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0)
고양이 놈들은 아무런 아이템도 남기지 않는다.
죽이면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소위 말하는 ‘짝퉁’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놈들은 저주받은 저택의 안주인인 로레나가 기르는 애완용 고양이다.
해서, 진짜 놈들은 로레나와 함께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반대편, 복도의 끝에 말이다.
한동안 내가 상대해야 하는 이 짝퉁 놈들의 정체는 진짜 놈들의 분신 내지는 사념체 정도라는 게 정보들의 내용이다.
뭐, 정보마다 말하는 바가 달라서 정확한 것은 나도 모르겠지만, 대충 그렇게 알고만 있으면 될 듯했다.
뭐, 아이템은 쥐뿔도 주지 않지만, 그래도 경험치만큼은 쏠쏠하게 준다니, 나로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
안전지대에서 첫 번째 경계선을 넘은 뒤, 공간의 변화와 함께 들어선 곳.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저택 2층의 1라운드 구간이다.
참고로 저택 2층은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성자들은 이 1라운드 구간을 ‘고양이 1마리 존’ 또는 ‘짝퉁 고양이 1’이라고 부른다.
소리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고양이가 1마리이기 때문이다.
1라운드 구간의 길이는 총 20미터다.
그것을 반으로 나누고, 또 반으로 나누어 1-1부터 1-4까지 세분화 한다.
이는, 2라운드와 3라운드 구간까지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 마리 더 불러 볼까?’
지이익….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하나 꺼냈다.
이어, 뚜껑을 따고서 독 포자를 뿌린 뒤에 준비해 둔 막대기로 잘 섞어 줬다.
좌아악!
찍찍… 휘적휘적….
가방을 직직 여닫고, 부스럭거리며 통조림을 꺼내고, 힘껏 통조림의 뚜껑을 따는 것은 물론, 독 포자를 뿌리고, 잘 섞어 주는 동안 별의별 소리가 다 났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재차 말하지만, 저택 2층은 ‘소리’가 키포인트다.
일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면, 고양이 놈들이 반응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별의별 소리를 다 내며 하는 짓거리는 실로 위험천만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없었다.
이곳이 고양이 1마리 존이기 때문이다.
맞다.
직전에 고양이 놈을 잡았으니, 이제 이곳에서는 놈이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1-1이라 구분한 3미터 폭, 5미터 길이의 이 공간에서만큼은 말이다.
앞서 오식이와 함께 첫 번째 사냥을 했을 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녀석에게 몇 번이나 말하고, 조심시켰던… 해서, 녀석도 최대한 주의하고, 지키려 노력했던 ‘공간의 앞쪽과 뒤쪽으로는 절대로 크게 넘어가지 마!’라는 요구 사항.
그것의 정확한 의도는 1-1이라 구분한 이 공간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안전지대와 전장을 구분하는 첫 번째 경계선.
문고리라는 대강의 표시만 있지, 딱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처럼, 저택 2층의 복도에는 십여 개도 넘는 경계선이 존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1, 1-2 등 5미터 단위로 나뉘는 구간마다 있었다.
이쯤에서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눈치를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경계선을 넘고, 세분되어 쪼개진 구간으로 넘어가면, 소리에 의해 고양이 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쉽게 말해, 1-1에서 소리를 내면 고양이 1마리가 나타나고, 1―2로 넘어가 소리를 내면, 또 다른 고양이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첫 번째 사냥에서 1―1의 고양이 놈과 사투를 벌이던 오식이는 1―2의 경계선을 넘어갔었다.
해서, 또 다른 고양이 놈이 나타났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한 구간에 1마리씩만 불러낼 수 있고, 처리하면 더는 나타나지 않는 이 룰은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만약, 그런 룰이 없었다면, 고양이 놈과 티격태격하는 동안에 온갖 소리를 내게 되고, 그로 인해 수십, 수백 마리의 고양이가 몰려들 테니 말이다.
….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경계선을 건너 1―2로 넘어갔다.
1―1에서와 마찬가지로 벽 쪽에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놔두고는 뒤로 물러나 소리를 냈다.
이내,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아앙!”
아직 방심은 금물이었다.
꽈악!
아수라 스워드를 꼬나쥐고서 놈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다시금 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앙… 냐앙….”
놈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옳거니!’
앙칼짐에서 한껏 부드러운… 마치, 새끼 고양이의 울음처럼 얌전해진 것이 침입자인 나보다는 통조림에 마음을 뺏겼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잠시 후에 모습을 드러낸 새카만 고양이 놈이 한 치의 경계심도 없이 통조림에 주둥이를 처박았다.
‘후훗! 멍청한 놈….’
속으로 기쁨과 비웃음을 섞어 발하고는 놈이 사지를 뻗고 쓰러지기를 기다렸다.
“냐아앙?”
비틀….
털썩….
바들바들….
먼젓번 놈과 하나도 틀리지 않는 모습으로 놈이 쓰러졌다.
그러고 보니, 털 색깔마저도 똑같이 까만색인 놈이다.
‘아, 오식이한테 달려들었던 놈도 까만색이었지? 그럼, 두 번째로 나타났던 놈은?’
기억을 더듬었다.
‘갈색이었나? 아니야, 얼룩무늬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급한 상황이라 경황이 없었으니까.
참고로 로레나가 기르는 고양이는 모두 여섯 마리다.
종까지는 잘 모르겠고, 다들 털의 색으로만 구분했는데, 검정, 회색, 흰색, 갈색, 얼룩무늬, 털이 없는 놈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똑같은 놈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디테일 외에는 딱히 구분 지어야 할 만큼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라,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래, 그딴 게 뭐가 중요해?’
잡념을 털어 내고는 흐트러진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잘 정리하여, 원래 있던 곳에 얌전히 놔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갈 길… 하지만, 지금은 절대 넘어가지 않을 곳을 쳐다봤다.
