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78)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오오, 축하해!”
―감사합니다린. 이 모든 게 주인님 덕분입니다린.―
며칠이 흘렀다.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린은 벌써 12레벨이 되었다.
뭐, 오식이의 특급 버스를 탄 것도 있고, 경험치가 두 배라는 던전의 특성 때문에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긴 했다.
나는 아직 먼지 털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한 번 감을 잡은 덕에 열에 일곱쯤은 성공하는 중.
하지만, 몇 번을 성공해야 스킬로 추가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과 실전에서는 화살이 아닌 검을 사용해야 하기에 손목과 팔을 비롯해 몸의 근력까지 키우느라, 비지땀을 빼고 있었다.
오식이는 여전했다.
거의 기계처럼 정원사 놈을 잡아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사냥 후에 정원사 놈이 떨어뜨린 마정석 수거를 린이 대신해 준다는 것이었다.
―수고했어요린. 고마워요린.―
“크르르….”
그리고….
―어쩜… 오늘도 몸이 더러워졌군요린?―
격한 몸싸움이 이어지는 사냥이다.
땀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영락없이 뚝배기가 깨지는 정원사 놈의 피와 살점 들이 몸에 묻지 않을 수도 없다.
사냥 후의 샤워는 필수라는 얘기다.
“크르륵.”
―그래요린, 저녁 먹고 나서 샤워하는 것 도와줄게요린.―
그랬다.
오식이의 샤워를 린이 손수 도와주고 있었다.
뭐, 린이 자신의 선천성 결벽증 때문에 차마 더러운 것을 보지 못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내가 그렇게 씻으라고 윽박질러도 시큰둥하거나 마지못해 건성건성 제 몸을 닦던 오식이가 그토록 샤워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즐긴다면, 그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저저, 엉큼한 놈….’
내 따가운 시선을 녀석이 외면했다.
필시, 기회를 즐기고 있음이 확실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륵!”
―네네, 알았어요린. 오늘은 특별히 마사지도 해드릴게요린.―
해 준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속내가 뻔히 보이는 듯한 녀석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뭐, 사실대로 말하면… 먼지 털기 수련으로 어깨가 뭉친 내게 린이 안마를 해 준 것이 먼저였다.
그것을 힐끔거리던 녀석이 은근슬쩍 티를 냈고, 봉사가 기쁨이라는 마인드의 착한 린이 녀석의 꾐에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췟! 놀고들 있네.”
온종일 우리를 위해 수고한 오식이였다.
너그러운 아량으로 봐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내가 해 주는 것도 아니니, 힘이 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꼴 시리게 여기고, 남들 보기에 딱 질투나 시기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사지는 나도 받는다.
솔직히 내가 더 많이 받은 게 사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남들 서너 배 이상으로 덩치가 큰 오식이에게 마사지를 해 주고 나면, 아무리 린이라도 녹초가 되어 버리니 말이다.
문제는 샤워였다.
직접 사냥을 하지 않으니, 정원사 놈의 피나 살점 등은 묻지 않는다.
하지만, 나름 땀 흘려 수련 중이다.
이전에야 몇 날 며칠 머리를 감지 않고, 모자를 눌러 쓰고 다닌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 못 해도 이틀에 한 번은 샤워를 한다.
그런 나를 린은 도와주지 않는다.
뭔가 굉장히 억울하고, 부러움에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고… 누가 봐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지 않을까?
해서, 대놓고 물어봤다.
“왜 나는 샤워할 때 안 도와줘?”
―예? 아, 아니… 그, 그건….―
“뭔데? 괜찮으니까, 말을 제대로 해 봐.”
―제가 어떻게 주인님의 벗은 몸을… 아이, 부끄러워요린.―
이해가 되면서도 의문이 드는 대답이었다.
당연히 따지고 들었다.
“그럼, 오식이는? 오식이가 벗고 있는 건 안 부끄러워?”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 오식이의 벗은 몸을 상상해 버렸다.
여전히 트라우마처럼 남아 버린 녀석의 흉측하고, 흉물스러운 그것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런 의미로 나보다는 오식이의 벗은 몸을 보는 게 더 부끄럽지 않을까 싶었다.
막말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얼핏 보고 그냥 봐도 눈에 확 띄는 녀석의 그것과 살짝 가리기만 해도 잘 보이지 않을 내 것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린의 대답은 의외였다.
―오식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린.―
“에? 전혀 안 그렇다고?”
―네,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린.―
“아니, 왜? 어째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니, 둘이 던전 출신에 괴물이라고 짝짜꿍이 맞고, 나는 인간이라 내외라도 하는 거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 살다 살다 오식이를 질투하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 * *
다시 며칠이 흘렀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내 레벨이 16으로 올랐다.
“확실히 빠르군.”
―축하드립니다린.―
“어, 고마워!”
손뼉까지 치며 기뻐하는 린에게 말하고는 멀리 있는 오식이를 향해 소리쳤다.
“땡큐!”
“크륵!”
녀석이 언제 배웠는지 오른팔을 하늘로 올리고는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미우나 고우나 고생 많고, 든든한 녀석이었다.
좋은 소식이 또 있었다.
드디어 먼지 털기가 스킬로 추가된 것이었다.
무려 천 번의 스킬 성공이 조건이었다.
그에 관한 놀라운 일도 있었다.
습득 후, 스킬창에 분명히 ‘먼지 털기’라는 이름으로 스킬이 추가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험 삼아 아수라 스워드를 들고서 스킬을 시전했더니만, 갑자기 스킬 이름이 ‘끊어치기!’로 바뀌었다.
알지 못하는 스킬이었다.
