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4)
사박사박….
린이 얌전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머릿속에 차오르는 물음표를 견디며 기다렸다.
내 앞에 멈춰 선 린이 손에 든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내밀었다.
스윽….
내게 건네준다는 의미 같긴 했지만, 여전히 의문인 채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린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에….”
뭐를 해야 할지 몰라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린도 말을 건넸다.
―이것들을 다시 제게 주세요린.―
“다, 다시?”
반문을 내비치던 그 순간, 갑작스레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상(린)이 서약의 주인에게 ‘메이드 복’과 ‘앞치마’의 소유권을 요청합니다.]
“엇!”
놀람과 동시에 린을 쳐다봤다.
린의 입가에는 더욱더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당장에 들고 있던 것들을 린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린.―
린이 무릎을 살짝 굽히며,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받아들었다.
피이잉!
밝은 빛과 함께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서약의 주인이 허락하여 메이드 복과 앞치마의 소유권이 대상(린)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신비한 목소리가 끝나고도 빛의 반짝임은 계속됐다.
‘눈뽕’을 일으킨다거나 시야를 아예 멀게 하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받아든 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흠….’
잠시 후, 반짝이던 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눈앞에 있던 린의 모습도 바뀌어 있었다.
“….”
온전히 클린과 똑같은 복장에 그동안 얻었던 낡은 빗자루까지 들고 있는 모습에 잠시 말을 잃었다.
린이 다시금 무릎을 살짝 굽히며 내게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린.―
“어, 어….”
더듬거리며 간신히 답했다.
이어,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
당장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알아내지도 못한 채 저택을 빠져나왔다.
정원을 빠져나오는 동안, 어찌 된 일인지 슬쩍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모호하기만 했다.
―제 것인 듯, 제 것 아닌, 제 것 같은 것들을 온전히 갖고 싶었습니다린!―
그렇다는데, 더 묻기도 뭐해져서는 코끝만 찡긋거렸다.
….
던전을 빠져나오기 전에 평소처럼 식사를 하기로 했다.
“린리린, 린리린린….”
저녁을 준비하는 린은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려댔다.
오식이는 린의 콧노래에 빠진 듯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녁 식사에 행복해하는 거였을지도….
나는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빗자루나 먼지떨이는 안 그랬는데….’
클린에게서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청소 도구는 신비한 목소리도, 소유권의 요청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얻고, 받고, 땡이었다.
뭐, 그건 그냥 그렇다 칠 수 있었다.
문제는 메이드 복과 앞치마란 아이템은 아예, 얻을 수조차 없는 것들이란 사실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들여다보고, 파낸 정보들에 의하면 분명히 그랬다.
‘흐음… 그래서 그런 건가?’
그렇기에 소유권 요청을 하거나 할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에 이르렀다.
‘그럼, 그것들을 얻는 방법은?’
얻을 수 없는 아이템을 얻는 방법이라니….
내가 하고도 너무나 모순적인 질문에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그러다 문득, 린이 했던 이상한 행동들을 떠올렸다.
“음….”
뭔가 감이 좀 잡히려 했다.
“그래, 그런 식이라면….”
당장에 린을 불렀다.
“린!”
―네, 주인님.―
“아까 말이야… 일부러 클린을 죽이지 않은 거야?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얻기 위해서?”
―네, 그렇습니다린.―
내가 떠올린 생각이 옳았다.
다른 던전들과 다르게 저주받은 저택의 괴물… 정원사 놈들이나 클린들은 죽음과 동시에 재가 되거나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절대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는 소리다.
시체뿐만이 아니다.
마정석과 정해진 아이템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그렇기에 정원사 놈들의 사기템인 거대 전지가위를 절대로 얻을 수 없고 말이다.
해서, 린은 클린을 죽이지 않고, 기둥 뒤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벗겨냈지 싶었다.
‘앗! 그러고 보니….’
생각 중에 잠시 음흉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빠르게 고개를 저어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털어 내고는 다시 린에게 물었다.
