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65)
하품에 꼬물거림을 이어 가던 녀석이 아래쪽을 힐끔 쳐다봤다.
몇몇 놈들이 녀석과 눈을 맞추고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다른 놈들도 충분히 동요하고 있었다.
‘좋아… 괜찮은 분위기야.’
도망칠 루트를 살폈다.
일단은 안전하게 나무 위로만 이동할 생각이었다.
“냥아!”
냥이를 부르고는 턱짓과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내 뜻을 알아들은 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발 남지 않은 화살을 챙기고는 귀염둥이 녀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손을 뻗었다.
“이리 와.”
귀염둥이를 품에 안고서 나무 위를 이동할 생각이었다.
녀석 혼자서는 나무를 타지도 못 할뿐더러, 내 뒤를 따라올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손을 뻗어 오라고 하면 당연히 내게 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니, 분명히 그런 느낌과 표정으로 녀석이 나를 쳐다보긴 했었다.
녀석이 막 발걸음을 떼려 하던 그 순간!
“컹! 컹!”
아래쪽에 있던 놈 하나가 크게 소리를 내며 짖었다.
시선도, 몸의 방향도 내 쪽을 향하고 있던 귀염둥이가 그에 반응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아래쪽을 쳐다본 녀석이 앙증맞은 이빨을 드러내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갸르릉….”
그러고는 냅다 점프했다.
“헉!”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녀석을 붙잡거나 할 새도 없었다.
10미터도 훌쩍 넘는 높이였다.
떨어져서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딘가 다칠 수는 있는 높이였다.
“안 돼!”
뒤늦게 반응하며 소리쳤다.
허둥지둥하며 손도 뻗었다.
순간,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바둥바둥….
빠른 팔짓으로 겨우 균형을 잡았다.
등골이 서늘해졌고, 사타구니가 쫄깃해졌다.
안도의 숨을 내쉴 새도 없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귀염둥이에게로 시선을 꽂았다.
“어엇!”
놀라운 광경에 소리부터 냈다.
짧디짧은 네 개의 다리를 쫙 편 채, 허공에 붕 떠 있는 귀염둥이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스카이다이빙 시,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여기는 착각 말이다.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냐하며, 말도 안 된다 하겠지만, 실제로 있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스카이다이빙을 직접 경험하거나 현장을 눈으로 본 게 아니라, 영상 등을 통해 접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는 다이빙을 하는 사람과 카메라를 든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서 떨어져 내린다.
해서, 허공에 떠 있거나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는 그렇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중력에 의해 진짜로 날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귀염둥이… 태생이 늑대인 녀석은 당연히 하늘을 날 수 없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분명히 날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녀석과 처음 서약을 맺었던 날에도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스킬 ‘핏빛 달의 분노’에 의한 주홍색 빛에 휩싸여 허공에 떠 있었던 것 말이다.
고오오오오….
지난 기억과 장면을 떠올리기 무섭게 귀염둥이 녀석의 몸이 주홍색 빛을 발했다.
그러더니 이내 공처럼 둥근 형태로 녀석의 몸을 감쌌다.
“컹! 컹!”
“크르릉!”
와일드 울프들은 난리가 났다.
허공에 떠 있는 귀염둥이 녀석을 향해 짖고, 점프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 할큄이나 부딪침 등은 통용되지 않았다.
주홍색 빛이 보호막 역할을 톡톡히 하며, 달려드는 놈들을 모두 튕겨 냈기 때문이었다.
공격이 무위로 끝나고, 이리저리 튕겨 나간 놈들은 더욱더 거세게 난리를 피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던 중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 있었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역시나 넋을 놓고 관람 중이던 냥이를 향해 소리쳤다.
“냥아! 피해!”
말을 뱉어 내긴 했지만, 피할 시간까지는 없어 보였다.
급하게나마 옆 가지로 이동해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응하던 냥이도 나처럼 숨었다.
‘우, 웅크리기!’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재빨리 스킬 ‘웅크리기’를 시전했다.
엉거주춤한 상태로 막 항문에 힘을 주던 그 순간!
고오오오오오….
엄청난 에너지가 주변을 압박하나 싶더니만, 이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크읏!”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가 세차게 흔들렸다.
거센 바람이 나뭇가지를 미친 듯이 흔들어댔고, 둥근 나무의 결을 타고서 내게 날아들었다.
‘뜨, 뜨거워….’
굉장한 열기를 동반한 바람이었다.
푸더더덕! 푸더덕!
진득한 느낌의 수많은 것들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 왔다.
“어, 어….”
갑작스레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니, 나무가 앞쪽으로 기울며 덩달아 나도 따라 기울었다.
본능적으로 팔을 둘러서는 나무를 꽉 붙들었다.
눈은 이전부터 꼭 감은 채였다.
‘이런 젠장….’
덜덜덜….
나무가 크게 요동을 쳐댔다.
나무와 완전히 몸을 밀착한 상태라 고스란히 전해지는 진동이 기분 나빴지만, 팔을 풀거나 놓을 수 없었다.
그그그그그….
더욱더 기분 나쁜 소리와 느낌이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기울기가 심해졌다.
“으으으으!”
스릴감 있는 놀이기구를 탔을 때처럼, 명치를 중심으로 몸이 흩어지는 듯한 지랄 같은 느낌이 났다.
이어,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면서 끝내 나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쳤고, 튕기듯 뒤로 날아갔다.
휘이익….
허공에 잠시 날다가는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웅… 퉁….
숨이 턱 막히는 충격과 함께 다시금 허공으로 떠올랐고, 또다시 떨어졌다.
너무나 큰 충격에 비명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넘치는 충격의 힘에 바닥을 몇 번이나 저절로 굴러야 했다.
데굴데굴….
