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57)
두두두두둣!
다다다다닷!
실로 거대한 진동과 엄청난 물결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와일드 울프가 빈틈없이 주변을 채웠다.
“컹! 컹!”
마리당 한 번씩만 짖어도 수십이나 되기에 귀가 얼얼해질 지경이었다.
난장판, 시장 통… 뭐를 가져다 붙여도 잽이 되지 않았다.
‘크으, 인제 어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간단했다.
피하거나 도망갈 길은 완전히 막혔고, 이젠 놈들에게 무참히 물어 뜯겨 죽을 일만 남았다.
“크르르….”
믿음직스럽고, 위풍당당하던 오식이도 무섭게 인상을 쓰고는 있지만, 체념에 가까운 으르렁거림을 낮게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족히 100에 가까울 듯한 수의 와일드 울프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생각해 봤자 부질없는 물음을 떠올렸다.
어찌 이해는 된다지만, 굳이 그랬어야만 했나 싶은 멍청한 짓의 결과가 이토록 크고, 지랄 같은 상황으로 번졌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멍청한 것들 때문에… 젠장!’
비스듬히 앞에 서 있는 오식이는 물론, 생사가 불분명한 냥이까지 싸잡아 탓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에 와서는 백만 번을 해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다.
스윽….
곧추세우고 있던 아수라 스워드를 느릿하게 아래로 떨어뜨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끼잉….―
잠에서 막 깬 것이 분명한 낑낑대는 소리가 머릿속으로 전달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감았던 눈이 절로 떠질 만큼 깜짝 놀랐다.
‘뭐야? 깜짝 놀랐… 어라?’
더욱더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정적이었다.
“…??”
바글바글 한 머릿수와 맹렬한 기세의 짖음으로 나와 오식이를 완전히 제압해 버린 와일드 울프들이 한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TV의 음 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이리저리 뛰고, 돌고, 저희끼리 부딪치는 등 난장을 부려대던 움직임도 최소화됐다.
‘뭐지? 무슨 일이….’
놀라운 상황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나는 물론이고, 오식이도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때였다.
다시금 내 머릿속으로 낑낑대는 가녀린 울음소리가 전달됐다.
―끼이잉….―
그 순간!
뭔가의 눈치를 보듯 일순간에 조용해지고, 느릿해졌던 놈들….
정확히는 나와 오식이를 에워싸듯 빙 두른 채, 가장 가까이 있던 놈들이 몸을 움찔하며 뒤로 크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
이내 머릿속에서 빛이 번쩍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놀라운 광경에 놓쳐 버렸던 영문의 이유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런 거였구나!’
당장에 ‘어린 와일드 울프 킹’을 소환했다.
카드와 빛줄기, 실루엣의 익숙한 광경이 이어졌고, 우리와 놈들 사이에 자그마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
찍소리조차도 나지 않는 정적과 고요함 속에서 두 손안에 폭 들어갈 만큼 작은 녀석에게 온 시선이 집중됐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작은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하고는 바닥에 깔고 있던 배를 떼어 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앞발을 쭉 편 채, 스트레칭을 했다.
쭈우욱….
개나 고양이가 자주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아직 몸보다 머리가 커서 겨우 2.5등신에 불과한 체형에 짧디짧은 앞다리를 펴고서 몸을 늘리는 모양새가 어설프면서도 꼴에 할 건 다 한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어른의 행동을 멋도 모르고 따라 하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쿵!
무거운 정적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염 폭발에 다시금 당해 버린 심장 어택.
‘크으… 도대체 몇 번째야….’
이러다가 전혀 다른 이유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그런 내막을 전혀 알 리가 없는 녀석의 귀염 터지는 행동은 계속 이어졌다.
죽죽 몸을 늘리던 녀석이 똑바로 섰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부르르 털어댔다.
개나 고양이가 물에 젖은 몸과 털을 말릴 때 하는 바로 그 동작이었다.
그 모습 또한, 가소로우면서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게 했다.
그렇게 이어진 하품… 앞서 했던 것과 다를 리 없어 보이지만, 치명적인 귀여움에 싫증조차 나지 않는 모습을 선보였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음을 넘어선 녀석의 압도적인 애교 퍼포먼스에 나와 오식이, 그리고 수십의 와일드 울프가 모두 한마음인 듯 넋을 빼고 말았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녀석의 앙증맞은 애교의 늪에서 빠져나온 것은 안타깝게도 놈들 중 하나였다.
“크르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차 싶은 마음이 훅 날아들었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 넋이 나가 버리다니….’
때늦은 후회를 자책하는 내 시선에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놈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에 자극을 받은 주변의 놈들이 하나둘 자세를 낮추거나 으르렁거림을 내비쳤다.
고요와 적막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기와 위협으로 바뀌었다.
‘크으….’
다시금 ‘끝장’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너무 이른 포기와 판단이었다.
또다시 망각하고만… 내가 귀염둥이 녀석을 소환한 이유와 그에 따른 뒷얘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억!
녀석이 작은 체구와 어림에 어울리지 않는 당당함을 뽐내며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정확히는 제일 먼저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낸 놈을 향해서였다.
그런 녀석을 향해 놈이 안광을 빛내며, 더욱더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하지만, 녀석은 전혀 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놈을 향해 조금 더 다가섰다.
‘위험한데….’
정말이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녀석은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였으니까.
“컹! 컹!”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어린 녀석을 향해 놈이 겁이라도 주려는 듯 크게 짖었다.
그에 질세라 주변의 놈들도 덩달아 짖어댔다.
한껏 몸을 낮추고 있던 몇몇 놈들은 당장에라도 땅을 박차고서 녀석을 향해 달려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런 놈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서던 녀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에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를 입 밖으로 흘려 냈다.
