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9)
“무, 무슨 돌?”
바로 반문하며, 뒤를 돌아봤다.
진심으로 놀라서 허공에 몸을 띄울 뻔했다.
“헛!”
너무나 가깝게 들이댄 오식이의 험상궂은 얼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게다가 몸까지 구부정한 자세로 낮추고 있었기에 나와의 거리가 더욱더 가까웠다.
거기에 반쯤 넋이 나간 표정까지 하고 있었으니, 매일 같이 보는 사이라지만, 더 큰 반응으로 놀라 자빠지지 않은 게 그나마 잘한 일이었다.
“….”
내 반응이나 시선에도 녀석은 꼼짝 않고 있었다.
“야, 왜 그래?”
내 물음에도 녀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넋 놓은 얼굴로 나를… 아니, 내 어깨너머의 돌덩이에 시선을 꽂고 있을 뿐이었다.
“흠….”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느새 심각해진 얼굴이 된 린이 나와 오식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방금… 얘가 뭐라 그랬지?”
“기억의 돌이라고 했습니다.”
린의 대답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열나게 찾아본 오크에 관한 정보들 속에 ‘기억의 돌’에 관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물며, 이런 돌덩이에 관한 내용도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이딴 걸 누가….’
다시 말하지만, 1% 기대치나 호기심조차 주기가 아까운 그냥 평범한 돌일 뿐이었다.
빠르게 생각을 마치고는 린을 향해 물었다.
“기억의 돌이라… 너도 아는 거야?”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
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의 돌인지 뭔지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근데, 아까 너도 뭐라 하지 않았나?”
“네?”
“네가 그랬잖아. 빛이 난다고? 아니, 반짝거린다고 했던가?”
“아아, 네… 바, 반짝거린다고요.”
돌덩이를 다시금 자세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반짝거림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그래? 지금도 반짝거리냐고.”
“네? 아, 네… 마치, 빛나는 가루를 살살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잖아요.”
“그, 그래?”
내 반응에 린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뭔가를 눈치챈 듯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호, 혹시… 주인님 눈에는 저 반짝거림이 안 보이세요?”
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아무것도 안 보여.”
하나의 돌을 가지고, 함께 모인 셋이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
그보다 더 이상하고, 신비하며, 지랄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되거나 특이할 게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절대로 아니었지만, 오식이와 린이 특별하게 보고 있다면, 나름으로 살펴볼 가치… 아니, 이유 정도는 있었다.
스윽….
돌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툭….
손끝에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별다른 일이 없기에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스슥… 슥슥….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아예, 손바닥으로 문질러 봤다.
그래 봤자, 그냥 돌이었다.
“린.”
“네, 주인님.”
“너도 한 번 만져 볼래?”
“네.”
린이 순순히 손을 뻗어 돌덩이를 만졌다.
나는 여전히 돌의 표면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런 나와 돌을 만지는 린의 손길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애지중지하는 듯한 느낌?
애틋함? 소중함? 조심스러움?
마치, 갓난아이를 다루듯… 정말로 귀한 보석을 매만지고 있는 듯했다.
돌을 쳐다보는 눈빛이나 표정에서도 그런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흠… 거짓은 아닌가 보군.’
반짝거린다는 둥, 보석 같다는 둥 해댄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스윽….
돌에서 손을 떼고는 주변을 돌며 살폈다.
그러다 돌의 뒤쪽 면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엥? 이게 뭐지? 그림? 아니, 글씬가?”
그림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한 무언가가 돌의 표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왜 그러시죠?”
린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게 뭔지 알겠어?”
“아니요, 처음 보는 것입니다. 그림인가요?”
린의 되물음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던 중, 오식이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여전히 넋을 빼고 있었다.
‘음, 녀석이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당장에 녀석을 불렀다.
“오식아, 이리 와 봐!”
“….”
오식이는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 이 자식이 근데….”
짧은 한숨과 짜증을 내뱉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녀석의 등짝을 후려쳤다.
짜아아악!
“인마! 정신 차려!”
그제야 반쯤 나가 있던 녀석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은 말을 빠르게 쏟아 냈다.
“대체, 정신을 어따 그리 팔고 있는 거야?”
“크르르….”
“이리 와!”
오식이를 데리고 돌의 뒤편으로 갔다.
곧장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자리를 한 번 뜨기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있었던 기대감이 지금은 단 1도 없었다.
내 물음의 답변으로 내놓은 오식이의 답도 딱 그 수준이었다.
―기… 억… 의… 돌….―
“그건 나도 알고! 이거 말이야, 이거!”
짜증과 함께 발끝으로 돌을 툭툭 건드렸다.
그제야 오식이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돌덩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더니만 녀석이 난데없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철푸덕!
“에? 뭐야?”
오식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물었다.
그러나 이어진 녀석의 행동에 더 놀라야만 했다.
처억!
바닥에 주저앉은 녀석이 냅다 오른쪽 발을 쭉 뻗어 내 앞으로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솨악!
강렬한 바람이 얼굴을 거칠게 핥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내 얼굴의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발바닥이 눈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엇….’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 녀석의 거대한 발길질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여겼다.
몸이 절로 움찔거렸고,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내가 녀석에게 너무 했나? 맞아, 살살 때려도 됐을 테고, 짜증까지 낼 필요는 없었지’와 같은 참회.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어떻게?’라는 서운함.
‘겁나 아프겠지?’의 두려움까지….
그렇게 찰나의 순간을 제대로 보내고는 정신을 차렸다.
