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31)
쐐애애액!
퍼어어억!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재차 린을 공격하려던 암흑 병사 놈의 목을 꿰뚫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온전한 신체 부위였다.
알프레도가 뿜어내는 시커먼 아지랑이로 대체된 놈들의 몸뚱이는 암흑의 불꽃처럼 일렁거린다.
얼핏 뒤쪽의 사물이나 전경이 아른거리게 비치듯 반투명한 느낌도 있다.
하지만, 공격을 받았을 때 흩어짐은 물론, 물리적인 타격을 가하고, 검으로 벨 수 있으며, 잡거나 찢거나, 뜯어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놈의 목을 노렸다.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확실한 게 좋았으니까.
주춤….
턱… 턱….
화살 길이의 반 이상이 파고들었을 만큼 강렬했던 공격에 놈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것도 모자라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뭐가 됐든, 급한 불은 껐음이 확실했다.
처억!
곧장 화살 하나를 더 장전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세웠다.
오식이가 집어던진 놈이 달려들던 놈과 엉겨 붙어서는 바닥에서 부비부비를 해대고 있었다.
목표물을 확인하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화살을 날렸다.
티잉! 팅!
쐐애액! 쐐액!
두 발의 화살이 놈들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화살촉이 놈들의 일렁이는 시커먼 몸뚱이에 꽂혔다.
표옥! 푝….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는 소리.
놈들의 바둥거림에 화살이 크게 흔들리며 빠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린을 공격하던 놈의 목을 노린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나 이쪽도 문제는 없었다.
내가 날린 두 발의 화살은 일반적인 더블샷이 아니었으니까.
바둥바둥….
퍼어어어엉!
마치, 놈들의 바둥거림에 반응하듯 박혀 있던 화살이 강렬한 폭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폭발력에 놈들의 시커먼 몸뚱이가 사방으로 퍼지며 흩어졌고,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호오….”
작은 감탄이 멋대로 흘러나왔다.
나와 린이 베고, 두드리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식이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짓누르고 날려 버리던 그 어떤 공격보다도 강하고, 효과적인 결과에 의한 자찬의 탄성이었다.
더불어 새로운 사냥법도 얼추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단은 살아서 나가야겠지만….’
그것이 가장 크고, 시급한 문제였다.
퍼석!
기묘한 소리가 잠시 정신을 팔던 나를 깨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쏜 화살에 목이 꿰뚫렸던 암흑 병사 놈이 뒤로 쓰러진 채, 시커먼 아지랑이를 흩날리고 있었다.
‘헐….’
죽지도 못하고 지금껏 괴로워하다가 이제 막 쓰러지며 끝장이 난 모양이었다.
어쨌든 심각한 상황이 마무리됐음에 안도했다.
“오식아!”
오식이를 부르고는 린을 향해 다가갔다.
절뚝절뚝….
질질질질….
나는 왼쪽 다리를 절뚝였고, 오식이는 옆구리를 붙잡은 채 힘겹게 움직였다.
한 쪽 팔과 어깨 등을 다쳤지만, 비교적 다리는 멀쩡한 린이 우리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어째 더 나은 상황일 듯했다.
더불어 나와 오식이의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의 발걸음은 괜한 짓거리가 되고 말았다.
“크으으… 아쉽고, 비통하구나….”
알프레도의 쓴맛 가득한 탄식이 들려왔다.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던 그가 몸을 돌려세웠다.
거만하면서도 나태한 자세와 표정으로 앉아있는 리차드를 향해서였다.
“주인님, 만찬을 즐기실 시간입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알프레도의 뜬금없는 말과 단어들에 잠시 멍해졌다.
그의 말을 들은 리차드가 허허허 웃고는 서서히 사라졌다.
리차드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알프레도가 다시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더니 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똑같은 운이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지 마라! 다시 보게 되는 날이 네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진심이 담긴 으름장을 남긴 알프레도도 서서히 희미해지며 자취를 감췄다.
“….”
“….”
“….”
우리는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슈하아아아아악….
거센 바람이 갑자기 불어 닥치며 우리를 에워쌌다.
“크읏!”
“꺄악!”
“크르르!”
저마다 신음을 한마디씩 뱉어 냈다.
분명, 그것까지는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눈앞이 캄캄해짐은 물론, 정신까지 확 꺼져 버린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저주받은 저택의 정원 돌바닥 위에 내팽개쳐진 듯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으으….”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거의 동시에 린과 오식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다들 괜찮아?”
“크르르….”
“네, 주인님. 주인님은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응… 괜찮아….”
다들 괜찮다는 것과 우리가 쓰러진 곳도 정원의 돌바닥 위였기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상체를 쓰러뜨렸다.
절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아아아… 살긴 살았네….”
….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깜빡했으면 잠이 들 뻔했다.
찬 바닥에서 잠들면 입이 돌아간다는 생각 따위는 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피곤한 몸을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끄으응….”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에서 계속 버틸 수는 없었으니까.
“괜찮으세요?”
조신한 자세로 앉아있던 린이 물어왔다.
대답 대신에 고개만 끄덕였다.
벌떡!
린의 말소리와 우리의 기척에 화들짝 놀란 오식이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다시 쓰러진 후, 슬슬 눈치를 보다가 철퍼덕 자리를 깔고 드러누운 녀석이었다.
“일단 나가자.”
“네.”
힘겹게 일어나다가는 비틀거렸다.
다친 다리도 문제였지만, 잠시 머리가 핑 돈 탓이었다.
제 몸도 성치 않은 린이 나를 부축했다.
“아, 괜찮아….”
