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14)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 싶은 짓을 하는 세타니를 보며 의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것 같아….’
정신이 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분명, 현실인 것 같은데, 어째 또 꿈은 아닌지… 헷갈리고, 이상하고, 의아했다.
그러던 중.
왼쪽 볼과 광대, 눈 주위가 땡땡해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손을 댔다.
‘응? 어라? 이거 왜 이래?’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음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이리저리 만져 보는데, 마치 다른 어떤 것을 덧대어 놓은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지면서 전혀 내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더듬더듬….
계속해서 손으로 만져댔다.
뒤늦은 통증이 날아들었다.
“아야….”
처음엔 그저 따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불과 몇 초 뒤에는 손을 댈 수조차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얼라리? 이건 또 왜 이래?’
그 정도가 끝인 줄 알았던 붓기마저도 더 심해졌다.
빠르게 진행되던 통증에 버금갈 정도였다.
순식간에 부푼 볼과 눈두덩이… 결국엔 왼쪽 시야가 가려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욱신거리는 통증도 지랄 같고, 그저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심각성을 알만한 얼굴의 상태가 심히 걱정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저 새끼한테 맞은 게 분명해!’
직전까지 전혀 할 수 없었던… 그래서 뭐를 봐도 현실인지 꿈인지 파악도 못 하고, 그냥 이상하다, 헷갈린다, 쟤들은 왜 그럴까? 등으로 치부하던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린!’
빠르게 정신이 돌아오면서 린이 위험하다는 걸 알아챘다.
나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것이 다른 곳은 멀쩡한 듯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 가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아수라 스워드와 엘프의 활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 게다가 린과 놈이 맞붙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가는 방향에 아수라 스워드가 떨어져 있었다.
엘프의 활은 저만치 더 떨어져 있었다.
저벅저벅….
똑바로 걸어갔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팔을 아래로 뻗으며 땅에 떨어진 아수라 스워드를 집어 들었다.
꽈아악!
손아귀에 힘을 가득히 줬다.
걷는 속도를 조금씩 빨리했다.
어느새 뛰고 있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기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박력 있는 외침을 토해 냈다.
“비켜!”
린에게 하는 소리였다.
린이 알아듣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놈을 향해 미친 듯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휘익! 휙! 부웅! 붕! 붕!
말 그대로 미친 듯한 공격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어설픔이 가득한 움직임이었다.
형이나 격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냥 마구잡이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움직임과 아수라 스워드의 궤적이 난잡하고, 복잡하다 할 수도 있었다.
“으아아! 죽어! 뒈지라고! 이 씨벌 새끼야아아아!”
당연히 살기와 분노도 가득히 담겨 있었다.
진심, 스치기만 해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조금도 스치지 못 하고 있다는 것뿐.
“이 새꺄! 왜 자꾸 피해? 좀 맞아! 맞으라고! 이런, 썅!”
계속해서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러댔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는 심산에 독기까지 가득히 품은 채였다.
“크으!”
처음엔 제법 여유롭게 피하며 얄미움을 자아내던 놈이 결국엔 입에서 쓴소리를 흘려 내며 크게 뒤로 물러났다.
바로 따라붙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러야 했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듯했다.
하지만, 내 몸뚱이가 그것을 거부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놈보다 떨어지는 하드웨어에 앞을 생각지 않고 무리까지 했다.
나름의 부상도 있고, 오랜 시간 놀고먹은 통에 컨디션 또한 최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 변명은 됐고!
그냥 지금은 X나게 힘들었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놈을 노려봤다.
나보다는 훨씬 더 여유로운 상태로 놈도 나를 쳐다봤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뒤로 물러났던 린이 곁으로 다가오며 걱정스레 물었다.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위아래가 아닌 옆으로 고개를 저을 뻔했었다.
속으로는 ‘보면 모르니?’라며 되묻기도 했다.
그만큼 내 상태는 메롱 그 자체였다.
뚜둑! 뚝! 뚝….
놈이 목과 손목 등을 꺾으며 뼈 소리를 냈다.
뭔가 본격적으로 해 보자는 의미처럼 보였다.
“꼴깍….”
나도 모르게 한 움큼의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린도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긴장감으로 가득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석양과 어디선가 불어온 한줄기의 바람이 더욱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옥을 맛볼 준비는 되었나?”
놈이 나직하게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아니라고 답하기에도 지랄 같은 물음이었다.
쓸데없이 고민하다가 미간을 깊게 조이며,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꼬나쥐었다.
그러고는 린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내가 위, 넌 아래!”
내 의도를 파악한 린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린과 내가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움직였다.
파앗!
팟!
허공으로 날며 포물선을 그리는 나보다 직선으로 달려드는 린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촤아아아아!
린의 빗자루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바닥을 훑었다.
목표는 놈의 발목 내지는 종아리쯤.
파앗!
놈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점프했다.
아슬아슬할 틈도 없이 린의 바닥 쓸기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지만, 우리에겐 후속타가 남아 있었다.
“이야아압!”
힘차고 긴 기합 소리를 토해 내며, 등 뒤까지 젖혔던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내리쳤다.
“크륵!”
공중에 뜬 상태라 움직임의 제약이 있던 놈이 어쩔 수 없이 양팔을 교차해 자신의 정수리로 향하는 나의 아수라 스워드를 막아냈다.
