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94화 (94/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4)

휘리릭!

촤하아아악….

몸을 회전시키며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깔끔하게 분리된 고양이 놈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툭툭!

습관처럼 아수라 스워드를 바닥에 대고 가볍게 털어 냈다.

검 날에 묻은 이물질들을 떼어 내는 동작인데, 이곳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음에도 무의식중에 하게 된다.

“후우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길게 했다.

직전의 화려한 움직임 때문에 생긴 박동은 아니었다.

그 정도야 이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수준이었으니까.

“후우우….”

다시금 심호흡했다.

맞다.

긴장하고 있었다.

한 번의 소리에 고양이 놈들이 3마리씩 튀어나오는 구간의 끝자락… 방금 잡은 놈이 3―4의 마지막 고양이였다.

그렇다.

눈앞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으면 바로 중간 보스 존이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결전의 순간 앞에서는 심장도 떨리고, 긴장도 할 터.

그런데 자칭 쫄보인 나는 오죽할까.

‘흐으, 죽겠네….’

진정으로 죽을 맛이었다.

부르르….

온몸을 일부러 크게 떨고는 다시금 심호흡을 길게 한 뒤, 중간 보스 존 쪽을 바라봤다.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닷길의 등대처럼 복도의 길잡이가 되는 작은 창도 보이고, 문도 보이고, 램프도 보이지만, 어떠한 인물이나 지겹도록 봐왔던 고양이의 모습은 없었다.

뭐, 경계선을 넘어가면 그때는 보이겠지.

심호흡을 잘해서인지, 아니면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신경을 돌린 덕인지는 몰라도 긴장감이 살짝 다운된 듯했다.

휘익….

몸을 돌려세웠다.

그런 뒤 오식이와 린을 차례대로 소환했다.

….

“…다들 알았지?”

어젯밤에도 얘기하고, 오늘 아침에도 두 번이나 설명한 작전을 또 한 번 읊었다.

린이 긴장으로 역력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오식이는 투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르르르!”

어젯밤부터 이어진 흥분은 아침에도 꺼지지 않았었다.

던전으로 들어오기 직전에는 한 10배쯤 더 흥분한 채였다.

린에게 살짝 언질을 줬던 응원과 격려의 효과였다.

스윽….

으르렁거리는 오식이의 두꺼운 팔을 린이 살짝 어루만졌다.

흠칫하며 놀란 녀석이 더욱더 강렬한 눈빛과 인상을 들이밀며 내게 말을 전했다.

―가… 자… 형… 님….―

“어, 그래! 가자!”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로레나가 기다리는 중간 보스 존으로 넘어갔다.

….

나 그리고 린, 그 다음으로 오식이가 경계선을 넘었다.

일단은 정면을 향해 시선을 두고서 상황을 살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또한 소리에 반응하기 때문이었다.

중간 보스 존은 구간이 나뉘어 있지 않았다.

3미터 폭은 당연히 그대로고, 총 길이는 20미터다.

‘확실히 싸우기는 편하겠군.’

오식이가 난리 블루스에 활개를 쳐도 문제가 없을 듯했다.

아직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돌아섰다.

린과 오식이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방금 넘어온 경계선… 그곳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었다.

출럭….

매끈하고, 물컹하며, 축축한 느낌의 막이 찰랑거리듯 흔들렸다.

지나온 복도의 경계선도 이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제약으로 인해 가로막혔을 때와 똑같다는 소리고, 이는 중간 보스 존도 다른 곳과 같은 룰이 적용된다는 의미였다.

단, 모든 적이 아니라 역시나 고양이 놈들만 처리하면 되는 것도 똑같았다.

맞다.

로레나는 무시한 채 여섯 마리의 고양이들만 처리해도 도망칠 수는 있다는 소리다.

‘의외로 배려심이 있단 말이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표인 듯하면서도 때로는 이렇게 각성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 같은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게 모순 같기도 하고, 웃픈 코미디 같기도 했다.

스윽….

