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75)
“에? 이거면 된다고?”
―네, 그렇습니다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을 찾아 모았다.
얼른 허리춤에 찬 ‘웨이스트 백’도 털어 냈다.
오늘 아침부터 모았던 마정석이 총 34개나 있었다.
‘돼, 됐다!’
눈이 번쩍 뜨였다.
흥분됐고, 손도 바들바들 떨려 왔다.
“여, 여기… 3, 30개!”
마정석 30개를 그녀의 발 앞으로 밀어냈다.
도박판에서 ‘올인’을 외치는 듯한 포즈로였다.
그녀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양쪽 무릎을 세우고, 가지런히 모아 앉는 자세였다.
일반인 남자도 가지고 있다는 특수 스킬 ‘매의 눈’이 저절로 발동했다.
번뜩!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탐스럽기 그지없는 하얀 허벅지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쉽지만, 풍성한 주름치마와 하얀 레이스 속치마 속의 작은 천 쪼가리는 볼 수 없었다.
‘아, 또 까비….’
잘그락… 잘그락….
그녀가 바닥에 있는 마정석을 조심스레 한데 모았다.
손에 주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모래성을 쌓든 그냥 모았다.
그러더니 그냥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번뜩!
고개와 시선이 일어서는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다시금 매의 눈이 발동했다.
‘헛! 희, 흰색….’
이번엔 봤다.
어쩌면 착각… 레이어드 타입의 하얀색 레이스 속치마를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킁… 킁킁….”
찡해진 코끝에 연신 킁킁거리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그녀는 양쪽 손바닥을 한데 모아 앞으로 펼치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그녀의 손바닥이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쌓아 놨던 마정석도 하얀빛에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잠시….
하얀빛에 물들어 있던 마정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 그녀의 손바닥도 빛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혹시나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이미 먹튀(?)의 뻔뻔함을 선보였던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의심이 짙어지기도 전에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상(클린)과의 ‘서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대상(클린)이 당신의 카드에 봉인됩니다.]
“헛!”
기쁨의 헛바람 소리를 뱉어 냈다.
익숙하다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몇 번이나 겪었던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
“후아아….”
하얀색 공간의 압박에 강제로 참아야 했던 숨을 길게 뱉어 냈다.
그렇게 꿈만 같은 일이 성사된 기쁨을 막 느끼려던 찰나!
사박사박….
맞은 편에서 자그마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아직 끝난 게 아니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얻을 건 얻었기에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게이트를 넘었다.
* * *
게이트를 넘어 저택을 빠져나왔다.
곧장 돌바닥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 정원으로 이동했다.
내친김에 철창문 밖으로까지 나왔다.
그러고 나서야 차오른 호흡을 가다듬었다.
호흡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히죽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붕 떠 버린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는 오식이를 소환했다.
솔직히 그녀를 먼저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으스대고 자랑하는데 관중이 없으면 안 될 것 같기에 녀석부터 꺼내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크르르….”
녀석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렸다.
“알았어, 인마! 조금만 참아. 보여 줄 게 있단 말이야!”
“크륵?”
“놀라지나 마라! 내가 누굴 데려왔는지, 흐흐!”
히죽거리며 말하고는 드디어 그녀를 소환했다.
찬란한 빛줄기가 그녀의 실루엣을 그려내는 동안, 요동치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짜잔!”
그녀가 막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자체적으로 효과음까지 넣어 줬다.
귀에 걸린 입꼬리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는 어깨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움을 한껏 내비치며, 오식이의 반응을 살폈다.
“크륵….”
녀석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뭐야? 왜 그래?”
내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고는 눈치를 살폈다.
뭐랄까?
겁을 내거나 쫀 듯한 뉘앙스는 아니었다.
이건 마치, 부끄러워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엥?”
녀석의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고,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별다를 게 없었… 뜨헉!
제자리에서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전혀 대비 되어있지 않았기에 놀람과 충격이 배가 됐다.
처음 오식이를 얻고 난 뒤, 진심으로 경악하고, 놀랐던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녀석이 헐벗은 채 나타나 흉측하고, 흉물스러운 것을 덜렁였던 일이었다.
이유는 서약을 맺으면서 레벨도 반으로 다운되고, 착용하고 있던 무기나 방어구 등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이긴 했지만, 이후에 냥이와 귀염둥이를 얻으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귀염둥이야 그렇다 치고, 무려 암컷이었던 냥이지만 풍성한 털로 덮여 있었으니까.
게다가 뭐 딱히 볼 것도… 흠흠!
아무튼.
그러한 일이 또 벌어졌다.
아니, 이번 것은 앞선 것들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그랬다.
지금 그대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것….
그녀가 지금 헐벗은 채, 나와 오식이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완전히 헐벗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내가 준 앞치마를 걸치고는 있었다.
하지만, 하얀색 공간에서 마주하며 봤던, 타이트한 상의와 풍성한 주름치마는 물론이고, 레이스로 가득한 속치마나 리본 장식 등은 보이지 않았다.
“허….”
여러 가지 의미의 기가 막힘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 문득 엄청난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똑바로 서 있었다.