스스스….
벽에 걸린 램프를 기준으로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
1―3으로 넘어가는 그곳에 미약하지만, 어떤 기운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전지대에서 전장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경계선이나 1―1에서 1―2로 넘어온 경계선은 특별한 제약이 없다.
마음대로 오가고, 수시로 넘나들 수 있다는 소리다.
예로, 1―1에서 소리를 내어 고양이를 불러냈다고 치자.
그렇게 나타난 놈을 처리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혹시나 상대하던 중에 상황이 불리해질 수가 있다.
그럴 경우, 즉시 안전지대로 넘어가면 위급한 상황은 끝이 난다.
실수든 뭐든 간에 1―1과 1―2의 고양이 2마리를 모두 불러냈어도 마찬가지다.
일단, 안전지대로 넘어온 뒤에 다시 전장에 진입하면, 앞서 나타났거나 싸우던 놈들은 사라진 상태가 된다.
‘리셋’의 느낌이랄까?
이는, 놈들을 모두 죽였을 때도 적용이 된다.
1―1에서 놈을 불러내 죽이고, 안전지대를 넘어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또다시 놈을 불러낼 수 있다는 소리다.
뭐, 오식이와 함께한 첫 사냥부터 직전까지 내가 몸소 보여 줬으니, 다들 이해했겠지?
문제는 1―3부터다.
1―2에서 1―3으로 넘어가는 경계선부터는 제약이 걸려 있다.
구간의 고양이를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제약이다.
지금 나는 1―3으로 넘어갈 수 있다.
1―1과 1―2의 고양이 2마리를 모두 잡았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다시 안전지대로 넘어갔다가 돌아오면, 1―3의 경계선을 넘어갈 수가 없다.
다시 고양이 2마리를 잡아야만 한다.
그렇게 고양이를 모두 처리하고서 1―3으로 넘어가면, 앞뒤의 경계선… 1―2에서 1―3으로 넘어가는 경계선과 1―4에서 2―1로 넘어가는 경계선이 가로막히게 된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은 당연히 1―3과 1―4의 고양이를 모두 처리하는 것이다.
이후의 모든 구간에는 같은 룰이 적용된다.
더불어 되돌아오는 길… 1―3과 1―4의 고양이를 모두 잡은 뒤, 2―1이 아니라 1―2로 넘어오게 되면, 그 구간의 놈을 다시 상대해야만 한다.
첫 번째 경계선처럼 리셋 기능이 발동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전 구간이 동일하다.
해서, 제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한들 안전지대를 넘어 다이렉트로 로레나가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없다.
상당히 귀찮고 번거롭겠지만, 구간의 모든 고양이를 정리한 뒤에야 로레나를 대면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실력이나 수준을 과신한 채, 무조건 전진만 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무리하게 구간을 넘어 체력과 몸 상태가 엉망이 된 상황이라면, 다시 돌아오는 길에 상대해야 할 고양이 놈들이 무척이나 고달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룰들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터라, 나는 당분간 1―1과 1―2에서만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엉뚱해 보이는 플랜 B가 잘 먹혀들긴 하지만, 오식이도 없이 혼자서 사냥을 해야 하니, 굳이 무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다수의 고양이를 상대할 수준도 아니니, 가장 안전한 곳에서 꾸준히 레벨을 올리면 될 일이었다.
….
안전지대와 전장을 수시로 넘나들며, 사냥을 이어 나갔다.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이용한 플랜 B는 정말로 기가 막힌 전략이었다.
마치, 정원에서 트랩을 이용해 다수의 정원사 놈들을 잡아냈던 것처럼, 돈을 받고 알려 줄 정도의 사냥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여섯 마리의 고양이 중에서 도통 통조림에 관심이 없는 놈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흰색과 털 없는 놈이 그랬다.
나머지는 뭐…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환장을 했다.
어차피 사냥 중에는 늘 긴장하고 있는 터라, 놈들이 나타나면 바로 대처하고,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오식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과 달리 고양이 놈들을 나름으로 잘 잡았다.
일단은 상대적인 체격 차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녀석의 30센티미터와 내 기준의 30센티미터는 사과와 수박 정도의 차이를 보일 테니 말이다.
또한, 신형 전투 타이츠의 옵션… 냥이와 함께 하면서 영향을 받아 부쩍 상승한 민첩성도 이유가 됐다.
힘에서는 오식이를 따라갈 수 없지만, 빠르기만큼은 이제 녀석을 압도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어쭈! 이 자식이 피해? 에잇! 이야압!”
그래도 놈들이 나보다 작고, 빠른 것은 사실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날고, 뛰며, 활개를 치는 놈들을 상대하는 건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야 ‘이것 또한 경험이고, 수련이다!’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싸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귀찮았고, 시간의 지체와 체력의 소모도 아깝고, 불편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동안, 사냥을 이어 가면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수시로 보완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었다.
그렇게 해서 좀 더 효과적이고, 완벽한 사냥법을 만들어 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실로 기막히면서, 탁월한 꼼수를 말이다.
스윽….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놔둔 벽의 반대편 벽으로 이동해 바짝 몸을 붙였다.
그러고는 편안하게 호흡을 조절했다.
“후우… 후우….”
어느 정도 호흡이 안정된 후에는 몸을 나른하게 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아수라 스워드로 나무 바닥을 내리쳤다.
쿵!
“냐아아앙!”
고양이 놈이 즉각 울음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신경 쓰지 않은 채, 적당량의 숨을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스르르….
평온함이 온몸을 감싸며 스킬 ‘그림자 숨기기’가 발동했고, 나는 벽과 한 몸이 되었다.
사박사박….
때마침 흰색 털의 고양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