멋쩍음에 빠르게 반응하고는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서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
‘어디에다 뒀더라?’
게이트를 빠져나온 뒤, 바로 동굴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수북이 쌓인 짐과 배낭들 사이를 뒤졌다.
혹시 몰라 몇 병 사두었던 ‘회복 물약’을 찾기 위함이었다.
회복 물약은 갖가지 던전템들과 고도의 정제술 및 혼합 기술로 만들어 낸 현대 의학의 결정판이었다.
탁월한 효능과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다만, 워낙에 만들기가 까다롭고, 재료들을 구하기가 어려운 탓에 가격이 어마무시했다.
뭐,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관련된 것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해서, 돈이 썩도록 넘쳐 나거나 그만큼 벌고도 남는 고레벨의 각성자들만이 주로 사용했다.
아니, 그들도 최악의 상황에서나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찾았다.”
비싸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꽁꽁 감춰 놓았던 빨간색의 회복 물약을 찾아냈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불을 피우던 오식이와 식사 준비를 하던 린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그냥들 쉬고 있으라니까는….”
가만히 있으라 했는데도 습관처럼 맡은 일을 해대고 있는 녀석들에게 나무람을 던졌다.
속으로 느낀 기특함이 절로 묻어나는 것이었다.
“다들 이리로 와, 린은 컵 좀 가져오고.”
내 말에 녀석들이 다가왔다.
손에 든 회복 물약을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린이 가져온 컵에 정확히 1/3을 따랐다.
“린, 너 먼저 마셔.”
“네? 이게 뭐죠?”
“회복약이야, 상처도 치료되고… 컨디션도 좋아져.”
“아아… 그럼, 주인님께서 먼저 드셔야죠.”
“아니야, 너부터… 다음은 오식이 차례.”
“아, 그,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얼른 마셔! 저 녀석은 벌써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잖아.”
오식이를 힐끔 쳐다본 린이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어렵사리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목 넘김의 소리가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목선도 굉장히….
“…!!”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옆에서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오식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살짝이 주름진 미간도 그렇고, 내 속내를 알아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흠흠….”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바꾸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 뒤 앞서 말했던 것과 다르게 내가 먼저 회복 물약을 마셨다.
“꿀꺽….”
그에, 오식이가 곧장 반응을 보였다.
“크륵!”
“컥….”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회복 물약이 역류했다.
사레의 역경을 이겨 내고, 역류한 회복 물약을 억지로 삼켰다.
“꾸울꺼억….”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남은 회복 물약을 오식이에게 건넸다.
“크르르….”
꽤 많은 의미와 감정이 담긴 으르렁거림을 흘린 오식이가 남은 회복 물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스스스스….
회복 물약의 효과는 듣던 대로 굉장했다.
뱃속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된 청량함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데 불과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어, 청량함이 따스함으로 바뀌었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만, 이내 나른하고 평온하게 온몸을 릴렉스시켰다.
“와우….”
기분 좋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탄사를 흘렸다.
린의 탄성도 들려왔다.
“어머….”
들뜬 기분에 취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신의 팔을 놀란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린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린의 팔로 시선이 옮겨졌다.
“와우….”
다시금 탄성이 흘러나왔다.
린의 팔뚝에 난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는 놀라운 광경 때문이었다.
웬만한 상처는 고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회복해 버리는 오식이의 엄청난 치유력의 경과보다 훨씬 더 빠른 것이었다.
‘역시, 비싼 값을 하는구나.’
왜 다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회복 물약에 찬사를 보내고 열광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비싸긴 해… 쩝!’
어쨌든….
탁월하고 경이로운 회복 물약의 효과 덕분에 우리의 몸은 완전히 치유가 됐다.
상처는 물론, 당장에 다시 저택 3층으로 올라가 몇 시간이고 놈들과 치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돌아왔다.
“우적우적… 쩝쩝… 꿀꺽!”
오식이의 폭풍 같은 식욕이 더 좋아진 건 부작용일지도….
….
거창한 식사 후에 오늘의 사냥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었지만….”
린은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에 느낌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
뭐, 과정과 결과를 보면 대부분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용서할 수 없다. 가만두지 않겠다. 용맹한 오크 전사의 드높은 자존심을 지키겠다.”
오식이는 맹렬하고, 열정적인 의지를 불태웠다.
린을 의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 보였지만, 하찮게 보이고 여겼던 놈들에게 크게 당한 것이 정말로 녀석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화를 끝내고는 홀로 트럭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저택 3층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잠시 떠올렸던 새로운 사냥법의 연구를 위해서였다.
“흠… 이거 좀 위험하겠는걸?”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사냥법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목표가 될 암흑 병사 놈들을 향해 쏜 화살이 빗나갔을 경우, 그것이 혹여 알프레도나 리차드에게 꽂히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무모함이나 자만은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크게 깨달았기에 깔끔하게 미련을 버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오늘처럼 위험하지 않고, 쉽게 가는 방법은 있었으니까.
….
다음 날.
저주받은 저택 3층.
“거룩하신 주인님의 충실한 종 알프레도가 간청합니다. 부디, 미천한 저희에게 주인님의 영광스러운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리차드를 향한 알프레도의 청과 함께 암흑 병사 놈들에게 버프가 걸렸다.
샤라라….
채앵! 챙! 챙….
재력의 갑옷을 두른 암흑 병사 놈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르르르….”
“그륵그륵….”
3차전까지 살려 둔 놈은 둘뿐이었다.
하나는 좀 아쉬울 듯했고, 셋은 끝에 가서 벅차기에 결정한 숫자였다.
‘역시, 수월하구만… 크크!’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냥을 여유롭게 즐길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