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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28화 (128/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8)

스스스….

아지랑이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냈다.

깡마른 몸매에 말쑥함을 자랑하는 노신사… 차림새나 폼이 딱 봐도 ‘집사’의 이미지가 또렷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도’다.

보이는 이미지대로 저주받은 저택의 집사 자리에 있었다.

레벨은 30이었고, 매우 짜증스러운 특기를 가진 존재였다.

까딱!

알프레도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름의 품위나 각이 살아 있는 동작이었지만, 상대인 우리를 대함에선 무례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뭐,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저택의 3층까지 올라오면서 벌인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것 외에 이곳에 당도할 방법이 없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알프레도의 눈에 우리는 멋대로 집안에 쳐들어와 정원사와 하녀는 물론이고, 안주인인 로레나까지 죽인 살인자일 뿐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저 정도로 예의를 갖춘다?

만약에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스윽….

알프레도가 건조한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실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과 함께 등 뒤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린과 오식이가 뒤를 돌아봤다.

나는 계속 알프레도를 주시했다.

린이 약간의 호들갑을 떨었다.

“주인님, 게이트가….”

“알아, 그러니 앞이나 봐.”

내 말에 린이 멋쩍어했다.

알프레도의 말이 이어졌다.

“이 앞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엔 그의 등 뒤로 묘한 현상이 일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의 뒤쪽 면 일부가 마치, 유리에 빛이 반사된 듯한 가벼운 번쩍임을 일으켰다.

저택 2층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바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

알프레도는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를 향해 무심한 눈길만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간단했다.

뭐, 나처럼 리스닝 스킬을 통해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의 말과 함께 이어진 게이트나 아무것도 없는 면의 반응만 잘 살펴도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게이트를 다시 넘어가면 상황 포기, 그대로 전진하면 도전’이라는 양자택일의 선택권이 주어졌음을 말이다.

그랬다.

만약에 나였다면, 당장에 찢어 죽이거나 살기부터 드러냈을 상황에 알프레도는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뭐 당연하겠지만, 이는 저주받은 저택의 3층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룰이었다.

눈치가 빨라서, 또는 이미 갖고 있던 정보에 의해서, 아니면 어쩌다가 등등으로 게이트를 선택한 이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저택 2층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게 끝이다.

대신, 스스로 도전을 포기한 까닭에 일정 시간 동안 재도전의 기회가 사라지는 약간의 페널티는 있다.

페널티는 다음 날의 일출과 함께 해제된다.

참고로 저주받은 저택 3층은 시간제 영업(?)을 한다.

해가 뜨면 열고, 해가 지면 닫힌다는 소리다.

그 시간 안에 3층의 보스인 리차드를 물리치면 당연히 도전 종료.

내친김에 ‘리차드 코어’까지 파괴하면, 퍼펙트 클리어로 4층에 오를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리차드를 물리치지 못해도 도전은 종료된다.

도전의 종료와 함께 모든 상황이 일시에 정지되고, 3층 안에 있던 도전자들은 강제적인 힘에 밀려 정원으로 튕겨 나간다.

스윽….

알프레도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멈칫한 린과 오식이도 조심스레 내 뒤를 따랐다.

녀석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경계심과 긴장감을 늦추지는 않았다.

이제 막 알프레도를 스쳐 지나갈 때쯤, 그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당신들의 선택이군요.”

애써 무시하며 내딛던 걸음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그를 완전히 지나, 빛 반사를 일으켰던 아무것도 없는 면을 넘어섰다.

그 순간!

솨아아아아….

흘러들어 올 곳이 전혀 없음에도 기세가 느껴지는 바람이 온몸으로 날아 들었다.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1초쯤이나 됐을까?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의 전경이 바뀌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넓기만 하고, 텅 비어 있던 공간이 화려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래된 나무 바닥과 기둥들이 반들반들한 새것으로 교체됐다.

바닥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붉은색의 거대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기둥 곳곳에도 화려한 휘장들이 걸려 있었다.

불을 밝히고 있는 촛대와 횃불 장식들은 물론,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은 가구와 장식품들이 한눈에 봐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화려한 모습으로 단번에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의 반대편 끝.

세 칸의 계단 내지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쌓은 단상 위에 놓인 금빛 찬란한 소파형의 의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짙은 파랑의 쿠션은 그냥 봐도 푹신해 보였다.

더없이 멋들어진 금빛의 테두리 장식은 주위를 밝히고 있는 횃불의 빛을 일부를 머금고, 일부는 반사시키며 영롱함을 자아냈다.

대놓고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발산하는 모양새가 마치, 왕이나 사용하고 앉을 법한 느낌으로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듯했다.

‘그래, 돈 지랄은 이렇게 하는 거야. 나도 나중에 하나 장만해야겠어!’

처음 저주받은 저택의 외관과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떠올렸었던 미래의 돈 지랄 컬렉션을 하나 추가하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려한 홀의 중앙에 서 있는 알프레도에게였다.

그가 우리에게 물어왔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분명한 물음이었지만, 대답할 여지는 없었다.

그가 곧장 다음 말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내놓을 준비 말입니다. 크크크크….”

섬뜩함이 가득한 그의 웃음소리가 연이은 메아리를 일으키며 잦아들었다.

이어, 묵직함을 동반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가 아닌 여럿의 발소리가 정확한 박자에 맞춰서 동시에 일고 있었다.

쿵! 쿵! 쿵….

양쪽으로 늘어선 기둥들 뒤로 발소리의 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플한 형태의 철제 갑옷과 갖가지 무기들로 무장한 병사들이었고, 정확한 수는 10명이었다.

