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1)
“크으!”
재빨리 눈을 감았다.
빛의 잔상이 남아 깜빡거렸다.
컴컴한 눈꺼풀 너머에서도 몇 번 더 빛이 번쩍였다.
스르륵….
번쩍임이 멈추고, 슬며시 눈을 떴다.
천막 안이 훤했다.
빛의 근원지는 돌… 익숙한 모양새를 한 돌덩이였다.
“앗!”
린이 소리 내어 반응했다.
이미 내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빛을 발하고 있는 돌덩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맞지?”
“네.”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보자마자 그것임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한 기억.
빛을 발하며, 천막 안을 훤히 밝히고 있는 돌덩이는 분명 ‘기억의 돌’이었다.
“무, 무슨 일이세요?”
비그가 매우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이거…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들었는데, 맞아?”
“네? 아, 네….”
“어디서 난 건지는 알아?”
“네? 그건 왜요?”
비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유를 물어왔다.
사정을 설명하자면 길기에 난감함을 표했다.
그때였다.
뒤에 서 있던 오식이가 앞으로 나섰다.
뭔가 해결책이 될 것만 같았다.
“크르르….”
씨바….
일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버렸다.
오식이가 나를 스치고 앞으로 나가던 그 순간!
덜덜덜덜….
빛을 발하던 돌덩이가 혼자서 움직였다.
마치, 온몸을 떨어대듯이….
그러더니만, 이내 더욱더 강한 빛을 발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흡사, 폭발을 방불케 하는 강렬한 빛과 열기에 본능적으로 얼굴을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린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그 정도까진 조금 오버라고 여기던 그때였다.
오른쪽 어깨를 훅 잡아끄는 느낌… 강력한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며, 온몸이 쪼그라들고, 찌그러지는 기분 나쁜 경험을 맞이하게 됐다.
그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니, 내 몸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고,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이, 이게 무슨 일….’
의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 *
“으음….”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마비된 듯한 얼굴 근육을 미세하게 꿈틀대다가 눈을 번쩍 떴다.
곧바로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아앗!”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바로 곁에 린과 오식이가 쓰러져 있었다.
“린! 오식아!”
크게 소리치며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익숙한 모양새의 광경… 천막 안이었다.
빛을 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억의 돌도 눈에 들어왔다.
‘비, 비그는?’
기억의 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비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직전까지 있었던 천막… 비그의 천막과 다름을 인지했다.
그런데도 천막 안의 모습은 왠지 익숙했다.
고개가 갸웃해졌고, 의문을 표하려던 순간, 이유를 깨달았다.
“헉!”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확신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그리느브래크로 가기 전의 천막… 기억의 돌을 처음 발견한 던전의 천막 안이었음을 말이다.
“린! 일어나 봐! 오식아! 빨리 일어나!”
서둘러 린과 오식이를 깨웠다.
그냥은 일어날 기미가 없기에 마구 흔들어댔다.
“흐응….”
“크르르….”
억지로 깨운 탓에 녀석들은 비몽사몽이었다.
조급함이 더해졌고, 다시금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큰일 났어! 빨리들 정신 차려!”
내 외침에 두통을 호소하듯 한쪽 머리를 손으로 짚은 채, 미간을 좁힌 린이 물어왔다.
“주, 주인님… 왜 그러세요?”
그런 린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돌아왔어!”
“네?”
“원래 세상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단 말이야!”
내 말에 린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순간, 진한 당황과 당혹감이 훅하고 날아들었다.
분명한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에 말부터 빠르게 쏟아 냈다.
“일단, 그리느브래크로 돌아가야 해! 오식아, 빨리 일어나!”
혹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무진장 다급하게 난리를 치는데, 상대나 주변 사람들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천하태평인 상황.
마치, 내 일도 아닌데, 굳이 뭐 하러 그러냐는 듯한 무심한 반응과 그로 인해 분위기마저 어색해지는 그런 경우의 경험 말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그리느브래크로 다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차크무트를 도와 다그블들을 물리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만 오크의 역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돌아갈 테니까.
하지만, 린과 오식이는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린이 그런 것도 이상할 마당에 진짜로 심각하게 여겨야 할 오식이가 멍을 때리는 것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급함을 떠나서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이니, 점점 더 의아함만이 가득해졌다.
“야, 너희 왜 그래?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답답함에 열을 냈다.
그래도 반응은 비슷했다.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다시 말을 토해 냈다.
“이럴 시간 없다고! 다시 그리느브래크로 넘어가서 다그블을 물리쳐야 할 거 아니야? 그래야 오크의 역사를….”
“저, 저기요. 주인님….”
린이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내가 말을 멈추자 린이 말을 이었다.
“지금 주인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저는 도통 이해 못 하겠어요. 그리느… 뭐요? 다그블은 또 뭐죠?”
대애애애애앵!
누군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려 종소리가 나게 한 듯했다.
직전에 느꼈던 당혹과 당황의 기운이 좀 더 짙게 날아들기도 했다.
잠시간 멍하게 있다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 설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네? 뭐를요?”
“그, 그리느브래크… 마부투….”
“…??”
