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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67화 (67/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67)

나를 향해 진격하는 놈들을 보며, 허탈함 섞인 칭찬(?)을 뱉어 냈다.

자포자기.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거리가 꽤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나보다 빠른 와일드 울프들.

상처를 입긴 했지만, 나보다 나은 냥이를 단숨에 죽여 버린 은빛 와일드 울프.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온종일 잠만 처자던 귀염둥이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와일드 울프 킹까지….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무조건 제로였다.

….

몇십 초 뒤.

실로 새카맣게 많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수많은 와일드 울프들이 나와 대치하듯 마주 선 채 모여들었다.

그 앞에는 은빛 와일드 울프가 당당히 서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와일드 울프 킹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승산 없고, 가망 없고, 곧 죽을 것을 알기에 그런지 담담… 아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시선을 주고 있던 은빛 와일드 울프가 고개를 쳐들고는 길게 울부짖었다.

“아오오오오오!”

승리를 확신하는… 이대로 판이 끝났다며, 보란 듯이 쐐기를 박는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다른 와일드 울프들은 조용했다.

서너 마리만 모여도 온갖 호들갑에 으르렁거림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수백이나 모여 있음에도 어째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대단하군.’

그 모든 것이 와일드 울프 킹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내 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쩝!’

서약이 깨지지 않은 채, 지금처럼 진화하여 진정한 와일드 울프 킹이 되었다면, 눈앞에 있는 수많은 와일드 울프가 전부 내 발아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닌가?

내 편이면 적대니, 그럴 일은 없으려나?

뭐, 그래도 괜찮다.

무려 45레벨의 아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이것도 아닌가?

오식이나 냥이처럼 본 레벨을 반띵한 상태려나?

그럼, 45의 반이니까, 22레벨?

흠….

뭐, 그것도 괜찮았다.

겨우 10레벨에 숙련도 3짜리 스킬로 주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수십 마리의 와일드 울프를 죄다 삭제해 버리는 녀석이었으니까.

22레벨에 5단계 마스터 스킬이라면, 충분히 눈앞에 있는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후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까, 그런 엄청난 놈이 내 적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

그 엄청난 놈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래, 이왕 끝나는 거 너한테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그게 나을 듯싶었다.

죽는 것도 기정사실이고, 뭐에 죽어도 기분이 지랄 같겠지만, 그나마 녀석에게라면 뭐 같은 기분이 좀 나을지도….

게다가 45레벨의 와일드 울프 킹이 아닌가.

겨우 1레벨 차이지만, 나보다 낮은 레벨의 놈이나 놈들에게 당하는 것보다는 한참이나 높은 레벨에 나름의 ‘네임드’와 직위(?)에 있는 녀석에게 당하면, 저승에 가서도 뭔가 할 말이 있지 싶었다.

저벅저벅….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녀석이 내 앞에 섰다.

잠시 녀석과 눈을 맞췄다.

그러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괜한 저항에 힘을 빼거나 버티는 것보다는 단박에 끝나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스으윽….

녀석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진짜 끝이군….’

애써 담담 하려 끝까지 노력했다.

사실, 시간이 갈수록…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꼴깍….”

한 덩이의 마른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순간!

녀석의 낮은 숨소리가 귀가로 전해졌다.

귀염둥이 때의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던 것이 아닌, 남자… 수컷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제법 거칠고, 굵직한 털의 느낌도 볼에 닿았다.

“그르르….”

녀석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꺼풀에 힘을 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곧 녀석이 물어 버릴 목을 슬며시 내밀었다.

‘그래… 어서 물어라. 대신에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방에 끝내줘라.’

닿을 리 없는 바람이 전해지길 바라며 끝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이라고는 했지만, 불과 몇 초… 끽해야 십여 초… 애써 내색지 않는 초조함과 두려움에 떨면서 마냥 죽음을 기다리는 이의 체감상 시간일 뿐이었다.

스으윽….

녀석이 다시 움직였다.

긴장감이 확 돌면서 몸이 굳었다.

‘진짜로 끝… 어라?’

드디어 끝이라 여기던 중,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눈을 감은 채라 감각으로만 느끼던 녀석의 움직임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뭐, 뭐지?’

의문이 계속됐다.

아무리 봐도 녀석의 움직임은 내 목을 물려는 것과 멀었다.

아니, 아예 그럴 생각이 없는 듯… 그냥 멀어지고 있었다.

스르륵….

주름지도록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녀석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깜짝 놀라서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몇 초쯤 흘러도 아무 일이 없음에 다시 눈을 떴다.

녀석이 조금 물러나 있었다.

“…??”

여전히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 상태로 녀석을 계속 쳐다봤다.

그 사이에도 녀석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고, 어느새 50여 센티미터 정도까지 거리를 두며 나와 떨어졌다.

뭐, 그래 봤자 녀석의 사정거리이긴 했다.

“그르르….”

녀석이 다시금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살의나 적대의 느낌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착각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어째 좀 그윽해 보였던 것이었다.

‘뭐, 뭐냐?’

어리둥절함에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녀석이 눈빛으로 대답했다.

‘가라!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마라!’

물론, 이번에도 착각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 분명 착각일 터였다.

