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02)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오식이의 본명을 뒤로하고, 그제야 놈들을 살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지쳐 있는 상태라 디테일한 파악은 어려웠지만, 딱 떨어지는 특징만은 똑똑히 잡아낼 수 있었다.
‘키 큰 놈, 작은 놈, 뚱뚱한 놈….’
키 큰 놈은 확실히 컸다.
중간 키인 뚱뚱한 놈과 비교해도 머리 하나쯤은 컸고, 작은 놈과는 거의 50센티미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그런 의미로 작은 놈은 셋 중에서 제일 작았고, 뚱뚱한 놈은 타고난 덩치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이 특징인 오크지만, 배가 불룩 나오고 뚱뚱했다.
키 큰 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미르다스? 우리 마을에 그런 녀석이 있었나?”
“난 처음 듣는데?”
“나도!”
놈들이 세트처럼 줄줄이 말을 이어갔다.
오식이가 바로 나섰다.
“나는 발칸 출신이고, 여행 중이다.”
“아, 발칸!”
오식이의 대답에 작은 놈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뚱뚱한 놈은 고개를 갸웃했다.
“발칸? 그게 어디지?”
“왜 있잖아, 거기… 서쪽 바다를 건너면 있다는….”
키 큰 놈의 설명에도 뚱뚱한 놈의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도 물음표가 그려졌다.
‘발칸?’
뭐, 듣자마자 그곳이 오크의 마을… 오식이가 살던 곳이라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녀석의 어울리지 않는 이름처럼 처음 듣는 것이기에 의문과 궁금증이 생겼다.
또한, 발칸이란 곳이 오식이를 처음 만났던 던전과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인지 등의 의문도 이어졌다.
‘이건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지금 당장에는 물을 수 없으니, 얌전히 눈치만 살피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것들은 뭐야?”
키 큰 놈이 나와 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순간, 오식이의 대답이 궁금해졌고, 이내 걱정이 되었다.
‘동료라고 할까? 아니면, 적? 음… 포로라고 하는 게 그나마 나으려나?’
몇 가지 예상되는 답변이 떠올랐다.
어떤 답을 내놔도 결과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식이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대답…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당장에 급한 불을 잠재울 수 있을 법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건 나중에 묻고, 이것부터 좀 풀어라!”
나도 그랬지만, 놈들도 예상치 못했던 답이었는지 잠시 주춤하는 모양새가 그려졌다.
그에, 오식이가 재촉하듯 다시 말했다.
“꽤 오래도록 이 상태로 있었다. 그러니 일단 풀어라!”
오식이의 재촉에도 놈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했다.
그러자 오식이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좀 움직여라! 몸뚱이가 쪼그라들 것 같단 말이다!”
그제야 놈들이 결정을 내리고 반응했다.
“비그, 줄을 끊어.”
키 큰 놈의 말에 뚱뚱한 놈이 뒤뚱거리며 움직였다.
그물 덫을 고정하고 있는 100년쯤 된 나무 뒤로 간 뚱뚱한 놈이 소리쳤다.
“정말 자른다.”
“어! 잘라!”
휘익… 쿠웅!
휘익… 쿠웅!
요란한 도끼질 소리가 이어졌다.
흔들흔들….
꼼짝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물 덫이 크게 흔들렸다.
세 번째 도끼질 소리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읏!”
“꺄약!”
쿠우우웅!
“아으으으….”
“하으응….”
나와 린이 비명에 이은 신음을 동시에 흘려댔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약 1시간여 만에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
‘흠….’
그물 덫에서 풀려났다고는 해도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돌아갈지 모르는 일에 얌전히 눈치를 살폈다.
린도 나랑 같은 생각인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반면, 오식이는 좀 달랐다.
무척이나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놈들을 나무라는 뉘앙스도 서슴지 않았다.
“거 참, 살살 좀 하지….”
툭툭… 슥슥… 툭….
