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9)
넘어진 오식이를 향해 새까만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낮아진 자세에 무방비나 다름없어진 얼굴을 향해서였다.
“냐아앙!”
날카롭게 앞세우고 후려친 놈의 앞 발톱이 오식이의 얼굴에 세 줄기의 상처를 만들어 냈다.
당황한 오식이가 양손을 아무렇게나 휘적거렸다.
놈은 여유롭게 그것들을 피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재차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피해, 오식아!”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당황한 녀석을 일깨우고, 놈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오식이는 정신을 좀 차렸다.
하지만, 놈은 내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오식아, 뒤로 굴러!”
내 말에 오식이가 바로 반응했다.
육중하고, 거대한 몸을 탄력과 반동으로 흔들며 뒤구르기를 해냈다.
놈과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한 번 더!”
다시 떨어진 명령에도 오식이는 곧장 반응했다.
첫 번째 움직임의 힘이 남아 있던 까닭에 두 번째 뒤구르기는 훨씬 더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놈과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이제는 내가 더 가까이에 있었다.
그래도 놈의 시선은 오식이에게 꽂혀 있었다.
‘기회!’
절호의 기회였다.
당장에 아수라 스워드를 높이 쳐들었다.
그런 뒤 놈을 향해 있는 힘껏 내려쳤다.
휘이익!
콰아악!
손목이 찡할 정도로 충격이 전해졌다.
직전에 미묘한 수준의 손맛도 있었다.
“캬아악….”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몸을 피한 놈이 ‘하악질’이라 부르는 고양이 특유의 울음소리 내기도 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검 끝이 놈을 스치고는 바닥을 찍은 것이 확실했다.
‘침착했어야 했는데, 아쉽군!’
공격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바로 아수라 스워드를 비틀어 잡고는 놈을 노려봤다.
놈도 이제는 오식이가 아니라 나를 향해 시선을 꽂고 있었다.
“갸앙!”
놈이 짧고, 강하게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이어, 빠르게 몸을 날렸다.
상황을 예의 주시한 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차앙!
앞발을 쭉 뻗고, 휘두르는 놈의 첫 번째 공격을 아수라 스워드로 여유롭게 막아냈다.
비켜서듯 옆으로 떨어진 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범위는 제일 좁지만, 속도만큼은 가장 빠른 공격법이었다.
촤악!
하지만, 놈도 만만치 않았다.
살짝 몸을 낮추는가 싶더니만, 이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내 찌르기를 피했다.
피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놈은 벽을 쿠션 삼아 몸을 비틀고서는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파앗! 팟!
휘이익!
거리도 짧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피할 새가 없었다.
찌르기 이후에 빠르게 거둬들인 아수라 스워드로 간신히 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카앙!
솔직히 말하자면, 검을 회수하기 위해 팔을 잡아당기던 동작과 타이밍, 놈의 공격과 아수라 스워드의 동선 등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우연한 결과였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공격이 막혀 버린 놈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뭔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휘익!
그냥 대놓고 해 버린 발길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몸을 비트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놈을 제대로 걷어차게 되었다.
퍼억!
물컹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발끝과 발등에서 일었다.
“캬아아악!”
불의의 일격을 당한 놈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가다가 벽에 부딪혔다.
퍼어어억!
발길질에 맞았을 때보다 더 크고,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였다.
“캬악, 캬악, 하가각….”
바닥으로 떨어진 놈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바둥거렸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누가 봐도 심한 충격을 입은 탓에 쉽지 않아 보였다.
“끝내 주마.”
낮게 읊조리고는 놈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막 두 번째 발걸음이 나무 바닥에 닿을 때쯤이었다.
부우웅!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육중한 느낌의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내가 아닌 놈을 향해서였다.
이내, 굉음이 작렬했다.
쿠우우웅!
굉음이 터지기 직전,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놈이 발버둥 치던 자리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놈 대신에 작고, 뾰족한 다수의 징이 박힌 둥근 덩어리가 그곳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오식이의 모닝스타였다.
“크르르….”
분노와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오식이의 으르렁거림이 이어졌다.
….
힘겨웠던 한 차례의 사투를 어렵사리 끝내고는 곧장 뒤로 물러났다.
첫 번째 방문 손잡이의 경계선을 넘어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괜찮냐?”
그냥 봐도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일단 물어봤다.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오식이는 씩씩대기만 했다.
저보다 레벨도 낮고, 작은 놈에게 꼼짝없이 당한 게 억울하긴 억울할 듯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냥이에게 당했던 지난날의 흑역사가 떠오르지 싶기도 했다.
“육포 있지? 얼른 먹어!”
“크르르….”
내 말에 녀석이 씩씩대는 것을 그제야 멈추고는 육포를 꺼내 거칠게 씹어 먹었다.
녀석이 치유를 하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흠… 오식이도 안 되겠어.’
린은 레벨이 낮아서 안 되고, 오식이는 놈을 상대하기에 너무나 불리했다.
‘너무 큰 게 오히려 독이 될 줄이야… 쩝!’
그랬다.
작고, 빠른 놈을 상대하기에 오식이는 너무나 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좁은 공간도 문제였고 말이다.
뭐,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고,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위험해지거나 피해를 볼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평소같이 오식이를 앞세운 작전은 나를 향해 기울어진 양날의 검이었다.
‘안 돼! 플랜 A는 버린다.’
뻔한 위험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작전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하, 이것도 문젠데….’
A니 B니 작전을 나누기는 했지만, 오식이를 앞세우는 부분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팀에서 가장 강한 게 녀석이었고, 어쨌거나 나의 안전을 최선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런 작전밖에 나올 수 없었으니까.