“그때까지…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메이드 복과 앞치마를 주고서 다시 건네받을 때까지는 클린이 살아 있었겠지?”
―네, 그렇습니다린.―
“그래… 클린이 죽어 버렸다면, 그것들도 사라졌을 테니까.”
작게 흘린 혼잣말에 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거였군….”
어느 정도 의문이 가셨다.
그렇다는 건 아직도 궁금한 게 많다는 얘기다.
“근데, 왜 그것들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싶었던 건데?”
내 물음에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야…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린은 이미 들었던… 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또 꺼내려 했다.
당장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문을 막았다.
“아, 알았어. 그만….”
린이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후훗! 아무래도 나머지를 다 알아내는 건 무리겠어….’
아마도 그럴 듯싶었다.
―주인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린.―
린이 말을 전함과 동시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래, 어차피 모르는 게 한두 개냐? 그냥 밥이나 먹자!”
이성보다는 본능.
의문이 조금 풀렸기 때문일까?
어느새 궁금증보다는 허기짐이 더 커져 있었다.
….
식사를 마쳤다.
“으으, 이제 가서 좀 쉴까?”
배가 부르니, 쉬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오식아! 빨리 정리해라. 나가자!”
“크륵!”
내 명령에 오식이가 모닥불을 끄려 했다.
그러자 린이 다급히 나섰다.
―아, 잠시만요린.―
린의 외침에 나와 오식이가 동시에 그녀를 쳐다봤다.
린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린?―
“응? 왜 그러지?”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린.―
“준비? 무슨 준비?”
―그건….―
린이 비밀이라는 듯 말을 아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못 들어줄 것도 아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감사합니다린.―
왠지 신이 난 듯 반응한 린이 모닥불 곁에서 뭔가를 꼼지락거렸다.
잠시 후.
“크륵?!”
오식이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독특한 향이 날아들며 코를 자극했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난생처음 맡아보는 향이었고, 린이 꼼지락거리는 모닥불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린! 그게 뭐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목과 고개를 빼고는 린의 어깨너머를 살피기도 했다.
뭔지는 보이지 않았고, 독특한 향은 점점 더 진해져만 갔다.
―이제 다 됐습니다린.―
여전히 비밀인 듯 말한 린이 잠시 후 내게 그것을 가져와 내밀었다.
린이 들고 있는 것은 컵에 담겨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대고 있었다.
“응? 차?”
―그렇습니다린.―
컵을 받아들었다.
바로 냄새부터 맡았다.
계속해서 후각을 자극하던 독특한 향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냥은 나름 괜찮았는데, 코를 대고 맡으니 영 별로였다.
―여기… 오식 씨 것도 있어요린.―
린이 오식이에게도 차를 건넸다.
녀석도 나처럼 킁킁대며 냄새부터 맡았다.
그러고는 이내 인상을 구겼다.
“이게 뭐지?”
컵 안에 담긴 진한 갈색의 액체를 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컵에 차를 따른 린이 답했다.
―로믄 잎으로 우려낸 차입니다린.―
“로믄? 아!”
반문하던 중, 번쩍하고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린의 프로필에서 봤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 적혀 있던 ‘로믄 티’와 ‘로믄 쿠키’였다.
“오, 이게 그거구나.”
컵 안을 다시금 들여다봤다.
린의 설명이 조금 더 이어졌다.
―맛과 향이 진하고, 피로를 풀어 주는 좋은 차입니다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람을 불어 차를 조금 식혔다.
“후, 후….”
그 사이, 오식이가 먼저 차를 마셨다.
“후루룹! 꿀꺽… 크륵! 크르르르르르….”
그러고는 이내 괴로워했다.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제 목을 부여잡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빵 터져 버렸다.
“하하하! 야, 인마. 이 뜨거운 걸 식히지도 않고 마시니까 그렇지! 에휴, 식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녀석을 비웃고는 나름 기품의 뉘앙스를 풍기며, 로믄 차를 마셨다.
