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5)
린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당장에 뛰어갔다.
“그러게 그딴 걸 왜 먹고 지랄….”
타박과 나무람을 날리고, 이제 막 린의 몸에 손이 닿으려던 찰나.
린이 강렬한 빛에 휩싸였다.
“크아아앗!”
깜짝 놀라서는 비명과 함께 앞으로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내 묵직한 충격이 온몸을 때리며, 나를 뒤로 밀어냈다.
힘에 밀리다 못 해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덥석!
다행히 뒤따르던 오식이가 뒤로 날아가던 나를 안전하게 붙잡았다.
그러더니 두툼한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녀석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린에게서 터져 나온 빛은 더욱더 강렬하게 번쩍거렸다.
발아래에서 시작된 것 같은 바람도 거세게 휘몰아쳐 댔다.
휘이익….
번쩍번쩍!
“치잇! 이게 무슨 일이야?”
영문도 모르겠고, 심상치 않음도 깨달았다.
오식이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오식아! 웅크리기닷!”
“크륵!”
녀석의 대답을 듣고는 몸을 아래로 바짝 숙였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기울여 바닥을 굴렀다.
왼쪽으로 작게 한 번… 크게 한 번….
이어, 뒤로 다시 몸을 굴렸다.
데굴데굴….
역시나 두 번을 굴러서는 완전히 오식이에게서 벗어났다.
한 번 더 옆으로 굴렀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였다.
“크르륵!”
오식이가 이제 막 웅크리기를 끝냈다.
녀석의 뒤로 완벽히 숨은 뒤, 나도 웅크리기를 시전했다.
“또, 똥꼬에 힘!”
꽈아아악!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돌처럼 몸이 단단해졌다.
이제는 뭐가 날아들어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오버였다.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대상(린)의 호감도가 10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응?’
갑작스럽게 들려온 신비한 목소리에 반응했다.
이어진 내용에는 더욱더 의아해졌다.
[대상(린)이 진화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에에? 지, 진화 모드라고? 그. 그게 뭔데?”
의문이 연달아 생겼다.
영문도, 이유도 모를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리이이이이이이이인!”
린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길게 질러댔다.
신비한 목소리가 상황을 알려왔다.
[대상(린)의 진화가 50% 이루어졌습니다.]
[대상(린)의 진화가 60% 이루어졌습니다.]
[대상(린)의 진화가….]
약간의 틈을 주며, 계속해서 %가 올라가고 있었다.
린의 비명도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리이이이이이이이이인!”
100%가 되기 전에 린이 잘못 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처절하고, 힘겹게 느껴졌다.
[대상(린)의 진화가 90% 이루어졌습니다.]
뭔지 몰라도 곧 끝이 날 듯했다.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웅크리기도 푼 상태였다.
전할 수 없는 응원을 전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거의 끝이다. 조금만 참아!’
하지만….
남은 10%는 끝내 채워지지 못했다.
‘뭐지? 한참이나 지났잖아?’
시간상 100%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찢어지던 린의 비명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걱정과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굴렀다.
얼마 뒤.
번쩍이며 주위를 물들이던 빛이 사라졌다.
뭔가 마무리를 지었다는 신비한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풀썩!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예상되는 소리였다.
당장에 오식이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곧장 린을 찾았다.
역시나 린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린!”
린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근처까지 가서는 까지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무릎 슬라이딩을 선보였다.
바로 쓰러져 있는 린을 부둥켜안았다.
“괘, 괜찮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린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다.
“오식아! 불 좀 더 피워! 무, 물도 좀 가져오고!”
내 명령에 녀석도 곧장 움직였다.
조심스레 소매로 린의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아 줬다.
―가, 감사합니다린.―
린이 무척이나 힘겹게 말을 전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아니야. 말하지 마. 그냥 쉬어.”
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린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고 보면 됐다.
“카드로 들어가 있을래?”
―아닙니다린. 이대로….―
“어어, 그, 그래! 그냥 있어.”
모닥불 옆에 가만히 누워 있는 린을 걱정스럽게 쳐다만 봐야 했다.
‘나갈 수는 없겠어. 그렇다면….’
아무래도 던전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할 듯싶었다.
린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방법도 떠올렸다.
“오식아! 린 좀 잘 보고 있어!”
오식이를 향해 빠르게 말하고는 급히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러고는 동굴 입구 옆에 설치해 둔 린의 전용 텐트를 챙겨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지? 아무 일도 없었지?”
10분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했기에 바로 소리치며 물었다.
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오식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전해 왔다.
―괜… 찮… 다… 형… 님….―
“그래, 잘했어!”
곧장 텐트를 폈다.
빠르게 안을 정리하고는 린을 옮겼다.
텐트의 입구는 살짝 열어 둔 채, 근처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린.―
린의 힘겨운 인사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았어. 다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 그리고….”
다정함과 걱정이 반씩 깃든 말을 전하다가 끝내 말끝을 흐렸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고, 소리가 나지 않게 끙끙거리기도 했다.
“크륵….”
오식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혹시라도 다쳤을 때 먹으라고 줬던 육포였다.
“이걸 남겨 놨었어? 근데, 이걸 왜….”
벌써 다 먹었을 거라고 여겼다.