짧은 앞다리를 쭉 펴고 하던 스트레칭이나 몸을 바르르 털어대는 모습에서 보였던 어설픔.
작은 입이 찢어지라 해대던 하품에서 보였던 앙증맞음.
그것들을 모두 합쳐 내비치던 치명적인 귀여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에 도무지 녀석에게서 찾거나 엿볼 수 없을 것 같은 초연함과 당당함이 보였다.
다음 순간!
“갸르릉….”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작게 으르렁거린 녀석이 오른쪽 앞발을 쓱 쳐들었다가 그대로 땅을 내리찍었다.
딱히 강한 힘을 주거나 한 것 같지는 않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이어진 결과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팟!
녀석의 앞발이 지면에 닿음과 동시에 빛이 번쩍였다.
옅은 푸른색의 빛이었다.
“…?!”
꽤 강렬했지만, 눈이 부시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방으로 퍼지고, 이내 사라질 것 같던 빛이 그 자리에서 응축됐기 때문인 듯했다.
고오오오오….
빛이 응축되면서 푸른색이 진해졌다.
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무척이나 신비로우면서도 굉장한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했다.
스윽….
녀석의 오른쪽 앞발이 다시금 들렸다.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팟!
앞선 동작과 똑같은 모양새.
그러나 결과물은 달랐다.
주우우욱….
녀석의 발동작에 응축됐던 푸른색의 빛이 옆으로 길게 늘어났다.
약 1미터쯤?
그러더니 이내 휘어졌다.
‘초, 초승달….’
그랬다.
딱 봐도 초승달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
얼핏 보면, 잘 휘어진 활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아무튼.
발 구름으로 푸르른 빛의 모양새를 바꾼 녀석이 정면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너무나 시크한 표정과 동작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마치, 귀찮은 것을 향해 저리 꺼지라는 듯한 손짓처럼 말이다.
휘익!
그러자 이번엔 푸르른 빛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촤아아아아….
화살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내 뜀박질보다도 느렸다.
하지만, 앞서 느꼈던 굉장한 에너지의 느낌처럼 위력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끝내 줬다.
사사사삭!
푸르른 초승달 모양의 빛은 지면에서 5센티미터쯤 떠 있는 상태였다.
그에, 녀석의 앞으로 펼쳐져 있던 잔디가 1미터 폭의 길을 내듯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중간에 듬성듬성 박히거나 놓여 있던 돌멩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너머에 있던… 계속해서 으르렁거리다가 녀석의 이상한 짓거리와 그로 인해 생성된 빛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놈과 그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놈들의 발목을 그대로 잘라 내며 쭉 뻗어 나갔다.
“깨갱!”
“깨애앵!”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만들어졌다.
발목이 잘려 나간 놈들이 미친 듯이 바닥을 뒹굴었다.
주변에 있던 멀쩡한 놈들이 동요했고, 영문을 알 길이 없는 반대쪽 놈들도 덩달아 반응을 보였다.
“이, 이런….”
한 번에 대여섯 마리의 와일드 울프를 전투 불능으로 만든 것은 좋았다.
그것은 우리 중에 가장 강한 오식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황이 더욱더 심각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는 진정 빼도 박도 못하고, 지랄 같이 흥분해 버린 놈들과 최후의 사투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귀염둥이 녀석 때문에 작은 희망을 맛봤고, 완전히 내려놨던 마음을 조금은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씨바! 그래, 이판사판이다. 오식아, 가자!”
오식이를 향해 크게 소리치고는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꼬나쥔 채,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니, 막 튀어 나가려고 발을 뻗었는데, 오식이가 내 뒷덜미를 거칠게 잡고는 세차게 끌어당겼다.
“케엑! 콜록! 콜록!”
당겨진 옷에 목이 졸렸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
채 상태가 괜찮아지기도 전에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오식이가 내게 말을 전했다.
―웅… 크… 리… 기….―
“…??”
의아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내 앞을 가로막고 선 오식이가 한껏 자세를 낮추고는 웅크리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뭐 하는 짓인데?”
계속된 의아함에 물음을 던지고는 상황을 살피려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오식이의 두꺼운 팔뚝 옆으로 얼핏 뭔가를 보게 됐다.
은은한 주홍색의 빛이었다.
‘저게 뭐지?’
허리와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는 빛의 출처를 확인했다.
또 한 번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헐….”
일단, 주홍빛의 출처는 귀염둥이 녀석이었다.
온몸을 주홍빛으로 물들인… 아니, 빛에 사로잡힌 듯도 보이는 녀석.
빛도 빛이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녀석이 허공에 붕 떠 있다는 것이었다.
높이는 약 2미터쯤.
“컹! 컹!”
흥분한 와일드 울프들이 녀석의 주변을 에워싸며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었다.
몇몇 놈들은 점프하여 녀석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탱! 파앗! 틱!
녀석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주홍빛 때문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고, 맥없이 튕겨 나가거나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야만 했다.
게다가 그런 녀석의 화려함 때문이었을까?
놈들이 나와 오식이에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녀석의 주위로만 몰려들었다.
‘….’
놀라운 광경과 상황이지만, 사태 파악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
다시금 오식이의 말이 머릿속으로 전달됐다.
―웅… 크… 리… 기….―
“응?”
―온… 다….―
“뭐, 뭐가?”
―강… 력….―
“엥?”
―숨… 어… 웅… 크… 리… 기….―
전혀 정돈된 대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본능이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이내, 오식이의 등 뒤로 숨으며 똥꼬에 힘… 아니, 웅크리기를 시전했다.
“끄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