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48)
“뭐,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라서는 소리쳤다.
슬쩍 고개를 돌린 오식이가 히죽 웃고는 행동을 이어 나갔다.
왠지 걱정하지 말라는 느낌이 강해 만류하기를 멈췄다.
서로 엉겨 붙어 바둥거리는 놈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오식이는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놈들을 빤히 살폈다.
그러다가 중간에 깔린 놈… 그나마 발버둥이 심하지 않은 놈의 대가리를 양손으로 붙들었다.
처억….
한쪽 손은 놈의 눈 윗부분의 머리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놈의 입 부근인 아래턱을 잡은 모습이었다.
“…?!”
왠지 알 듯 말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이어, 오식이 녀석의 양팔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불끈불끈….
“푸르륵….”
놈이 의문인지 긴장인지 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놈을 향해 히죽 웃어 보인 오식이가 근육 빵빵의 양팔을 동시에 움직였다.
휘리리릭!
이내, 녀석에게 붙잡힌 강철 말의 모가지가 반 바퀴 이상 돌아갔다.
세상 끔찍하기 그지없는 소리를 동반한 채였다.
우두두두두둑!
찍소리도 내지 못한 놈의 대가리가 힘을 완전히 잃고 축 처졌다.
“….”
경악스러운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고,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린도 나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오식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제 다섯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얼떨떨한 마음을 추스르기 전에 오식이가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역시나 무덤덤한 녀석에게 물었다.
“어찌 된 거야?”“…??”
“어떻게 죽인 거냐고? 그것도 그렇게 쉽게….”
“별것 아니다.”
누가 봐도 그래 보였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얘기하지만, 강철 말은 ‘무적’이었으니까.
“알고 있었어? 네가 저놈들을 이길 수 있는지?”
“그렇다.”
괜한 허세나 보통의 자신감이 아니었다.
결과도 보시다시피….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어? 왜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은 거지?”
“묻지 않았다.”
“엥?”
물어본 적이 없기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이가 없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오식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혼난다.”
“아….”
“그리고 다친다.”
오식이가 나와 린… 특히나 린을 향해 느끼하고, 끈적한 느낌의 눈빛을 발하며 한 번씩 쳐다봤다.
녀석의 말을 듣자마자, ‘네 개인적이고, 무턱댄 행동에 너는 물론, 나나 린이 다치고, 죽을 수 있다는 걸 왜 몰라?’라고 녀석에게 꾸지람을 날렸던 때가 떠올랐다.
얼마 전… 가장 최근의 일이었고,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나나 린의 목숨을 운운한 적은 처음이었다.
당시 오식이의 표정은 풀이 잔뜩 죽어 있었고, 무척이나 미안해했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렇고, 녀석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혼날 때는 반성하고, 뭔가를 깨우치거나 느끼는 반응을 보이기에 그때도 그저 그 정도로만 여기고 넘겼었다.
‘흐음….’
오식이에게 있어서 특효약은 따로 정해져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 되었다.
아무튼.
강철 말의 무적이란 수식어를 무색하게 하는 오식이의 강함에 왠지 개고생을 사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녀석을 이용한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쩝!’
뭐,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이상적이고, 베스트인 사냥법은 모두가 해 왔고, 우리도 따라 했던 지금까지의 방법임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
이런저런 얘기와 생각을 하는 사이.
목숨을 잃은 강철 말 세 마리가 사라지고, 엉켜 있던 놈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새로운 강철 말들이 등장하며, 놈들의 숫자가 다시 다섯이 되었다.
고오오오오….
마리안느도 나타났다.
빠르게 가늘게 뜬 눈으로 금색의 실을 찾았다.
반짝!
정수리 부근에서 빛나는 금색의 실을 찾은 뒤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달려들었다.
오식이는 모르겠지만, 린이 강철 말을 죽이지 않고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탓에 시간을 끌거나 지체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촤아아아악!
그그그그긋….
뚜둑… 뚝!
약간의 버팀을 이겨 내고, 마침내 마지막 다섯 번째 금색의 실을 끊을 수 있었다.
“스하아아아아….”
이전에도 그랬지만, 역시나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훨씬 더 싸늘하고, 괴상함을 더한 소리를 내며 마리안느가 시뻘건 두 눈을 번뜩거렸다.
“크으….”
절로 이가 갈리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이기에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껏 금색의 실을 잘랐을 때마다 매번… 총 네 차례나 겪었던 몸의 경직과 굳음이 이번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제 마리안느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타이밍과 기회가 생겼다는 말이기도 했다.
더불어 살벌하고 시뻘건 눈빛을 발하며, 싸늘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왠지 힘을 잃고 흐느적거리는 탓에 거의 무방비 상태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꽈아악!
아수라 스워드를 양손으로 힘껏 꼬나쥐었다.
이어, 마리안느를 향해 막 내달리려던 찰나!
뒤통수로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린이었다.
“주인님!”
바로 고개를 돌렸다.
린이 근처에 있는 강철 말에게서 눈을 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고, 그만큼 나를 부른 이유가 중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조, 조심해!”
내 외침에 린이 강철 말을 슬쩍 돌아봤다.
이어, 잽싸게 몸을 튕기며 자리를 벗어났다.
오식이를 향해 다가선 린이 빠르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오식 씨! 부탁해요.”
“알았다. 크륵!”
자연스럽게 강철 말 쪽으로 몸을 돌린 오식이가 든든하게 린을 지켰다.
녀석에게 등을 맡긴 린이 나를 향해 말을 전했다.