묻어도 티 안 나는 흙과 풀 등을 털어 내며 거드름을 한껏 피워댔다.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 주려는 것처럼 여겨졌다.
빠르게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오랜 시간의 압박 때문에 저릿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딱히 다친 곳은 없었다.
힐끔….
곁눈질로 린을 쳐다봤다.
린도 괜찮은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스으윽….
오식이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와 린도 타이밍을 맞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스윽….
놈들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그제야 알았다.
놈들과 비교해 오식이가 월등히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놈들이 작다는 말은 아니었다.
셋 중에 가장 작은 놈도 나보다는 훨씬 커 보였으니까.
“와, 크다.”
뚱뚱한 놈이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다른 놈들도 비슷한 표정을 한 채, 오식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향해 오식이가 물었다.
“여긴 어디냐?”
“마, 마부투….”
작은 놈이 홀린 듯이 대답했다.
그에, 오식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마부투라… 그럼, 지금이 언제인가?”
녀석의 물음에 내가 먼저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뱉어 낸 문장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놈들의 반응이 죄다 물음표였다.
이를 눈치챈 오식이가 잠시 틈을 주고는 질문을 바꿨다.
“너희가 섬기는 위대하신 오크의 왕은 누구인가?”
말투 전반에 꽤 위엄과 당당함 등이 섞여 있었다.
뭐랄까?
각이 잡혀 있는 느낌이랄까?
그에 반응하는 놈들의 표정이나 몸짓, 대답을 하는 키 큰 놈의 말투마저도 오식이와 비슷해졌다.
“카, 카투마스님이십니다.”
놈의 대답에 오식이가 낮게 혼잣말을 흘렸다.
“역시….”
녀석의 반응에 궁금증이 확 일었다.
그러나 아직 나설 때가 아닌 것을 알기에 이번에도 참았다.
오식이가 놈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너희 마을로 가자!”
어찌 들으면 당당하고, 또 어찌 들으면 뻔뻔한 듯한 말에 놈들이 움찔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오식이가 낮게 으르렁거리다가 난데없이 주먹을 들어 키 큰 놈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다.
쿵!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몸을 움츠러뜨렸다.
묵직한 소리만큼이나 아픔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보고 있는 나도 그런데, 당한 놈은 어쨌을까?
“으악!”
진심 어린 비명과 함께 키 큰 놈이 한껏 자세를 낮췄다.
이어, 제 머리통을 미친 듯이 비벼댔다.
다시금 놈의 고통과 아픔이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두 놈은 완전히 얼어버린 듯했다.
기선 제압이 제대로 먹혀든 듯했다.
오식이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더 혼나고 싶지 않으면, 얼른 앞장서라!”
오식이의 으름장에 놈들이 한 몸인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더니 곧장 우리를 마을로 친절(?)하게 안내했다.
….
“괜찮을까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놈들을 뒤따르는 와중에 린이 내게 목소리를 낮춰 물어왔다.
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은 애초에 내가 원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도망을 쳐도 모자랄 판에 놈들의 본거지로 가고 있다니… 쩝!’
사로잡혀서 끌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제 발로 가는 것도 찜찜하고,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야, 린이 괜찮냐고 묻잖아.”
앞서가는 오식이에게 질문을 토스했다.
뒤를 돌아본 녀석이 걸음을 늦췄다.
나란히 걷게 된 후, 녀석이 입을 열었다.
“별일 없을 거다.”
“정말요?”
“그렇다.”
린의 질문에 오식이가 빠르고, 담담하게 답했다.
받아치듯 바로 물었다.
“그건 어디서 오는 자신감이냐?”
“가 보면 안다.”
녀석의 막힘없는…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대답에 나와 린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
숲을 벗어난 뒤, 곧장 나타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었다.
언덕 아래쪽에 마을 하나가 보였다.
“저기 보이는 게 저희 마을인 마부투입니다.”
작은 놈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생각보다 작군.’
멀리서 본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통나무로 지어진 서너 채의 건물과 십여 개의 천막이 전부였다.