눈빛에서 그따위 것을 읽는다는 게 말이 안 됐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착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눈빛으로 말을 건넨 녀석이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1미터… 2미터… 3미터….

그러고는 완전히 돌아섰다.

나에게 더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

이때의 느낌이란, 굉장히 당황스럽고, 무척이나 난감했으며, 어리둥절함 그 자체였다.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진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정신을 돌아오게 한 것은 은빛 와일드 울프의 거센 짖음이었다.

“컹! 컹컹! 컹!”

놈의 짖음은 마치,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상은 다름 아닌 귀염둥이… 이제는 내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는 와일드 울프 킹이고 말이다.

녀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은빛 와일드 울프가 다시금 격렬하게 짖어댔다.

“컹컹컹! 컹!”

“….”

그래도 녀석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엔 뒤쪽에 새까맣게 몰려 있는 다른 놈들을 향해서 짖었다.

“컹! 컹!”

그에, 여태껏 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놈들이 동요했다.

시커먼 물결처럼 보이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내 앞줄에 서 있던 몇 놈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한 놈이 거칠게 대가리를 흔들며, 짧게 짖어댔다.

“컹!”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그 이유와 타깃이 바로 나인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귀염둥이 녀석이 나서며 분위기를 바꿔놨다.

“그르르… 컹! 컹!”

위엄이 물씬 느껴지는 으르렁거림과 짖음.

그에, 앞으로 나서려던 놈들은 물론, 그 너머의 수많은 와일드 울프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은빛 와일드 울프도 예외가 아니었다.

거세게 항의하고, 따지는 듯했던 기세와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꺾이고, 사라졌다.

‘허….’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단번에 모든 것을 아우르고, 정리해 버린 녀석은 자신이 진정한 무리의 왕이자, 이 던전의 주인임을 내게 각인시켰다.

스윽….

자못 심각했던 분위기를 압살한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잠시 쳐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수백 마리의 와일드 울프들이 있는 곳으로였다.

우르르르….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홍해가 갈라지듯 수백 마리의 와일드 울프가 양쪽으로 벌어지며, 녀석의 앞길을 터줬다.

‘로열로드….’

길고, 곧게 뻗은 왕의 길을 녀석이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지금 이 순간, 누가 뭐라 해도 그 길을 앞서 걸어 나갈 것은 녀석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 녀석의 뒤를 은빛 와일드 울프가 조용히 따랐다.

앞서 갈라지며 길을 텄던 놈들도 차례대로 녀석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진심, 혼자 보기 아까운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

잠시 후.

무리를 이끌고서 5구역 끝으로 돌아가는 귀염둥이 녀석에게 뺏겼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제야 잠시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앗! 냐, 냥이….”

서둘러 냥이의 사체를 수습하고는 자리를 떴다.

어둠의 장벽을 지나, 던전의 입구까지 쉬지 않고 이동했다.

그 뒤 미련하나 없이 게이트를 넘어 던전을 빠져나왔다.

“후아아….”

완전히 바깥세상으로 나온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제야 냥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복받쳤다.

“냥아… 흑흑….”

* * *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는 온종일 울었고, 사흘은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뒤에는 오식이처럼 미친 듯이 먹어댔다.

이틀은 그냥 멍을 때렸다.

냥이의 시신은 오식이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줬다.

오랜 시간을 같이했고, 매일 같이 티격태격하던 사이였음에도 오식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키우던 개나 고양이가 죽어도 안 그러거늘… 함께 동고동락하며, 생사를 건 사냥을 함께하던 동료가 죽었는데도 그렇다는 게 너무나 이상했다.

뭐, 말하는 게 어설프고, 생각이 모자라긴 하지만, 나름의 감정 표현은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슬프다거나 애도하거나 그리워하는 등의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애초부터 없었다거나 냥이에 대한 기억을 잃은 것처럼 그랬다.

“흠… 내가 죽어도 이러려나? 겁나 매정한 자식이네, 쩝!”

대놓고 물어봐도 제대론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고, 혼자서 고민해 봐도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는 터라, 끝내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

“흐음….”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더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루려 했던 목표… 던전의 완전 정복은 이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당장에 도심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것도 문제였다.

아직은 내 실력과 레벨이 모자랐으니 말이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셋… 아니, 이제는 둘이지만, 어쨌든 경험치를 나눠 먹어야 한다.

게다가 오식이도 사용하지 못한다.

굳이 페널티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쳐다봤다.

“저 너머로 가면 다른 던전이 있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 가자!”

당장에 짐을 쌌다.

생각보다 많았다.

“이것들부터 정리해야겠는데?”

버릴 건 버리고, 팔 건 팔기로 했다.

“차를 사기 잘했군.”

제법 묵직한 짐을 지고서 차가 다니는 곳까지 갔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분명 다른 이유였지만,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한 내가 자랑스러웠다.

킁!

….

A 구역으로 가 마정석과 잡템들을 팔았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갈 정도로 통장이 두둑해졌다.

“식량은 됐고, 화살은 사야겠지?”

화살을 사고는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아, 이제는 ‘전’ 보금자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게 중요하게 아니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절벽 면.

그곳에 4시간 전에는 없던 게이트가 떡하니 생성되어 있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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