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3)
린이 양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내 부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틈을 주며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꼴깍….”
생각의 정리와 다짐을 거의 동시에 마치고는 작게 손짓했다.
“잠시 귀 좀….”
린이 눈을 크게 한 번 떠 보이고는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었다.
크게 두어 걸음 떨어져 있는 오식이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뒤, 바짝 다가선 린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너, 너의 애, 앵두 같은 입술을….”
“히잇!”
더듬대던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린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목과 어깨를 잔뜩 움츠린 상태에서 손으로 귀와 귓불을 못 참겠다는 듯이 문질러대던 린이 미안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간지러워서… 앵두가 어쨌다고요?”
꿈틀대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힐끔….
우리를 향해 오식이가 슬쩍 관심을 보였다.
그런 녀석의 눈치를 한 번 더 살피고는 린을 데리고 옆으로 이동해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녀석이 대놓고 우리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을 늘어놨다.
“아, 별일 아니야. 네 욕하는 거 아니니까, 안심해.”
따지고 보면, 녀석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건데, 눈치를 살피고 변명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하….”
살짝이 온 현타가 한숨을 이끌었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녀석이 저 몰래 속닥거리는 우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르르….”
꿈틀!
2차로 날아든 현타에 ‘그냥 다 때려치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짙은 한숨을 뱉어 내며 마음을 다스렸다.
“후우우… 릴렉스….”
그런 나를 보는 린의 눈빛과 표정에는 궁금증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깃든 씁쓸한 미소를 선보이고는 목소리를 낮춰 다시 본론을 말했다.
“린… 네 입술을 좀 빌릴 수 있을까?”
내 말에 린이 손으로 제 입술을 가리듯 만지며, 너무나 당연한 놀람과 당황의 반응을 보였다.
“네? 제 입술이요?”
“응… 그게 그러니까….”
처음 꺼내기가 어려웠을 뿐, 이어서 늘어놓은 자초지종은 내가 생각해도 청산유수와 같았다.
이따금 침을 튀기는 것은 물론, 손짓에 발짓까지 곁들이며, 마치 어떻게든 호갱님을 구워삶으려는 X팔이의 마인드로 열변을 토해 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다양하고, 심각하게 변해가는 린의 표정 변화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었다.
“…뭐, 사정은 그래….”
“아아….”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린의 표정은 난감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매우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부탁의 선을 넘거나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강요나 명령은 아니야. 그러니 부담 갖지 마.”
“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한 린의 반응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솔직히 내 부탁이란 게 그리 정상적인 건 아니었으니까.
아쉬움의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묻힐 생각도 못 한 채, 린의 입술만 쳐다봤다.
‘네’라고 답하며 흘린 말끝의 여운이 나름의 기대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약간의 틈을 주고는 린이 말을 이어 가려는 반응을 내비쳤다.
순간, 몸을 움찔하기까지 하며 말을 받았다.
“응! 뭐? 뭐든 물어봐!”
매우 성급했고, 가벼웠음을 바로 깨달았다.
그동안 쌓아놓은 내 이미지가 모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딴 건 중요치 않았다.
“아….”
내 반응에 살짝 놀란 린이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화, 확실한 건가요?”
“응?”
“그, 그러니까 제가… 그, 그렇게 하면… 오식 씨가…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린이 손가락들을 어쩌지 못하고, 몸을 배배 꼬았다.
말도 심하게 더듬고, 띄엄띄엄 했으며, 주어까지 빼먹었다.
그런 린의 말을 끝까지 듣고는 정직하게 답했다.
“음… 그게 확실치는 않아. 말했다시피 처음이고, 정확한 정보도 없으니까.”
“네… 그렇군요.”
“다시 말하지만, 너무 부담은 갖지 마.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말로는 부담을 갖지 말라 하면서도 뉘앙스만큼은 부담을 팍팍 안겼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린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해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괜히 먼 발치를 내다보며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한 5분쯤 흘러서 린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응?”
“제 결정이 주인님께 도움이 되는 것 맞지요?”
린의 물음에 다시금 현실적인 대답을 내놨다.
“음, 결과가 중요하긴 하지만,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니까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
말을 마치고 보니,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린이 잠시 또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한 10여 초쯤?
뭐, 모호하고 애매한 내 말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고, 고개의 끄덕임과 함께 허락이 떨어졌다.
“알겠습니다. 주인님께 도움이 된다니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린의 눈빛과 표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며,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대의(?)와 확인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고마워.”
짧지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는 오식이에게 다가갔다.
내 뒤를 따르는 린의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사뭇 긴장한 몸짓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오식이에게도 대강의 사정을 얘기했다.
대답은 곧잘 했는데, 정확히 알아들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뭐, 다른 건 그저 그렇다는 듯이 반응하더니만, 린이 도움을 주기로 했고, 도움의 방법이 키스… 입맞춤이라는 말에는 눈에 띄게 격한 반응을 보이기는 했다.
어쨌든.
가설과 예상을 확인할 시간이 왔다.
“누워!”
내 말에 오식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그에, 절로 찡긋거려지는 코끝을 손으로 문지르고는 곁에서 대기 중인 린을 쳐다봤다.
입술을 앙다물다 못 해, 안으로 살짝 말아 삼킨 린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누워 있는 오식이 곁으로 다가섰다.
