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7)
“주인님,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린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잠시 다른 걸 하고 있던 터라 린을 대하는 게 늦었다.
그리고 보는 순간… 속된 말로 지려 버렸다.
“어? 아아… 괘, 괜찮아….”
거센 태풍이 불어와도 전혀 꿈쩍 않을 것 같은… 그만큼 그동안에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던 제 앞머리를 훌쩍 까고서 서 있는 린을 봐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 반응에 린이 미심쩍은 듯 되물었다.
“진짜요? 이상해 보이진 않아요?”
“아, 아니야! 지, 진짜 예뻐!”
“음… 그럼, 앞으로는 이렇게 할게요.”
“어, 그래….”
그날, 린은 손수 제 머리를 잘랐다.
답답해 보이긴 했지만, 나름 스타일리쉬//시함이 돋보였던 부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됐다.
‘저렇게 예쁜 눈을 왜 지금껏 가리고 있었데?’
하나쿠 짱의 친구이자, 늘 인기 투표 순위 5위 안에 드는 ‘스미레’를 꼭 빼닮은 얼굴은 정말이지 빛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수하던 헤어스타일을 과감하게 바꾼 린은 의상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트럭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정보 검색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 내 곁에서 아이퐁 액정을 힐끔거리던 린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예쁘다.”
“응?”
린의 반응에 놀란 뒤, 화면을 보니 한 쪽에 쇼핑몰 배너가 떠 있었다.
아이퐁을 살짝 기울여 린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이, 이거?”
“네!”
그렇다며 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야?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잖아?”
그랬다.
메이드 복 외에는 일절 관심도 없던 린이였다.
속옷과 앞치마라는 남성향 판타지의 베스트 룩을 포기하면서까지 린에게 옷을 사 주려 했었던 적이 있었다.
수백, 수천만 원이나 하는 명품은 아니었지만, 나름 고가의 옷을 포함해 젊고, 어린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옷들을 몇 시간이나 돌아다니며 골랐었다.
하지만, 모두 싫다며 거절했었다.
그러고는 끝내 마음에 든다며 선택했던 게 메이드 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화면에 보이는 배너 속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은 청바지에 니트로 메이드 복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었다.
“음… 예쁘긴 하겠다.”
같은 옷을 입은 린을 상상하고는 혼잣말을 흘렸다.
내 혼잣말을 들은 린이 얼굴에 화색을 그리며 말했다.
“정말요? 제가 입어도 예쁠까요?”
“응. 잘 어울릴 것 같아.”
“아아….”
“한 벌 사줄까?”
“저, 정말요?”
“응. 이 정도야 뭐….”
“아아, 감사합니다.”
린이 감격한 듯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는 몸까지 좌우로 흔들며 좋아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덩달아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
다음 날.
A 구역으로 향했다.
당연히 린에게 옷을 사 주기 위해서였다.
뭐, 때마침 식료품과 생필품 등이 떨어지기도 했었다.
‘괜찮겠지?’
약간… 아니, 좀 큰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린을 소환한 채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모험이라 표현하고, 내심 걱정도 했지만, 결코 안일한 짓거리는 아니었다.
뭐, 진심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클린은 마니아층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인은 클린의 실물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불어 클린을 직접 봤다거나 상대한 적이 있는 각성자들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클린은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전제가 머릿속에 박혀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던전의 괴물과 인간이 함께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고 다닌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아마 대놓고 떠벌려도 믿을 사람이 없을 터였다.
그런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오, 예쁘다.”
“Wow, nice body! Beautiful….”
린은 지나치는 사람들의 관심을 휩쓸었다.
물론, 대부분이 남자였다.
린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엇! 클린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식겁했다.
당장에 난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와, 대박 코스프레인데?”
“그러게 눈만 제대로 가렸다면, 완벽했을 거야!”
“싸인이나 한 장 받을까?”
클린의 인기를 실감하는 헤//해프닝 정도로 끝이 났다.
“어머! 태가 나네, 태가 나! 이건, 완전 언니 거다. 오빠, 이런 건 꼭 사 줘야 해! 그래야 사랑받아!”
옷가게 주인 여자의 화려한 말솜씨에 결국 사게 된… 물론, 전날 본 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난 후에는 아예, 클린이란 말을 듣지도 못했다.
뭐, 여전히 뭇 남성들의 시선… 린을 향한 찬사와 함께 나를 향한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분 째지는걸? 이래서 예쁜 여자랑 다녀야 하나 보다. 흐흐!’
그런 관심과 시선들이 나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린과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싶었다.
“뭐 더 필요한 건 없어? 마음대로 다 골라! 내가 아주 그냥 화끈하게 쏠라니까!”
붕 뜬 기분에 허세를 부리며 내질렀다.
그에, 진화한 린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어때요? 저것도 예쁘네요.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아기… 아구아구! 그래, 이 언니가 넌 꼭 데려갈게!”
정말로 인간 같은… 완벽한 인간 여자처럼 변해 버린 린이었다.
….
진화를 통해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부분도 다수 있었다.
나를 주인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나 동료로서 오식이를 대하는 것은 그대로였다.
또한, 내 의지대로 린을 카드 속에 봉인하고 다시 소환해 낼 수 있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카드 속에 봉인되는 걸 답답해하고, 싫어했다.
전투나 사냥에 임하는 자세도 변함이 없었다.
