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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42화 (142/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43)

저주받은 저택 4층의 첫인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좁음’과 ‘일렁임’이었다.

2미터가 채 되지 않는 복도의 폭은 나와 린이 그나마 나란히 설 수 있는 수준이었고, 오식이와 함께 서기에는 둘 다 불편하고, 답답한 정도였다.

게다가 약간의 기울기를 가진 채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탓에 체감상으로는 더욱더 좁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복도 전체가 꿈틀대고, 흔들리고, 출렁거렸다.

마치, 코끼리 코를 10바퀴쯤 돌고 난 후의 세상처럼….

흡사, 촬영 효과 등으로 몽롱하고, 환상적인 세상이나 꿈속의 느낌을 표현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속이 뒤집히며 멀미가 났다.

발을 떼기가 무서웠고, 식은땀에 두통도 절로 일었다.

‘600미터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는 저택의 가장 바깥쪽 구석… 테두리의 가장 끝부분이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해 나선형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중앙까지 이동하는 것이 유일하게 정해진 루트였다.

그 길이가 약 600미터였다.

열악한 상황에 정확한 길이를 파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복도의 폭이나 나선형의 루트, 저주받은 저택의 총면적 등을 계산해 봤을 때 나오는 값 또한 달랐다.

어차피 제멋대로 길이가 늘어나거나 넓이가 넓어지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니, 적용 자체가 의미 없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600미터라는 계산이 나왔을까?

답은 간단했다.

시작점인 테두리의 끝에서부터 최종 목적지인 중앙의 방… 저택 4층의 끝이자, 저주받은 저택의 최종 보스 존인 곳에 다다르기까지 상대해야 하는 적의 최소 숫자 120.

놈들이 덤벼대는 최소 거리 5미터를 계산하면, 대략의 답인 600미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다들 알고 있지? 오늘은 맛만 살짝 보는 거야!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얘기하고, 뒤로 물러나도록 해!”

내 말에 오식이와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 3층을 막 클리어 하고 난 뒤였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해서, 오늘은 사전 답사쯤… 진짜 도전의 디데이는 모레였다.

“오식이부터 고!”

내 외침에 으르렁거림으로 대답한 오식이가 앞장을 섰다.

린과 내가 차례대로 뒤를 따랐다.

쿵쿵쿵….

오식이가 큼직하고, 묵직한 걸음으로 3미터쯤 나아갔을 때, 맞은 편에서 제법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오오오….

‘온다!’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오식이가 자세를 낮췄다.

그러고는 냅다 주먹을 내뻗었다.

부우웅….

퍼어엉!

공기를 가르고, 터트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오식이의 넓은 등짝에 가려져 앞쪽의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강렬하게 느껴졌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음은 알 수 있었다.

곧장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뭐였지?”

“토끼다.”

녀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익혀 둔 정보 속에서 괴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한쪽 귀가 떨어질 듯 덜렁거리는 모양새의 토끼였다.

‘운이 좋군!’

비교적 약한… 그래도 35레벨인 놈이 스타트를 끊었음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50미터 앞까지는 무조건 토끼 놈만 나타날 테니까.

오식이가 아니더라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으니까.

“전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봤자 서너 걸음… 5미터를 채 가지도 못하고는 다시금 토끼 놈과 대면해야 했다.

물론, 오식이가 알아서 처리해 버렸다.

부우웅….

퍼어엉!

“꽤애액!”

….

열 마리째 토끼 놈을 잡고는 잠시 멈춰 섰다.

약 5미터마다 한 마리씩 덤벼들었으니, 50미터쯤 이동한 셈이었다.

“흠….”

복도의 앞과 뒤를 번갈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계속 전진할 것이냐 아니면 왔던 길을 되돌아갈 것이냐의 고민이었다.

전진은 말 그대로 계속 도전을 할 것이냐를 의미했다.

당연히 앞선 상황처럼 5미터 단위로 괴물들이 덤벼든다.

다시금 35레벨의 토끼 놈들이라면 땡큐겠지만, 아쉽게도 랜덤이라 특정 지을 수는 없었다.

