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3)
반지와 목걸이를 잘 챙기고 정원을 빠져나왔다.
철창문을 넘기 직전, 린이 나를 불렀다.
“주인님….”
고개를 돌렸다.
린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멀리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
저주받은 저택의 식구들이 그곳에 있었다.
리차드도 있고, 로레나와 마리안느도 있었다.
알프레드와 린,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병사, 정원사도 있었다.
모두 다 말끔하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까딱….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들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에, 린도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크게 손을 흔드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철창문을 넘었다.
끼이이이익….
철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창문이 닫혔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더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
“각자 쉬도록 해!”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일단은 쉬기로 했다.
“배고프다.”
오식이의 투정에 린이 바로 나섰다.
“제가 준비할게요.”
“쯧… 난 됐어.”
가볍게 혀를 차고는 동굴 속 텐트로 향했다.
붕 뜬 기분에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
눈을 뜨니 날이 컴컴해져 있었다.
오후 9시를 살짝 넘긴 시간이었다.
‘많이도 잤네.’
머리를 벅벅 긁고는 밖으로 나왔다.
오식이는 코를 드르렁 골며 뻗어 있었고, 린은 혼자서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푹 쉬셨어요?”
“응. 넌 안 잤어?”
“네.”
린의 옆으로 가 앉았다.
자리를 살짝 내준 린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미간이 절로 꿈틀대는 로믄 티의 향이 코를 자극했고, 한 번 봤던 맛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식사하셔야죠?”
“어? 아아… 어, 해야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린의 물음에 허둥대야만 했다.
다행히 린은 눈치채지 못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 아냐… 천천히 해도 돼.”
“네. 그럼….”
린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조금 더 여유의 시간을 가졌다.
….
다음 날 오후.
스르릉….
저주받은 저택 던전의 출입구인 게이트가 완전히 닫히며 사라졌다.
직장처럼 오랜 시간을 매일같이 출퇴근했던 탓인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린은 확실히 나와 비슷한 느낌인 듯싶었고, 오식이에게서는 딱히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내일은 할 일이 있으니까, 오늘까지는 푹 쉬도록 해!”
이미 풀로 가득 찬 체력과 컨디션을 넘치도록 채우며 간만의 느긋함을 즐겼다.
저녁도 풍성하게 차려 먹었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드디어… 그래… 이제는 되겠지….’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몸 상태가 좋았다.
“주인님, 준비됐습니다.”
“크르르르!”
린과 오식이도 컨디션이 최고인 듯했다.
“좋아! 가자!”
가볍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없는 듯이 아예 기억에서 잊고 지냈던 첫 번째 직장을 향해서였다.
….
게이트를 넘어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흐음….”
무척이나 오랜만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에도 들어왔었던 것처럼 주변 풍경이며, 공기마저도 너무나 익숙했다.
뭐, 나는 그랬고, 오식이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이곳이 처음인 린은 좀 다를 것 같았다.
“어때?”
내 물음에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린이 차분한 음성으로 답했다.
“이곳은 또 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들어요. 싱그러움이랄까요? 저번에 갔던 곳은 건조함이 강했잖아요.”
린의 말에 기억의 돌이 있던 던전의 느낌을 떠올렸다.
“그랬던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싱그러움이라… 저 안은 그렇지 않을걸….”
먼저 걸음을 옮겼다.
린과 오식이가 뒤를 따랐다.
급할 것이 없었다.
두근거림이나 긴장감도 딱히 없었다.
그냥 차분했다.
….
텅 빈 플로리 밭을 가로질러 어둠의 장벽 앞에 도착했다.
어둠의 장벽 또한 처음 접할 린이었지만,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음… 매우 습하군요?”
어둠의 장벽을 넘어 5구역에 들어서자 그나마 반응했다.
그에, 괜히 신이 나서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져!”
“아아….”
계속 전진했다.
얼마 뒤, 즐비하게 터를 잡고 사냥하던 곳에 다다랐다.
냥이를 잃었던 곳이기도 했다.
당시, 귀염둥이가 핏빛 달의 분노 스킬로 쓰러뜨렸던 거목들이 푸른 이끼와 이름 모를 잡풀들로 뒤덮여 조금은 생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흠….”
꽤 복잡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쓱 훑고 지나갔다.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다른 질문을 린에게 던졌다.
“저 너머… 느껴져?”
이곳에 다다르기 전부터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던 기운이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지금은 훨씬 더 확실하고,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네, 꽤 강한 기운 하나와 그보다 떨어지는 것 하나가 느껴집니다.”
“다른 건?”
“고만고만한… 다수의 존재도 느껴집니다.”
정확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린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여유와 침착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강해졌나?’
우쭐함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쓰러진 거목들을 넘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오식이와 냥이에게 절대로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안전선 부근을 넘자, 고만고만한 놈들… 와일드 울프들이 혼잡스러운 반응을 드러냈다.
“컹! 컹!”
“아우우우우!”
멀리서부터 요란함을 표했다.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도 했다.
다다다다닷….
어차피 안으로 더 들어갈 생각이었다.
느긋함을 발하며, 미친 듯이 달려드는 와일드 울프 놈들과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더 좁혔다.
금세 놈들과 마주했다.
“컹! 컹!”
“크르르릉! 컹!”
열댓 마리 정도 될 듯했다.
그때는 서너 마리만으로도 그렇게나 살벌하고, 버겁게 여겨졌건만… 지금은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말로 동네 똥개보다도 못하게 보였다고나 할까?
“하찮은 놈들….”
나도 모르게 속내를 흘렸다.
오식이도 그렇게 여겼는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이젠 더 이상 거대하게 느껴지지 않는 놈들을 향해 우렁찬 포효를 뱉어 내며, 놈들이 범접할 수 없는 강인함을 마음껏 뽐냈다.