해서, 그나마 앞치마로 가려진 15금급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식이가 바라보는 그녀의 뒤태는….
“커흡!”
상상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지고, 머리가 띵해졌다.
녀석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는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장에 소리를 꽥 질렀다.
“야, 인마! 뒤로 돌아!”
당연히 오식이를 향해 지른 소리였다.
여전히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녀석이 화들짝 놀라서는 급히 몸을 돌려세웠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오해를 한 그녀도 내 말에 반응한 것이다.
스윽….
그녀의 몸이 천천히 돌아갔다.
진짜로 천천히 돌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착각하거나 하여 슬로우 모션처럼 그렇게 보이거나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느릿하고, 황홀하… 아니, 어쨌든 그녀가 몸을 돌리고 있었다.
‘아, 안 돼애애애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이라도 감아야만 했다.
오히려 안광에 힘을 잔뜩 주고는 집중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킬 ‘가늘게 뜬 눈’을 시전할 뻔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녀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그녀의 뒤태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시점에 다다랐다.
찰나의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뭐, 아차 싶은 마음에 바로 뜨기는 했다.
‘에? 에에? 에에….’
놀람과 허탈함에 긴장했던 몸이 주르륵하고 녹아내리는 듯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분명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19금급 뒤태를 상상했건만, 아쉽… 아니,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속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긴 했다.
하지만, 어째 뜨거운 가슴을 빠르게 식히는 서늘한 바람… 아쉬움과 허탈함이 진하게 섞인 무언가는 끝내 나를 한숨짓게 했다.
….
“괘, 괜찮은 거지?”
―네, 저는 괜찮습니다린.―
내 물음에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
반응으로 봤을 때는 정말로 괜찮은 듯싶었다.
아니었다.
[경고!]
[대상(클린)의 심리가 불안정합니다.]
[계속된 대상(클린)의 심리적 불안은 폭주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신비한 목소리가 경고를 알려오고 있었다.
‘미치겠구만… 쩝!’
그러한 문제라면, 그녀를 카드 속에 봉인해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은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봉사는 저의 기쁨입니다린.―
쓸데없이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한 그녀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고집을 부려대는 통에 그리할 수가 없었다.
이미 강제로 봉인도 해 봤다.
그러나 자신의 맡은 바를 해야 한다며, 다른 의미의 심리적 불안을 느낀 탓에 어쩔 수 없이 꺼내 놓은 상태였다.
“그, 그래… 얼른 해.”
―알겠습니다린.―
쓴웃음과 함께 관심을 끄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남자의 본능은 너무나 집요하고, 엄청난 것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힐끔힐끔 돌아가는 시선을 막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솔직한 말로… 예쁘고, 몸매까지 죽여주는 여자가 눈앞에서 속옷과 앞치마만 두른 채 돌아다닌다면, 그 어떤 사내라도 시선을 줄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때마다 지랄 같은 경고가 어김없이 들려올지라도 말이다.
[경고!]
[대상(클린)이 당신의 음흉한 눈길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상(클린)이 불편함을 느낍니다.]
[대상(클린)의 심리가 불안정합니다.]
[계속된 대상(클린)의 심리적 불안은 폭주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젠장!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
다음 날.
당장에 A 구역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입힐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예쁘고, 값비싼 옷을 골라 줘도 그녀가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흐음….’
고민 끝에 특이한 옷들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가게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주인마저도 특이하고, 괴상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반짝이가 수도 없이 달린 쫄쫄이처럼도 보인다.
수북하고, 더러운 가슴 털을 대놓고 드러낸 것도 지랄 같다.
대체, 이걸 뭐라고 해야 좋을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난감함이 흐르는 복장이었다.
“에…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떤 옷을 찾으십니까?”
“아, 뭐, 그냥….”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가요? 요즘 가장 핫한 트렌드입니다만.”
“그, 그런가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오래도록 TV는커녕, 나름 문명과도 담을 쌓은 나였지만, 가장 핫한 트렌드라면 오며 가며 라도 한 명쯤은 봐야 했지 않았을까?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이렇게 입고 다니면, 그저 사람들의 웃음거리나 구경거리만 될 것 같았다.
“으으으….”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쪽팔림에 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내 속내도 모른 채, 그가 자랑하듯 말을 이었다.
“복고가 유행인 건 아시죠? 이 복장이 바로 전설의 로큰롤 황제 엘비스의 오리지널 코스튬입니다.”
누군지 모르겠다.
여전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고, 쪽팔리기만 했다.
당장에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빠르게 진열된 옷들을 살폈다.
다행히 원하는 옷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것 좀 보여 주세요.”
“어떤… 아! 메이드!”
“네, 그거요.”
“호오! 이쪽 취향이셨습니까? 진작에 말씀을 하시지, 흐흐!”
가게 주인이 능글맞게 웃었다.
거의 다 드러난 치아들 끝에 보이는 누런 금니마저도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진 가게 주인의 ‘남자들의 영원한 판타지’가 어쩌고 하는 다소 지저분하고, 선정적인 설명을 귓등으로 흘리며, 빠르게 메이드 복을 샀다.
“이건 마음에 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