콰아아악!
묵직한 손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강하게 내려찍은 아수라 스워드가 놈의 팔뚝에 박혔다.
놈에게 상처를 입힌 것까지는 좋았지만, 곧바로 역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꽈득!
놈이 오른쪽 주먹을 힘껏 쥐는 게 눈에 들어왔다.
또한, 그것이 곧 나에게 날아들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피해야 했다.
하지만, 놈의 팔뚝에 박힌 아수라 스워드가 빠지지 않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런….’
당황스러웠다.
유일한 회피 방법은 아수라 스워드의 손잡이를 놓고서 뒤로 빠지는 것.
그러나 내키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무기가 아수라 스워드뿐인데, 그것을 스스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놈의 주먹을 그냥 처맞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지?’
선택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엔 아수라 스워드를 포기하기로 했다.
스륵….
타앗!
검의 손잡이를 놓자마자 지면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부우우웅!
진심으로 아슬아슬하게 놈의 거대한 주먹이 내 코끝을 비켜 지나갔다.
0.1초만 늦었어도 다시금 저만치 나가떨어져 정신을 놓았을 게 분명했다.
‘다, 다행이다.’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콰악!
놈이 제 팔뚝에 박힌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냈다.
순간, 내가 저딴 것을 들고서 놈에게 덤벼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었을 때는 알맞은 길이와 크기지만, 상대적으로 큰 놈이 들고 있으니 볼품없이 가늘고 작아 보인 까닭이었다.
뽑아낸 아수라 스워드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딴 장난감으로 뭘 하겠다고….”
무시와 가소로움을 표하며 말을 뱉어 낸 놈이 아수라 스워드의 손잡이와 검 날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힘을 주어 부러뜨리려는 액션을 취했다.
“아, 안 돼!”
당황해서 손까지 뻗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피이이잉!
아수라 스워드가 제법 강렬한 빛을 발했다.
“앗!”
앞으로 뻗었던 손으로 급히 눈을 가렸다.
동시에 굉장히 불안하고, 불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간 이어지던 빛이 사라지고 나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놈의 덩치에 어울릴 만큼 길어지고, 커져 버린 아수라 스워드였다.
‘뭐야? 성별에 따라 변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어?’
분명, 감정 머신을 통해 확인한 아수라 스워드의 특징과 변화는 ‘성별’에 따른 것뿐이었다.
그런데 사용자의 체형에도 걸맞게 변화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껏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일듯했다.
너무나 쿨하게 인정하고, 그렇구나 하며 넘겼다.
지금은 그딴 것보다 더 중요한… 나는 무기를 잃었고, 상대는 저에게 걸맞은 무기를 얻었기에 앞으로 벌어질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가야 할지가 더 문제였고, 관건이었다.
“신기한 물건이로구나. 전리품으로 잘 받아 두겠다. 아, 물론 네놈들의 목숨도 이것으로 끝장을 내주마!”
놈이 히죽거리며 아수라 스워드를 능숙하게 휘둘렀다.
내 손에 들려 있을 때도 제법 든든하기는 했는데, 어째 놈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훨씬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 지랄도… 이런 거로 배신감을 느끼면 내가 이상한 건가?’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시며, 린을 쳐다봤다.
린 역시, 매우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린의 어깨너머 광경을 보게 됐다.
“…??”
당황을 넘어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였다.
내 반응에 린이 의아해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똑같은 광경을 목격한 린이 이내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에에?”
우리의 반응을 본 놈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
고개를 살짝 갸웃한 놈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움찔… 생각보다 훨씬 크게 움찔했다.
나나 린이 그랬듯이 어느 정도 수준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큰 반응을 보인 것은 조금 의외였다.
어쨌든.
놈과 우리의 시선이 한데 모인 곳에는 세타니가 있었다.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서 양손을 모아 가슴께에 대고 있는… 해서, 마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한 채였다.
그 곁에는 카므스가 있었다.
의문은….
카므스 녀석이 너무나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놈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카므스는 완전 피 떡이 되었다.
막말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양반다리를 하고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은 그대로인 채 말이다.
뭐,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에 다행이라 안심되고, 기쁘기는 했다.
하지만, 녀석의 하는 짓이 좀… 아니, 꽤 많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지금 되지도 않는 자세와 분위기를 연출하며 담배를 떡하니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노므 자슥이!’
실제로는 30년쯤 산 카므스였다.
확실한 나이를 모르긴 하지만, 27년을 산 내가 어리니 뭐니 할 상황은 아니었다.
뭐, 액면으로만 따지고 봤을 때는 무조건 나보다 형이었다.
그러나 이곳 그리느브래크에서는 그 절반의 나이로 봐야 했다.
그렇다면 끽해야 15세쯤이다.
그런 새파랗게 어리고,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지금 어른들 앞에서 대놓고 담배질이라니….
정말이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카므스의 버릇없는 담배질에 기가 막힌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크르르….”
놈이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짙게 으르렁거렸다.
순간, 어린놈의 막돼먹은 행동에 격한 꾸짖음과 적절한 철퇴를 가할 권한을 놈에게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놈이 내 속내를 읽은 듯이 자청하여 카므스의 훈계에 나섰다.
“이런… 교활한 노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