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7)
점심을 먹기 전까지 네 번이나 로레나를 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오식이가 도맡아 처리했다.
나와 린이 할 일은 전혀 없었다.
“흐음….”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린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대답 대신에 물끄러미 린을 쳐다봤다.
뭐든 괜찮다는 듯 느껴지는 린의 표정을 보는 순간, 심히 고민하던 생각의 결론이 내려졌다.
“다들 모여 봐!”
그냥 말을 해도 다 들릴 거리에 있는 오식이를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방금 결정된 사항을 차분하게 브리핑했다.
뭐, 브리핑을 가장한 통보에 가까운 것이기는 했다.
“에? 지, 진심이세요?”
내 말을 듣던 린이 놀람의 반응을 보였다.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오식이의 무덤덤함도 그렇고 말이다.
“응.”
짧게 대답하고는 빠르게 다음 말들을 이어 나갔다.
갈수록 린의 얼굴은 굳어졌고, 오식이는 무표정과 무덤덤으로 일관했다.
“다들 오케이?”
말을 마치고, 의사를 물었다.
“네, 네….”
“좋다!”
반대 의견은 없었다.
뭐, 있을 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며, 있다 한들 수용될 일도 아니었다.
….
“오호호호호호!”
지랄 맞은 퍼포먼스와 함께 등장한 다섯 번째 로레나.
“크르르르!”
부우우웅!
퍼어억!
그녀의 머리통이 오식이의 업그레이드 된 울트라 펀치에 박살이 났다.
오늘 있었던 사냥은 물론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클리어 타임이었다.
푸스스스….
머리통이 날아간 로레나의 몸이 재와 가루가 되어 흩날리며 사라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 뒤쪽으로 주황색의 둥근 물체가 둥실 떠올랐다.
코어… 로레나 코어였다.
평소라면 보고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로레나 코어를 응시했다.
잠시간의 고민과 약간의 갈등.
하지만, 이내 그런 것들을 모두 털어 내고는 오식이를 불렀다.
“오식아.”
내 부름에 녀석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모닝스타를 꺼내 들었다.
처억!
부웅부웅… 붕붕붕….
녀석이 손목을 이용해 모닝스타를 빙글빙글 돌려댔다.
그러다가 냅다 로레나 코어를 향해 모닝스타를 집어 던졌다.
원심력에 힘이 더해진 모닝스타가 쏜살같이 로레나 코어를 향해 날아갔다.
“….”
엄청난 스피드와 정확한 제구력이었다.
이제는 한물간 스포츠지만, 녀석에게 야구를 가르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다.
워낙에 힘이 좋으니,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도 성공하지 않을까?
아무튼….
슈하아아아악….
콰아아아앙!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간 모닝스타가 로레나 코어에 부딪혔다.
번쩍임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일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짐이 확실한 로레나의 비명이 높고, 길게 울려 퍼졌다.
“끝이구나….”
낮게 말을 흐렸다.
“….”
옆에 있던 린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꽤 복잡한 감정이 서린 표정이긴 했지만, 로레나의 명복 따위를 빈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랬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아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만큼은 로레나를 다시 볼 일이 없어졌다.
코어의 파괴로 인해 그녀가 완전히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로레나의 완전 소멸은 나의 계획에 없었다.
이미 제작에 들어갔을 것이 분명한 오식이의 방어구 값.
그것을 충당하기 위한 린과 녀석의 노가다도 그렇고, 레벨 30에 보너스 경험치까지 주는 로레나를 쉽게 포기하는 것도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현재 내 레벨은 31이었고, 오식이와 린은 30레벨이었다.
오식이의 진화를 위해 잠시 이곳을 떠나면서 내가 세웠던 계획은 담배나 꽃과 같은 미지의 전리품을 얻으면서 레벨도 올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놈들이 30레벨의 오크들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뭐, 얼추 한 달쯤으로 잡았던 기간이 대폭 단축되었고, 주된 목표인 오식이의 진화를 이루었으니, 뭐로 보나 이득이긴 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로레나를 좀 더 잡았어야 했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레벨에 보너스 경험치는 물론, 이제는 전보다 훨씬 더 쉽게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빼먹을 수 있을 때까지 쪽쪽 빨아 먹고, 우려먹고, 가루까지 탈탈 털어먹을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뭐든 순서대로 진행되는 일의 다음 단계는 이전의 것보다 어렵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나 던전의 다음 단계는 확실하다 할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해서, 저택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최소 레벨을 33으로 잡았다.
그 정도는 되어야 저택의 3층 놈들과 싸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로레나의 완전한 소멸… 로레나 코어의 파괴는 뒤로 미뤘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여유롭게 저주받은 저택 2층을 클리어 하는 오식이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확연히 느껴지는 하이 오크의 대단함이었다.
그러나 직접 싸우는 걸 보니까 이건 뭐 경이롭기까지 했음은 물론, 그로 인해 ‘어쩌면’이 아니라 ‘충분히’란 단어가 머릿속을 장식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뭐, 30분도 채 되지 않는 고민의 시간을 갖고서 내린 무모한 결정과 계획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오식이 녀석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조금 난감한 상황에 이를 것이다.