“주인님, 부탁드립니다.”
“…??”
“고, 공격을 멈춰 주세요.”
“엥?”
린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린이 다시금 사정의 투로 말을 이었다.
“이유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잠시만 공격을 멈춰 주세요.”
확실하고, 진정 어린 이유가 있어 보였다.
평소 린이 보여 준 모습과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과 고민도 있었다.
고개를 돌려 마리안느를 쳐다봤다.
‘지금이 아니면….’
이미 시간이 좀 흐른 탓에 마리안느가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크고도 강한 한 방을 제대로 먹일 수 있는 최대의 찬스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소리다.
“크으….”
안타까움의 신음을 흘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곧장 린과 오식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됐지?”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이유는 꼭 묻겠다.”
“네,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강철 말들과의 사투를 위해 움직였다.
금색의 실을 끊기 전까지는 놈들의 수가 줄어들면 안 된다.
자연스레 도망을 다니거나 막아서는 정도의 움직임만을 이어 가야 한다.
또한, 대형에서 이탈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놈들의 시선을 끌어야만 하기도 했다.
위험하면서도 소극적이어야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금색의 실은 모두 끊었으니까.
더불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마리안느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후, 저절로 쓰러져 버렸던 다른 놈들과는 달리, 마지막 다섯 번째 괴물들은 그대로 살아 있다.
마리안느와 함께 놈들도 직접 죽여야만 한다는 소리다.
“오식아, 이제는 죽여도 돼! 마음껏 네 힘을 보여 줘!”
“알았다!”
든든함이 물씬 느껴지는 투로 대답한 오식이가 이내 강철 말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쿵! 쿵!
까아아아앙!
뿌득! 빠득! 꽈득!
거침없고, 강렬한 부딪침과 우악스럽고, 강인한 힘의 향연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린! 우리도 간다.”
“네!”
린과 내가 동시에 자리를 박차며 흩어졌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놈들끼리 부딪치고, 얽히고설키다가 알아서 죽게 하고, 후에는 벽으로 유인해 꼬라박도록 하는 정석의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식이가 숨겨(?) 둔 힘과, 그것이 무적의 강철 말을 상대하고도 남을 정도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더 쉽고, 빠른 길을 택하는 게 옳을 터였다.
그 와중에 웃긴 건.
오식이가 강철 말까지 압도해 버린다는 걸 어쩌다가 알게 된 상황이라, 딱히 말을 맞췄다거나 합을 맞춘 적이 없는 사냥법과 계획이었음에도 린이 찰떡같이 내 마음을 읽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린은 오식이가 강철 말과 1:1로 싸울 수 있도록 놈들을 유인하고, 시선과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알아서 움직였다.
나 역시, 린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강철 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얼마 뒤….
우두두두두둑!
마지막 강철 말의 모가지를 비튼 오식이가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앙!”
그런 오식이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와우….”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가서 당당하게 어깨를 편 채, 콧대와 턱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들며 자랑을 일삼아도 될 만큼 말이다.
당연히 녀석의 엄청난 힘과 활약상을 치하하는 얘기다.
또한, 그로 인해 세운 신기록 같은 시간의 단축을 말함이었다.
놈들끼리 지지고 볶게 하는 정석의 사냥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로따로 움직이는 다섯의 놈들을 잘 유인하여 동시에 한 점을 공격하게 만들어야 하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보통이라면 놈들과의 사투 중에 모습을 감췄던 마리안느가 다시 나타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타입으로 각성(?)해 버린 그녀를 동시에 상대해야만 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지랄 같은 상황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남아 버렸다.
강철 말 다섯 마리를 모두 해치웠지만, 아직 마리안느가 나타나지 않았… 나타날 기미조차 현재로서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 탄성에, 놀라움에, 자랑이니, 신기록이니 하는 말까지 언급하는 게 아니겠는가.
“멋져요. 오식 씨!”
“안다! 크르르!”
린의 칭찬에 오식이가 거들먹거리며 신을 냈다.
눈꼴이 조금 시리기는 했지만, 나 역시 감출 수 없는 미소를 어쩌지 못한 채 말했다.
“얼른 회복 물약부터 마셔!”
“알았다.”
“린도 조금 마셔 두고.”
“네! 주인님도 챙겨 드세요.”
“어, 그럴 거야.”
셋 다 동시에 회복 물약을 꺼내 들었다.
빠르게 병을 비우고는 곧 등장할 마리안느를 기다렸다.
초조함으로 물든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서 있는 반대편 벽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오오….
“크으!”
“으읏!”
“크르륵!”
아직 등장도 하지 않은 마리안느였다.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에 내가 굉장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후회했다.
‘한 방 먹였어야 했나?’
그리 깊거나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린을 향해 원망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그런 내 눈빛과 감정을 알아채거나 느낀 것일까?
린이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벽에 시선을 똑바로 고정한 채 말했다.
“주인님. 이번에도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엥? 그, 그게 무슨….”
“부탁드립니다.”
또다시 날아든 린의 이유 모를 황당한 부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뿜어내는 기운만으로도 난리가 난 상황에서의 이런 부탁은 도무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 들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이유나 상황도 모른 채, 목숨을 걸고서 들어줄 부탁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봐도 좋았으니까.
“대체 이유가 뭐야?”
“그건….”
린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단호하고, 매정한 투로 먼저 말했다.
“아무리 네 부탁이라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 전체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간에 안 돼! 타당한 이유를 말해 주던가!”
내 버럭에 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마리안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