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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15화 (115/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15)

놈이 카므스와 세타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보여 줬던 순간 이동에 버금가는 속도는 아니었다.

“지금이다!”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뛰었다.

제자리에 홀로 남겨진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의 빛이 가득히 서려 있었다.

“주, 주인님….”

대꾸할 틈이 없었다.

지면을 내딛는 발가락에 힘을 주며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엘프의 활을 집어 들었다.

‘화살… 화살은 어디 있지?’

활을 챙겼으니, 화살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근처에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화살 몇 개를 회수할 수 있었다.

“후아….”

아수라 스워드의 배신….

지금 당장은 그렇게 생각됐지만, 나중에 다시 따져 보니 실상은 내가 먼저 손을 놔 버린 꼴이었던….

아무튼.

그에, 착잡했던 마음이 다소 안심으로 바뀌었다.

타닥.

뒤늦게 내 곁으로 다가온 린이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듯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속삭였다.

“깜짝 놀랐잖아요.”

“…??”

“저는 주인님이 도망치시는 줄 알았어요.”

직전에 린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던 것이 떠올랐다.

‘헐… 평소에 내가 그런 이미지였나?’

기가 막혔다.

“내가 그런 놈으로….”

서운함을 뱉어 내려던 그 순간,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어 말을 멈췄다.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 카므스가 놈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선전을 펼치고 있었다.

‘뭐, 뭐야? 어, 어떻게….’

직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확실한 격차를 보이던 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만한 격차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물며, 아수라 스워드… 무기까지 든 놈을 상대로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놀라운 일의 영문을 찾았다.

이내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담배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담배를 피웠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일을 행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럼 뭐지? 아!’

또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놈에게 처맞고 나가떨어진 후에 봤던… 제정신이 아니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저게 뭔가?’ 하며 굉장히 의아해했던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내 생각을 털어 냈다.

‘아니야… 그딴 걸로 어떻게… 그릴 리가 없어!’

절대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럼, 대체 뭘까?’

계속된 영문 찾기에 애를 썼다.

마땅한 답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크르르!”

“크아아앙!”

내가 잠시 딴 것에 정신을 파는 사이에도 놈과 카므스의 치열한 공방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더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여겼던 승부의 추가 조금씩 놈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맨손보다는 무기를 든 놈이 유리할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앗!”

린이 안타까운 탄성을 뱉어 냈다.

놈이 옆으로 틀었던 몸을 반대로 회전시키며 아수라 스워드를 크게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원을 그린 아수라 스워드가 직전의 공격을 피한 뒤에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카므스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카므스의 입에서 진득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윽!”

카므스는 아수라 스워드가 훑고 지나간 옆구리를 손으로 감싼 채 뒤로 물러났다.

뒷걸음질 치는 녀석의 다리가 비틀거렸다.

“크크크!”

놈이 지랄 맞은 웃음을 흘렸다.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는 의미가 가득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고, 어느 누가 봐도 그랬을 상황이었다.

“카므스!”

나와 린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타니가 크게 카므스의 이름을 부르며 끼어들었다.

“카므스, 괜찮아?”

세타니는 무시무시한 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상처 입은 카므스만을 걱정했다.

그런 세타니를 걱정해야 하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또 너냐? 조그만 것이 성가시구나!”

놈이 아수라 스워드를 치켜들었다.

앞서 뱉어 낸 말도 그렇고, 놈의 검 끝이 세타니를 향할 거라는 건 명백했다.

‘아, 안 돼….’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새도 없이 화살을 장전했다.

급한 마음에 제대로 된 조준도 없이 화살을 날렸다.

티잉!

쐐애액….

“죽어라….”

놈이 치켜든 아수라 스워드를 내리쳤다.

티이잉!

간발의 차이로 내가 쏜 화살이 놈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적처럼… 정확히 세타니를 향하던 아수라 스워드의 궤적이 틀어졌다.

콰악!

아수라 스워드의 검 끝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려던 순간, 세타니가 한 쪽 팔을 감싼 채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악!”

다행과 불행이 한 끗 차이로 교차하며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크륵!”

놈이 나를 힐끔 노려보고는 다시 아수라 스워드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나도 화살을 장전했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막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이잇!”

린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어떻게든 끔찍한 사태를 막으려는 의도일 터였다.

‘이미 늦었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린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스윽….

놈이 전과 다르게 팔과 어깨를 뒤로 뺐다.

베거나 내리치는 게 아니라 찌르겠다는 의미였다.

“젠장….”

쓴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직 놈과의 거리를 반도 좁히지 못한 상태였다.

도저히 우리로서는 막아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히죽….

놈이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고는 뒤로 당겼던 어깨를 힘주어 앞으로 뻗었다.

“하읏!”

린이 신음을 토해 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끔찍함으로 예상된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 역시, 허탈하게 걸음을 멈추고는 눈을 감았고, 아랫입술마저 질끈 깨물었다.

푸슉!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뭐, 예상된 결과에 환청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세타니의 처절한 비명은 진짜였고, 현실이었다.

“꺄아아아악!”

감고 있던 눈을 한 번 더 질끈 감았다.

세타니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 카므스으으으으!”