나름 대박의 경험치를 주는 로레나를 통해 겨우 한두 달이면 될 일을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클린을 잡아가며, 계산조차 되지 않는 긴 시간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씁…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걱정을 억지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 등 뒤로 들려오는 기묘한 느낌과 소리에 반응했다.
츠츠츠….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이제껏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경계선의 막들이 약간의 흔들림을 일으키며 사라지고 있었다.
코어가 파괴되고, 로레나가 완전히 소멸했기에 저주받은 저택 2층의 결계 내지는 틀도 깨지는 것이 당연했다.
츠츠츠….
첫 번째 경계선을 넘자마자 길게 늘어났던 복도의 길이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조용한 침묵 탓이었을까?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듯했다.
아니, 그보다는 생명의 기운이 모두 사라져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 듯했다.
스르릉….
복도의 변화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나를 일깨우듯 다시금 뒤쪽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익숙한 소리였다.
스윽….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역시나 저택 3층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었다.
어느새 린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갈까?”
“네.”
린의 차분한 대답과 함께 이제 막 아가리를 벌린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저주받은 저택의 3층.
저택의 3층은 좁고, 긴 복도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2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방은커녕, 벽과 기둥을 최소화한 형태의 넓고도 큰 홀 내지는 강당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은 건물의 지하나 1층쯤에 있어야 마땅할 것 같은 공간이 3층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더욱더 혼란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넓네요.”
린이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더 넓고, 크게 느껴지는 전경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잠깐!
이 부분에서 조금 의아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저택에 상주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린이 마치, 이곳을 처음 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저주받은 저택 3층의 사용자(?)는 ‘리차드 폰 마르테’란 이름의 남자로 줄여서 ‘리차드’라 불렸다.
당연하겠지만, 리차드는 저주받은 저택의 주인이자 로레나의 남편으로 상상과 상식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재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린은 저주받은 저택의 메이드였지만, 이곳의 안주인인 로레나의 관리하에 있었다.
해서, 3층까지는 오를 일이 없었다.
아니, 발을 들일 수조차 없었다.
‘절대로’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강조까지 하며 3층에 오르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로레나가!
누구에게?
당연히 린에게 말이다.
린은 그러한 이유를 몰랐다.
나름 궁금하긴 했지만, 물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닌 터라 그냥 그런 줄 알고 지냈단다.
뭐, 정확한 속사정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 이들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저 추측건대, 로레나가 지독한 의부증을 갖고 있다거나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그러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이미 사전 정보를 통해 저택 3층의 대략적인 형태와 이미지는 물론, 공략법까지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숙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잘 쓰고, 그린 글과 그림만으로 얻은 정보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크륵….”
오식이의 반응에 바로 물었다.
“왜 그래?”
“좋다.”
“뭐가?”
“몸을 움직이기에 편하다.”
오식이는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하긴, 가볍게 클리어가 가능은 하지만, 저택 2층은 녀석에게 너무 비좁은 게 사실이었다.
반면, 이곳은 진화 전의 오식이라도 마음껏 활개를 치고,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될 만큼이나 넓었다.
2층과 같은 나무 바닥이지만, 훨씬 더 튼튼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기억해! 너무 나대지 마!”
“알겠다, 형님!”
오식이가 크게 대답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발까지 힘껏 구른 형태의 것이었다.
쿵!
묵직하고도 요란한 소리가 공간을 진동시켰다.
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소리에 반응하던 것은 단지 저택 2층의 룰이었을 뿐,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아, 깜짝이야. 놀랐잖아, 인마!”
“크륵….”
꽥하고 질러댄 내 타박에 녀석 또한 몸을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린이 ‘풉!’하며 웃음을 표했다.
“쩝….”
입맛을 다시고, 미간을 꿈틀대다가 게이트 옆으로 난 벽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벽에 매달려 있는 기다란 줄에 집중했다.
그것이 바로 저주받은 저택 3층의 도전과 시작의 키워드… 스타트 버튼이었다.
척….
주욱….
줄을 잡고서는 힘을 주며 아래로 잡아당겼다.
약간의 반발력이 느껴졌지만, 어떤 소리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잡아당긴 뒤에 줄을 놨다.
아래로 늘어졌던 줄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고, 이내 5미터쯤 떨어진 앞 부근에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올랐다.
처억!
척!
오식이와 린이 곧장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쯧!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대충 일어날 상황과 사냥법 등을 말해 준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오식이야 그렇다 친다지만, 린까지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불만이었다.
뭐, 긴장도 했을 것이고, 한 번밖에 말해 주지 않았다는 점과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 것이라는 부분까지 참작하여 넓은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워워, 긴장들 풀어. 아직 아니라고.”
내 말에 린과 오식이가 움찔하고는 낮췄던 자세를 풀고 편하게 섰다.
그런 녀석들 옆으로 다가가 서서히 어떤 모양새를 갖춰 가는 아지랑이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