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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25화 (125/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5)

[경고!]

[던전의 활동이 곧 정지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던전을 탈출하세요.]

신비한 목소리가 경고성 메시지를 알려 왔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디지털 시계가 ‘00 : 59 : 52’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는 던전의 입구 근처에 있었다.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을 겸해서 먹고는 나름의 휴식을 취했다.

목적은 지금의 순간을 기다리는 ‘시간 보내기’였다.

또한, 쉬자고는 했지만, 오식이의 새로운 스킬인 돌격을 몸에 익히기 위한 연습에 매진했다.

돌격 스킬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스킬 습득의 노하우가 생겨서인지 금세 감을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에 이르렀다.

몇 회나 성공해야 스킬이 추가될는지가 관건이었다.

“주인님, 하늘이….”

린이 먼 곳을 바라보며 반응을 보였다.

실제 시간이 자정에 가까운 터라 주변은 물론 하늘도 캄캄한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별 무리로 반짝이는 시커먼 하늘이 저 멀리서부터 점점 붉어져 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던전에서 일부러 시간을 보낸 이유가 바로 이 광경을 보기 위함이었다.

“후훗!”

“멋진 걸 보여 주신다더니, 이것이었나요?”

“응, 볼만하지?”

“네, 너무 멋져요.”

린이 황홀경에 빠진 듯 감탄했다.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들었지, 사실은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떤 이는 두렵다고 했고, 몇몇 이는 으스스함을 느꼈다고도 했지만, 대부분은 멋진 광경이었다고 얘기했다.

‘흠, 혼자였다면 좀 그랬을 수도 있겠는걸?’

그들이 했던 말을 모두 공감했다.

혼자서만 덜렁 이런 상황과 광경을 목격했다면, 그리 즐겁거나 멋지다고 생각지 않았을 터였다.

지금처럼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더욱이 어여쁜 여자와 나란히 서서 보고 있으니, 멋지기도 하고, 분위기도 좋은 것이 분명했다.

….

“이제 슬슬 나가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붉고, 빠르게 채워져 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미 하늘의 절반이 붉은색으로 덮여 있었다.

거대한 디지털 시계의 시간도 이제 30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붉게 물든 하늘을 눈과 기억에 새긴 뒤 던전을 빠져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는 게이트를 응시했다.

얼마 후, 게이트가 희미한 빛을 내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름 기대를 했건만, 정말이지 볼 것 없고, 허무한 광경이었다.

‘어쩐지 게이트가 사라지는 부분은 말들이 없더라니… 쩝!’

진짜 볼 것이 없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허무함을 혼자서만 느낀 것이 억울해서 다른 사람도 당해 보라는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제대로 당했다는 느낌에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셨다.

* * *

트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는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내게는 40여 일의 긴 여정이었고, 오식이와 린은 3박 4일의 비교적 짧은 외출이었다.

뭐, 실제로 흘러간 시간은 나흘밖에 되지 않으니, 그에 맞춰 생각을 해야 하기는 했다.

어쨌든.

바리바리 싸 갔던 짐과 숨겨 놓았던 짐, 돌아오는 길에 A 구역에서 사 온 물건들까지 모두 정리했다.

힘쓰는 일은 나와 오식이가 했지만, 린의 주특기가 아니었으면 오래 걸렸을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예상보다 이르게 끝나 버린 정리 덕에 저녁 식사 후로 예정됐던 일을 먼저 하기로 했다.

“흠, 괜찮은 건가? 아닌 것 같은데? 야야, 이거 써 보자.”

“아, 그것보다는 이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걸로 해 봐!”

“하아, 이것도 이상하네요.”

“그러게… 쩝!”

나와 린이 분주하게 난리를 피웠다.

그런 우리 사이에는 오식이가 있었다.

“크르르….”

녀석은 무척이나 불편해하고, 못마땅함을 계속해서 표출해댔다.

“야야, 그만 으르렁거려!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거든?”

“맞아요, 이게 다 오식 씨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요.”

