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70)
휙! 휙!
고개를 쳐들고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당장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내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바라보는 정면의 2시 방향쯤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괴한 소리를 내는 것의 정체와 몰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일단, 그것의 정체는 사람… 이었다.
던전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지만, 어느 누가 봐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뭔가 난잡한? 아니, 지저분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목소리만큼이나 상당히 기괴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거리도 좀 있고, 당황해서 제대로 겉모습을 살필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게다가 놈의 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가위… 인 것 같은 것이 눈에 확 들어오는지라, 더 그렇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놈이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뛰어오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닷!
상당한 빠르기에 다급함, 거칠기가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뭐, 뭐야?”
당연히 놀랐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오식이가 즉시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캬아아아아아아!”
다시금 괴성을 질러댄 놈이 손에 들린 거대한 가위를 앞세우며 오식이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기분 나쁘고, 지랄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끼기기기기기기기….
“으윽!”
괴로움에 귀를 틀어막았다.
절로 미간에 주름도 잡혔다.
시선도 멋대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렇게까진 할 수 없었다.
억지로 오식이와 맞붙어 있는 놈을 노려봤다.
“크르르!”
“크크크!”
오식이와 놈은 제대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놈의 거대한 가위가 오식이의 모닝스타를 물고 있는 모양새였다.
끼긱! 끽! 끼기긱….
가위와 모닝스타가 맞물린 상태에서 서로 강하게 밀어대는 통에 지랄 같은 소리를 연신 만들어 내고 있었다.
‘대, 대단한데?’
적이지만, 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와 덩치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오식이를 상대하며, 전혀 힘에서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식이와 놈은 치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슬슬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놀란 마음에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놈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보자마자, 사람이라고 여겼던 놈은 자세히 보니 원숭이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 뜯어져 가는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 쓴 얼굴은 상당히 작았고, 피골이 상접 했다는 말이 바로 생각날 만큼 쭈글쭈글했다.
눈은 좀 부리부리했고, 뭉툭한 딸기코에 말라비틀어진 나무 껍데기처럼 다 터버린 입술.
그 안에 담긴 몇 개 되지 않는 이빨은 누렇다 못해 무척이나 더러웠다.
실제 키는 2미터를 가뿐히 넘을 듯했다.
하지만, 취하고 있는 자세 때문에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로만 보였다.
등에 난 불룩한 혹 때문에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놈은 ‘꼽추’였다.
꼽추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작은 키.
그것을 훨씬 웃돌아 버리는 외형이 더욱더 놈을 기괴하다 여기게 하고 있었다.
놈은 꼽추 특유의 외형도 가지고 있었다.
하체와 비교해서 굉장히 발달 된 역삼각형의 상체.
그것마저도 넘어서는 엄청난 팔근육과 비정상적으로 긴 팔의 길이가 그것이었다.
뭐, 그 때문에 놈을 사람이 아닌 원숭이에 더 가깝다고 한 것이기도 했다.
끝으로 놈의 팔근육은 얼핏 오식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긴, 그러니 서로 비등비등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겠지.
아무튼.
놈의 외형은 완전히 비호감이었다.
기괴하게 내지르는 소리도 그랬고, 힘을 쓰며 씩씩대는 소리도 상당히 거슬렸다.
내 편이기에 하는 소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면에서 오식이 쪽이 더 나았다.
그나마 녀석은 내 말도 잘 듣고, 가끔가다가 귀여운 짓도 하니 말이다.
뭐, 남들 눈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 쩝!
놈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크으으!”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모두 드러낸 채 힘겨운 신음을 뱉어 냈다.
마주한 오식이에게 놈의 더러운 입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 같았다.
“오식아, 조금만 더 힘내! 그냥 콱 눌러 버려!”
내 응원에 오식이가 힘을 쏟아 냈다.
이미 빵빵해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던 팔근육이 순간적으로 훅 부풀었다.
꾸우우욱….
앞으로 구부정한 놈의 허리가 더욱더 앞으로 굽나 싶더니만, 끝내는 가위를 든 양쪽 주먹이 바닥에 닿았다.
“크륵….”
오식이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어째 도움을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좋아! 알았어!”
아수라 스워드를 고쳐 잡고는 조심스레 놈을 향해 다가섰다.
“히익!”
놈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당황과 억울함이 담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놈으로서는 1:1로 잘 싸우다가 전세가 기울어 힘겨운 마당에 느닷없이 2:1로 더 불리해진 것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그래 봤자, 그건 놈의 사정일 뿐이지만 말이다.
“잘 잡고 있어!”
오식이에게 당부하고는 아수라 스워드를 높게 쳐들었다.
참수하듯 목을 베기보다는 놈의 등을 노리고 그대로 찍어 버리는 게 나을 듯했다.
꽈아악!
손아귀에 힘을 가득 주고는 있는 힘껏 아수라 스워드를 내리찍었다.
휘이익… 콰아악!
묵직하고, 강렬한 힘이 양손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공격은 빗나갔다.
놈이 잽싸게 붙들고 있던 가위를 놓고는 낮은 포복을 하듯 미끄러지며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샤샤샤샥….
“이, 이런….”
당황과 함께 급히 지면에 박힌 아수라 스워드를 뽑았다.
그리고 놈의 반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뒤로 물러난 놈이 딱히 반격 자세를 취한다거나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응?”
“크륵?”
오식이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듯했다.
‘설마… 겁을 먹은 건가?’
엉뚱한 생각 같지만, 정말로 그래 보였다.
놈의 눈빛이나 표정이 어째 눈치를 보는 것도 같고, 쩔쩔매고 있는 것도 같았다.
달려들거나 할 기미는 단 1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여차하면 도망갈 것처럼 몸의 중심이 뒤로 향해 있기도 했다.