다시 몸을 돌려세웠다.

오식이와 린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수라 스워드를 꽉 움켜쥐고는 힘차게 발을 한 번 굴렀다.

콰앙!

요란한 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어, 아무것도 없던 10미터 전방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아른거림이 일었다.

동시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 울음소리도 이어졌다.

타앗!

먼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린과 오식이는 그대로 대기했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곳에 다다랐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수라 스워드를 크게 횡으로 그었다.

휘이익!

아수라 스워드가 아지랑이의 몸뚱이(?)를 절반으로 갈랐다.

이내 앙칼진 고양이 놈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난리를 피우듯 마구잡이로 들려왔다.

장막이 걷히듯 완전히 사라진 아지랑이.

눈앞에 드디어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껏 수도 없이 상대하고, 잡아댔던 여섯 색깔의 고양이가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있었다.

“어디, 진짜 맛 좀 볼까?”

낮지만 힘이 깃든 말을 뱉어 내고는 회색 털의 고양이를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휘익!

탓! 타닷! 탓! 탁! 탁!

회색 털 고양이가 가볍게 뒤로 점프하며 내 공격을 피했다.

그 순간에 나머지 다섯 마리의 고양이 놈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며, 눈을 어지럽게 했다.

“아직 안 끝났다!”

휘두른 검을 빠르게 회수하고는 오른쪽 발을 쭉 뻗어 앞으로 점프했다.

동시에 아수라 스워드를 든 오른쪽 팔도 힘껏 뻗었다.

무척이나 빠르고 강렬한 찌르기가 이루어졌다.

“냐앙!”

회색 털 고양이가 재차 이어진 내 공격을 다시금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치잇!”

놈의 반사 신경이 놀랍기도 했지만, 얄미움이 더 컸다.

힐끔….

순간적으로 정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불과 몇 초밖에 흐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마음은 다급했다.

이제 곧 로레나가 등장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소리에 의해 아지랑이를 동반한 고양이 놈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정확히 1분이 지나면 로레나가 등장한다.

그것도 엄청난 퍼포먼스와 함께 말이다.

로레나를 잡기 위한 필승 전략 중 하나는 그녀가 등장하기 전에 최대한 고양이 놈들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해서, 빠르고 과감하게 달려든 것인데, 일단은 실패했다.

같은 레벨에 습성이나 상태, 하는 짓마저도 짝퉁 놈들과 다를 바가 없다더니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주, 주인님!”

내 작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린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안타까운 투로 소리쳤다.

시선을 돌려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언제라도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해서, 빠르게 만류의 외침을 날렸다.

“괜찮아! 그대로 대기해!”

사방으로 튀어 나간 고양이 놈들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언제든 나를 향해 달려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 역시 곧장 자세를 가다듬고는 다시금 회색 털 고양이를 노려봤다.

“무조건 네 놈 목부터 딴다!”

이를 부득 갈고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휘익!

타앗! 휙!

“어쭈! 이놈이….”

놈이 약을 올리듯 계속해서 내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내 움직임과 동시에 사방으로 튀어 나가며 산개하던 다른 놈들이 이제는 재미난 구경을 하듯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게 더욱더 나를 열받게 했다.

‘하아, 이것들 봐라….’

절로 꿈틀대는 미간에 힘을 딱 주고는 계속해서 노리던 회색 털 고양이 대신에 근처에서 여유롭게 구경 중인 까만색 고양이를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아수라 스워드가 나무 바닥을 스치며 아름다운 반원을 그렸다.

보통의 휘두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한 바닥 쓸기 스킬이었다.

그에, 까만색 고양이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냐악?”

그것이 놈의 마지막 울음소리였다.

파아앗!

확실한 손맛이 아수라 스워드를 타고 전해졌다.

앞다리 전체가 잘려 나간 까만색 고양이가 휘두름의 힘에 밀려 저만치 나뒹굴었다.

