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66)
“냐, 냥아아아아!”
소리부터 질렀다.
투덕거리는 느낌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헉!”
은빛 와일드 울프가 냥이의 허벅지 부근을 물고 있었다.
냥이는 괴로운 신음과 함께 양손으로 놈의 얼굴을 밀어내거나 주둥이를 벌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크르르르!”
놈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냥이를 털어 냈다.
다시금 처절한 비명을 흘린 냥이가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너풀거렸다.
“으으….”
진심으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판이었지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고, 정신은 반쯤 나가 있어 아무런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저, 정신 차려… 나선우… 정신 차리라고!”
주문을 걸듯 같은 말을 반복해 흘렸다.
도움이 됐는지, 정신이 돌아오고, 몸도 진정이 됐다.
하지만, 조금 늦은 듯도 싶었다.
“크르르르!”
휘적휘적!
놈이 더욱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냥이도 강하게 너풀거렸다.
그러다 결국엔….
좌아아아악!
끔찍한 소리와 함께 냥이가 저만치 튕겨 나갔다.
놈과 냥이 사이로 시뻘건 피가 아치를 그리며 흩어졌다.
“크르르….”
연신 으르렁거리는 놈의 주둥이도 끈적한 피로 물들어 있었다.
꽤 여유로운 느낌으로 놈이 주둥이를 우물거렸다.
뭔가를 질겅거리다가 퉤 하고 뱉어 냈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냥이의 허벅지 살점임을 알 수 있었다.
“냐아아….”
바닥을 나뒹굴다가 힘겹게 일어나는 냥이는 흘려 내는 신음마저 애처로웠다.
구부정한 자세나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비틀대는 모습 또한 상태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스윽….
냥이가 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
커다란 눈에는 어떤 슬픔이 깊게 깃들어 있는 듯했다.
“냐, 냥아….”
냥이의 이름을 흘리듯 뱉어 냈다.
냥이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파앗!
그와 거의 동시에 은빛 와일드 울프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시선을 내게 주고 있던 냥이도 반응했다.
휘익….
억지로 몸을 틀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은빛 와일드 울프를 향해 꼬리치기를 날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지막 공격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녀석의 공격은 실패했다.
탁월한 민첩성에 재빠름을 자랑하던 평소의 냥이가 아니었다.
심각하게 다친 몸으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였고, 시선도 나를 향해 있었기에 반응마저 느렸다.
억지로 비틀어 느릿하기만 회전.
냥이의 몸이 반도 채 돌기 전에 은빛 와일드 울프의 주둥이가 녀석을 낚아챘다.
덥석!
“냐악!”
냥이의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놈이 냥이를 바닥으로 내리쳤다.
낚아채듯 문 다리를 놓지는 않은 채였다.
냥이는 바닥으로 매쳐진 충격에 정신을 잃었는지 버둥거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놈은 그런 냥이를 전혀 봐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터억!
앞발을 들어 냥이의 얼굴을 그대로 짓밟았다.
‘…!!’
순간, 끔찍한 일이 예견됐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개를 돌리며 눈도 감아 버렸다.
하지만, 직전….
혼절해 버린 냥이를 앞발로 짓누른 채, 힘껏 고개를 쳐드는 놈의 잔인한 모습을 얼핏 보고 말았다.
좌아아아악!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신비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대상(냥이)의 목숨이 끊어졌습니다.]
[대상(냥이)의 죽음으로 서약이 해지되었습니다.]
냥이의 죽음을 확인시켜 주는 신비한 목소리가 참으로 잔인하다고 여겨졌다.
깊은 주름이 지도록 세게 감은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것이 새어 나왔다.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어금니를 힘껏 깨물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감았던 눈을 떴다.
죽일 듯이 놈을 노려봤다.
놈도 나를 향해 시선을 두고 있었다.
“크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놈을 주시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경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 여겼고, 놈이 저지른 크나큰 실수를 뼈가 저리도록 느끼게 해 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냥이의 죽음으로 분노하고, 흥분한 탓에 나 역시 너무나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죽여 버리겠어….”
분노로 가득한 말을 흘리며, 어깨에 메고 있던 엘프의 활을 벗어 들었다.
나가떨어지고, 바닥을 구르는 통에 몇 개 남지 않은 화살을 확인하고는 하나를 활시위에 걸었다.
여전히 놈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 놈을 향해 정확히 활을 조준했다.
조금 더 냉정하고, 현명하게 상황을 이끌어 갈 생각이었다면, 활을 꺼내 들기 전에 오식이를 먼저 소환했어야 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는 소환 작업과 오식이의 등장에 놈이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그것이 여러모로 베스트였다.
하지만, 냥이의 죽음으로 인해 불같이 타오르는 복수심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오식이를 소환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표현조차도 가져다 붙이지 못한 채, 놈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날렸다.
팅!
쐐애액!
화살이 힘찬 꼬리 짓을 하는 물고기처럼 출렁이며, 놈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거리가 짧은 탓에 포물선 따위도 없었다.
직격!
명중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르륵….
놈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움직였다.
그에, 날아간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뒤쪽의 쓰러진 나무에 강렬하게 꽂히며, 온몸을 떨어댔다.
타아악!
파르르르….
“치잇!”
“크르르….”
아쉬움으로 내가 뱉어 낸 소리와 놈의 비웃음 같은 으르렁거림이 교차했다.
힐끔 시선을 내려 남은 화살의 수를 다시금 파악했다.
일곱… 아니, 반쯤 꺾인 하나를 제외하면 여섯 발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수량.
게다가 재수 없게도 남은 수가 하필 ‘6’이다.