“호로록….”
제법 쌉쌀한 맛이 혀를 자극했다.
눈까지 감은 채, 그 맛을 잠시 음미하다가는 목구멍으로 넘겼다.
“꿀꺽… 음, 좋은데?”
정말이다.
거기까지는 진심으로 좋았다.
하지만….
후속타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
목이 따끔거렸다.
이내 혀도 따끔… 아니, 제법이라고 여겼던 쌉쌀함이 굉장한 쓴맛으로 변하며 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투욱….
들고 있던 컵을 그대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어억… 크으으… 으아아아악!”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괴로워했다.
겨우 한 모금이었을 뿐인데, 좀처럼 그 맛과 충격이 가시지를 않았다.
‘서, 설마….’
순간, 린이 나와 오식이를 독살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
―앗! 주인님, 괜찮으십니까린?―
린이 황급히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오랜만에 린의 포근하고, 풍만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품에 안긴 건 좋았지만,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크으으….”
가시지 않는 괴로움을 한참이나 겪다가 가까스로 진정이 되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린.―
린이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짜증과 함께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사실, 로믄 차의 지랄 같은 여운이 남은 탓에 뭐를 하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다.
….
“으으….”
“크르르….”
나와 오식이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며, 낮게 소리를 냈다.
“호로록… 리이인….”
지랄 같은 로믄 차를 마시며,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미소와 반응의 린을 보면서였다.
“저걸 어찌… 아우, 생각만으로도 혀가 마비될 것 같아. 으으!”
“크르르… 크윽!”
오식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린이 준비한 것은 로믄 차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프로필에 적혀 있던… 로믄 차와 세트인 로믄 쿠키도 있었다.
차야 그렇다 치지만, 대체 어디서 쿠키를 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당연히 물어봤다.
“대체, 이 지랄 같… 아니, 이 차랑 쿠키는 어디서 난 거야?”
린이 대답했다.
―제가 늘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린.―
“에? 근데, 왜 그동안 한 번도 안 꺼냈어?”
내 물음에 린이 싱긋 웃고는 제 앞치마의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아! 거기 들어 있었던 거구나?”
―네, 그렇습니다린.―
그랬다.
클린에게서 얻은… 아니, 강제로 탈의시켜 빼앗은 앞치마에 그것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린의 설명이 이어졌다.
―로믄 차와 쿠키는 크로니엘 가의 안주인이신 로레나 님께서 즐겨 드시는 간식입니다린. 물론, 그것들을 준비하는 것은 제 일이고요린.―
“음….”
―또한, 로믄 잎은 굉장히 비싸고, 귀한 재료입니다린.―
비싸고, 귀하면 뭐 할까?
아무리 그래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린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차를 우려낸 로믄 잎으로 쿠키를 만듭니다린. 잘 만들어진 쿠키는 로레나 님께 가져다드리고, 남은 부스러기들은 이렇게 모아서 제가 먹습니다린.―
왠지 씁쓸함이 담긴 듯한 린의 마지막 말에 짠한 감정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그런 내 감정과 표정을 읽었는지, 린이 애써 밝게 말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린. 제가 만든 로믄 쿠키는 정말로 맛있으니까요린. 게다가 일부러 쿠키를 망쳐서 실제로 먹는 양은 제가 더 많답니다린.―
말을 마친 린이 쿠키를 살짝 들어 보이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정말로 맛있게 오물거리며 먹었다.
물론, 나는 지랄 같은 맛이 떠올라 인상을 구겼다.
“크르르….”
오식이도 그랬던 모양인지 옆에서 바로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
그에, 나도 모르게 피식했다.
그때였다.
“오물오물… 호로록… 꿀꺽… 리, 리이인….”
쿠키에 이어 차까지 마신 린이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좀 전에 나와 오식이가 보였던 그런 느낌의 반응이었다.
“리,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