놈이 굴러가는 방향에 있던 다른 고양이 놈들이 황급히 몸을 피하며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놈을 처리하고 나니, 무슨 약이라도 맞은 듯 몸이 가벼워졌다.

타앗! 탓!

휘익! 휙!

빠른 스텝과 함께 물이 흐르는 듯한 검술을 선보였다.

그동안 짝퉁 고양이들을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동작들이었다.

“냐악!”

“하아악!”

“냐아아아앙!”

갑자기 달라진 내 움직임과 거침없이 빠른 공격에 놈들이 당황의 빛을 역력히 드러냈다.

팟! 팟!

촤아아악… 촤학!

연속된 찌르기에서 이어진 휘두름.

이내 방향을 바꿔 역으로 휘두르는 변칙적인 공격에 그렇게나 나를 약 올렸던 회색 털 고양이 놈의 목이 떨어졌다.

“자, 이제 한 놈….”

사전에 약속한 계획에 따르면, 내가 처리해야 할 고양이 놈들의 숫자는 3마리였다.

1분 안에 3마리를 처리하고서 린과 교대한 뒤, 곧장 로레나를 향해 달려들어야 했다.

3마리 정도면 린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들어간 작전이었다.

하지만, 앞서 우려했던 것처럼 시간이 부족했다.

고오오오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살벌한 기운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크읏!”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신음을 흘렸다.

왜 그렇게 린이 두렵다고 했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씨바… 30레벨이라며?’

같은 30레벨의 오식이에게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강대하고, 서늘한 기운에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오호호호호호호호! 오호호호호호호!”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성격이 지랄 같고, 요사스러운지가 팍팍 느껴지는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복도 전체… 아니, 저택 전체를 아우르듯 울려 퍼졌다.

“췟,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퍼포먼스라더니만… 젠장!”

로레나의 등장과 함께 울려 퍼진 웃음소리를 처음 접한 이들은 밤에 잠까지 설친다고들 했다.

나도 오늘 밤 그럴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직접 들으니, 그 쇼킹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로레나의 퍼포먼스에 치를 떠는 동안, 그녀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로레나는 저주받은 저택의 전체적인 이미지… 철창 울타리부터 시작해 철창문, 그 안에 꾸며진 멋진 정원과 멍청한 정원사 놈들.

더불어 저택 1층의 인테리어나 클린의 모습 등에서 이미 짐작하고도 남을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잘록하게 허리를 졸라맸을 뿐, 다른 곳은 하나같이 풍성하기 그지없는… 게다가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공작새도 아니면서 그와 비슷한 여러 개의 깃털 장식을 등과 머리에 꽂고 있기도 했다.

아래 팔뚝을 모두 가린 늘씬하고 기다란 장갑과 손에 들린 검정 부채마저도 부유한 집안의 안방마님 이미지와 겹치고 있었다.

더불어 ‘기품의 아우라’라고 이름 붙은 하얀 빛의 후광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게 무엇보다도 눈에 띈다.

“오호호호호!”

로레나가 다시금 웃음소리를 냈다.

등장하면서 내지른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 한층 톤도 낮고, 울림도 적었다.

냥이가 냥냥거리던 것이나 린이 린린거리던 것처럼, 로레나는 늘 웃음소리를 낸다고 했다.

아무튼.

일단은 고양이 놈부터 처리해야 했다.

로레나의 등장에 잠시 흩어진 정신을 바로 잡고는 근처에 있을 고양이 놈들을 찾았다.

놈들도 제 주인의 등장에 넋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너다!’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 있는 흰색 털 고양이를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찔러 넣었다.

파앗!

푸우욱!

허무할 정도로 쉽게 놈을 처리할 수 있었다.

빠르게 아수라 스워드를 거둬들이며, 린을 향해 소리쳤다.

“린, 지금이야!”

내 외침에 린이 곧장 몸을 날려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부탁해!”

“네, 주인님!”

린과 교대를 하고는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바로 로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감싼 하얀 빛… 기품의 아우라가 전보다 더 진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