늘 비상시에 먹으라고 한마디씩 타박했었는데, 내 말을 들어준 것이 살짝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린… 아… 프… 다… 아… 프… 면… 먹… 는… 다… 먹… 으… 면… 낫… 는… 다….―
오식이로서는 최선을 다한 완성형 문장을 선보였다.
이것도 조금 감동….
하지만, 그보다는 식탐의 최고봉인 녀석이 자신의 먹을 것을 내놨다는 것에 더욱더 감동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오식이가 이전에도 먹을 것을 내놓은 적이 있던 게 생각났다.
플로리에게 당했던 자신을 걱정해 주고, 치료제인 라토의 잎까지 구해다 준 냥이에게 고기를 준 적이 있었다.
“자식… 의리 하난 끝내주네!”
“크륵….”
“괜찮아. 린은….”
린이 녀석과 다르다는 걸 말해 주려다가 그만뒀다.
설명이 길어질 것 같기도 하거니와 쉽게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또한, 녀석이 베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해서, 잠시 고민한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린이 먹을 건 여기도 있어. 그러니 뒀다가 나중에 네가 먹어.”
내 말을 들은 오식이가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다가 텐트 앞에 슬쩍 육포를 내려놓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린… 오식이도 저렇게 걱정한다. 그러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일어나야 해. 알았지?”
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아니면 잠이 든 것인지,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
부스럭… 부스럭….
이상한 소리에 얼핏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아직 어두운 밤… 아니, 새벽이었다.
‘아, 언제 잠이 들었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꺼풀에 힘을 주고는 감았다 뜨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린이 잠들어 있는 텐트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린?”
작게 린의 이름을 불렀다.
곧장 대답이 날아왔다.
―네, 주인님.―
이어, 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텐트의 얇은 입구를 걷고 나오는 린의 모습과 상태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아직 가시지 않은 걱정의 말을 뱉어 냈다.
“이제 좀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린.―
“다행이다.”
막 기뻐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침착한 느낌이랄까?
텐트를 벗어난 린이 내 앞에 섰다.
그러더니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주인님, 감사했습니다린.―
“어, 그래… 어? 뭐라고?”
린이 한 감사의 인사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어째 말의 뉘앙스가 과거형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반응에 살포시 미소를 띤 린이 다시 말했다.
―그동안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린.―
“그동안?”
―네.―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말해? 마치, 어디라도 가는 사람처럼….”
―그렇습니다린.―
“엥?”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린.―
진짜였다.
린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뜬금없고, 갑작스럽기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상황 파악에 힘을 쏟았다.
“떠, 떠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진화….―
“??”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린. 그러니 이제 떠나야만 합니다린.―
무척이나 차분한 린의 말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알고 있는 ‘진화’란 단어의 뜻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했다.
전혀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는 뜻이나 의미는 떠오르지 않았다.
“진화라며?”
―맞습니다린.―
“진화가 완료되면, 떠나야 한다는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린.―
“왜? 아니, 그런 게 어딨어?”
―그것이 이 세계의 룰입니다린.―
점점 더 흥분해 가는 나와 달리 린은 너무나 침착했다.
더불어, 평소 성격상 농담을 하는 타입도 아니기에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룰이라고? 그런 건 진작 말을 해 줬어야지. 그럼, 내가 애초에 들어주지도 않았을 것 아니야!”
―죄송합니다린.―
“아, 몰라! 안 돼! 절대 그럴 수 없어!”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 빠르게 말을 토해 냈다.
린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느낌을 전해 주는 듯했다.
그에, 치솟던 흥분이 확 가라앉았다.
앞선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 진짜로 가야 해?”
―그렇습니다린.―
“언제?”
―지금입니다린.―
린이 더욱더 기가 막힌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룰이니 뭐니 해도 이건 정말 너무한 듯싶었다.
어떻게든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 봐도 전혀 되지가 않았다.
또한, 린도 시간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스윽….
린이 뒤로 조용히 물러났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스르르….
린의 모습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앗!’
그제야 사태와 상황이 확 하고 와닿았다.
“아, 안 돼….”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목구멍이 막힌 듯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몸도 좀 뻣뻣해진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린의 모습은 빠르게 흐려지고 있었다.
부들부들….
현재의 내 심정을 대변하듯 앞으로 뻗은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점점 더 답답해져 가는 목에 힘을 주고는 간신히 말을 뱉어 냈다.
“아, 안 돼… 가, 가지마….”
그러나 린은 전혀 아랑곳없이 얼굴에 미소만 띤 채 사라져 갔다.
마지막 힘을 다해 린의 이름을 불렀다.
“리, 리이이인! 가지마아아아아아아!”
번쩍!
격한 절규와 힘겨움에 몸이 크게 움찔했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눈이 번쩍 떠졌다.
직전까지는 주위가 캄캄했었는데, 지금은 아침 해가 뜬 채 밝아 있었다.
‘어? 뭐야?’
어리둥절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반쯤 닫힌 텐트의 입구를 젖히며 안을 살폈다.
“린….”
텐트 안에 린은 없었다.
빠르게 주위도 살폈다.
코를 골며 뻗어 있는 오식이만 보였다.
그 어디에서도 린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 진짜로 간 건가?”
허탈함이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