뭐, 복도에서 등장하는 괴물들의 레벨이 끽해야 40레벨까지라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도 평상시 또는 제 컨디션일 때 얘기고, 지금은 나름으로 체력이 빠진 터라 조금은 신중해야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당연히 도전의 포기를 의미했다.

저택의 2층이나 3층에 늘 존재했던 특별한 제약… 이동이나 탈출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장벽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돌아가는 길에도 틈틈이 괴물들이 덤벼들 뿐이었다.

더불어 오는 길에 등장했던 놈들이 그대로 다시 나타난다는 것도 도전자들에게 나름으로 유리한 룰이었다.

아차차….

4층에서도 제약의 룰이 하나 있기는 했다.

복도에 등장한 괴물이 한 마리도 없어야만 저택 3층으로 내려가는 게이트가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뭐, 복도의 폭이 워낙 좁고, 등장하는 괴물들이 항상 앞을 가로막는 터라 전진을 하든, 되돌아가든 모두 때려잡아야 하기에 크게 와닿는 룰은 아니었다.

“돌아가자!”

돌아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살짝 맛만 볼 생각이었으니까.

몸을 돌려세우는데 린이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응?”

“오식 씨랑 교대할까요?”

린의 말에 오식이를 쳐다봤다.

녀석이 바로 입을 열었다.

“나는 괜찮다.”

양팔을 들어 근육 자랑을 한 오식이가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린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고는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린이 오식이의 뒤를 따랐다.

나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멀미는 가실 생각을 안 하네… 쩝!’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울렁임과 어지럼증이 가장 큰 고난일 듯싶었다.

* * *

다음 날.

오랜만에 A 구역으로 향했다.

그동안 정원사 놈들을 잡고서 모아 놓은 마정석을 모두 처리했고, 한동안 먹을 육포와 통조림 등을 샀다.

마지막으로 회복 물약을 20개나 산 뒤에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

일찌감치 저녁을 챙겨 먹고는 푹 쉬기로 했다.

내일의 결전을 위해서였다.

동굴로 들어가기 전, 게이트를 향해 잠시 시선을 던졌다.

‘내일이면 끝이로구나.’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다.

끊임없이 게이트를 넘어 던전을 들락날락했다.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고, 무진장 열심히 도전하기도 했었다.

그 결실과 결과가 내일로써 증명될 것이다.

저주받은 저택 던전을 올 클리어 할 수 있는 평균 레벨을 훌쩍 뛰어넘은 만큼….

도전한 이들이 모두 ‘한 번으로 족해!’라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기에….

목표는 단연코 클리어였다.

문득,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함께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흘렸다.

“훗! 처음에는 정말 개쪼렙이었는데….”

감당조차 할 수 없었던 와일드 울프 킹과 그 무리에게 혼쭐이 나고, 동고동락하던 냥이마저 잃은 슬픔에 보금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우리 앞에 나타난 새로운 던전과 게이트.

새로운 기회라 여기며 도전했을 당시의 내 레벨은 겨우 12였었다.

오식이는 17레벨이었고, 린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48레벨이다.

같은 레벨인 오식이는 하이 오크로 진화한 덕에 그 이상의 힘과 능력치를 갖고 있었고, 역시나 같은 레벨인 린도 함께였다.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들긴 했지만,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을 장족의 발전이었다.

“무조건 끝낸다!”

다시금 굳건한 다짐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다음 날.

“자, 가자!”

모든 준비를 완벽히 하고는 게이트를 넘었다.

그다지 그리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원부터 시작해 저택의 1, 2, 3층 전경을 모두 눈과 기억에 담았다.

그 전경들을 뒤로하고 저택의 4층에 다다랐다.

끄덕….

서로 간의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대로 오식이가 앞장을 섰다.

고오오오….

강렬한 기운과 함께 등장한 괴물 하나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옆으로 빼고는 어떤 놈인지부터 파악했다.

‘팽이 병정!’

37레벨짜리 놈이었다.

어중간한 레벨이었지만, 시작부터 상대하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오식이가 아닌 린을 향해서였다.