‘갑자기? 왜?’
의아함과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그런 건가? 아니야, 속임수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너무나 뜬금없는 전개이기에 의심했다.
바로 오식이에게도 주의를 시켰다.
“조심해, 저러다가 갑자기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내 말에 오식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모닝스타를 바짝 조여 잡았다.
그러나 놈의 반응은 여전했다.
그런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는 오식이에게 명령했다.
“오식아, 앞을 막아!”
이내 녀석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빠르게 아수라 스워드를 허리춤에 돌려놓고는 엘프의 활을 꺼내 들었다.
“안 온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요놈아!”
활시위를 당기고는 놈을 조준했다.
“히익!”
놈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팅! 티잉!
쐐액! 쐐애액!
두 발의 화살이 놈을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퍼억! 퍽!
놈의 몸뚱이에 두 발의 화살이 꽂혔다.
정확히는 몸뚱이에 한 발, 팔뚝에 한 발이었다.
“키이익!”
제 몸에 박힌 화살을 들여다본 놈이 비명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훗! 끝이 아니다, 이놈아!”
낮게 흘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의 팔뚝에 꽂힌 두 번째 화살이 폭발했다.
퍼어엉!
“키히이익! 캬아아아악!”
놈이 시차를 두고는 두 번의 비명을 질러댔다.
첫 번째 비명은 놀람이었고, 두 번째 비명은 고통에 의한 것이었다.
경악스러움이 역력한 놈의 표정.
그런 놈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곳에는 흉측하게 잘려 나간 팔뚝이 있었다.
“오식아! 마무리해!”
“크륵!”
힘찬 대답과 함께 오식이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놀람과 고통에 휩싸인 채, 주변 상황을 돌아볼 겨를이 없던 놈은 그대로 오식이가 휘두른 모닝스타에 뚝배기가 깨져 버렸다.
푸스스스….
놈의 몸뚱이가 거뭇한 잿가루처럼 흩날리며 사라졌다.
바닥으로 제법 큼직한 마정석이 떨어졌다.
“가져와!”
오식이가 허리를 굽혀 마정석을 줍고는 내게로 가져왔다.
“호오, 15레벨이었어?”
마정석의 크기가 15레벨짜리였다.
고로, 놈의 레벨도 15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힐끔….
마정석에서 눈을 떼고는 오식이를 쳐다봤다.
내 눈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녀석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런 녀석을 향해 약간의 타박과 빈정거림을 담아 말했다.
“인마! 너보다 레벨도 낮은 놈인데, 왜 쩔쩔매고 있어?”
그랬다.
놈은 15레벨.
오식이는 17레벨이다.
마냥 여유롭지는 못한다 해도 1:1에서 비등하게 힘겨루기를 할 수준은 아니었다.
“크륵….”
녀석이 시무룩한 소리를 내고는 검지로 머리통을 긁적거렸다.
“에휴, 못난 놈… 쯧!”
혓소리까지 내며 한 번 더 녀석에게 면박을 줬다.
“그나저나 어디서 나타난 거지?”
갑자기 나타난 놈의 출처와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시선을 놈이 처음 나타난 곳으로 옮겼다.
‘분명, 아무런 낌새도 없었는데….’
낌새나 기척 따윈 전혀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하기만 했다.
“흐음….”
놈이 나타나기 직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오식이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고… 닦을 것을 찾다가 풀잎을….’
절로 시선이 옮겨졌다.
발아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심겨 있는 이름 모를 풀잎으로였다.
“에이, 설마….”
정말로 엉뚱한 생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몸은 이미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풀잎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잠시 쳐다보고는 이내 허리를 구부렸다.
다시 풀잎을 뜯었다.
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훗! 역시 아무 일도….”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과 함께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잊고 있던 지랄 같고, 기괴한 소리가 정원 어딘가에서 길게 울려 퍼졌다.
“헐….”
엉뚱하다고 여겼던 생각이 들어맞은 통에 살짝 기가 막혀 왔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살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둔 곳은 첫 번째 놈이 나타난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놈은 전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 위치는 랜덤인가 보지?’
아무래도 그런 듯싶었다.
당장에 오식이를 향해 막아서라는 명령을 내리려 입을 벌렸다.
“…?!”
“크르르르!”
내게 면박을 받은 터라 시무룩해 있던 녀석이 자존심 회복 내지는 내게 잘 보이려 그랬는지, 이미 놈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잇!”
“크아아아앙!”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소리치던 둘이 이번에도 강렬한 쇳소리를 내며 제대로 맞붙었다.
카아아아앙!
또다시 자존심을 건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크르르르!”
큼직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있는 힘을 다 짜내고 있는 오식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짜식! 진작에 그럴 것이지.”
낮게 혼잣말을 흘리고는 바로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놈을 향해 조준했다.
와일드 울프와 싸울 때처럼 서로 엉겨 붙거나 바둥바둥하지 않는 상태였다.
전혀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큰 움직임은 없었고, 거리도 훨씬 가까웠다.
충분히 내가 화살을 날려도 될 상황이었단 소리다.
“그대로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식이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보험까지 들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놈의 측면에서 화살을 날릴 수 있었고, 놈이 피할지언정 오식이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을 터였다.
팅! 티잉!
더블샷을 날렸다.
파탄이 없는 3단계짜리였다.
파탄이 터지면 근접해 있는 오식이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까지 계산한 공격이었다.
‘좋았어, 명중이다!’
빠르게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을 보며 명중을 확신했다.
아무리 놈이 빠르다 해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거리와 속도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티잉… 팅….
두 발의 화살 모두 놈의 팔뚝에 맞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맥없이 튕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미간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