다.
이건 뭐… 그냥 게임 끝이라고 봐야 했고 수습을 하기보다는 1초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게 최선책이었다.
자리를 벗어난 뒤의 따끔한 질책과 핀잔은 덤이었고 말이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그만 아이들을 상대로 뭐 하는 거야? 왜? 그 애들이랑 싸우기라도 하려고?”
“아니다.”
“그럼 뭔데?”
“예뻐한 거다.”
“웃기시네! 네 눈빛은 그게 아니었거든?”
“억울하다.”
“됐어! 넌 오늘 저녁에 고기 한 덩이 뺄 거야!”
“아악! 혀, 형님….”
“형님이고 나발이고, 네 방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
뭐, 이런 식으로….
누가 봐도 문제였지만, 이런 오식이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양반이었다.
뭐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왕울이와 비교하면 말이다.
“흐음….”
일단 왕울이의 크기는 2미터가 조금 넘는다.
꼬리 길이까지 합친다면 2.5미터를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덩치도 크다.
나를 거뜬히 태우고 달릴 수 있을 정도니까.
애완견으로 키우는 개도 얼추 왕울이만 한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딱 봐도 개처럼 생겼다.
왕울이는 당연히 어디를 봐도 늑대처럼 생겼다.
아무리 주인 격인 내가 곁에 있다고 한들, 겁 없이 다가오거나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오식이를 보거나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워하며 피하기에 바빴다.
나름의 조치를 강구했다.
녀석에게는 좀 미안하고 수치스럽겠지만 길고 튼튼한 목줄을 채웠다.
알록달록한 색과 디자인의 옷도 입혔다.
‘♥우리 아이는 절대 물지 않아요♥’라는 문구까지 새겨진 것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전혀 없었다.
“쓰읍… 포인트로 빨간색 하트까지 넣었는데 왜 그러는 거야?”
나 역시, 그것이 요지가 아님을 알지만, 억울함에 투덜거려야 했고, 결국에는 왕울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한다거나 함께 다니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
일반인들이 주를 이루는 동네는 그랬다.
뭐, 상점가나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던전이나 게이트 주변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일반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각성자들이 모인 곳이라 녀석들을 대하는 눈길과 관심이 남달랐던 것.
린의 인기는 어디나 비슷했다.
남자들의 관심과 시선은 말할 것도 없고, 여자들의 묘한 시선도 즐비했다.
덩달아 내게 꽂히는 시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오식이를 향한 눈길도 장난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듬직함을 넘어서는 강인한 외형에 일단 관심 폭발이었다.
레벨을 물어 오거나 함께 사냥을 하자는 제안도 폭주했다.
그런 와중에 진심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일도 있었다.
녀석에게 진심으로 반한 듯이 다가서는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머! 이 황홀한 근육 좀 봐… 너무 멋져요.”
“저기요.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밤에 저랑 술 한 잔하시겠어요?”
당연히 내가 나서서 거절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네가 뭔데?’라는 말과 눈빛, 표정 등을 대하는 건 예삿일이었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도망을 쳐야 하는 일도 있었다.
‘췟! 취향도 독특하지… 아닌가? 눈이 좀 삔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오식이의 인기를 가뿐하게 능가하는 건 다름 아닌 왕울이였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왕울이가 와일드 울프 킹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레벨이 낮거나 와일드 울프 킹을 본 적이 없는 이들도 일단은 녀석에게 관심을 보였다.
워낙에 크고, 멋들어지는 녀석이긴 했으니까.
왕울이에게 관심을 표한 이들은 나를 수준급 이상의 조련사 내지는 테이머라 단정 지었다.
그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고, 그럴 이유도 없기에 그냥 그렇다고 말하거나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또한, 녀석을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나를 높이 평가해 몇몇 길드나 파티 등에서 초대의 권유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귀찮음과 그럴 이유 없음에 죄다 거절해 버렸다.
….
이렇듯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관심과 눈길을 받았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내심, 녀석들의 정체가 탄로 날까,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 다짜고짜 공격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딱히 시비를 거는 놈들이 없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관심과 눈길이 너무나 귀찮고 지겨워졌으며 불편해졌다.
“아, 피곤해. 우리끼리 할 때가 편한 거였어.”
