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42)
리차드가 손가락을 폈다.
손바닥 위로 반짝이는 금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숫자 ‘1’이 적혀 있었다.
스르르….
별다른 효과도 없이 금화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이내 스스로 회전했다.
숫자 ‘2’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핑그르르….
잠시 금화에 시선을 뺏긴 사이, 리차드가 내뺄 준비를 마쳤다.
스르릉….
리차드의 몸이 점점 희미해졌다.
“허허허….”
특유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야 허공에 뜬 채 회전하던 금화가 줄이라도 끊어진 듯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땡그랑….
바닥에 떨어지며 한 번 더 튕겨 오른 금화가 요란을 떨다가 멈췄다.
숫자 1이 위로 향한 채였다.
“까비….”
나도 모르게 아쉬움을 뱉어 냈다.
거의 동시에 등 뒤로 제법 강렬한 섬광이 작렬했다.
번쩍!
순간적인 현상이었기에 바로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황금빛의 방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엉거주춤한 자세의 오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크르르….”
이어, 세찬 바람이 불어닥쳤다.
‘어느 쪽이지?’
리차드가 무사히(?) 도망치면서 강제로 상황이 종료되는 것인지, 아니면 매일 같이 겪는 일몰의 타이밍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나 저거나 딱히 고민할 게 아닌 까닭이었다.
“쩝, 뭔들….”
입맛을 다시며 눈을 감고는 세찬 바람에 몸을 맡겼다.
….
저녁 식사를 하고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기념비적인 일들이 많은 날이었다.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고 여겼건만… 후훗!”
1이나 2레벨쯤 더 업을 하고 나서야 리차드와의 대면이 가능할 줄 알았다.
우연히 발견한 동전 던지기의 위력과 효력… 더불어 2페이즈에 들어서서도 제대로 먹힌다는 대박 사실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레벨 업이 더 기대가 되는군.”
오식이뿐만 아니라, 나와 린도 재력의 방벽에 구멍을 뚫을 날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기대와 기다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경험치 때문이었다.
이미 재력의 방벽을 공격해 일정한 수준 이상의 대미지를 주면, 금화의 폭발과 함께 그만큼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얘기한 적이 있다.
2페이즈…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재력의 방벽도 그와 비슷했다.
‘똑같다’가 아니라 ‘비슷하다’라고 하는 이유는 1페이즈에서의 ‘바로 분배’의 형식이라면, 2페이즈에서의 룰은 ‘적립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앞서도 말했듯이 1페이즈에서는 재력의 방벽에 대미지를 준 만큼 금화의 폭발이 일고, 그만큼의 경험치를 바로 얻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페이즈에서는 재력의 방벽을 부순 만큼 경험치가 생기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일 뿐 바로 얻는 게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면 그 쌓인 경험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단, 재력의 방벽을 부수다가 시간제한인 일몰을 맞이하게 될 경우, 안타깝게도 그동안 열심히 모은 경험치들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것이 재력의 방벽 전체를 다 부수고, 말 그대로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적립 또는 축적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내가 사냥 끝 무렵에 일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따져 본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지랄 같은 일을 겪는 건, 괜한 헛수고 내지는 대가 없는 노력이라 부르기에 너무나 열이 받고, 짜증이 치미는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시간에 맞춰 재력의 방벽에 구멍을 뚫거나 꽤 많은 부분을 부수고서 리차드에게 넘어간 경우.
다들 알다시피 이때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리차드를 죽이느냐 살려 주느냐.
먼저, 리차드를 죽이게 되면, 역시나 축적된 경험치는 모두 날아간다.
대신에 레벨 35의 리차드를 죽이게 되니, 그만큼의 경험치는 얻을 수 있다.
더불어 리차드가 보스인 터라 보너스 경험치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재력의 방벽을 부수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와 비교하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었다.
끝으로 리차드를 살려 주는 경우.
