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79)
내가 날린 더블샷을 튕겨 낸 첫 번째 놈과 달리, 두 번째 놈은 화살을 아예 피해 버렸다.
그것도 그리 크지 않은 움직임으로 말이다.
뭐, 거리가 좀 있기에 그럴 수는 있었다.
문제의 사건은 그 다음부터였다.
화살을 완벽히 피하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오식이를 향해 달려오던 놈이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놈이 바닥으로 꺼지거나 사라진 줄 착각했다.
아니었다.
앞으로 고꾸라진 놈은 어이없게도 자신이 들고 있던 거대 전지가위에 목이 뚫려 죽고 말았다.
직접 눈으로 목격했지만, 정말로 황당하고,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놀라움은 배가 됐다.
더군다나 놈이 난데없이 앞으로 고꾸라진 이유마저도 우연 같은 일이었다.
바로 직전에 내가 날렸던 파탄의 흔적.
잔디밭에 만들어진 작은 구덩이가 그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냥 본 것도 아니고, 가늘게 뜬 눈을 시전한 채라 확대하여 정확히 본 사항이었다.
어쨌거나.
우연이 만들어 낸 사고로 갑작스레 켜진 빨간 불이 우연에 의해 별 탈 없이 꺼져버렸다.
아직 오식이가 첫 번째 놈과 1:1로 붙어 사투를 벌이는 중이기는 했지만, 늘 있는 일이고 그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르르….”
“키익!”
힘에 눌려 바닥과 한 몸이 된 놈은 오식이의 무식한 발길질에 밟혀 끝내 목숨을 다하고 사라졌다.
….
잠시 사냥을 멈추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놈의 거대 전지가위를 손으로 붙잡는 통에 생긴 오식이의 손바닥 상처는 육포 몇 장에 가벼이 수습됐다.
그 모습을 지켜본 린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쩜…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린.―
“크륵!”
그에, 오식이는 자랑하듯 상처가 아문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스윽….
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오식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린이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려 했다.
“린, 어디가?”
―아, 마정석을 수거하러 갑니다린.―
역시나 제 할 일에 책임감이 넘치는 타입이었다.
그런 린을 만류했다.
“아니야. 내가 가 볼 거야. 좀 더 쉬고 있어.”
―아닙니다린.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린.―
“뭐 좀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런 거야.”
―아, 그러시다면… 쉬겠습니다린.―
린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
조금 더 쉬고 나서 정원으로 향했다.
오식이는 그 자리에 남았고, 린은 한사코 나를 따라나섰다.
“흠….”
두 번째 놈이 남기고 간 마정석을 주워서 들고는 바닥의 구덩이를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파탄으로 인해 제법 둥글게 패인 구덩이의 앞부분.
그곳에 놈의 발이 걸렸음을 확인해 주는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웃긴 놈인 건지 멍청한 놈인 건지 모르겠네… 쩝!”
뭐, 운이 엄청나게 없는 놈인 건 확실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오식이도 다시 사냥에 들어갔다.
바닥 쓸기 연습을 이어 가야 했지만,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분명히 재차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었다.
….
그날 밤.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여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주인님, 잠자리가 불편하십니까린?―
린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아니야,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피곤할 텐데 얼른 자.”
―네….―
조용히 대답한 린이 동굴 입구 옆에 마련해 준 자신의 텐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얌전히 숨죽이고 있을 뿐, 잠을 자지는 않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저기… 린.”
―네, 주인님. 말씀하십시요린.―
“혹시, 다음 레벨 업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을까?”
―그건 저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린.―
“그렇지? 그럼, 마지막 레벨 업이 언제였지?”
―음… 8일 전이었습니다린.―
“8일 전이라….”
평균적인 수치를 따졌을 때, 곧 레벨이 오를 타이밍이었다.
‘그래, 하루 이틀쯤이야….’
오랜 생각을 정리하고는 빨리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 * *
다음 날.
일찌감치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잠을 설친 탓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하는 확인 작업을 생각하며, 부랴부랴 몸을 움직였다.
철창문을 넘어 돌바닥 길로 들어섰다.
곧장 정원 안쪽으로 향했다.
어제의 사건이 있었던 작은 구덩이 근처까지 와서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식아, 잘 봐!”
“크륵….”
오식이에게 집중하도록 하고는 바닥 쓸기 연습용 쇠막대기를 이용해 멀쩡한 잔디밭을 파냈다.
옆에 있는 것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깊이는 좀 더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되겠어… 잘 봤지?”
“크륵.”
“이제 너도 만들어 봐.”
“크륵?”
고개를 갸웃한 오식이가 새로운 구덩이를 하나 파냈다.
모닝스타의 손잡이를 이용하고, 두꺼운 손가락과 커다란 손을 사용하니, 실로 금방이었다.
“잘했어!”
“크륵!”
칭찬과 함께 계속해서 구덩이를 만들도록 했다.
오전 내내 작업한 결과, 멀끔하던 잔디밭이 보기 흉할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는 매우 흡족한 상태였다.
“좋아, 준비 끝!”
밑 작업을 마치고는 다시 돌바닥 길로 나왔다.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너희들은 철창문 앞으로 가 있어.”
―네, 주인님.―
“크륵!”
내 명령에 자리를 이동한 오식이와 린을 확인하고는 정원의 장식물…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에 활짝 핀 꽃 덤불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쇠막대기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휘이익!
쇠막대기에 맞은 꽃들이 자그마한 꽃잎들을 나풀거리며 흩날렸다.
이어, 여기저기서 정원사 놈들의 기괴한 소리가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
못해도 십여 마리는 족히 넘을 듯했다.
