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37)
“제가 도움이 되는 걸까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뱉어 낸 린의 말에 대뜸 고개를 갸웃했다.
곧장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오늘의 사냥에서 제가 한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요.”
“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
“오늘 넌, 네 몫을 충분히 했어.”
사실이었다.
하지만, 린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반박(?)했다.
“아니요… 오늘 저는 그 방벽에 흠집 하나도 내지 못한걸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가 오늘 피한 돈 자루가 몇 갠데. 벌써 잊었어? 돈 자루도 다 경험치라니까.”
그랬다.
재력의 방벽을 공격해 대미지를 주는 것은 물론, 떨어지는 돈 자루 하나하나가 모두 경험치에 속했다.
물론, 돈 자루 하나에 대한 경험치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1시간가량 린이 피한 돈 자루의 수를 모두 합치면 그 양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거 때문에 그런 얼굴이었던 거야?”
“네? 아아….”
“에휴, 난 또 뭐라고… 별것도 아닌데 놀랐잖아.”
“아, 죄, 죄송합니다.”
린이 급히 사과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어차피 네가 재력의 방벽에 대미지를 주지 못할 거란 건 내가 이미 말했던 부분이잖아.”
“네….”
“그래서 너보고는 최대한 돈 자루를 잘 피하는 데 집중하라 했던 거고.”
“그러셨죠.”
“그거면 됐지. 뭘 몫이 어쩌고저쩌고야.”
“그래도….”
린이 계속해서 미안한 투를 고집했다.
다시금 새어 나오는 한숨을 길게 뱉어 내고는 살짝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사실, 진정한 네 몫이나 할 일은 따로 있다고.”
“네? 그게 무슨….”
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근처에 있는 오식이를 빠르게 힐끔거리고는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너무 깊게 알 필요는 없고… 어쨌든 간에 네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는 충분히 많은 양의 경험치를 얻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
린이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피식하고는 린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 줬다.
….
다음 날도 리차드에게 도전했다.
예정대로 2시간을 싸웠다.
그런대로 버틸 만했고, 별 탈 없이 사냥을 마무리했다.
“좋아, 당분간은 2시간씩만 하도록 하자.”
“네!”
“크륵!”
오후 3시경에 던전으로 들어가 암흑 병사 놈들로 몸을 좀 풀고, 4시쯤 되면 알프레도를 처리한 뒤, 리차드에게 도전하여 일몰까지 버티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
해서, 오전 시간은 완전히 비었고, 점심 식사 후에도 한동안 시간이 남았다.
그냥 놀고 쉴 수는 없기에 오전에는 정원사 놈들을 계속 사냥해 마정석을 모았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온전히 휴식을 취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리차드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오, 이제 좀 여유가 생기는 건가?”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타이트하고, 빠듯함이 더 많이 느껴지던 2시간의 사냥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여유롭게 일몰을 맞이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무리를 한다면 30분쯤 사냥 시간을 연장해도 될 듯했다.
욕심은 나지만, 그냥 지금의 스케줄을 계속 가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조금만 더 지나면 하지 말라고 해도 시간이 늘어날 텐데… 뭐.’
그러한 시간은 곧 찾아왔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39레벨에 오른 것이었다.
“축하드려요, 주인님.”
“축하한다.”
린과 오식이가 제 일처럼 기뻐했다.
히죽 하고는 답례했다.
“땡큐! 니들도 곧 될 거야.”
사흘 후, 린과 오식이도 39레벨이 되었다.
….
2시간씩 하던 사냥 시간을 3시간으로 늘렸다.
점심 식사 후의 휴식 시간이 줄어든 탓에 모든 일정을 1시간씩 당기기로 했다.
덕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크르르르르!”
콰지직!
촤아아아아아아악!
쿠우우우웅!
오식이의 돌격 스킬이 재력의 방벽에 맹렬히 작렬했다.
쨍그랑! 쨍! 쨍….
실로 엄청난 양의 금화가 폭발했다.
촤아아악!
쿠우우웅!
촤아악!
쿠우웅!
….
연이어진 돌격 스킬 러시에 더욱더 많은 금화가 화산처럼 분출했다.
“키킥… 저러다가 곧 거덜 나겠군!”
아직은 절대 그럴 리 없는 리차드의 돈 걱정을 오지랖 넓게 하고는 재력의 방벽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맥없고, 느릿하게 두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티잉! 팅!
피유훙! 피흉!
툭… 툭….
퍼어어어어엉!
하지만, 파탄의 폭발력은 확실했다.
오식이 만큼은 아니지만, 재력의 방벽에 커다란 대미지를 주며, 리차드의 돈을 갉아먹었다.
“하앗!”
타악! 탁! 휘익! 타닥!
쿠우웅! 쿠웅! 쿵….
린은 날다람쥐에 버금갈 정도로 재빠르게 사방팔방을 누비며 뛰어다녔다.
여전히 재력의 방벽에 대미지를 줄 수는 없었지만, 대신에 알프레도를 처리하고, 가장 먼저 재력의 방벽을 공격하는 일을 몸소 맡았다.
두 가지 일이 리차드의 돈 자루 공격을 제일 먼저 받고, 가장 많이 받는 1순위 조건인 까닭이었다.
그 결과, 린은 나와 오식이가 받는 것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돈 자루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말이 두 배지…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거의 융단폭격에 가까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공격을 많이 받는 만큼, 린의 활동 영역은 금세 돈 자루로 뒤덮였고, 얼마 지나면 돈 자루로 층이 쌓일 만큼이나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돈 자루들이 떨어진 순서대로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맡은 바 책임과 노력을 다했다.