고통의 상황에서 카므스를 찾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너무나 큰 충격과 고통, 아픔에 아이가 엄마를 부르짖는 것처럼 그저 곁에 있던 카므스를 부른 것이리라 여겼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타니의 음성이 의문을 자아냈다.

“안 돼! 카므스, 정신 차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감았던 눈을 뜬 뒤.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해야만 했다.

‘엥?’

예상과 다르게 세타니는 멀쩡했다.

정확히는 눈을 감기 전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대신에 옆구리를 베이고 나서 바닥에 주저앉았던 카므스의 자세와 위치가 좀 바뀐 듯했다.

“크륵….”

놈이 이를 갈고 있었다.

이제 막 거둬들인 듯한 아수라 스워드의 날 끝자락에는 진득한 피가 잔뜩 묻어나 있었다.

‘찔리긴 찔린 듯한데… 설마….’

눈을 감은 탓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직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설마를 동반한 가설이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직전까지는 세타니에게 반 이상 가려지고, 정신없는 와중이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보이는 카므스의 가슴께 상처가 가설을 사실이라 말해 주는 듯했다.

다시금 이어진 놈의 말이 조금 더 가설의 사실화를 뒷받침해 줬다.

“어차피 끝날 목숨인데 나서기는….”

그랬다.

놈이 세타니를 찌르기 직전, 카므스가 몸을 날려 막아선 것이다.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친구 사이인 둘의 우정과 애틋함이 얼만큼인지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기도 했다.

이어질 상황이 내가 예상과 같다면 분명히 그랬다.

“크크크! 그렇다면, 이번엔 둘 다 보내 주마!”

역시나….

지랄 같은 예상은 늘 빗나가는 법이 없다.

스으윽….

놈이 아수라 스워드를 거꾸로 잡은 채 양손을 치켜들었다.

직전보다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여전히 막거나 제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앗….”

린도 아는지 이번엔 달려들기를 포기한 채, 양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서 안타까움만을 흘려 냈다.

“크크크!”

놈이 비열하고, 지랄 맞게 웃었다.

그때….

울음 섞인 세타니의 애절한 음성과 정말이지 생뚱맞은 광경이 이어졌다.

“카므스, 미안해… 안녕….”

더는 피할 길이 없고, 막아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세타니의 마지막 인사였다.

거기까지는 좋았… 아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안녕이란 말을 끝으로 보인 세타니의 다음 행동은 나를 포함한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다.

쪽….

뽀뽀… 아니, 키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긴 입맞춤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것들이 또….’

이전에도 똑같은 광경을 봤었다.

맞다.

놈에게 처맞고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봤던 세타니와 카므스의 모습.

‘저게 뭐지?’ 하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던 그때도 분명 둘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고 본다면, 두 번 다 카므스는 죄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첫 번째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피 떡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오롯이 세타니가 자진하고, 멋대로 입을 맞춘 게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것들이 또…’가 아니라 ‘저 어린 것이 또!’라고 말을 바꿔야 할 터였다.

어쨌든.

어린 세타니의 깜찍 발랄함을 넘어선 발랑 까진 짓거리에 심각했던 분위기가 잠시 붕 뜬 느낌이었다.

그 여파는 더욱더 지랄 맞고, 강렬하며, 안 좋은 쪽의 결과로 돌아왔다.

칼자루를 손에 쥔 채, 둘의 목숨을 노리던 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런 웃기지도 않는 것들이 다 있어?”

치켜들었던 놈의 손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내리찍는 힘을 더하겠다는 의미였다.

불끄은!

놈의 팔뚝 근육이 크게 부풀며 꿈틀거리다 못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진심으로 빡쳤음이 제대로 전해졌다.

“에잇!”

기합과 함께 아수라 스워드의 날카로운 검 끝이 세타니의 등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이번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을 타이밍마저 놓치고 말았다.

해서, 모든 상황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번쩍!

아수라 스워드의 검 끝이 막 세타니의 자그마한 등에 찍히려는 순간, 난데없이 강렬한 번쩍임이 일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티이잉….

이내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아수라 스워드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헛….”

놈이 놀란 표정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 사이, 번쩍임은 더욱더 강렬한 빛으로 물들며, 세타니와 카므스를 감싸 버렸다.

“크읏….”

점점 더 강렬해지는 빛에 더는 똑바로 주시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기 직전에 본 번쩍임 속의 모습이 하얀 잔상으로 남아 시커먼 눈꺼풀 위에 그려졌다.

‘뭐지?’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형태의 어떤 것이었다.

당장에 그것이 뭔지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이내 꺼지듯 자취를 감추는 탓에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질 위기에 처했다.

휙휙!

본능적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사라지려던 잔상이 다시금 그려졌다.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추리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

드디어 알아냈다.

그것은 어떤 이의 실루엣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엎드린 자세로 세타니의 작은 몸을 완전히 감싸고 끌어안은 모습.

남자인지 여자인지까지는 정확지 않았다.

아니, 내가 떠올린 실루엣이나 자세 등이 맞는 것인지도 확실치는 않았다.

“크으으읏!”

놈의 이를 악문 듯한 신음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는 살며시 눈을 떴다.

“….”

오늘, 몇 번이나 놀라고, 경악하며, 믿을 수 없다고 여겼던 모든 상황과 광경들을 모조리 넘어서는 최고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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