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35)
타앗!
앞으로 내디딘 발목을 비틀며 옆으로 굴렀다.
쿠우우우우웅!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거대한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크읏!”
인상을 구기며 자세를 바로 하려 했다.
또다시 허공에서 떨어지는 자루와 마주해야만 했다.
‘제, 젠장!’
몸을 옆으로 굴렸다.
데굴데굴….
쿠우웅! 쿠우웅! 쿠우웅….
두 바퀴를 구르는 정도의 틈을 두고서 계속 자루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 이대로는 깔린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벽과 체감상 느려지는 구름의 속도에 위험과 조바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엎드려진 자세가 되었을 때, 양쪽 팔에 힘을 가득히 주며 몸의 회전 방향을 옆에서 앞으로 바꿨다.
쿠우우웅!
“아으!”
떨어지는 자루에 발뒤꿈치가 스쳤을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두어 바퀴를 구르며 얼떨결에 바로 설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구름이 아니라 점프와 스텝 등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피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뭐, 그래 봤자 위험이 크게 잦아든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꺄악!”
린도 위험한 상황… 떨어지는 자루들을 피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작은 체구에 빠른 몸놀림 때문에 나보다는 훨씬 덜 위험해 보이긴 했다.
“허허허!”
등 뒤에서 리차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이 피하기에 바빠 눈으로 직접 확인은 하지 못 했지만, 리차드의 손짓에 자루들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더불어 오식이를 깔아뭉개고, 나와 린을 계속해서 노리는 자루의 정체도 무엇인지 알았다.
거대한 자루의 정체는 바로 ‘돈 자루’였다.
그것도 동전으로만 가득 채워진 엄청난 무게의 것.
리차드와의 싸움을 두고서 그가 가진 부와 맞서야 한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아마,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동전으로 가득 찬 돈 자루의 어마무시함을 말이다.
엄청난 무게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빈틈없어 보이는 단단함도 갖추고 있다.
그것들을 활용한 지금의 무차별적인 폭격은 정말로 위험하고, 대단한 것이었다.
저주받은 저택 3층의 공략법 그 어디에서도 이 돈 자루의 명확한 파해 법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검이나 활 같은 무기로는 감히 상대할 수도 없고, 그나마 둔기류의 무기로 쳐 내는 것이 고작인데, 그 또한 사용자의 엄청난 체력과 힘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했다.
뭐, 그것도 자칫 잘못하면 한 방에 끝장날 수 있기에 추천할 방법은 아니었다.
그냥 대놓고, 무조건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얘기다.
‘췟! 녀석이라면 버틸 줄 알았건만….’
오식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워낙에 단단한 맷집과 엄청난 힘을 앞세운 타입이었으니까.
게다가 둔기류인 모닝스타도 사용하기에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쩝!
또 하나….
지금의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은 다른 전개였다.
그렇게나 찾아보고, 머릿속에 각인되도록 숙지한 저주받은 저택 3층의 공략법에서도 벗어난 상태.
계획과 예상대로라면 오식이도 그렇고 나나 린도 이렇게 갑자기 돈 자루의 폭격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가 어땠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 내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야 했다.
리차드의 돈 자루 공격… 아니, 리차드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알프레도의 죽음 이후에 어느 정도 틈을 주고 진행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은 그런 일말의 틈조차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수십, 수백 개나 되는 저주받은 저택 3층의 공략법에도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이었고, 내가 예상하고 세운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모든 저주받은 저택 3층에서 적용되던 룰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에?
알프레도가 늘 지껄이던 것처럼 미천하고, 벌레 같고, 별것도 아닌 놈들이 까불다 못 해, 자신을 죽이기까지 한 것에 대한 저주 때문에?
아니었다.
나도 지금의 위험천만한 상황을 버티고, 이겨 내며, 겨우 목숨을 부지한 뒤에야 파악한 것이었지만, 이 지랄 같은 상황은 모두 오식이 자식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들 알 것이다.
오식이가 알프레도를 잡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말이다.
맞다.
나는 물론이고, 녀석도 평소에 쓰지 않던 ‘포효’ 스킬을 사용했었다.
또한, 다들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저주받은 저택 3층에 처음 도전하며, 새로운 사냥법이라 하여 떠올렸다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포기했던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렇다.
파탄을 이용한 사냥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왜 내가 포효 스킬과 파탄 얘기를 묶어서 꺼냈을까?
당연히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고, 그것이 지금의 지랄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 이유이자,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자, 그러면….
일단, 내가 왜 파탄을 이용한 사냥법을 그만두었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안전하고, 능률적인 암흑 병사 놈들의 사냥을 위해 떠올렸다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때려치웠던 파탄의 활용.
그에,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목표가 될 암흑 병사 놈들을 향해 쏜 화살이 빗나갔을 경우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빗나간 화살이 혹여 알프레도에게 꽂히게 될 경우… 그로 인해 알프레도가 죽게 되면, 당시로써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지금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쩝!’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씁쓸해지다 못해 정신이 아찔해지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파탄의 미스로 인한 알프레도의 죽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지랄 맞은 상황으로 번질 게 확실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빗나간 화살이나 파탄이 리차드에게 꽂히는 경우였다.
지금껏 봐서들 알겠지만, 알프레도에 의해 소환된 리차드는 딱히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저, 넘치는 재력으로 암흑 병사 놈들에게 재력의 갑옷이나 검 같은 버프와 암흑의 기운이 떨어진 알프레도에게 시커먼 물약을 지원해 줄 뿐이었다.