이어,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근두근….
내가 키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조여 오고,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호흡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얼굴도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린이 들릴 듯 말 듯한 크기로 말했다.
“눈 좀….”
움찔한 오식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린이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더욱더 긴장되고, 숨 막히는 시간이 이어졌다.
스으윽….
멈칫….
스으윽….
쪽….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린의 입맞춤이 이루어졌다.
린의 입술이 오식이의 입술에 닿는 순간, 녀석의 팔과 다리가 쭉 펴지고, 경직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양쪽 주먹을 꽉 쥐었다.
‘씨바… 좋겠다.’
녀석이 나보다 먼저 첫 키스를 한 것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하… 대체 어떤 느낌일까? 부드럽겠지? 따뜻하기도 할 테고… 달콤하기도 하려나?’
무한한 상상과 황홀경에 잠시 빠져들었다.
‘아, 나는 언제 해 보지? 으아, 나도 해 보고 싶다아아아아!’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에 흠뻑 젖어서는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린의 목소리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주인님….”
“?!…아아, 왜?”
당황과 당혹을 감추지 못한 채 허둥댔다.
린은 그런 내게 시간을 주듯 잠시 기다렸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는 다시 물었다.
“왜 불렀어?”
“아…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요. 혹시, 실패인가요?”
린이 누워 있는 오식이를 한 번 돌아봤다.
나도 녀석을 살폈다.
경직된 팔과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딱히 어떤 반응을 보이거나 일지는 않는 듯했다.
“흠….”
실패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장식했다.
고개를 갸웃하고는 오식이의 프로필을 열어 호감도를 확인했다.
여전히 9개에 머물러 있었다.
“하아… 아니었나?”
꽃이 키스나 입술을 칭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분이 심란해졌다.
기대가 무너진 것도 지랄 같았지만, 다시금 감조차 잡히지 않는 꽃에 대해 생각하고, 파고들어야 함이 더없는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눈앞에 띄워 놓았던 프로필이 희미하게 빛을 냈다.
정확히는 호감도의 마지막 하트가 빛을 발하며 깜빡인 것이었다.
“어, 어….”
완전히 무너졌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속이 비어 있던 호감도의 하트도 빠르게 차올랐다.
‘♥’
호감도의 하트가 완전히 차오른 후, 깜빡임도 멈췄다.
“….”
“….”
나도 그렇고, 린도 뭔가를 기다리듯 침묵하며 눈치를 살폈다.
숨 막히는 고요함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안에 가득히 고인 침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꼴깍….”
그 순간!
마치, 그러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오식이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떡거려댔다.
움찔움찔!
덜컥덜컥!
바르르르르….
갑작스러운 오식이의 발작에 린이 화들짝 놀라서는 비명을 지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꺄아악!”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식이의 발작과 경련은 계속 이어졌고, 점점 더 그 강도가 심해져 갔다.
그런 오식이를 보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뭐지? 카므스… 차크무트 때랑은 뭔가 다른데?’
그랬다.
카므스가 차크무트로 진화… 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는 분명, 카므스의 온몸이 빛으로 휩싸였었다.
아니, 그 전에 카므스는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도 했었다.
경련 내지는 떨림 같은 건 그 후에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오식이가 일으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자의나 일반적이지 않은 건 비슷했지만, 이 정도로 격하거나 과한 수준은 아니었다.
‘지, 진화가 맞는 거겠지?’
진화 자체도 의심했다.
앞서 경험했던 린의 진화 과정 때와도 매치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뭔데?’
멘붕의 초기 증상에 다다르려 했다.
진심, 조금만 더 상황이 심각해졌거나 시간이 흘러갔더라면, 분명 무슨 일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기 직전, 신비한 목소리가 모든 것을 중재… 나를 안심시켰다.
[대상(오식이)의 호감도가 10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대상(오식이)이 진화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후아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타이밍을 맞춘 듯 오식이의 몸이 빛을 발하며 번쩍였다.
“성공한 건가요?”
내 곁으로 다가온 린이 물었다.
점점 빛으로 둘러싸이는 오식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답했다.
“응, 네 덕이야.”
“벼, 별것 아니었습니다.”
린이 당황하며 말하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여전히 오식이에게 시선을 꽂은 채로 피식 웃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헛기침을 한 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는 걸까요?”
“응?”
“고통 말입니다.”
린의 말에 곧장 떠오른 게 있었다.
진화 당시 죽을 것처럼 비명을 내질러대던 린의 모습이었다.
“아, 그랬었지?”
“….”
나의 되물음에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미간을 잔뜩 좁혔다.
당시의 고통을 떠올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흐음….”
사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듣고 보니 의문과 궁금증이 일었다.
“개인차가 있는 걸까?”
“글쎄요.”
“설마, 너무 둔감해서 못 느끼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딱히 영양가가 있어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오식이의 진화 과정은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대상(오식이)의 진화가 60% 이루어졌습니다.]
[대상(오식이)의 진화가 70% 이루어졌습니다.]
[대상(오식이)의 진화가….]
그러던 중….
그러니까, 이제 막 진화 과정이 90%에 달했을 때….
이제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그것을 파악한 린이 반응을 보여 왔다.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