이때야말로 그동안 재력의 방벽을 부수고 축적한 경험치를 고스란히 얻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리차드를 살려 줬기에 다음의 사냥… 저주받은 저택 3층의 도전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아, 참고로 리차드를 죽이게 되면, 저주받은 저택 3층의 도전은 그대로 끝이나 버린다.
일몰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어도 절대 리셋되지 않으며, 그가 죽고 나타난 리차드 코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리차드 코어를 부수고 저택 4층으로 오르거나, 그냥 텅 빈 홀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아무튼.
축적된 경험치를 얻을 방법은 리차드를 살려 주는 경우에만 가능했다.
한 가지 더!
다들 기억하겠지만, 리차드는 우리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좋은 것을 주겠다며 딜을 걸었다.
이후, 그를 놓아주면 숫자 1과 2가 새겨진 금화를 남기고 사라진다.
뭐, 이쯤에서 눈치를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리차드가 제 목숨값으로 주는 보너스…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도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랬다.
리차드가 남기고 사라진 금화에 새겨진 숫자 1과 2는 축적된 경험치를 그대로 받느냐, 아니면 두 배로 뻥튀기해서 받느냐 하는 50% 확률의 룰렛이었다.
“오늘은 참 아쉬웠어….”
첫 번째 도전이었던 오늘은 금화의 숫자가 1이었다.
해서, 재력의 방벽을 부순 그 만큼만의 경험치를 얻었다.
얼만큼의 경험치를 얻었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지만, 오식이가 구멍을 뚫었고, 나와 린도 열심히 방벽에 흠집을 냈으니, 그리 적은 양은 아닐 터였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늘 부족해 보이고, 아쉬운 법.
숫자 2가 나와 두 배의 경험치를 얻었으면 훨씬 더 기분이 좋았지 싶었다.
“뭐, 그래도 괜찮아. 흐흐!”
오늘만 날이 아니었다.
내일은 금화의 숫자 2가 떡 하니 뜰 것이란 기대를 해 본다.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그래, 확률은 50%잖아!’
솔직히 50%의 확률이 아닐 수도 있었다.
원래 도박이란 그런 것이니까.
뭐, 이것 또한 괜찮았다.
아직 우리는 한참이나 저택 3층에서 비비고, 굴러야만 했으니까.
그 안에 몇 번만 두 배가 걸려도 어쨌거나 이득이었다.
아니, 동급의 다른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기회와 행운이 내게는 있었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빠르게… 불과 며칠 전에 계산해 봤던 예상 시간보다도 더 빨라진 것 자체부터가 이득이었다.
* * *
수십 일 후.
“사, 살려 주게… 내 목숨을 보장해 준다면, 더 큰 것을 주겠네.”
이제는 성대모사가 될 정도로 지겹게 들은 리차드의 애원과 딜을 듣고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화려하고, 찬란하던 황금빛 재력의 방벽은 어떠한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당연히 오식이를 필두로 나와 린이 전부 때려 부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 보거나 접한 상황이 아니었다.
진작부터 재력의 방벽을 모두 때려 부수고, 리차드를 살려 주길 반복했다.
역시나 50%가 아니었던 금화 룰렛의 확률에 치를 떨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경험치를 매일 같이 얻을 수 있었다.
방금 말한 ‘엄청난 경험치’는 말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애초에 방벽의 올 클리어 자체가 어마무시한 경험치를 주는 데다가 이따금 터지는 금화 룰렛의 두 배 뻥튀기는 거의 사기급이라고 봐도 좋았다.
“췟! 그러니 확률이 똥이지!”
그래서 좀 그렇기는 했지만….
어쨌든, 잭팟이 터지는 날의 폭발적인 희열과 흥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더불어….
다들 기억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 저주받은 저택에 처음 들어서면서 선택한 옵션이 ‘경험치 두 배’였었다.
대박의 운이 깃든 날은 보통의 네 배나 되는 막대한 경험치를 얻게 된다는 얘기다.
작정하고 경험치를 얻기 위해 무조건 방벽의 올 클리어를 목표로 달렸다.