날로 쌓이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시작 자체를 너무나 조용하고, 편안하게 혼자서 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람들 없는 곳으로 들어가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때, 하나의 사건이 떡하고 벌어졌다.
지랄 같은 연으로 이어진… 해서, 결국에는 내가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던전을 찾지 않고, 쉬기로 했다.
다들 넓은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늘어지도록 잠을 자고 있었다.
배가 터지도록 점심을 먹은 후이기도 했었다.
띠링! 띠링!
딱히 울릴 일이 없는 아이퐁727이 강렬한 종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냈다.
“음냐… 대출 안 받아요.”
아무리 차단을 해도 뚫고 날아오는 광고 메시지라 여기며 혼잣말로 농담을 던졌다.
옆으로 몇 번 구르기만 하면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귀찮았다.
하지만 아이퐁은 그런 나의 귀찮음을 가만두지 않았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연속으로 지랄 맞은 종소리를 내며 끝내는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고, 상체마저 일으켜 세웠다.
“아놔! 대체 어떤 새끼야?”
성질을 내며 아이퐁을 집어 들었다.
액정을 터치해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감자 마켓 보고 연락 드려요.]
[저기요.]
[거래하셨나요?]
[연락 좀 주세요.]
혼자서 떠들어댄 문자 메시지를 보며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올린 게시글이 생각났다.
비슷비슷한 이름… 하지만, 어째서 죄다 채소나 과일 이름인지는 알 수가 없는 중고 거래 사이트… 그중의 하나가 바로 감자 마켓이었다.
어딜 가나 차고 넘친다는 사기꾼이 그나마 없다고 해서 선택하고, 가입한 뒤에 중고 상품 하나를 올렸었다.
내가 감자 마켓에 올린 중고 상품명은 ‘AIR WIND–31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맞다.
아주 오래전, 내가 쪼렙이라 불리기도 뭐하던 시절에 우연히 얻게 된 신발.
좀 더 정확히는 정인영이란 여자가 신었던 운동화로 뭣도 모른 채, 상점에 팔려다가 보증서가 없어 의심만 사고는 동굴 속 보금자리 구석에 처박아 뒀던 것이었다.
그 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보금자리를 정리하던 중에 다시 발견했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상태가 너무 좋아서 챙겼다.
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사와 꾸미기 등으로 정신없는 통에 다시금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얼마 뒤.
사람들의 입에서 AIR WIND–31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유는 미국의 유명 모델이자, 61레벨의 헌터이기도 한 여자가 TV 토크쇼에 AIR WIND의 신제품을 신고 나온 것 때문이었다.
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협찬이든 PPL이든 간에 AIR WIND의 신제품을 신고 나왔으면 해당 제품이 이슈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여자가 가장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모델이 AIR WIND–31이라 말하면서부터였다.
시선 집중.
관심 폭발.
실시간 검색어 1위 등등….
AIR WIND–31의 인기와 관심은 장난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리미디트 에디션인 까닭에 프리미엄이 붙어 높았던 가격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어차피 여성용이라 나는 신지도 못했다.
린에게도 보여 줬지만, 관심조차 없었다.
어쨌거나,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나 다름이 없었다.
당장에 판매 게시글을 올렸다.
하지만, 판매자인 내 등급이 낮아서인지 며칠이 지나도 연락 한 통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AIR WIND–31을 사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메시지를 늦게 봤네요.]
메시지를 보낸 지 10초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아아… AIR WIND 거래하시는 분 맞으시죠?]
[네.]
[거래하셨나요?]
[아직 안 팔렸습니다.]
[아, 다행!]
[^^]
[230 사이즈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정품이죠?]
[정품입니다.]
빠른 문자 대화가 오고 갔다.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려는데, 좋았던 분위기에 초를 치는 태클이 들어왔다.
[보증서는 있나요?]
보증서가 없었다.
해서, 그때도 상점에 팔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사실을 고했다.
[아쉽지만, 보증서는 없네요.]
상대방의 문자가 끊겼다.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거래 불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장식할 때쯤 다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혹시, 사진 가능할까요? 다양한 각도에서 디테일하게 찍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희망의 끈이 남아 있었다.
당장에 ‘알았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사진을 찍었고, 상대방에게 전송했다.
1분쯤 지나서 답장이 왔다.
[정품 맞네요. 직거래죠?]
“앗싸!”
쾌재를 부르고는 거래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