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04)
쿵! 쿵! 쿵….
뛰어가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그러나 요란한 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뭐 하자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린이 재빨리 따라나섰다.
그렇게 문 쪽에 막 다다랐을 때.
쿵! 쿵… 허우적….
거대한 녹색의 몸뚱이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추락했다.
그것도 아주 장렬하게….
철푸덕!
“앗! 오식 씨….”
린이 제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놀랐다.
그런 린을 향해 작게 읊조렸다.
“오식이가 아니야.”
당장에 나를 보며 물음표를 발산하는 린을 두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놈(?)을 향해서였다.
벌떡!
내가 서너 걸음쯤 옮겼을 때, 놈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도망쳤다.
쿵! 쿵! 쿵….
역시나 요란하고, 느렸다.
조금만 빠르게 움직여도 곧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와 속도였다.
하지만 걸음을 멈췄다.
이제 막 어둑해진 배경 너머로 진짜 오식이와 작은 놈… 리트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 카므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거야?”
리트의 입에서 느림보 덩치의 이름이 고스란히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
돌아온 오식이와 마주 앉았다.
린은 조금 떨어진 곳에 다소곳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냄새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지는 맛이 생각나는 로믄 차를 말이다.
‘도대체 저건 얼마나 남은 거야? 쩝!’
보여 줄 땐 분명히 한주먹 정도였는데, 그동안 마신 양을 보면 그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처음부터 더 많은 양이 있었든지 아니면 어디서 몰래 재배라도 하는 모양이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눈을 지그시 한 번 감았다가 뜨면서 린이 청소를 하는 동안 정리했던 생각과 질문들을 상기했다.
그러고는 마주 앉은 오식이를 향해 하나씩 물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마부투다.”
“아니, 그것 말고… 이 세계를 말하는 거야. 던전이라든가….”
일단 이곳이 지구는 아닐 터였다.
던전으로 들어와 이상한 돌덩이에 의해 하얀 공간으로 들어섰고, 게이트를 넘었다.
해서, 던전 속의 던전쯤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이곳은 던전이 아니다.”
“그럼 어디지?”
“내가 살던 세상. 오크의 나라, 그리느브래크다.”
“그리느브래크? 오크의 나라라고?”
“그렇다.”
린을 힐끔 쳐다봤다.
린이 얌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가 살던 세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던전… 너와 내가 처음 만났던 곳이나 그 너머가 여기였던 거야?”
“아니다.”
“그럼, 너는 어째서 그곳에 있었지? 나랑 만났던 던전 말이야.”
“모르겠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그곳이었다.”
“음….”
예전에 이와 비슷한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친구 냥이와 말이다.
냥이는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을 아처 캣 종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두 꿰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과거사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 그런 건가?’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괴물들이 원래 살던 세상과 던전, 지구… 아니지? 지구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원래 살던 세상이니까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될 거야.’
지구처럼 괴물들이 사는 어떤 미지의 세상이 있다.
이유나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떠한 상황에 의해 괴물들은 던전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와 함께 기억은 지워지고, 해당 던전에 맞게 적응(?)하며, 각성자들과 싸우게 된다.
가설이지만 제법 그럴듯했다.
계속해서 내 가설을 증명할만한 이유를 찾았다.
‘그렇다면 린은?’
린은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해서, 내가 세운 가설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아니지? 린은 혼자 넘어온 게 아니잖아?’
그랬다.
린은 혼자가 아니라 전체… 아예, 저주받은 저택 전체가 던전으로 넘어온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기억이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던전의 어떤 작용으로 저택 전체가 변한 것이라면, 내가 세운 가설과도 얼추 어울리게 된다.
계속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설에 걸맞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인간은? 지구의 인간은 왜 다르지?’
제가 살던 세상에서 던전으로 넘어온 모든 종족은 지구의 인간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괴물들이 왜 인간을 적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던전과 게이트라는 것을 만들어 낸 누군가가 있다면 ‘그’만이 알 터.
하지만, 그런 괴물들의 상대가 인간인 것은 나름으로 이해(?)가 간다.
아니, 정말로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인간… 지구에 사는 인간은 자신들을 적으로 대하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며, 레벨을 올리고, 부를 축적한다.
처음이야 인류의 멸망까지 생각하며 심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오래전부터 타고난 지적 능력과 발전된 기술로 그러한 것들을 유희나 놀이로 삼고 즐겼기에 커다란 거부감도 없고, 적응도 빨랐던 것.
‘누군지 몰라도 굉장한 놈이로군.’
이제는 내 가설이 모두 옳다고 여기며, 누군지도 모를 이의 작품(?)과 비상함에 찬사를 보냈다.
….
깊고, 오래된 생각을 마치고는 다시 오식이에게 물었다.
“돌덩이랑 네 발바닥에 새겨진 문양 말인데… 대체 그건 뭐야?”
문양의 정체가 궁금했다.
당연했다.
생뚱맞음… 지극히 희박해 보이는 확률로 똑같은 문양을 발견한 것도 웃긴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번 일… 던전도 아닌 오크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으로 넘어오게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니, 뭐라도 알아내야만 했다.
“전사의 상징이다. 란타라고 읽는다.”
“전사의 상징? 란타? 그것도 오크 족의 고대 언어야?”
“그렇다.”
“뜻은?”
“용맹.”
고개가 갸웃해졌다.
멋진 단어지만, 그 뜻과 상황이 전혀 연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좀 더 이어진 녀석의 설명은 더욱더 골 때리는 것이었다.