이따금 터지는 운수 대통의 날을 통해 예상했던 시간을 줄여 갔다.
마침내 어제.
우리는 모두 48레벨에 오를 수 있었다.
솔직히 45레벨이 목표였었다.
우리에게는 다소 의미가 없지만, 혼자서 재력의 방벽을 깨부수고,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적정 레벨이자, 저주받은 저택 4층에 도전할 수 있는 최소 레벨이 45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빨랐던 레벨 업 속도에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머물렀어야 했던 저택 2층에서의 시간… 말은 안 했지만, 한동안 진하게 아쉬움이 남았던 로레나의 경험치를 상기하기도 했다.
“어차피 올려야 할 레벨이고, 조금 더 안전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그래, 뽕 뽑을 수 있을 때까지 뽑아 보자!”
해서, 47레벨까지 올렸고, 이때까지도 뭔가 타산이 좋았기에 1레벨을 더 올릴 때까지 머물기로 했다.
47레벨 전까지는 재력의 방벽을 올 클리어 할 수 없었고, 그만큼의 여지가 있음에 이 또한 금방이라 여겼다.
뭐, 약간의 계산적 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48레벨을 달성했다.
….
스윽….
돌렸던 고개를 바로 했다.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리차드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목을 겨누고 있던 아수라 스워드를 천천히 들이밀었다.
푸우우욱….
내 눈을 바라보던 리차드의 눈동자가 지그시 목을 파고드는 아수라 스워드를 내려다봤다.
아래로 내려간 눈동자는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두꺼운 목의 고개마저도 아래로 깊이 떨어졌다.
푸스스스스….
목숨이 완전히 끊어진 리차드가 금빛의 가루로 화하며 천천히 사라졌다.
상황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끝까지 초절정 갑부의 면모를 보여 주는 화려함이 있었다.
두웅시일….
흩날리던 금빛 가루들이 모두 사라지자, 머리 위로 주황색의 둥근 물체가 떠올랐다.
저택의 2층에서 본 로레나 코어와 똑같이 생겼지만, 어째 조금 더 화려하고, 블링블링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처억.
차악.
아수라 스워드를 검 집에 꽂고는 엘프의 활을 꺼내 들었다.
본격적인 방벽의 공략… 동전 던지기를 하면서부터는 들고 다니지 않은 덕에 조금 낯선 면이 있었다.
끼긱….
화살을 시위에 걸고 허공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주황색 공… 리차드 코어를 조준하고는 활시위를 놓았다.
티잉!
쐐애애액!
직선으로 날아간 화살이 정확히 리차드 코어를 맞추는 것도 모자라 아예 관통해 버렸다.
콰지지직….
바스러지듯 산산이 조각난 리차드 코어가 허공에서 흩어지며 모습을 지웠다.
그와 동시에 화려한 의자가 놓여 있던 재단의 뒷벽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삐거거거거걱….
오래된 나무를 억지로 비틀었을 때 나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 아무것도 없던 벽면에 짙은 직선이 생겨나며 반으로 갈라졌다.
곧이어 직선을 중심으로 해 양옆으로 열렸다.
딱 봐도 숨겨져 있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광경이었다.
“흠….”
활짝 열린 벽 너머로 계단이 보였다.
계단의 시작점에는 게이트가 있었다.
뒤에 있던 린과 오식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게이트를 통과해 저주받은 저택 4층으로 향했다.
….
게이트 너머 저택 4층에 오르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그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어 냈다.
“크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랄 같은데?”
이미 정보들을 통해 저택 4층의 모습이나 광경을 예상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훨씬 더 심각했다.
모든 정보에서 저택 4층만큼은 ‘최대한 빨리 통과하고 싶은 곳!’이라 말하던 것이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제대로 실감했다.
“크르륵….”
“흐으음….”
오식이와 린도 나와 같은 느낌인 듯 불편한 신음을 흘려댔다.
“후우우….”
깊고, 길게 호흡을 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만큼 상황은 지랄 그 자체였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