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64)
이미 같거나 비슷한 경우를 몇 번이나 겪었다.
혼자서 쇼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몇 번은 응답과 함께 놈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번엔 후자였다.
“아우우우우우….”
놈의 울부짖음에 반응하듯 멀리서 하울링이 들려왔다.
아래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오겠다. 빨리 처리해 버려!”
내 명령을 받은 오식이가 즉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큰 사투 없이 놈의 턱이 뜯겨 나갔다.
―온다냥!―
냥이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몇 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냥아! 이번엔 한 놈도 못 오게 하자!”
―오케이다냥!―
활시위를 당긴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지금 당장 공격을 해도 어느 정도는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
‘조금만 더… 좀만 더… 지금이닷!’
안전지대 너머로 50여 미터.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200여 미터 거리까지 놈들이 다가왔을 때,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냥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내 신호를 기다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동시에 활시위를 놓은 듯했다.
쐐애액! 쐐액!
쐐액! 쐐액!
더블샷에 의한 네 발의 화살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처억!
끼이익….
화살의 명중이나 결과 같은 것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음의 화살을 장전했다.
그리고 이내 발사했다.
다음도 마찬가지였고, 건너편의 냥이도 나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마치, 누가 빨리 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쉼 없이 화살을 날렸다.
쐐액! 쐑! 쐑! 쐐애액!
파앗! 파앗! 팟! 팟!
퍼어엉! 펑! 펑!
더블샷의 끊임 없는 향연에 마치, 대여섯 명이 활을 쏘기라도 하는 것처럼 화살의 비가 놈들을 향해 쏟아졌다.
땅이고, 놈들의 몸뚱이고 할 것 없이 펑펑 터져 나가는 파탄으로 인해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결국, 안전지대를 넘어 100여 미터 안으로 들어왔을 때쯤엔 겨우 한 놈만이 살아남았다.
그것도 냥이의 화살인지, 내 파탄인지 모를 것에 맞아 한 쪽 다리를 절룩대는 채로 말이다.
―내가 잡겠다냥!―
외침과 함께 냥이가 활시위를 당겼다.
빠르게 소리쳤다.
“잠깐만!”
―왜 그러냥?―
“기다려 봐, 또 부를지도 모르니까.”
―아… 알겠다냥.―
내 말뜻을 알아챈 냥이가 얌전히 활을 내렸다.
목숨을 잠시 부지한 놈은 완전히 멈춰 선 채, 우리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뒤쪽을 돌아봤다.
느릿하지만, 몇 번씩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다.
“뭐야? 동료를 부를 생각이 없나?”
놈이 다른 놈들에게 신호를 보내도록 여유를 준 것인데, 왠지 미적거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기우였다.
이내 놈이 주둥이를 하늘 쪽으로 추켜세우고는 길게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
그에 화답하듯 멀리서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아우우우우우….”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오냐… 얼른 와라.”
다시 멋모르고 달려들다가 혼비백산할 놈들을 떠올리며 히죽거림을 이어 갔다.
….
“이런, 젠장….”
섣부른 판단과 안일함에 곤욕을 맛보게 됐다.
팔근육이 당기고, 손가락 끝이 찢어지도록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리를 절룩대던 놈이 부른 와일드 울프의 수는 대략 50이 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만큼의 수였다는 걸 알았다면, 이내 자리를 뜨고 도망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짱구를 굴렸다.
그것에 우리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실수의 시작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
“아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
이리저리 주고받는 듯한 하울링 이후.
이전과 같은 그림을 그리며 십여 마리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직전처럼 일정 거리까지 놈들이 다가오기를 여유롭게 기다렸다.
‘뭐야? 왜 저리 느린 거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일찍 눈치채기는 했다.
일단은 미친 듯이 달리고 보던 놈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도록 느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번째 실수였다.
―느낌이 이상하다냥.―
냥이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했다.
“나도 알아. 근데, 뭐? 그냥 준비나 잘하고 있자.”
한 번 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느릿하지만, 놈들이 거리를 좁혀오고 있음은 확실했고, 그런 놈들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한 까닭이었다.
뭐, 늘 그래왔으니까,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고, 정답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세 번째 실수가 된 터였다.
“거의 다 왔다.”
놈들이 200여 미터 안으로 접근했다.
준비하고 있던 활시위를 천천히 당겼다.
그때였다.
―앗!―
냥이의 놀란 반응과 함께 한 곳에만 쏠려있던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졌다.
그때, 미세하게 벌어진 집중력의 틈을 비집고서 싸한 느낌이 전해졌다.
“응?”
전해진 느낌에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집중력은 완전히 무너졌고, 싸한 느낌이 강렬하게 날아들었다.
‘뭐, 뭐야? 사, 살기?’
살기 내지는 위협이라고 판단되는 지랄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지랄 같은 느낌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나와 냥이의 뒤편에서 말이다.
두두두둣!
다다다닷!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느낌과 기운뿐이던 상태에서 굉음과 함께 쏜살같은 움직임이 더해졌다.
이내 우리는 포위됐다.
그것도 40여 마리나 되는 많은 수에 말이다.
“오, 오식아!”
나와 냥이는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그나마 안전했다.
하지만, 오식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대로 놈들에게 노출되어 있었고, 포위와 공격이 이어진다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그런 오식이를 살리고, 구해 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곧장 녀석을 카드 속으로 불러들이려 스킬 ‘봉인’을 시전했다.
내 뜻을 알아챈 냥이가 화살을 날려 놈들의 이목을 끌어 줬다.
“휴우….”
