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36)
꾸우욱!
뒤로 당긴 주먹에 힘을 더하고는 앞으로 힘껏 뻗었다.
슈하악….
파아앙!
갈라지던 공기가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터졌다.
만족의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38레벨이 되면서 다시금 늘어난 능력치의 한계를 모두 채웠다.
힘과 민첩성이 늘었고, 감각도 날카로워졌다.
‘됐다! 가자!’
자신감마저도 충만해졌다.
이제는 리차드와 맞붙어도 어느 정도는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
“다들 준비됐지?”
“네, 주인님!”
“크륵!”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오식이를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오식이 넌 절대 실수 없도록 해야 해!”
“알았다. 실수 안 한다.”
녀석이 다짐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린이 살짝 미소를 띠었다.
오후 4시를 코앞에 두고는 던전으로 향했다.
….
저주받은 저택 3층에 올랐다.
부우우웅….
퍼어엉!
촤아아악!
파시시시싯!
남겨 놓은 암흑 병사 두 놈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내, 알프레도가 암흑의 기운을 내뿜었다.
고오오오오….
알프레도의 어깨 위로 시커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타이밍을 맞춰 대기하던 오식이가 꼼짝도 할 수 없는 알프레도의 면상에 펀치를 꽂아 넣었다.
퍼어어어어엉!
알프레도의 뚝배기가 터져 버렸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부들거리더니만, 시커먼 연기로 변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으윽….
알프레도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리차드에게로 옮겼다.
그동안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리차드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췟! 재수 없기는….”
마치, 아랫사람을 깔보는 듯한 느낌 내지는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는 리차드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같이 봐 왔던 눈빛들… 나를 짐꾼으로 고용한 이들이나 가난하다고 무시하던 이들의 눈빛과 비슷하기에 기분이 더욱더 뭐 같았다.
“다들 흩어져!”
이미 서로 간의 거리를 두고 대기하던 차였다.
잘못된 명령이었지만 다들 알아듣고는 준비된 자리로 이동했다.
샤샤샥!
타다닷!
쿵쿵쿵!
리차드와 정확히 마주 보는 중앙 자리에는 오식이가 섰다.
나는 왼쪽 끝으로 달렸고, 린은 오른쪽 끝으로 뛰어가 섰다.
그 사이, 리차드가 오른손을 들고는 허공에 대고 크게 흔들었다.
마치, 손을 들어 ‘안녕’을 하는 듯한 모습 내지는 투명한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내, 리차드가 앉아 있는 의자와 단상 바로 앞으로 무언가 출렁임이 일었다.
출러어엉….
매우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리차드와 우리의 사이를 모두 가로막는… ‘전면’에 달하는 범위의 넓은 크기였다.
그것의 이름은 ‘재력의 방벽!’
이제부터 우리가 상대해야 할 리차드의 또 다른 돈 지랄 중 하나였고, 당분간 우리에게 어마무시한 경험치를 안겨 줄 엄청나고, 소중한(?) 것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재력의 방벽은 무척이나 컸다.
정확히는 빈틈 하나 없는 풀 사이즈로 리차드와 우리의 사이를 완벽히 막고 선 장벽이었다.
이는, 앞을 막아선 재력의 장벽을 뚫지 못하는 한 어떠한 방법으로도 리차드를 공격할 수 없다는 얘기와 같았다.
“이야아압!”
린이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갔다.
38레벨이 된 만큼 더 빠르고, 민첩해진 움직임이었다.
그 순간, 리차드의 손이 움직였고, 린의 머리 위로 돈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샤삿! 샷….
쿠우웅! 쿵! 쿵!
떨어지는 돈 자루들을 여유롭게 피한 린이 순식간에 리차드의 앞… 정확히는 재력의 방벽 앞에 도달했다.
“이얍!”
린이 빗자루를 크게 휘둘렀다.
촤아아아….
반원을 그린 빗자루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챠라라라랑!