“크아아아앙!”
고막은 물론, 주변의 공기까지 흔들어 놓은 오식이의 포효에 놈들이 움찔했다.
몇몇 놈들은 겁에 질렸음을 확실하게 드러내며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더니만, 놈들이 일제히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는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오오오오오….”
“아오오오….”
“아오오오오오오….”
전혀 정렬되지 않은 화음의 하울링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에 대답하듯 저 멀리서도 비슷한 느낌의 하울링이 들려왔다.
이어, 거대한 먼지 폭풍과 지면의 울림이 발생했다.
두다다다다다다다….
그냥 봐도 엄청난 수가 예상되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전혀 두렵거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컹! 컹!”
“아우우….”
“크르릉! 컹! 컹!”
1분도 되지 않아, 족히 100… 아니, 200쯤은 훌쩍 넘길 듯한 놈들이 우리 앞에 진을 쳤다.
다른 이들은 장관이라 부를 수도 있을 법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냥 시끄럽고,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절로 깊어진 미간의 주름을 한 번 더 좁히고는 명령을 내렸다.
“더럽게 시끄럽네… 그냥 다 쓸어버려!”
기다렸다는 듯이 린과 오식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얍!”
촤아아아악….
스슥! 댕강! 후두둑….
한 번의 휘두름에 와일드 울프 놈들의 대가리와 앞다리 등이 맥없이 썰려 나갔다.
한 큐에 다수가 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면밀하게 말해서 베는 용도가 아닌 린의 빗자루에 그리된다는 것은 그만큼 놈들과의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식이 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깨앵….”
얼마나 재수가 없는 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식이의 손아귀에 제일 먼저 붙잡힌 와일드 울프 놈은 강제로 녀석의 무기가 되었다.
부웅! 부웅! 부우우우웅!
머리 위로, 허리 뒤로 할 것 없이 손에 잡힌 와일드 울프 놈을 빙빙 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쌍절곤을 멋지게 돌리는 듯했다.
때로는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듯 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녀석의 무기가 된 놈은 제 동료들을 피떡으로 만들며 저도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두닥! 퍽! 퍼억! 두두둑!
난리 통이란 말이 어쩐지 부족해 보이는… 처절하고, 끔찍한 아수라장이 어울릴 듯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나름 한적한 공간에 서서는 엘프의 활을 빼 들었다.
대충 거리를 가늠한 뒤, 화살을 장전하고는 허공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티잉! 팅!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씩 틀면서 계속해서 화살을 쏴댔다.
티잉! 팅!
티잉! 팅….
연속된 더블샷이었다.
쐐액! 쐐애액!
쐐애액! 쐐액….
두 발씩 발사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졌다.
린과 오식이가 활약하는 곳과 떨어진 뒤쪽 부근… 다른 놈들에게 가로막혀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해대기 바쁜 놈들이 뭉쳐 있는 곳이었다.
‘둘, 셋… 퍼엉!’
속으로 숫자를 세고, 폭음을 표했다.
딱 맞는 타이밍에 첫 번째 폭발이 일었다.
퍼어어엉!
당연히 난리가 났다.
“깨갱….”
“깩!”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었다.
퍼어엉!
퍼어어어엉!
퍼엉….
연속된 폭발과 함께 와일드 울프 무리의 후진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버렸다.
“쉽다, 쉬워… 쩝!”
너무나 쉬운 탓에 허무한 입맛이 다셔졌다.
그래도 활질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시금 연속된 더블샷과 연발의 파탄으로 와일드 울프 놈들의 수를 대폭 줄여 버렸다.
그 결과….
끽해야 2, 3분 남짓 만에 놈들의 수는 처음의 반도 되지 않게 됐다.
“슬슬 나서야 할 때지 않냐?”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혼잣말을 나직하게 흘렸다.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느낌부터 확연하게 다른 하울링이 들려왔다.
“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묵직하고, 강인한 기운이 담긴 하울링에 요란법석을 떨어대던 와일드 울프 놈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그러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하아, 하아….”
신나게 몸을 놀린 탓에 차오른 숨을 다스리며 린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식이도 몇 번째 바뀌었는지 모를 와일드 울프를 땅바닥에 툭 던지고는 뒷걸음질 쳐 우리에게 붙었다.
처억….
엘프의 활을 어깨에 걸치고는 어느새 진형을 갖추고 멈춰선 놈들의 뒤쪽을 쳐다봤다.
크고 작은 두 개의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래, 어서 와라.’
….
좌아악….
홍해가 갈라지듯 와일드 울프 무리가 양옆으로 물러나며 길을 만들었다.
‘그때는 좀 멋있었는데….’
이전 날, 귀염둥이가 어린 와일드 울프 킹에서 진정한 와일드 울프 킹으로 진화하며, 내 눈앞에서 걸었던 ‘로열로드’.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난장판에 주변이 더럽고, 놈들의 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광경인데,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왠지 초라하고, 그저 그래 보였다고나 할까?
저벅저벅….
빛바랜 듯한 로열로드를 통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와일드 울프 킹과 은빛의 와일드 울프의 모습도 그리 멋지게 보이지 않았다.
뭐, 나름의 당당함과 포스를 뿜어내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늘어난 힘과 실력… 그에 높아진 눈높이 때문인지 진심으로 별것 아니게 보였다.
어쨌거나, 던전 보스인 와일드 울프 킹과의 재회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스윽….
오식이와 린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와일드 울프 킹도 내내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은빛 와일드 울프를 뒤로하고는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두둥….
왠지 느낌 있는 BGM이 흘러야 할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당연히 그런 건 없었다.
“그르르….”
잠시 나와 눈빛을 마주한 와일드 울프 킹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어, 굵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대가… 내가 기억하는 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