다행히 오식이를 무사하게 구해 냈다.
하지만, 아직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기 그지없는 더욱더 지랄 같고, 험난한 위험이 남아 있었다.
타닥타닥!
빙글빙글….
타다닥!
“컹! 컹!”
“아우우우!”
놈들이 완전히 신을 내며 지랄 발광을 해댔다.
이리저리 뛰고, 도는 탓에 정신이 없었고,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짖어대는 통에 귀는 물론, 머리까지 욱신거려왔다.
그 사이, 느릿하게 다가오며 나와 냥이의 관심과 집중력을 끌어냈던 선발대(?) 놈들이 합세했다.
놈들의 후미에 다리를 절룩거리는 놈도 있었다.
놈은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눈빛과 살짝 벌린 주둥이의 표정이 어째 나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 새끼… 감히 머리를 써?”
당연히 화가 났다.
무조건 놈부터 작살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곧장 활시위를 당기며 놈을 겨냥했다.
그러나 냥이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죽어라냥!―
진한 분노가 서린 외침과 함께 놈을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쐐애애액!
더블샷도 아닌 단 한 발의 화살.
그러나 그것에는 분노와 열 받음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나와 냥이가 저질렀던 실수를 놈도 저질렀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한 곳… 나에게만 신경을 집중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참담하고, 처참하고, 통쾌했다.
퍼어어억!
냥이가 날린 분노의 화살이 놈의 뒤통수에 박혔다.
정확하게 미간의 위쪽 부근을 살짝 뚫고 나왔다.
단단한 머리뼈를 꿰뚫었으니, 안에 든 뇌가 말짱할 리 없었다.
누가 봐도 ‘즉사 각’이었고, 혼자서만 시간이 멈춘 듯 잠시 미동조차 보이지 않던 놈이 딱딱한 나무처럼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 와중에 웃긴 건, 놈의 처참한 죽음에 다른 와일드 울프 놈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치잇!”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완벽하게 포위까지 하게 만든 놈이 죽었지만, 여전히 난감하고, 뭐 같이 지랄 맞은 상황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은 열심히 화살을 날려 놈들의 수를 줄여 나가는 것뿐이었다.
티잉! 팅! 팅!
“죽어라! 죽어!”
미친 듯이 활 질을 해댔다.
당연히 정조준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속도와 주변에까지 피해를 주는 파탄만 믿고서 무작정 화살을 날려댔다.
쐐액! 쐑! 쐑!
펑! 펑! 퍼어엉!
“깨앵!”
“깽!”
“깨개앵!”
효과는 좋았다.
수가 많고, 한데 뭉쳐 있는 모양새라 빗나가는 화살이 거의 없었다.
또한, 정신없이 터지는 파탄의 위력에 너나 할 것 없이 대미지를 입고는 나가떨어졌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이 술술 풀린 터라 신이 절로 났다.
의기양양함을 뽐내며 입을 털었다.
“크크큭! 요놈들아, 맛이 어떠냐? 수만 많았지, 별것 없구먼?”
옛말에 ‘주둥이가 방정!’이란 말이 있던가?
성급하게 쏘아 올린 승리의 폭죽과 한껏 기분을 내며 들어 올린 오만의 술잔을 비웃기라도 하듯 놈들이 저항을 이어 갔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 아우우우우!”
서넛이 동시에 발산한 하울링.
그에 메아리치듯 응답하는 또 다른 하울링.
그 결과….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의 와일드 울프가 우리를 노리며 몰려들었다.
….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화살을 쏘고 또 쏘고 또 쏴댔다.
“크으….”
팔근육이 내 것이 아닌 듯 당기고, 얼얼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찢어지고, 벗겨지며, 아물기를 반복해 나름 훈장처럼 자리 잡은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뜯기다 못해 피까지 맺혔다.
그래도 활 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살길이라 여기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챙겨 온 화살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렇게까지 마구잡이로 쏴대며 화살을 소모할 수 있었던 것도 천여 발 이상을 미리 쟁여 둔 덕분이었다.
아무튼.
화살은 떨어져 갔고, 놈들의 수는 아직도 많았다.
뭔가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이쯤에서 튀어야 하나? 가능하긴 할까?’
놈들의 수가 더 줄어들면 또다시 동료들을 부를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진짜로 끝이었다.
차라리 이쯤에서 활 질을 멈추고,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게 더 나을 듯했다.
비록, 스무 마리 가까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이리저리 나무를 타고 움직인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목숨을 건 위험한 도박임에도 틀림이 없었다.
“씨바… 어째야 하지?”
섣불리 내릴 수 없는 판단에 고민했다.
그때였다.
내내 처자기만 하는… 하루에 딱 두 번만 깨어나 밥을 먹고 또 잠들어 버리는 귀염둥이의 울음소리가 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지난 일의 광경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귀염둥이 녀석의 등장에 놈들이 움찔거리며, 일시에 난동을 멈췄던 모습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
설마 하는 기대를 품고서 귀염둥이 녀석을 소환했다.
“갸르릉… 갸아앙….”
소환된 귀염둥이 녀석이 작게 소리를 내고는 이내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다급하고, 심각한 상황인데도 너무나 유유자적한 녀석의 모습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 팔자 좋은 녀석… 쩝!”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녀석이 나를 힐끔 쳐다봤다.
녀석과 눈을 한 번 맞추고는 아래 있는 놈들의 반응을 살폈다.
“호오….”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기대했던 것처럼 와글대던 놈들이 난동을 멈추고, 경계 내지는 긴장의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도망칠 수 있겠어!’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얘기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