묘한 소리와 함께 투명하던 면이 살포시 그 형체를 드러냈다.
마치, 커다란 블록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누가 봐도 벽이 그 앞에 있구나 싶은 모습이었다.
무척이나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벽의 형태가 살포시 드러난 것 외에도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이미 수많은 정보를 통해서 이것저것 알고 있던 터라, 더 잘 보이고, 확인된 것이라는 게 옳을 터였다.
어쨌든.
재력의 장벽은 지금처럼 타격… 어떠한 유형의 것이든 간에 공격을 받으면, 그 실체를 살짝이 드러낸다.
장벽을 이룬 블록의 크기는 대략 가로 60센티미터에 세로가 30센티미터였으며, 솜씨 좋은 미장이가 쌓아 올린 것처럼 촘촘하고, 반듯했다.
또한, 공격을 받아 형태를 드러낸 순간에 보이는 번쩍임이나 블록의 색깔, 엄청난 리차드의 부를 빗대어 블록의 재료가 황금이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타격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재력의 장벽은 금세 그 모습을 감춘다.
더불어 모습을 감추기 직전에 한 가지 특이한 광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린이 공격한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대미지’가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린은 안 되는 건가? 쩝….’
그럴 거라고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조금은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며, 준비한 엘프의 활에 화살을 걸고서 시위를 당겼다.
끼이이이익!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자, 한 발의 화살이 재력의 장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화살의 궤적은 굴곡이라고는 거의 없는 일직선의 움직임으로 그만큼 강하고, 빨랐다.
쐐애애액!
티잉!
장벽을 맞춘 화살이 맥없이 튕겨 나갔다.
린이 공격했을 때처럼 장벽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긴 했지만, 이번에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역시인가….’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상황이라 빠르게 인정을 하고는 몸을 옆으로 피했다.
타닷!
쿠우우웅!
내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돈 자루 하나가 떨어져 내리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몸을 피함과 동시에 장전을 마친 활시위를 당겼다.
이어, 한 번 더 떨어져 내리는 돈 자루를 가볍게 피한 뒤에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티이잉! 팅!
두 발의 화살이 연이어 재력의 장벽을 향해 날아갔다.
먼저 날린 화살과는 상반된… 완만한 곡선을 그린 궤적과 초보자나 어린아이가 쏴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은 매우 느릿하고, 힘마저도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툭… 툭….
역시나 맥없이 날아간 화살이 재력의 장벽에 맞고는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어떠한 유형이든 간에 타격만 주면 실체를 드러내는 장벽이었지만, 이것만큼은 자존심이 상했든가,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것인지 그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번쩍!
퍼어어어엉!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 화살에서 굉음과 함께 파탄으로 인한 폭발이 일었다.
챠라라라랑!
폭발의 대미지를 받은 재력의 장벽이 지금껏 보여 주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와 뚜렷함을 드러내며 번쩍였다.
또 하나!
일정한 수준 이상의 대미지가 박혀야만 나타나는 특이한 광경을 연출해 냈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타격을 받은 재력의 장벽 주변에서 수십 개나 되는 금화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장벽의 복구’ 내지는 ‘무너진 장벽 공사비 지출’ 등으로 불리는 현상이었다.
그랬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대미지를 입은 장벽은 복구가 필요하다.
그것을 리차드는 엄청난 비용으로 순식간에 처리한다.
초절정 갑부였기에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암흑 병사 놈들에게 끊임없이 버프를 걸어 주거나 알프레도에게 암흑의 물약을 지원하는 것처럼….
또한, 무식한 돈 자루를 마구잡이로 떨어뜨려 공격하는 것처럼 장벽도 돈 지랄로 커버하고, 수리한다는 콘셉트.
장벽의 복구로 연출된 금화의 폭발은 시각적인 효과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금화는 없었고, 바로 곁에 붙어 있어도 상처를 입는다거나 하는 휘말림 같은 것도 없었다.