처억!

척!

린과 오식이가 바로 반응하며 빗자루와 모닝스타를 뽑아 들었다.

나도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뽑았다.

이글이글….

일렬로 줄을 맞춰 늘어선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대놓고 살기를 뿜어냈다.

그런 놈들을 향해 오식이가 더욱더 진한 살기로 대응했다.

“크르르르!”

놈들의 이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저 병사 A, B, C… 또는 ‘저주받은 저택의 병사’ 뒤에 들고 있는 무기들… 검과 철퇴, 봉과 몽둥이, 사슬 등을 가져다 붙인 이름으로 불렀다.

놈들의 레벨은 26이었다.

그러나 잘 짜인 조직적 플레이로 그보다는 조금 더 높게 쳐준다는 게 상대해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래 봤자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꼬나쥐었다.

그러고는 놈들보다 먼저 움직이기 위해 소리쳤다.

“얘들아, 가자!”

내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린과 오식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뒤늦은 알프레도의 외침이 이어졌다.

“주, 죽여라! 모두 죽여 버려라!”

알프레도의 명령에 놈들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선수를 친 상태였기에 놈들이 자랑한다는 조직적 플레이는 빛을 발할 겨를도 없었다.

촤아아악!

크게 휘두른 아수라 스워드에 철퇴를 들고 있던 놈의 팔 하나가 잘려 나갔다.

바깥으로 휘둘러진 아수라 스워드를 잡아당기며 사선으로 베었다.

채애애앵!

얼떨결에 사슬로 내 공격을 막은 놈이 주춤했다.

그런 놈의 대가리로 오식이의 모닝스타가 날아 들었다.

부우우웅….

터어어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목에서 분리된 놈의 대가리가 투구째로 날아갔다.

놈의 대가리를 날려 버린 오식이의 모닝스타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른 놈들을 향해 묵직하고, 살벌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이얍! 핫! 핫!”

린의 빗자루와 먼지떨이 난타도 화려하게 춤을 췄다.

검을 든 두 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훗! 힘이 남아돌겠지….’

오전 내내 있었던 로레나의 사냥을 오식이가 전부 도맡아 했기에 린은 힘이 남아돌게 분명했다.

어쩌면 좀이 쑤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린에게 잘못 걸린 놈들의 운명은 뻔한 것이었다.

“크아아! 죽어라!”

잠시 린에게 한눈을 판 사이, 봉을 든 놈 하나가 나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부웅! 붕! 휙! 휙!

채앵! 챙! 챙….

놈이 미친 듯이 휘둘러대는 봉을 아수라 스워드로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놈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수라 스워드보다 상대적으로 긴 봉의 리치마저도 벗어난 거리였다.

그런 거리와 차이를 좁히고, 이용하듯 놈이 그대로 봉을 깊숙이 찔러왔다.

슈우욱!

“웃챠!”

연속적인 봉의 찌름을 여유롭게 피했다.

그러나 피하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거리를 좁혀야 해!’

기회를 노렸다.

슈우욱!

다시금 내 명치 부근을 향해 매섭게 찔러 오는 봉의 타이밍에 맞춰 몸을 회전시켰다.

빙그르….

회전과 함께 봉을 스치듯 타고 이동해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후훗! 이제 내 거리다.”

앞으로 뻗은 봉을 미처 회수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내 눈앞에 드러난 놈의 팔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곧장 가차 없이 아수라 스워드를 내리쳤다.

서걱!

깔끔한 손맛이 느껴졌다.

놈의 팔이 봉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덜그렁….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다음이었다.

“끄아아악!”

놈이 잘려 나간 제 팔뚝을 잡고는 데굴데굴 굴러댔다.

고통에 찬 비명 또한 계속 질러댔다.

“거참, 시끄럽네!”

미간을 꿈틀거리며 놈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다가섰다.

그때였다.

“멍청한 것들! 저런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을 상대로 뭣들 하는 짓이냐?”

알프레도의 노기 어린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공간을 메웠다.

본능적으로 그에게 시선을 주고는 이내 주위를 둘러봤다.

멀쩡하게 서 있는 병사 놈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무척이나 쉬웠던 것만은 확실한 전투였다.

“크르륵!”

오식이가 식식거리는 알프레도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러면서 그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급히 소리를 질렀다.

“멈춰!”

내 외침에 오식이가 멈춰 섰다.

솟아오른 감정을 추스르며 뒤로 물러나라는 고갯짓을 했다.

그에, 오식이가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놈들… 진정한 무서움이 무엇인지 보여 주마!”

알프레도가 더욱더 진한 노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어깨 위로 시커먼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음침한 기운과 함께였다.

고오오오….

그를 주시하던 내 곁으로 린이 급히 다가왔다.

“이게 그건가요?”

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오오오….

그 사이에도 알프레도는 계속해서 음침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어깨 위에서 피어오르던 시커먼 아지랑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허공을 몇 번쯤 맴돌던 시커먼 아지랑이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여기저기 쓰러져 낑낑대거나 아예 목숨을 잃고 시체가 된 병사 놈들에게로였다.

슈우우욱….

시커먼 아지랑이가 놈들의 몸속으로 스며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끄어어어어!”

낑낑대며 고통의 신음을 흘리던 놈들은 더욱더 괴로운 고통의 신음을 토해 냈다.

완전히 목숨을 잃었던 시체들은 신음 대신에 발작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하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있자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지랄 같아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쨌든.

곧 2차전이 시작될 터였다.

물론, 방금 치른 1차전보다 난이도가 올라갈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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