던전 밖에서는 영락없이 예쁜 걸 좋아하고, 자신을 꾸미기에 공을 들이는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던전 안에서는 과감하고, 터프하며, 살벌하기까지 한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줬다.
아니, 처음 같이 쇼핑을 하던 날 사준 전투 타이츠와 방어구 등을 착용한 덕에 전보다 더욱더 강한 여전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줬다.
“진화라… 좋구만? 허허!”
뭘 몰라서 처음에는 마음고생을 좀 진하게 했지만, 여러모로 좋아진 것들이 많기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의 궁극적인 장점이자 진정한 특징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기에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랬다.
진정으로 놀라고, 만족할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것을 확인할 날은 바로 코앞… 근 미래라고 표현하기에도 너무 짧은 앞날에 있었다.
* * *
“이제 슬슬 2층으로 올라가 보려 하는데 어때?”
저녁 식사를 하며, 오식이와 린에게 말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반응이 잠시 이어졌다.
뭐, 늘 이런 식이긴 했다.
내가 가자고 하면 가는 것이고, 말자고 하면 또 마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저주받은 저택 2층의 최소 입장 레벨은 25였다.
클리어 레벨은 30을 훌쩍 넘어야 했다.
현재 내 레벨은 26이었고, 오식이는 28이었으며, 린은 20레벨이었다.
아직 저택 2층을 클리어 할 마음은 없었다.
뭐, 수치상으로만 봐도 클리어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냥 맛만 좀 볼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2층에서 레벨도 올리고, 클리어를 목표로 한 적응과정을 거칠 계획이었다.
미리 확인하고, 파악해 둔 저택 2층의 정보와 공략법대로라면, 충분히 비벼 볼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 그렇게들 알고 있어!”
어차피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터라, 짧게 브리핑을 하고는 자리를 끝냈다.
….
그날 밤.
막 잠이 들려던 찰나, 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주무세요?”
“어?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입구를 열었다.
린이 고개를 한 번 꾸벅하고는 머뭇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내 물음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를 끌고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들어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드려도 됩니다.”
“어, 그래.”
살짝 민망함이 들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린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틈을 준 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들어보니까, 주인님은 2층에 누가 있는지 알고 계시는 것 같던데요. 혹시, 그런가요?”
“응, 알고 있어. 로레나… 저택의 안주인.”
“아… 맞습니다. 정확히 알고 계셨군요.”
순간, 린의 얼굴이 그늘이진 것처럼 어두워졌다.
뭔가 걱정스러움이 묻어난 느낌이었다.
“그건 왜 묻는 거지? 내게 말해 줄 것이라도 있는 거야?”
내 물음에 린이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러다가 전보다 더욱더 조심스럽고, 어두운… 아니, 두려운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사실… 저는 무섭습니다.”
“응? 뭐가?”
“로, 로레나 님이요.”
말뿐이 아닌 듯했다.
로레나의 이름을 말하는 린의 입술은 물론, 손끝도 바들바들 떠는 것이 너무나 진심인듯했다.
그런 린의 모습과 상태를 보며,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자고로 마님과 하녀의 관계라는 게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
“네?”
“어차피 로레나와는 싸우지 않을 테니까.”
린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피식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는 전투에 참여시키지도 않을 거야. 레벨도 안 되는데, 위험한 곳에 데려갈 수는 없잖아? 물론, 카드 속에서 함께 하기는 하겠지만.”
“아아….”
아직 앞선 얘기에 해답을 주지 않았기에 린이 반쯤만 이해한 듯 반응했다.
“그게 그렇게 걱정됐어?”
“네. 여전히….”
“저런, 걱정에 잠도 못 자겠구만? 키킥!”
놀리듯이 말했다.
그에, 살짝 발끈한 린이 조금 큰 소리로 답했다.
“로레나 님은 정말로 무서운 분이라고요. 주인님이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더요.”
“안다니까?”
“그런데 어찌….”
“그래서 아직 상대할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물론, 때가 되면 맞붙을 테지만.”
“하아….”
린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가 린도 그렇고, 나도 잠을 이루지 못할 듯싶었다.
해서, 저녁에 대충 마무리 지었던 저택 2층의 공략… 나름 스페셜하다고 할 수 있는 계획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내 계획을 모두 들은 린이 놀람의 반응을 보였다.
“와, 그런 방법이… 주인님은 언제나 다 계획이 있으시네요? 대단하세요.”
“뭘 그 정도 가지고… 하하하!”
린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크게 웃었다.
* * *
다음 날.
“자, 가자!”
준비를 마치고는 던전 안으로 향했다.
곧장 정원을 지나 저택 1층으로 넘어왔다.
린은 나와 동행하며 모든 게이트를 통과했다.
오식이는 그럴 수 없기에 저택 1층에 도착해서야 소환했다.
빠르게 클린을 불러냈고, 능숙하게 클린 웨이브를 끝냈다.
스르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저택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린, 이제 쉴 시간이다.”
“네, 주인님. 부디 몸조심하세요.”
“알았어!”
“오식 씨도 다치지 말아요.”
“크륵!”
짧은 인사를 마친 후, 린을 카드 속에 봉인했다.
“오식이 넌 바로 다시 봐야 하는 거 알지?”
―안… 다… 형… 님….―
오식이의 말에 피식하고는 이내 녀석도 봉인했다.
“후우우….”
살짝이 긴장되는 마음과 설렘을 긴 한숨으로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큰 걸음으로 게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간다!”
작고도 짧게… 그러나 힘있게 외치고는 게이트 속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