대신에 그만큼의 경험치를 얻게 된다.
뭐, 정확한 산정 방식이나 비율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크게 대미지를 줘서 금화가 많이 터지면 경험치도 많이 받고, 적은 대미지에 터진 금화의 양이 적으면 얻는 경험치도 적었다.
콰직!
촤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재력의 방벽에서 굉음의 크기만큼이나 엄청난 양의 금화가 폭발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촤아아악!
콰아아아앙!
촤아아악!
콰아아아앙!
….
연속으로 터진 굉음과 함께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금화의 폭발도 이어졌다.
그 현장에는 오식이가 있었다.
자신만만한 얼굴과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어깨를 앞세운 채 말이다.
“크르르….”
만족스럽다는 듯 중저음의 으르렁거림을 흘리는 녀석을 향해 소리쳤다.
“피해, 인마!”
그제야 위쪽을 힐끔 쳐다본 녀석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쿠우우우웅!
재력의 장벽에 거의 딱 붙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거대한 돈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이크!”
나 역시, 머리 위로 그림자를 만들며 떨어져 내리는 돈 자루를 하나 피하고는 재빨리 더블샷을 날렸다.
티이잉! 티잉….
느릿하고, 맥빠지는 두 발의 화살이 장벽을 향해 날아갔다.
툭… 툭….
역시나 이번에도 장벽에 맞은… 그냥 겨우 닿았다가 힘을 잃고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은 모습으로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어진 파탄의 폭발은 확실하게 재력의 장벽에 커다란 대미지를 줬다.
퍼어어어어엉!
“좋았어!”
주먹을 불끈 쥐며 또다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돈 자루를 피하며 자리를 옮겼다.
앞서도 잠시 말했지만, 일반적인 화살의 공격이나 더블샷이 재력의 장벽에 꽂히지 않을 것을 예상했었다.
알아낸 정보들을 종합해 봤을 때, 재력의 장벽에 화살을 꽂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의 내 실력보다 1.5배 이상은 되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겨우 화살촉을 장벽에 박아 넣기 위함이 그 정도였다.
사실, 궁술 실력이나 능력치를 지금보다 1.5배로 올리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궁수 전용의 장비들로 풀 세팅을 하거나 그만큼 레벨을 올리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버려야 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나 부족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레벨을 올리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말이지.
그런 면에서 내게 파탄 스킬이 있다는 것은 땡큐 중의 땡큐였다.
딱히 정확한 조준을 할 필요도 없었고, 강하게 쏘려 힘을 들이거나 공을 들일 필요도 없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최대한 힘을 뺀 채, 넓고도 넓은 표적을 향해 툭툭 쏘기만 해도 충분한 상태였기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물론, 재력의 장벽에 더블샷의 두 번째 화살이 박힌 상태로 파탄이 터진다면 훨씬 더 큰 대미지를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차피 리차드를 온전히 상대하고, 처리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와 상황이라 크게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뭐, 언젠가는 꽂히겠지!’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멀리 내다보며 사냥에 임할 생각이었다.
….
솨아아아아아….
거센 바람을 맞고는 정원으로 튕겨 나왔다.
일몰과 함께 약 1시간가량의 리차드 사냥이 끝난 것이다.
“다들 어때?”
린과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제 몸을 힐끔 살핀 린과 아직 힘이 남았음을 과시한 오식이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문제없다.”
녀석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오늘은 1시간쯤 했거든? 내일은 조금 더… 한 1시간쯤 시간을 늘려도 괜찮겠지?”
“10시간도 좋다!”
오식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10시간은커녕, 3시간도 무리가 있었다.
피식하고는 녀석의 자신감을 키워 줬다.
“뭐, 10시간도 충분하지! 하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가자.”
“크르르… 알았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오식이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린을 쳐다봤다.
린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 물으려던 순간, 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주인님….”
제법 심각한 분위기에 조용히 린의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