‘아니야, 그딴 건 신경 쓰지 말자!’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안 좋은 생각들을 털어 냈다.
다시 한 번 놈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여유롭게 첫 번째 공격을 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초에 나 같은 것은 ‘아웃 오브 안중’이라 여긴 것일까?
놈은 여전히 여유만만함을 뽐내며, 전혀 나를 어찌할 생각이 없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고맙다, 계속 기회를 줘서!’
진심일 리 없는… 지랄 같은 고마움을 표하며,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티딩! 팅!
더블샷!
두 발의 화살이 놈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액! 쐐액!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에 집중한 놈이 이번엔 폴짝 뛰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대가리를 노렸던 앞선 공격과 달리, 놈의 턱 내지는 앞발 부근을 노렸던 내 의도나 화살의 궤적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한 움직임이었다.
아무래도 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모양.
하지만….
그래 봤자, 짐승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의 머리를 넘어설 수는 없는 법.
나 역시, 놈의 움직임을 예상했고, 한 수 앞을 더 내다본 터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놈아!”
말을 뱉어 내고는 빠르게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타악! 탁!
앞서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놈이 직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꽂혔다.
그러더니 이내 폭발했다.
파아아앗!
작은 섬광과 함께 화살촉의 파편과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에, 놈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시선과 집중력이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때다!’
이때를 기다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놨다.
앞선 첫 번째 공격과 같은 궤적.
놈의 대가리를 정확히 노린 두 번째 더블샷이었다.
쐐애액! 쐐액!
직선으로 날아간 두 발의 화살.
그중 하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은빛 와일드 울프의 주둥이에 꽂혔다.
“깨앵!”
놈이 고통을 호소하며 깨갱거렸다.
그러면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머리와 몸을 격하게 틀어댔다.
그에, 두 번째 화살… 확실하고, 강력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화살이 박히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뭐, 튕겨 나감과 동시에 허공에서 파탄이 터지긴 했다.
파아앗!
놈에게 조금이나마 피해를 줬다.
“깨애앵!”
“치잇!”
두 번째 고통의 깨갱거림을 들으며, 못내 아쉬움을 뱉어 냈다.
몸과 손은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남은 화살은 단 두 발.
마지막 더블샷인 만큼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놈을 겨냥하고는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끼이이익!
그때였다.
번쩍번쩍!
괴로워하는 은빛 와일드 울프의 등 너머에서 작은 빛이 번쩍거렸다.
그와 동시에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상(귀염둥이)의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상태의 불안정은 폭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폭주 시, 자동으로 서약이 파기됩니다.]
“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껏 끌어 올렸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뭔가를 판단하기도 전에 작게 번쩍이던 빛이 폭발하듯 거대한 섬광을 강렬하게 뿌렸다.
“크으!”
잽싸게 눈을 감고,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지만, 이미 제대로 ‘눈뽕’을 맞은 뒤였다.
굳게 닫힌 눈꺼풀 위로 하얀빛이 박혀 깜빡거렸다.
“젠장….”
불시의 습격과도 같은 지랄 같은 상황에 짜증이 났다.
억지로 눈을 떴지만, 시야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아니지, 그보다 노, 놈은?’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하기에 앞서 놈의 기척부터 찾았다.
내게 유리할 수 있었던 상황은 이미 다 지나가 버렸지 싶었다.
그에, 마음이 흔들렸고, 놈의 기척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놈이 벌써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불안감과 불길함에 발까지 굴렀다.
하지만, 이내 날아든 거대한 기운에 그마저도 멈춰야만 했다.
고오오오오오….
“헛!”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25년… 아니, 26년째 접어든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대한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시야에 눈으로 보지 못하는 터라, 한껏 예민해진 감각.
그에, 몇 배나 더 강렬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눈을 뜨고 그것을 직접 본다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오오오오오….
강렬하고, 강대한 기운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그사이 ‘눈뽕’으로 멀어졌던 시야도 차츰 돌아오고 있었다.
잠잠하다 싶었던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상(귀염둥이)의 상태가 변화하였습니다.]
[대상(귀염둥이)의 상태 변화로 인해 서약이 자동으로 해지되었습니다.]
‘…??’
도저히 영문을 모를 상황에 머릿속이 물음표로만 가득해졌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눈을 억지로 떴다.
희미하게나마 돌아온 시야를 돋우며 주위를 살폈다.
“….”
이내, 입이 떡 벌어지지만, 말문은 닫아 버리게 만드는 엄청난 것을 보고 말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은빛 와일드 울프 따위의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너머… 빛과 섬광이 번쩍이던 그곳에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조차 없는 포스와 카리스마 같은 것들을 뿜뿜하며 서 있는 어떤 놈.
그나마 이해되지 않던 지난 상황들로 인해, 그것이 귀염둥이고, 진정한 와일드 울프 킹의 모습이라는 걸 파악할 수는 있었다.
‘지, 진화… 겠지?’
자연스럽게 진화를 떠올렸다.
‘근데, 갑자기 왜?’
여전한 의문도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를 더 떠올리려던 찰나.
녀석과 나 사이에 있던 은빛 와일드 울프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는 길게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
지금껏 보고, 들었던 다른 놈들의 하울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랄까?
뭔가 포근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이랄까?
‘젠장맞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엉뚱한 생각에 자책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저 먼 곳에서 또 다른 하울링이 이어졌다.
“아우우우우….”
하나가 아니었다.
돌림노래라도 부르는 듯 여기저기서 하울링이 계속 이어졌다.
두두두두두둣!
밟고 서 있는 지면을 요란하게 흔들며, 수십… 수백은 족히 될 와일드 울프들이 뿌연 흙먼지와 함께 이곳으로 뛰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하, 장관이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