“이크!”
재빨리 걸음을 옮겨 오식이와 린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그런 뒤 좌우를 빠르게 살피며,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놈들을 확인했다.
“꼴깍! 잘 돼야 할 텐데….”
마른침을 삼키고는 기대에 충족되는 일이 벌어지기를 나직하게 흘려 냈다.
이미 내가 무슨 짓을 꾸민 것인지 눈치를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며 벌어졌던 어제의 사건을 임의로 재연해 낼 생각이었다.
해서, 일부러 잔디밭 곳곳에 구덩이를 파낸 것이었다.
우연이라도 좋고, 뭐라도 좋으니, 놈들이 구덩이를 밟고서 넘어지고, 알아서 죽어 나가기를 고대했던 것.
굉장히 엉뚱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제의 일이 우연이었던 터라, 가능성이 희박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의외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뭐,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계획을 철회하고, 본래 대로 돌아가면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 엉뚱한 계획의 결과가 내 생각 대로 되고 말았거든.
“캬아아아아아… 끼익?”
“켁! 끄에엑!”
“캬아! 끄으윽!”
우리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들던 놈들이 얼마 뛰지도 못하고는 구덩이에 발이 빠지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제가 들고 있던 거대 전지가위에 찔리거나 목이 댕강 잘리는 놈은 물론, 저희끼리 엉켜 찌르는 일도 있었다.
넘어지면서 전지가위를 놓쳐 버린 놈들은 완전히 우리 편이나 다름이 없었다.
벌벌 떨며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놈들을 방해하기 일쑤였고, 뛰다가 넘어지는 놈들에 의해 맥없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물론, 온전한 몸으로 정원을 넘어 돌바닥 길까지 온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타이밍을 재다가 잽싸게 철창문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간 우리를 향해 처절하고, 억울한 발악의 모습만을 선보여야 했다.
“좋았어! 이제 하나만 더 확인하면 된다.”
1차 계획이 성공했음에 쾌재를 불렀다.
이후, 철창문 밖에서 30여 분을 기다렸다.
룰 대로 놈들이 홀연히 사라졌다.
“가자!”
다시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같은 짓을 반복했다.
두 번째부터는 훨씬 더 많은 꽃과 풀 등을 날려 버렸다.
불러내는 놈들의 수가 많을수록 상황은 더욱더 아비규환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번에도 내 판단은 적중했다.
“꾸에엑!”
“끄엑!”
“캬아아악!”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무사히 정원을 빠져나오는 놈들의 수가 적어졌다.
얼마 뒤….
진정으로 원하고, 확인하고자 했던 일이 이루어졌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린의 레벨이 오른 것이다.
“대애애박!”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른 것처럼 대박이었다.
딱히 하는 일도 없이,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레벨 업이라니.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쉽고 간단하게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
다음 날.
A 구역으로 향했다.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밤사이, 조금 더 원활하고, 효율적인 방법과 계획을 떠올렸다.
뭐, 지금도 충분했지만, 조금만 수정해도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미루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는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곧장 던전으로 향했다.
….
만지작만지작….
철창문 밖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A 구역에서 사 온 물건들을 주물럭거렸다.
그런 나를 오식이와 린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님, 무엇을 만들고 계신 건가요린?―
“응? 아아, 덫… 트랩을 만들고 있어.”
그랬다.
정원사 놈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기 위한 트랩을 제작 중이었다.
그렇다고 뭐,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튼튼한 낚싯줄과 기다란 말뚝 두 개면 충분하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다.
“자, 이렇게 낚싯줄을 둥글게 몇 바퀴 감아준 다음에 풀리지 않게 묶고서… 양쪽 끝을 말뚝에 하나씩 연결하면 끝이야. 어때? 간단하지?”
―네,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여요린.―
“설치는 더 쉬워. 그냥 이렇게 해서 말뚝을 땅에 박아 주기만 하면 되거든.”
―음…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린?―
린이 미심쩍음을 짙게 표했다.
히죽 웃고는 답해 줬다.
“이래 보여도, 제법 검증된 기초 트랩 중 하나라고.”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잠시 후에 결과를 보고 나서 놀라지나 말라고!”
―네, 알겠습니다린. 저도 좀 도울게요린.―
“응? 아아, 그래 주면 나야 땡큐지!”
린의 도움을 받아 꽤 많은 트랩을 만들어 냈다.
“휴우, 끝났다. 수고했어.”
―주인님도 수고하셨습니다린.―
“이제 설치하러 가자. 오식이는 저쪽에 있는 것들 들고 따라와!”
“크륵!”
철창문을 넘어 정원으로 들어왔다.
“린은 이것들을 군데군데 박아 줘.”
―알겠습니다린.―
제작한 간이 트랩을 린에게 넘기고는 오식이와 함께 반대쪽 정원으로 들어갔다.
“조심조심… 괜히 다른 것들 건들지 말고.”
오식이가 들고 있는 것은 제법 큰 나무 말뚝들과 밧줄이었다.
이것들로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간이 트랩과 비교될 커다란 트랩을 만들 생각이었다.
방법이야 역시나 단순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것… 그냥 거리를 두고 나무 말뚝을 땅에 박은 뒤에 발목 높이쯤으로 밧줄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쾅! 쾅! 쾅!
모닝스타를 이용해 말뚝들을 박았다.
그 후 밧줄들을 연결했다.
밧줄이 꽤 굵어서 눈에 확 띄기는 했지만, 얼기설기 거미줄처럼 바닥을 덮고 있는 모습은 나름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으려나?’
솔직히 결과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