딱 봐도 소박함이 물씬 풍겨왔다.
“마부투… 무슨 뜻이 있는 건가요?”
린이 오식이를 보며 물었다.
녀석이 생각도 하지 않고 답했다.
“희망.”
“아, 그런 뜻이로군요.”
“그렇다. 오크 족의 고대 언어로 마부투가 희망이다.”
녀석의 대답에 절로 미간이 꿈틀댔다.
근질거리는 입에서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
“고대 언어라고? 오크 족한테 그런 것도 있어?”
“그렇다. 오크 족의 역사는 길다.”
“흠… 그런데, 지금까지 왜 그런 말을 한 번도 안 쓴 거지?”
“모르겠다. 잊고 있었다.”
“에? 잊고 있었다고?”
“그렇다.”
“그럼, 지금은 기억이 난 거야?”
“그렇다.”
“어떻게?”
“모르겠다. 그냥 다 기억이 난다.”
분명,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의문과 궁금증이 늘어나기만 했다.
다시 질문을 던지려 할 즈음, 어느새 마을 앞에 도착했고, 어쩔 수 없이 말을 삼켜야만 했다.
….
마부투의 전경은 멀리서 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못했다.
소박함의 결정체.
마치, 이국적인 시골 마을을 보는 듯했다.
“오식 씨가 괜찮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린이 내게 바짝 붙어서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식이만 봐도 알겠지만, 오크는 무척이나 포악하고, 강한 괴물 중의 하나였다.
레벨이 낮은 각성자는 물론이고, 같은 30레벨이라 해도 1:1로 붙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런 놈들이 수두룩하게 모여 있는 곳이 마을이고, 서식지였다.
우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곳은 좀 달랐다.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크의 포악함이나 살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마을의 중앙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우리를 쳐다보는 오크들이 오히려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아는 오크는 평균 신장이 2.5미터 이상이다.
다들 알겠지만, 오식이는 거의 3미터에 달한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세 놈 중, 가장 작은 놈이 2미터에 육박한다.
거기에 덩치도 크고, 근육도 우락부락해서 더 거대해 보인다.
그러나 이곳의 다른 오크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뭐, 얼핏 봐도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확실히 오크라고 하기엔 작은 키였다.
덩치나 근육도 일반적인 느낌이고 말이다.
하물며, 더 작은 놈들도 있었다.
‘아, 저것들은 아이들이라서 작은 건가?’
겁에 질려서는 엄마 품에 안겨 울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끔거리는 작은 녀석들을 보면서 ‘오크도 어린 시절이 있구나’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오식아, 저놈… 아니, 저들은 왜 저렇게 작은 거지?”
“전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 전사?”
“그렇다. 오크 족의 전사는 태어날 때부터 크다. 그래서 나도 크다.”
“아아….”
이번엔 바로 이해가 됐다.
앞쪽으로 시선을 한 번 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쟤들은 전사야?”
“그렇다. 셋 다 전사다.”
“너보다는 작잖아? 네가 좀 특별한 건가?”
“그렇다. 나는 특별하다.”
“오오, 그런 거였어?”
“하하하! 그런 거였다.”
내 반응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녀석이 크게 웃으며, 어깨까지 으스댔다.
녀석의 웃음소리에 앞서가던 세 놈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그 모습을 보며 오식이가 말을 이었다.
“저 아이들도 앞으로 더 클 거다.”
“엥? 아이들? 쟤들이 어리다는 거야?”
“그렇다. 아직 어리다.”
“얼마나? 몇 살이기에 어리다는 거지?”
“30년쯤 살았을까?”
“에? 사, 삼십 년? 그게 어린 거라고?”
“그렇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
어이가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는 표현도 웃겼지만, 30살인데 어리다는 말이 너무나 기가 막혔다.
자연스레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럼, 넌 몇 살인데?”
내 물음에 녀석이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53년을 살았다. 한창 피가 끓는 나이라고도 한다.”
대애애앵!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