“흐음….”
오래도록 고민했다.
오식이가 차지하는 부분들을 배제한 채, 작전을 수정했다.
‘좋아… 일단 확인부터 하자.’
사실상, 먹힐지 안 먹힐지조차 알 수 없는 플랜 B였기에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
“이제 좀 괜찮냐?”
마지막 육포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즐비했지만, 상태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음을 표했다.
“나머지는 돌아가서 치유하자.”
“크륵!”
두 번째 끄덕임을 확인하고는 녀석을 카드에 봉인했다.
지이익.
가방을 열어 미리 준비해 둔 것을 꺼냈다.
곧바로 첫 번째 방 문고리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살금살금….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두어 발자국을 움직였고, 조심스레 준비한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 돼야 할 텐데….’
간절한 심정으로 계획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역시나 소리를 죽인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아수라 스워드로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툭! 툭!
소리에 반응하며 곧장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앙….”
아수라 스워드를 앞세운 채, 놈을 기다렸다.
가벼운 발소리에 이어 몸을 튕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타닷타닥….
타앗!
훅하고 치솟는 긴장감에 아수라 스워드를 꽉 움켜쥐었다.
당장에라도 놈이 보인다면 그대로 내리치거나 휘두를 기세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냐앙….”
이제껏 앙칼짐을 내세우던 놈의 울음소리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앗싸! 물었다.’
내 작전이 먹혀들었음을 확신했다.
역시나….
“냐앙… 냐아앙.”
전과 비슷한 부드러운 울음소리를 흘려 낸 놈이 내가 바닥에 내려놓은 것을 향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래, 먹어라. 맛은 보장하마!’
거짓이 아니었다.
맛은 이미 검증되어 있었다.
나름 까다로웠던 냥이를 통해서 말이다.
그랬다.
내가 미리 준비하여 바닥에 내려놓았던 것은 ‘고양이 전용 통조림’이었다.
저주받은 저택 2층에서 나온다는 괴물의 정체가 고양이임을 알고 난 뒤, 문득 떠올랐던 계획이 있었으니… ‘캣맘 먹이 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에이, 그게 되겠어?”
처음엔 엉뚱한 생각이라며 나조차도 의심했었다.
하지만, 딱히 안 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안 되면 말자는 생각과 함께 조금 더 치밀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플랜 B….
어젯밤에 린이 듣고서는 ‘주인님은 언제나 다 계획이 있으시네요? 대단하세요’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이 바로 이 계획이었다.
….
고양이 전용 통조림 앞에 선 놈이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나를 향한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있지 않았다.
해서, 네놈이 뭐를 하든 나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일부러 딴청을 피웠다.
속으로는 조바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고, 입술마저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뭐 하냐? 어서 먹어라….’
내 바람에 응하듯 놈이 혀를 내밀어 통조림의 맛을 봤다.
그러고는 이내 주둥이를 처박은 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좋아!’
다시금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는 놈의 상태를 지켜봤다.
조바심은 사라지고, 기대감이 한껏 부푼 상태였다.
“추릅차릅… 할짝할짝… 냐아아앙….”
놈이 맛에 만족한 듯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뭔가를 느꼈는지 뒤로 반 발짝 물러났다.
“냐아악?”
통조림을 보며 고개를 한 번 갸웃했고, 나도 한 번 쳐다봤다.
그런 놈을 향해 사악함이 깃든 미소를 건넸다.
기우뚱… 풀썩!
놈이 살짝 비틀대는가 싶더니만, 이내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냥 쓰러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조각상이 쓰러진 것처럼 사지를 뻣뻣하게 굳힌 채였다.
“크크큭!”
더욱더 사악한 웃음을 발하고는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놈은 소리도 내지 못했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뭐, 뻣뻣하게 굳은 사지를 아주 미세하게 떨어대기는 했다.
“역시, 효과가 좋구만?”
놈이 먹던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보며 혼잣말을 흘렸다.
듣던 대로 탁월한 효과에 반응 속도마저 엄청나게 빠른 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모아 두길 잘했어. 아주 칭찬해!’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잘 모으고 보관해 둔 내 선견지명(?)을 칭찬하기도 했다.
이미 눈치를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놈이 먹고서 뻣뻣하게 몸을 굳힌 채 쓰러지게 만든… 고양이 전용 통조림에 섞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맞다.
그것은 바로 ‘버섯돌이의 독 포자’였다.
버섯돌이의 독 포자는 ‘버섯돌이의 포자 주머니’에서 얻을 수 있다.
포자 주머니는 당연히 버섯돌이를 잡으면 얻을 수 있고 말이다.
앞선 던전의 플로리 밭에서 수백도 넘는 버섯돌이를 잡았다.
그러나 포자 주머니를 모을 수는 없었다.
놈들을 한참 사냥하던 때에는 플로리 때문에 곁으로 다가갈 수 없어 마정석도 회수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냥이와 함께 플로리를 사냥하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전부 처리한 줄 알았지만, 거대한 플로리의 줄기에 가려져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버섯돌이 놈들을 잡으면서였다.
포자 주머니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다.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보다 비싼 마정석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던 탓에 짱박아 두고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기까지 했었다.
그만큼 중요치는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마치, 계륵 같은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번 플랜 B를 완성하게 되는 주인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튼.
독 포자의 효과만큼이나 엉뚱하다고 여겼던 플랜 B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겨우 한 번뿐이었지만, 더 두고 볼 게 있을까 싶었다.
“후훗! 잘 가라!”
여러모로 흡족한 마음을 마음껏 내비치고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고양이 놈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