“차, 차크무트… 로, 론은? 비그, 리트, 세타니, 파스트는?”
“네에? 그, 그게 다 뭐예요?”
진심으로 ‘헐…’이었다.
린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반응했다.
당혹과 당황에 난감함이 곁들어졌다.
시선을 오식이에게로 옮겼다.
“오, 오식아. 너, 너는 알지?”
씨바… 이 자식은 한술 더 떴다.
―배… 고… 파….―
….
한참이나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린도 그렇고, 오식이도 전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동안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흐음… 저는요….”
린의 기억은 오식이가 주문을 외우고, 기억의 돌이 빛을 발했던 부분까지만이었다.
그 뒤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니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상황이란다.
어이가 없지만, 배고프다는 소리만 해대는 오식이보다는 그나마 나은지도 모르겠다.
“아우, 미쳐 버리겠네!”
이러나저러나 답답해 죽을 것 같은 건 매한가지였다.
“뭐가 됐든, 다시 넘어가긴 해야 해!”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늦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갑자기 사라진 우리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됐다면….
‘아으! 생각하기도 싫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불길하고,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오식아! 이리로 와!”
여전히 멍을 때리는 오식이를 불러 기억의 돌 앞에 세웠다.
“주문 기억하지? 문을 여는 주문 말이야!”
녀석이 뭔 소리냐는 듯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순간, 화가 욱하니 올라왔다.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는 말했다.
“오픈 더 도어! 네가 했잖아. 아니다, 그냥 따라 해! 오픈 더 도어!”
내 반응에 움찔한 오식이가 주문을 따라 했다.
―오… 픈… 더… 도… 어….―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이건 또 왜 이래? 다시 해 봐!”
다시금 오식이가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초조함과 다급함, 심각함에 미간이 좁아졌다.
그러고는 본능적인 행위… 고장이 나거나 말썽을 부리는 기기는 한 대 치면 고쳐진다는 무식하지만, 진리처럼 통용되는 짓거리를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탁! 탁!
“오픈 더 도어! 열려라, 인마!”
그것이 문제였다.
아니,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이후의 사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했던 오식이의 행동이 문제가 되었다.
―오… 픈… 더… 도… 어… 열… 려… 라… 인… 마….―
오식이가 쓸데없는 부분까지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따라 했다.
탁! 탁….
거대한 녀석의 손바닥이 기억의 돌을 두드렸… 아니, 강하게 내리쳤다.
무식한 힘을 이기지 못한 기억의 돌이 쩍! 하며 갈라졌다.
“뜨헉!”
“아앗!”
“크륵….”
셋 다 놀라서는 입을 벌리며 반응했다.
벌어진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끄, 끝이다….’
이제는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안타까움과 걱정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정작 아무 생각 없는 오식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을 방해하기라도 하듯 또 다른 끝…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경고!]
실로 오랜만에 들려온 신비한 목소리가 난데없이 경고를 알려 왔다.
그러더니 생전 처음 듣는 내용의 메시지를 나불거렸다.
[던전의 활동이 정지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던전을 탈출하세요.]
[제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 후입니다.]
“엥?”
물음표와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완전 정화’였다.
자연스럽게 반으로 갈라진 기억의 돌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하, 이게 마지막이었던 건가?’
처음 이곳에 와서 온종일 던전을 돌았었다.
나름 샅샅이 던전을 뒤졌지만, 단 한 마리의 괴물도 찾지 못했었다.
해서, 괴물도 없는데 어째서 던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 의아함을 가졌다.
그 의아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괴물이 아니라, 이런 돌덩이…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굉장한 것이 던전의 완전 정화를 위한 마지막 장치(?)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당황했겠는걸?’
참으로 쓸데없는 오지랖을 잠시 부리다가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날은 완전히 깜깜한 밤이었다.
“주인님, 저기….”
린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이미 나도 발견하여 보고 있던 차였다.
“어, 나도 보고 있었어.”
어디서나 보일 것 같은 높이의 허공에 떠 있는 것은 거대한 디지털 시계였다.
빛나는 붉은색으로 23시 53분 21초를 나타내던 디지털 시계의 초 단위 숫자가 정확한 간격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허공을 향했던 시선을 내렸다.
순간, 멀찍한 곳에서 아른거리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누군가 있다?!’
급히 몸을 숙였다.
린과 오식이도 덩달아 경계를 했다.
린이 속삭이듯 물어왔다.
“뭐죠?”
“글쎄… 일단 긴장해!”
“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불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거의 다 꺼진 모닥불이었다.
“어라?”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해야만 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피웠던 모닥불이었기 때문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진심,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그리느브래크로 넘어가 있었던 시간은 한 달 하고도 며칠이나 더 됐다.
그런데 마치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모닥불이 살아 있다니….
그러나 이내 어찌 된 일이지 상황을 파악했다.
한 달이 넘는 그리느브래크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이다.
쉽게 믿거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닥불 주변에 있던 그릇과 그 안에 남겨진 음식물… 내가 먹다 남긴 것이 분명한 그것의 상태가 흘러간 시간을 너무나 뚜렷하게 증명하고 있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허, 이럴 수가… 그동안 대체 난 뭘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