“린! 네가 맡아!”

“네, 주인님!”

내 말에 린이 바로 대답하고는 주저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 사이, 팽이 병정이 기우뚱한 자세를 바로 하고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팽이처럼 말이다.

빙빙빙….

빠른 회전과 함께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팽이 병정의 무기는 검이었다.

날이 반쯤 부러진 탓에 리치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부러진 검 끝이 무디고, 거친 까닭에 닿는 순간, 살이 찢기거나 큰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챙! 챙! 챙….

몸과 같이 회전하며 번쩍이는 검이 복도의 벽면을 긁어댔다.

벽에는 날카로운 흠집이 생겨났지만, 놈의 회전 속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놈과 대항하기 위해 린이 자세를 낮췄다.

그런 린을 향해 미리 얘기해 뒀던 팁을 다시금 전했다.

“괜찮아! 어차피 공격 범위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돼!”

내 말에 용기를 얻은 린이 조금 더 자세를 낮췄다.

이어, 타이밍에 맞춰 앞으로 튀어 나가며 빗자루를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바닥 쓸기.

지면을 제대로 스치며 휘둘러진 빗자루가 팽이 병정의 다리… 외발처럼 모인 중심축을 강하게 후려쳤다.

쩌어엉!

굉음이 터졌다.

일격을 맞은 팽이 병정이 중심을 잃고는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빠르게 돌아가던 회전도 느려졌다.

놈이 등을 보인 순간!

자세를 고쳐 잡은 린이 놈의 정수리에 먼지 털기를 꽂아 넣었다.

“이야압!”

빠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팽이 병정 놈의 뚝배기가 깨졌다.

쩌어억….

피나 기타의 것들이 터지지는 않았다.

본체에서 덩어리가 떨어지듯 큼직하게 조각난 파편이 튀었을 뿐이었다.

완전히 기울어진 몸뚱이로 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팽이 병정은 그렇게 끝을 맺고, 조용히 사라졌다.

“잘했어! 역시, 모범생답다니까!”

미리 말해 줬던 공략법을 완벽하게 수행한 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줍은 듯 얼굴에 홍조를 띠며 웃는 린을 향해 오식이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앞으로 아홉 마리 남았어. 맡겨도 되겠지?”

기대와 믿음을 섞어 물었다.

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씩씩하게 돌아선 린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서 나갔다.

….

빠아악!

쩌어억….

“후우우….”

열 번째 팽이 병정의 뚝배기를 깬 린이 차오른 숨을 길게 뱉어 냈다.

그런 린을 향해 다정함을 듬뿍 담아 말했다.

“수고했어, 회복 물약 좀 마시고 쉬도록 해.”

“네, 주인님.”

린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빨간색 회복 물약을 꺼내 마셨다.

“꿀꺽… 꿀꺽….”

두 모금쯤 회복 물약을 목으로 넘긴 린이 다시 뚜껑을 닫고는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검증된 공략법과 확실한 이행으로 어디를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37레벨인 팽이 병정과는 10레벨 이상 차이가 나는 터라 큰 무리도 없었다.

다만, 지랄 같이 울렁이고, 출렁이는 복도의 전경과 상태가 예상보다 큰 집중력을 요구했고, 고스란히 체력의 저하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해서, 회복 물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저주받은 저택 4층에 도전하는 이들 모두가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폭이 좁은 복도의 특성상 어차피 등장하는 괴물들과 1:1로 상대해야만 한다.

더불어 랜덤이지만, 열 마리까지는 같은 놈이 나오기에 나름으로 전략을 짤 수 있었다.

등장하는 적에 맞춰 적절한 전략과 전법을 구사하고, 회복 물약을 통해 빠르게 컨디션까지 조절하는 것이 이곳 저택 4층을 클리어 하는 최적의 공략법이었다.

“앞장서!”

린을 내 뒤로 물러서게 하고는 오식이를 향해 말했다.

“크륵!”

거침없이 돌아서서 발걸음 뗀 오식이 앞에 우리가 다음으로 상대해야 할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띠용용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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