늘 허허거리기만 하고, 비대한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하며, 겨우 손과 팔만 까딱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렁이도 밝으면 꿈틀… 아니, 긁어 부스럼이랄까?
가만히 두면, 알프레도의 죽음 이외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신경조차 쓰지 않아도 될 리차드인데, 괜히 건드리고, 타격을 주면 그가 화를 내고 깨어난다.
그런 뒤 지금처럼 엄청난 돈 자루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댄다.
그렇다.
한순간의 실수나 객기(?)로 인해 가만히 있는 리차드를 공격할 경우.
하나씩 상대해도 귀찮고, 버겁고, 힘겨울 암흑 병사 놈들과 알프레도는 물론, 리차드까지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거지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니, 뭔가 감이 잡히겠지?
맞다.
알프레도의 텔레포트 스킬을 무력화시키려 오식이가 사용했던 포효 스킬.
그것이 가만히 있던 리차드를 자극한 것이었다.
오식이가 포효 스킬로 알프레도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돌격 스킬로 처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구속이나 속박 계열의 스킬이 없다고 여겼다.
해서, 그런 방법과 스킬을 떠올린 녀석이 천재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포효 스킬이 리차드에게 어떠한 자극 또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스킬이 아니었기에 미리 떠올렸다고 해도 이렇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뜬금없고, 어이없고, 황당하기가 그지없으며, 지랄도 풍년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의 사냥과 계획이 정식적으로 리차드를 사냥하거나 도전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식이 녀석의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
해서, 진정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나름으로 계산된 제한 시간… 일몰이 곧 다가왔고, 우리는 무사히(?) 저택 3층에서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씨… 너 때문에 다 죽을 뻔했잖아!”
대자로 쓰러져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 오식이에게 버럭 화를 냈다.
옆에서 린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러댔다.
“주인님, 그보다….”
“아, 알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준비해 둔 회복 물약을 꺼내 린에게 전달했다.
린이 서둘러 회복 물약을 오식이의 입에 흘려 넣었다.
오식이답지 않게 가늘게 쉬던 숨소리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왔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았다.
안절부절못하던 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 다행이다.”
“에휴… 내가 못 살아, 정말!”
짜증과 함께 애꿎은 풀더미를 걷어찼다.
그것이 실수였음을 곧 깨달아야만 했다.
“캬아아아아아악!”
지랄 같은 괴성과 함께 정원사 놈이 튀어나왔다.
“아,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씨… 니들은 다 죽었다!”
오식이에게 쏟아져야 할 분노를 정원사 놈들이 대신 받아 내야만 했다.
일단은 말이지….
….
폭발 직전의 화가 다소 누그러질 즈음에서야 오식이가 깨어났다.
“크르르….”
이미 한밤중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
자리에서 일어난 오식이가 민망한지 딴청을 피워댔다.
잠시 녀석을 노려보다가 던전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서도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녀석이 조금 더 민망하고,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 느끼도록 계속해서 무거운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에 조용히 물었다.
“잘못 했냐, 안 했냐?”
“해, 했다.”
녀석이 냉큼 대답했다.
차분한 투로 또 물었다.
“앞으로 또 그럴 거냐. 안 그럴 거냐?”
“안 그럴 거다.”
느낀 것이 있는 듯 말투나 표정 등에 제법 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좋아, 두고 보겠어.”
오식이가 믿어 달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동굴로 향했다.
뒤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아까 먹었어요. 오식 씨가 쓰러져 있는 동안에요.”
“나, 나는… 없냐?”
“잠시만요. 제가 바로 고기를 굽도록 할게요.”
“빨리! 배고프다.”
가던 걸음을 멈췄다.
돌아서지는 않았고, 목소리만 높였다.
“뭘 빨리야? 넌 오늘 저녁 없어! 잘못한 벌이니까, 그리 알아!”
내 외침에 녀석의 ‘뜨헉!’ 하는 반응이 전해졌다.
린의 안절부절못하는 반응도 느낄 수 있었다.
멈췄던 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그대로 동굴 속 텐트로 들어갔다.
30여분 후….
부시럭부시럭….
밖에서 뭔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린이었다.
‘췟….’
린이 무엇을 찾는 것인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눈에 훤했다.
그냥 모른 척했다.
3분도 되지 않아 짜증과 후회가 밀려왔다.
‘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괜히 뒤척이거나 소리를 내면 녀석들이 곤란할까 싶었다.
그래서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좀이 쑤셨고, 너무나 불편했다.
‘젠장! 화장실은 왜 갑자기 가고 싶은 거야… 쩝!’
….
다음 날부터 다시 암흑 병사 놈들을 사냥했다.
열 마리를 9시간을 풀로 잡았다.
저녁에는 리차드 공략법의 수업을 이어 나갔다.
몇 번이나 다시 듣는 린은 여전히 열심히 했다.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 오식이도 지루함에 절로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수업에 동참했다.
뭐, 고작 3일뿐이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모두 숙지가 된 상태였다.
그렇게 며칠 후.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내가 먼저 38레벨에 올랐다.
이틀 후에 린과 오식이도 38레벨이 되었다.
맛보기에서부터 굉장한 따끔함과 매콤함을 맛봤던 리차드 사냥의 본격적인 시간이 코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