나와 린의 핀잔에 오식이가 눈을 살짝 흘겼다.

“어쭈? 어디서 눈을… 안 깔아?”

“크르르….”

여전히 못마땅함을 내비친 오식이가 그래도 눈은 깔아 줬다.

“자식… 알았어, 이것만 끝내고 너 좋아하는 고기 실컷 먹게 해 줄게!”

“그래요, 제가 맛있게 구워 드릴게요.”

나와 린의 어르고 달램이 약간은 먹혀든 듯했다.

녀석이 으르렁거림을 멈추고는 얌전해졌다.

아니, 지그시 감은 눈과 표정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냥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린, 이건 어때?”

“아, 좋아 보여요.”

“그치? 흐흐!”

이때다 싶어 더욱더 난리와 흥에 박차를 가했다.

….

우리가 지금 난리를 피우며, 분주하게 하는 일은 이름하여 ‘오식이 꾸미기 프로젝트’였다.

이를 위해 A 구역에서 갖가지 옷과 액세서리 등을 샀다.

시작은 린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A 구역을 돌던 중, 어느 옷가게 앞에서 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주인님, 이것 좀 보세요.”

“응? 뭔데? 헉!”

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티셔츠… 나와 린이 모두 들어갈 것처럼 큰 사이즈의 것이었다.

“이거… 오식 씨한테도 맞지 않을까요?”

그래 보였다.

녀석이 좋아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사이즈는 넉넉할 정도로 충분할 듯싶었다.

“오식 씨도 이런 옷들을 입으면, 우리랑 같이 이렇게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린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다.

마치, 꿈꾸던 것을 이루기라도 한 것처럼 생기가 돌고, 초롱초롱한 린의 눈빛을 봤다면,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

그러던 중, 문득 다른 생각과 가능성이 떠올랐다.

“맞다. 그렇겠구나!”

“그쵸?”

자신의 말이 통했다고 여긴 린이 신을 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속내를 일단 감추고는 예정에 없던 쇼핑을 시작했다.

그렇게 사들인 옷과 액세서리가 진심 한 보따리를 훌쩍 넘었다.

….

진화를 통해 그나마 인간처럼 보이게 된 오식이였다.

물론, 2미터나 되는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가 보통의 인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억지로 끼워 맞출 수준은 됐다.

뭐, 조폭 두목을 연상케 하는 험상궂은 얼굴과 절대로 인간의 것을 떠올릴 수 없는 잿빛의 피부색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흠… 어째, 점점 더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지?”

꽤 오랜 시간의 노력과 분주함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나름 패션 감각이 있다고 여겼던 린도 오식이의 개떡 같은 단점들을 커버할 수가 없었다.

“하아, 이래서는 함께 다니지 못할 것 같아요. 아이, 속상해….”

한숨과 속상함을 뱉어 낸 린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듯한 느낌….

그럴 만도 했다.

반도 채 들어가지 않는 모자를 머리 위에 걸치고,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의 커다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여 억지로 가린 얼굴.

펑퍼짐함을 넘어서 핏이라고는 전혀 없는 커다란 박스티에 주름과 주머니가 과다해 보이는 카고 바지를 입은 오식이의 모습은 정말로 가관 중의 가관이었다.

‘쇠사슬 목걸이가 어울리겠군….’

진심, 지금의 모습에 번쩍이는 목걸이와 팔찌를 조합하면, 어느 할렘가의 덩치 좋은 흑형쯤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그렇게 보인다면야 그나마 반쯤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건 아무리 보고 또 보고, 더없이 좋게 생각하려 해도 문제가 많았다.

“쩝….”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목적이 다른 ‘오식이 꾸미기 프로젝트’였으니까.

“흠… 투구에 전신 갑옷 같은 방어구를 입히면 좀 나으려나?”

이제야 내 속내를 조금 털어놨다.

그랬다.

나의 목적은 오식이와 함께 거리를 걷고, 식당에 가고, 쇼핑을 하는 게 아니었다.

사냥.