다행스럽게도 오식이의 발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후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 바로 직후였다.
스르륵….
풀썩….
얌전한 새색시처럼… 또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주저앉아 버렸다.
누가 봐도 쫄았음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앗!’
실수를 깨닫고는 바로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런 내 상태를 린은 확실히 알아챈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래 보였다.
‘젠장….’
2차로 날아든 쪽팔림에 뜨거워지는 얼굴을 흔들고는 오식이를 노려봤다.
녀석은 상황이 이렇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제 발만 내 앞에 까딱거리고 있었다.
“뭐? 어쩌라고?”
뒤늦게 강한 척을 하며 따지듯이 물었다.
쭈욱… 까딱까딱!
오식이가 한 번 더 다리를 펴고, 발목을 까딱거렸다.
대체, 뭐 하자는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냄새나, 인마! 저리 치워!”
사실이었다.
신발을 신지 않는 탓에 흙을 포함한 이물질이 가득 묻어 있는 녀석의 발바닥이었다.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크고, 거칠고, 무섭게 생겼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크륵?”
내 반응에 고개를 갸웃한 오식이가 앞으로 뻗은 발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뭔가 알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녀석의 반응에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린도 앞선 일을 잊거나 지웠는지 오식이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툭툭….
오식이가 제 발바닥의 흙과 이물질을 털어 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손바닥으로 쓱쓱 닦아 내기도 했다.
“크르르….”
하지만, 뭔가 잘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난감함이 여실하게 드러난 표정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것이 꼭 그래 보였다.
“뭔가 닦을 게 필요한 건가요?”
눈치 빠른 린이 오식이에게 물었다.
오식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서 천막 밖으로 나간 린이 잠시 후에 양동이와 천 쪼가리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천은 여기저기 바닥에 널려 있던 깃발인 것 같았고, 양동이에는 물이 반쯤 담겨 있었다.
“여기요.”
린이 양동이와 천을 오식이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녀석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쪽으로 발 좀 내밀어 보세요.”
오식이가 수줍은 얼굴을 하고는 린에게 발을 맡겼다.
린이 천을 물에 적신 후, 제 몸뚱이만 한 녀석의 발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보는 것만으로 속이 안 좋아지고,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더러운 구정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비위도 좋아….’
새삼 린이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그때였다.
“어머!”
오식이의 발바닥을 닦아주던 린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바로 이유를 물었다.
“왜? 뭔데?”
“여, 여기 좀 보세요.”
린이 대답하며, 오식이의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장에 시선을 오식이의 발바닥으로 옮겼다.
“어라?”
나도 당장에 린과 비슷한 반응을 표해 버렸다.
몸이 저절로 움직여 오식이의 발 앞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당연히 녀석의 발바닥을 자세히 보기 위함이었다.
“이, 이건….”
얼핏 본 것을 가까이서 확인하고는 린을 쳐다봤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제대로인지를 확인하자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뜻으로 린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조, 좀 더 닦아 볼래?”
“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린에게 부탁했다.
린이 내가 원하는 바를 온전히 알아채고는 재빨리 천에 물을 가득 묻혀서 오식이의 발을 닦아 냈다.
주륵주륵….
벅벅….
주르륵….
더러운 구정물이 흘러내리며, 혹시나 했던 마음을 동반한 부정의 찌꺼기를 모두 씻어 냈다.
“허… 이게 왜 여기에….”
이미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랬다.
오식이의 발바닥에는 돌덩이 뒤편에 새겨진 그림인지 뭔지 모를 그것과 똑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녀석은 그것을 내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고, 나는 제대로 관심과 흥미를 불태우게 됐다.
“야! 이게 뭐야? 뭔데, 이런 게 네 발바닥에 새겨져 있는 거야?”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오식이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뭘까? 뭐지? 아아, 미치겠네!’
진정으로 궁금증이 폭발했다.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야! 발 좀 이리 내 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녀석의 발바닥을 돌에 가져다 대 보기도 했다.
문양과 문양을 맞춰 보자는 단순하면서도 고전적인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그렇다면… 야, 손도 올려 봐!”
뭐든 해 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해 보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오식이가 손도 대보고, 문질러도 보고, 이마를 가져다 대거나 끌어안아 보는 등의 짓거리를 해댔다.
그러나 모두 다 꽝이었다.
“젠장! 뭐, 어쩌자는 거야?”
급기야 인내심이 폭발했다.
애꿎은 바닥을 발로 차며 화풀이를 했다.
“쓰읍! 주문이라도 있는 거야? 열려라, 참깨? 수리수리 마수리? 쩝!”
혼자서 투덜거렸다.
이미 마음은 포기 상태였다.
그때였다.
내 속도 모른 채 오식이가 물음을 던졌다.
―열… 려… 라… 참… 깨… 뭐… 냐… 형… 님….―
“아, 그런 게 있어.”
대답해 주기 귀찮았다.
해서, 그냥 대충 넘기려 했다.
하지만, 오식이의 표정을 보고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닫힌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주문이야.”
―닫… 힌… 문… 연… 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오식이가 잠시 틈을 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도… 안… 다… 문… 여… 는… 주… 문….―
“응?”
―오… 픈… 더… 도… 어….―
생뚱맞은… 게다가 기초적이지만, 영어로 된 문장이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하지만, 진짜로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파아아앗!
아무것도 볼 게 없던 돌덩이에서 갑자기 빛이 쏟아져 나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