나는 당연히 내 미래와 나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했다.
린은 본연의 직업에 의한 충성심 때문에 주인인 나를 위해 그랬다.
오식이는 나와 린을 위해 그리하고 있었다.
뭐, 내가 3… 아니, 나를 위함이 2쯤 될 것 같았고, 린에게 잘 보이려 하는 마음이 8인 것이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뭐가 됐든 내게 이로운 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
다시 또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다.
40레벨에 오를 날이 곧 다가올 참이었다.
40레벨이면 어디 가서 조금은 뻐길 수 있는 수준에 속했다.
중급 레벨 부류에 낄 수 있었고, 확실하게 먹고사는 수준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는 위치였다.
조금 더 와닿게 말하자면, 그동안 쇼핑만 하던 A 구역에 당당히 입성하고, 그곳에서 살아갈 능력과 재력을 갖춘 이가 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하, 내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의 뚝뚝 흘리다 못해 쭉쭉 짜내던 피땀 어린 노력과 인내는 물론, 몇 번이나 넘겨야 했던 죽음의 고비 등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보다 앞서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었던 각성 후의 특성 개화와 아무것도 몰라 버벅대고, 헛된 시간을 보냈던 초창기의 날들도 생각났다.
“훗! 이제는 다 추억이지… 흐흐!”
그랬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니 웃을 수 있었다.
또한, 인생의 최대 목표였던 번듯한 집에서 사랑하는 하나쿠 짱과 별다른 걱정 없이 알콩달콩 살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
아마,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을 것이다.
더는 위험천만한 것에 도전하거나 무리하며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더 높고, 크고, 넓은 미래를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위한 노력조차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나와 같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며 함께 달려와 준 든든한 녀석들이 곁에 있기에 조금 더 높고, 크고, 넓은 미래를 내다보게 됐다.
욕심이 생겼고, 자신감이 높아졌다.
“그래, 이왕 할 거 A가 아니라 S가 돼야지!”
예전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웬만한 이들 역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서민보다 아래인 B 구역의 가장 밑바닥에서 굴러먹던 내가 중산층의 A를 넘어 S 구역의 삶까지 넘보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못 할 것도 없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고, 동반되어야겠지만, 결코 꿈 같은 허황함이 아니었다.
“함께 해 줄 거지?”
“네?”
“크륵?”
뜬금없는 내 물음에 린과 오식이가 물음표로 대답했다.
무턱대고 다시 물었다.
“할 거야, 말 거야!”
“그, 그러니까 뭐를….”
“나랑 죽을 때까지! 그리고 좀 더 높은 곳까지 함께 갈 거냐고!”
“아아… 가, 가요. 끝까지 주인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대답했다.
바로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오식이 너는?”
“간다. 의리다.”
오식이가 불끈 쥔 주먹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좋아! 파이팅이다!”
손을 펴 앞으로 내밀었다.
뭐 하자는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린과 오식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냐? 다들 나처럼 손 펴고 위로 올려!”
내 말에 린이 손을 슬며시 내밀었다.
린의 손목을 붙잡고는 내 손 등 위에 올렸다.
“오식이 너도 올려!”
“크륵….”
오식이의 거대한 손이 나와 린의 손 위로 올라왔다.
“하나둘셋 하면 힘차게 올리면서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거야! 알겠지?”
“네, 네….”
“알았다.”
미심쩍음이 크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해 보기로 했다.
“좋아… 하나, 둘….”
숫자를 셌다.
셋을 외침과 동시에 손을 위로 올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 악!”
“파, 파이… 꺅!”
린과 내가 동시에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한 치의 미동조차 없이 묵직하게 버티고 있는 오식이의 손바닥 때문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는 바로 꽥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인마! 셋에 손을 들라고 했잖아!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은 오식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화를 가라앉히고는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식이의 손을 맨 아래쪽에 뒀고, 그 위로 나와 린이 손을 올렸다.
“셋에 힘껏 들어 올리면서 크게 외치는 거야!”
린과 오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린의 눈빛이 비장해 보였다.
혀로 입술에 침을 한 번 바르고는 천천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막 셋을 외치려던 찰나.
“으아악!”
“꺄아악!”
나와 린은 다시금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오식이가 문제였다.
녀석이 이전과 반대로 너무나 성급하게 손을 들어 올린 탓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나와 린의 팔이 휙 하고 꺾일 정도로 힘껏 튕겨 나갔던 것.
그로 인해 손목과 팔목은 물론, 팔꿈치와 어깨 관절까지 커다란 통증이 일도록 충격을 받았다.
“이런, 씨….”
조금만 움직여도 찌릿찌릿한 팔을 조심스레 늘어뜨리고는 녀석을 향해 분노로 가득 찬 눈 흘김을 보냈다.
린도 나와 거의 같은 자세로 팔을 늘어뜨리고는 아픔을 호소했다.
“아야야… 하아….”
그에, 오식이 녀석이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나보다는 린의 눈치를 더 보는 녀석의 반응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너, 이 자식… 아오!”
터지기 직전인 분노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잠시간 팔의 통증과 끓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신 뒤에야 제대로 된 투덜거림을 날렸다.
“아우우, 증말… 야야, 그냥 다 때려치워! 뭘 끝까지 함께냐? 때 되면 그냥 쿨하게 빠이빠이 하자!”
물론, 홧김에 그냥 하는 소리였다.
얼마 뒤, 우리는 전원 40레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