정신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렬했던 충격을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던 만큼, 잠시간 휴식은 필요했다.
그렇게 몇 초쯤….
“끄응….”
힘겨운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기저기 욱신거리는 것이 몸 상태가 말이 아님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 상태가 엉망이긴 했지만, 다행이라 여겼다.
그에, 혼잣말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끝나긴 했… 헉!”
나무가 쓰러지며 튕겨 나가고,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기까지 한 과정이 어찌나 심했는지, 나는 현장(?)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한 20여 미터쯤?
주변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저기 새카맣게 몸을 태운 나무들이 아지랑이 같은 열기와 연기를 흩날리며, 엉키듯 쓰러져 있었다.
단 한 방에 주변을 초토화해 버린 귀염둥이의 능력… 스킬 ‘핏빛 달의 분노’의 위력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흘려 내던 혼잣말을 끊고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낼 만큼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지면에 주둥이를 묻고 있는 와일드 울프 한 마리가 그것이었다.
크기나 생김새는 일반 와일드 울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털 색깔이 은은한 느낌의 은빛으로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놈이었다.
놈은… 그나마 거리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애초에 나 따위는 관심도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분명히 그럴 것 같았다.
숨소리도 낼 수 없었고, 괜히 움직였다가 놈의 관심을 끌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놈을 보자마자 완전히 쫄아 버린 탓에 그대로 얼음이 된 상태였다.
‘그나저나 뭘 하는 거지?’
그 와중에 놈이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놈이 고개를 숙인 채, 주둥이를 묻고 있는 딱 그 부분이 쓰러진 나무들에 교묘히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상체를 좀 더 세우거나 고개를 쭉 빼면 아슬아슬하게나마 보일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꽤 큰 용기를 내야 했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목을 빼기보다는 오히려 몸을 낮추고, 바닥에 누워 몸을 숨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흠….’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궁금증을 해결하자는 위험하고, 무모한 쪽이었다.
‘이런 미친놈….’
스스로 욕까지 하면서 조심스레 목을 뻗었다.
‘좀만 더… 조금만 더….’
몸이 위축되고, 굳어서일까?
최대한 목을 뺀다고 뺐는데도 원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진심, 2% 부족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안타까움에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굽어진 척추를 조금씩 폈다.
나무에 가려져 있던 놈의 주둥이 끝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막 놈의 코끝이 보이려던 찰나!
움찔움찔….
놈과 나 사이의 중간쯤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유독 쓰러진 나무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것은 이내….
“냐아아아앙!”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뭔가가 훅 튀어나왔다.
만세를 부르듯 양손을 위로 쭉 펴고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냥이었다.
“헛!”
진심으로 놀랐다.
그런 곳에서 냥이가 갑작스레 튀어나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냥이는 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맞췄다.
곧장 냥이의 말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으아아아! 죽을 뻔 했다냥! 아니, 죽는 줄 알았다냥!―
평소와 다름없이 투덜거리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했다.
그러나 시큰한 감정을 꽃피우기도 전에 한 번 더 놀라야만 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 위로 올라서려던 냥이의 뒤로 은빛 털의 와일드 울프가 다가섰기 때문이었다.
“냐, 냥아! 피해!”
다급히 소리쳤다.
그보다 먼저 등 뒤의 낌새를 눈치챈 냥이가 나무 위로 올라서려던 짓을 포기하고는 떨어지듯 몸을 낮췄다.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냥이가 있던 자리 위로 은빛 와일드 울프의 앞발이 날아들었다.
1초… 아니, 그보다 짧게 늦었다면, 끔찍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을 터였다.
―뭐, 뭐냥?―
당황한 듯 소리친 냥이가 재빠르게 나무 아래로 몸을 빼내고는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놈도 냥이를 놓치지 않았다.
곧장 몸을 돌려세우고, 크게 점프하며 벌어진 만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휘익! 휘익!
폴짝! 터억!
거리를 벌리고, 쫓아가는 숨바꼭질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상황은 냥이가 불리했다.
작은 체구도 그렇고, 움직임도 훨씬 더 많았다.
얽히고설킨 채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그나마 불리함의 차이를 메꿔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휘이익!
콰아악!
은빛 와일드 울프가 앞발을 휘두르며, 방해되는 나무들을 치워 나갔다.
무거운 탓에 날려 버리거나 하지는 못 했지만, 열기에 탄 약한 부분들이 부서져 나갔다.
또, 옆으로 구르거나 얽힌 것들이 풀리며 냥이가 숨고, 피하며 이동하던 공간이 차츰 없어졌다.
그렇게 마침내 완전히 노출된 상태… 마치, 결전의 무대가 마련된 것처럼, 제법 평평해진 나무들 위에 냥이와 은빛 와일드 울프가 마주 서게 됐다.
―후우… 도망치기도 힘들었는데 잘 됐다냥!―
저보다 훨씬 큰 놈을 앞에 두고도 냥이는 당당했다.
괜한 소리가 아닌 듯 눈빛과 표정도 좋아 보였다.
“꼴깍!”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순간, 냥이가 몸을 날렸다.
파앗!
바닥이 된 나무를 박차며, 힘껏 뛰어오른 냥이의 몸이 허공에서 옆으로 빠르게 돌았다.
이내, 머릿속에 비슷했던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과 겹쳐졌다.
그랬다.
오식이의 죽빵을 날려 버렸던 ‘회전 꼬리 치기!’였다.
쫘아아아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냥이의 꼬리가 은빛 와일드 울프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인 듯도 싶었다.
이미 위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것은 정말로 강렬해 보였다.
이어질 놈의 깨갱거리는 울음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 온 것은 냥이의 울음소리였다.
“냐아아아아앙!”
그것도 비명처럼 처참하기 그지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