당연히 검색을 해 봤고, 그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끊어치기는 검사 계열의 기본 스킬이 아니었다.
검술과 검도 등의 수련을 통한다거나 ‘스킬 북’ 같은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 스킬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까, 검도 대련 중에 상대의 머리를 빠르게 내리치거나 가격 후에 상대를 지나쳐가는 장면이 떠올랐고, 끊어치기의 동작이 그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거나, 검을 활용할 수 있는 스킬 하나가 장착됐고, 나는 그만큼 더 강해진 것이니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자, 이제 바닥 쓸기도 익혀 볼까나?”
당장에 스킬 연습에 들어갔다.
….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린.―
린의 바닥 쓸기 시범을 몇 번이나 보고, 자세의 교정을 받아 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미리 검색을 통해 찾아낸 ‘발목 베기’와 ‘하단 회축’ 등의 스킬들도 머릿속에 담아 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차, 바닥 쓸기는 먼지 털기와 다르게 화살로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검을 들고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 손목과 팔의 근력을 중점적으로 높이긴 했지만, 시작부터 무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준비한 것이 검보다는 훨씬 가볍고, 길이는 비슷한 쇠막대기였다.
사실, 생필품을 사러 A 구역에 갔다가 우연히 버려진 것을 발견하고 주워 온 것이었지만…. 쩝!
“아, 왜 안 될까?”
준비도 꽤 했고, 나름으로 자신감도 있었다.
곧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고, 안타까웠다.
“자, 이제 진짜로 한다.”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왠지 이번엔 느낌이 좋았다.
뭐, 시작 전엔 항상 그런 느낌이었었다.
꾸우욱….
기본자세에서 상체와 양쪽 어깨를 왼쪽으로 힘껏 비틀었다.
그런 뒤 이내 반대쪽으로 몸을 풀며, 손에 든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휘이익!
까라라랑….
반원을 그리며 돌아간 쇠막대기 끝이 돌바닥 길을 훑어대며 제법 요란한 소리를 냈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소음이었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그나마 고르다고나 할까?
쇠막대기를 타고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나 진동도 흐르듯이 일정한 듯했다.
―앗! 서, 성공….―
린이 성공을 알려 왔다.
이미 알고 있기에 주먹을 불끈 쥐고는 기쁨을 표하려던 찰나였다.
“오케이! 이 느낌이야!”
성공의 기쁨도 잠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재차 바닥 쓸기를 시도했다.
“이야압!”
휘이익!
까라라랑….
성공.
“타압!”
휘이익!
까라라랑….
또, 성공!
연속으로 두 번이나 스킬을 성공시켰다.
“좋아! 내친김에 한 번 더!”
신을 내고는 다시금 스킬을 시전했다.
역시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쇠막대기가 돌바닥 길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티딕, 틱!
파아앗….
그동안 충격을 꽤 받았던 것인지, 돌바닥 길에 박혀 있던 돌멩이가 파편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그 부서진 파편 몇 개가 정원 쪽으로 날아갔다.
문제는 그것들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던 꽃을 훼손시켰다는 것이었다.
“엇!”
놀란 내 반응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에서 정원사 놈의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캬아아아아아아아!”
하나가 아니었다.
돌멩이 파편이 훼손한 꽃이 두 송이였기에 곧장 다른 놈의 소리가 이어졌다.
“캬아아아아아아아!”
당장에 오식이를 쳐다봤다.
녀석은 이미 불러낸 놈과 힘겨루기를 하며 대치 중이었다.
“오식아! 튀어!”
한 놈은 여유로웠다.
두 놈은 살짝 버거웠다.
해서, 절대로 두 놈 이상을 불러내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세 놈이면 상대할 수 없으니, 튀는 게 상책이었다.
―주인님, 빨리….―
린은 이미 철창문 쪽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도 그러려 했지만, 아무래도 오식이가 놈을 뿌리치고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치잇!”
이를 깨물고는 엘프의 활을 집어 들었다.
꽤 오랜만에 잡는 활이었지만, 능숙하게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서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며 달려오려는 놈을 겨냥했다.
이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더블샷을 날렸다.
티잉! 팅!
쐐액! 쐐애액!
가늘게 뜬 눈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두 발의 화살이 정확히 놈을 향해 날아갔다.
“캬아아악!”
놈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을 거대 전지가위로 쳐냈다.
“젠장!”
쓴소리와 함께 다시금 화살을 장전했다.
그 사이, 놈이 튕겨 낸 화살이 바닥에 꽂히며 폭발했다.
퍼어억!
“크!”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혹시나 파탄의 폭발이 정원의 다른 장식물을 훼손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단지, 밟거나 짓이겨도 놈들이 반응하지 않는 정원의 잔디밭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크르르르!”
오식이가 크게 으르렁거렸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녀석에게로 향했다.
녀석이 대치하던 놈의 목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했어! 이제 도망… 이런, 젠장!”
도망칠 틈이 생겼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쏜 화살을 튕겨 낸 놈이 오식이를 향해 달려든 타이밍이 더 빨랐다.
게다가 먼저 싸우던 놈의 목을 붙잡고 있던 터라 모닝스타마저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
그에, 놈이 휘두른 거대 전지가위를 간신히 손으로 붙잡고 버티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크르르르!”
으르렁거리는 오식이를 안타깝게 보다가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 놈을 찾기 위해서였다.
바로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첫 번째 놈과는 달리, 두 번째 놈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나타났다.
아주 조금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엔 맞춘다.”
이미 장전해 놨던 활을 들었다.
가늘게 뜬 눈도 사용했다.
조준이 끝나자마자, 더블샷을 날렸다.
그 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얼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