“전사의 상징은 전사에게만, 그것도 가문의 순수 혈통에게만 주어진다.”
가문이니, 순수 혈통이니 하는 소리에 떠오른 단어는 귀족과 왕족이었다.
내가 생각하고서도 어이가 없었기에 따지듯이 물었다.
“에? 뭐야? 가문이 어째? 그럼, 네가 무슨 귀족이나 왕족이라도 된다는 소리야?”
“그렇다. 나는 위대한 오크 족을 이끄는 란타 가문의 127대 순수 혈통이다.”
대애애앵….
강대한 충격에 잠시 멍해졌다.
당장에 거짓말이라며, 어디서 약을 파느냐, 지금 누구에게 뻥을 치느냐는 등의 말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녀석의 표정과 말투는 너무나 진지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기운이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녀석이….’
정말이지 말도 안 되고, 이해도 할 수 없으며, 믿기는 더더욱 어려운 얘기였다.
하지만, 정신을 좀 차린 이후에 이어진 물음과 답변, 대화를 통해 그것은 더욱더 진실로 믿어야 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
묻고 싶은 것도, 물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러나 너무 큰 충격에 빠져 반 이상은 잊어 버렸다.
해서, 다음을 기약하며 쉬기로 했다.
‘하아… 녀석이 귀족이라니….’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53세라고? 하아아….’
속으로 뱉어 낸 깊은 한숨이 몇 번이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는지 모르겠다.
* * *
다음 날.
오식이는 아침 일찍부터 파스트에게 갔다.
녀석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기가 수북하게 쌓인 쟁반을 들고서 비그가 찾아왔다.
론과 리트도 함께였다.
“우걱우걱… 아우, 마시써… 쩝쩝!”
“비그! 천천히 좀 먹어! 손님들께 실례잖아!”
어제처럼 폭풍 먹방을 해대는 비그를 향해 리트가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그는 멈추지 않았다.
함께 있던 론은 우리… 아니, 린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나름 익숙해서 괜찮아요.”
“그, 그래도 죄송합니다.”
….
정신없는 아침 식사를 겨우 끝낸 후.
린이 내게 청했다.
“주인님.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응? 어디 가는데?”
“마을 구경이요. 론 씨가 마을도 구경시켜 주고, 다른 분들과 인사도 시켜 주신다고 해서요.”
그제야 문 앞에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놈… 아니, 그런 녀석을 보자마자 잡히는 감이 있었다.
‘어쭈?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만?’
흑심으로 가득한 남자의 냄새가 확 느껴졌다.
“그래, 다녀와. 항시,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네?”
“아, 그냥 조심하라고.”
“네….”
느낀 바를 그대로 전할 수 없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수라 스워드를 빌려줄까도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또 오버 같아서 그냥 참았다.
‘뭐, 린에게는 무적의 빗자루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
오식이도 없고, 린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그리 나쁘지 않았다.
딱히 할 건 없었다.
그저 마을 회관의 계단에 앉아 느긋하게 멍을 때렸다.
여전히 나를 힐끔거리는 눈들이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확실히 덜해져 있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어젯밤, 충격으로 인해 잠을 설친 게 이유였으리라.
‘…??’
얼마나 잤을까?
미세한 기척에 살짝 잠이 깼다.
“히히….”
어렴풋한 느낌의 웃음소리에 조금 더 정신이 들었다.
눈은 그대로 감은 채였다.
간질간질….
확실히 느껴지는 간지러움.
누군가 내 코와 입술을 무언가로 간질이고 있었다.
‘누구지?’
오식이나 린은 아닐 터였다.
‘그럼, 다른 녀석들인가?’
론과 비그, 리트도 떠올려봤다.
당장에 녀석들의 얼굴 위로 ‘X’자가 그려졌다.
‘그럼 누구지?’
궁금함에 살며시 샛눈을 떴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의 빨간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옳거니, 너였구나?’
바로 생각나는 얼굴도 있었다.
세타니….
어제, 파스트의 집에서 본 여자아이 오크였다.
번쩍!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손을 뻗었다.
장난기가 확실하게 깃든 외침과 함께였다.
“요놈!”
갑작스러운 내 외침과 행동에 깜짝 놀란 세타니가 자지러지는 비명… 아니, 웃음을 토해 냈다.
“꺄악… 꺄르르르….”
손끝에 제대로 걸린 세타니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세타니가 더욱더 자지러지며 웃음소리를 높여댔다.
‘역시, 아이들은… 헛!’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영혼을 맑게 해 준다는 느낌을 막 받으려던 순간이었다.
그러다 완전히 돌아온 정신에 세타니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래도 어린아이인데… 그런 아이를 보고 할 말이나, 반응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놀라 버렸다.
하마터면 쌍욕을 입 밖으로 쏟아 낼 정도로 말이다.
아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오크이기도 했다.
2년여 동안, 오식이를 곁에 두고서 매일 같이 보기에 나름으로 적응이 됐다고 여겼건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자아이 오크를 이토록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아니, 여자 오크 자체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멀찌감치 서 있는 여자 오크들을 보긴 했지만… 아무튼, 그것들과는 달랐다.
진짜로 심각했고, 심각했으며, 심각했다.
차라리 오식이와 마주하고 있는 게 몇 배나 나을 정도였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과연 이런 얼굴로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진짜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등의 잡스러운 생각도 절로 떠올랐다.
결론은 끔찍할 정도로 최악이었단 소리.
이건 뭐 답이 안 나올 정도였고, 그냥 쇼킹했다고 밖에 표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