던전 안에서 다른 각성자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오식이와 함께 사냥을 하는 게 목적이었다.

린이 아직 내 속내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린이 바라던 바가 무엇인지를 알기에 일부러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 갔다.

“일상복은 답이 없잖아. 하지만, 전투복은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음… 그럴 것 같기는 한데… 그런 걸 입고서 거리를 돌아다닌다고요?”

“왜? 그런 사람들 많이 봤잖아?”

“그래도요. 저는 좀 평범한 걸 원했거든요.”

“쟤를 봐라,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잖아.”

“휴우우….”

린이 인정과 실망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틈을 주다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전투복도 맞춤으로 제작해야 할 거야.”

“그렇겠죠.”

“최대한 평상복 같은 스타일로 만들어 보자. 어때?”

“네, 어쩔 수 없죠.”

“그럼, 네가 저 녀석 사이즈 좀 제대로 재 줘.”

“알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합의(?)를 보고는 아무리 봐도 꼴불견인 오식이와 옆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환불이 되려나?’

….

다음 날.

다시 A 구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어제 산 옷과 액세서리의 2/3는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어제저녁에 미리 봐 둔 방어구 가게로 향했다.

맞춤 제작이 가능한 곳이었고, 솜씨가 제법 좋다는 평이 자자한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하지만, 꼿꼿한 자세와 풍채의 가게 주인이 인자한 투로 우리를 맞이했다.

딱 봐도 한 땀 한 땀 공을 들일 것만 같은 장인의 냄새가 풍겨 왔다.

“방어구를 제작해 준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첫인상 때문인지, 별것 아닌 그의 말투에서도 자신감과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린이 잰 오식이의 신체 사이즈 표를 들여다본 가게 주인이 물어왔다.

“체격이 크시군요.”

“아, 네….”

“이런 분이라면, 직접 방문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아,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요. 혹시, 문제가 되나요?”

“정확한 치수와 사용하실 때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함이지요.”

“아… 너무 큰 문제만 없다면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따로 원하시는 부분은 없으십니까?”

“음, 최대한 얼굴과 몸을 가릴 수 있는 형태였으면 좋겠습니다.”

“얼굴과 몸을 가린다….”

그가 작게 소리를 내며 메모를 했다.

옆에 있던 린이 슬쩍 끼어들었다.

“최대한 평범하게요.”

“평범하게요? 어느 정도나….”

“네, 평상복으로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요.”

“아, 그렇다면 가격이 많이 올라가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려하고 있었던 부분이 도출됐다.

무기도 무기지만, 방어구는 훨씬 더 가격이 비쌌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방어구는 무조건 단단하고, 튼튼한 게 최고였다.

맵시나 활동성을 따지는 이들은 그나마 심플한 타입을 선호하기도 했지만, 고레벨이 되면 자연스럽게 고강도에 중장비와도 같은 방어구로 갈아타게 되어 있었다.

그만큼 상대해야 할 괴물들이 강해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죽을 가공하여 덧댄 것보다는 철판을 이어붙인 방어구가 인기였다.

거기에 마정석을 갈아 넣으면 금상첨화였고, 가격도 치솟아 올랐다.

그러던 것이 몇몇 괴물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천이나 가죽, 염료와 기타의 것들을 활용하게 되면서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

가볍고, 예쁘고, 효과도 좋은 방어구의 시대가 온 것이었다.

당연히 가격은 어마무시했고 말이다.

‘맞춤에 평상복 타입이면 대체 얼마나 할까?’

묻기에도 겁나는지라 눈치를 살폈다.

린은 제 돈이 아니라고, 신을 내고 있었다.

“괜찮죠?”

“어? 아, 어어….”

얼떨결에 떨어진 승낙.

이어진 가게 주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격은…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어림잡아도 저주받은 저택 2층의 로레나를 한 달가량은 쉬지 않고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말이다.

“아이, 좋아라.”

린이 싱글벙글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실컷 즐거워하려무나, 곧 쉬지도 못하고 노가다 지옥에 빠져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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