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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56화 (56/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56)

목적지….

그러니까 안전선 부근에서 우리가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하던 곳까지의 거리는 약 150여 미터쯤 된다.

일반인이 전력 질주를 한다면 17초 안팎, 훈련된 각성자들은 10초를 웃도는 정도면 끊을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잘 정돈된 길이나 달리기 전용의 트랙에서 그렇다는 소리다.

당연하겠지만, 이곳은 트랙이 아니다.

그런대로 평평한 지형이긴 하다.

그러나 야생의 날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울퉁불퉁하고, 거친 길이다.

게다가 어깨와 등, 허리에 짊어지고 걸친 것들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다.

각성자에 체력과 민첩성을 단련한 나였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 봤자 15초는 너끈히 걸린다.

와일드 울프가 몰려 있는 곳에서 안전선까지의 거리도 150여 미터다.

해서, 목적지까지 거리의 반 이상을 앞서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약간의 오르막 형태를 띠고 있는 초입과 이쪽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등의 장애물 덕에 시간을 조금 더 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와일드 울프는 나보다 훨씬 더 빠르다.

비교해 본 적이 없어 정확지는 않지만, 마음먹고 뛴다면 두 배 이상도 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아니, 달리는 동안 조금의 실수나 머뭇거림이 있다면,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서도 따라 잡힐 수 있다는 소리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이미 몇 초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또, 늘어져 있는 냥이까지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하고 달려들던 놈들에게 뒤를 잡힌 것을 느낌과 동시에 추월당했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기는커녕, 50여 미터도 더 남긴 거리에서 따라잡히고 말았다.

다다닷….

파바! 파바밧….

달려오던 추진력 때문에 훨씬 더 앞으로 튀어나갔던 놈들이 급정거와 함께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주둥이 안의 모든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앞을 막아선 놈들 때문에 나와 오식이의 달림도 멈췄다.

이내, 뒤늦게 반응하고 달려온 놈들마저 우리를 사정거리 안에 두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작정 우리를 덮치거나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뭐, 아홉 마리나 되는 놈들이 완전히 우리를 포위한 채, 진득한 침까지 질질 흘려대며 언제라도 달려들 태세로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젠장….’

미간을 한껏 좁히며 놈들의 몸짓과 반응을 주시했다.

자연스럽게 오식이와 서로의 뒤를 지켜 주듯 자리를 잡았다.

오식이가 놈들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굵직하고, 긴 으르렁거림을 계속해서 흘려댔다.

“크르르르르….”

그에, 놈들도 경쟁하듯 으르렁거림을 이어 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황은 언제 꺼질지 모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처억!

숨이 막히도록 지랄 같은 상황 속에서도 오식이는 침착했다.

허리에 찬 모닝스타를 꺼내 들며, 곧 벌어질 끔찍한 사투에 대비했다.

‘하긴, 신체적 조건이나 레벨 등에서 나보다 월등하긴 하지….’

앞으로 일어날 사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내가 될 것이 분명했다.

누가 봐도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약했으니까.

와일드 울프와 같은 12레벨이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놈들과 1:1로 붙을 수 없었다.

물론, 안전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서 활로 공격을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놓고 맞짱을 뜬다면 1분도 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두 마리 이상이 달려든다면 찍소리도 못하고 순식간에 사지가 뜯겨 나갈 터.

그러나 오식이는 다르다.

두 마리는 거뜬하고, 세 마리까지도 어찌어찌 감당하지 않을까 싶다.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고 여유를 부리거나 틈을 준다면, 더 큰 가능성과 기대도 엿볼 수 있다.

최강자와 최약체.

그러고 나약한 인간과 강건한 괴물… 오크라는 종의 격차에서부터 비교가 되는 마음가짐과 상황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였다.

‘그나저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만약, 내가 죽게 되면 상황이 어찌 될지….

정확히는 혼자 남게 된 오식이가 어떻게 될지에 관한 의문이었다.

‘내 죽음과 함께 서약이 풀리려나? 그렇게 되면, 다시 놈들과 한편이 되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아니면, 내가 죽어도 서약은 끝까지 유지되고, 계속해서 놈들과 싸우려나?’

이쪽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흠….’

문득 떠오른 엉뚱한 의문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갈래의 가지까지 뻗어 가며 이어졌다.

혼자 남게 된 오식이가 앞으로 어찌 살지.

뭐를 먹을 것이며, 어디서 잘지.

서약이 끝나면, 나에 대한 기억은 어찌 되는지.

서약이 이어진다면, 언제까지 나를 기억할지 등등….

참으로 쓸데없어 보이지만, 내심 궁금해지는 의문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히 채웠다.

‘미친…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뭐 하는 짓거리람?’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자빠질 수 있을까?

‘나선우!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이 정신 나간 놈아!’

강하게 자책하고는 오식이처럼 앞으로의 사투에 대비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명색이 나도 각성자였다.

오식이와 냥이가 있어 가능했지만, 1년이 넘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

암담하고, 패색이 짙은 상황임은 맞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기를… 그냥 죽여주기를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머저리도 하지 않을 멍청한 짓이었다.

마음을 다잡고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생각했다.

답이 바로 나왔다.

‘일단, 냥이부터….’

손으로 느껴지는 냥이의 체온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이 불가했다.

어쨌거나 냥이를 계속 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틈을 노리고 있는 와일드 울프의 움직임을 살피고는 재빨리 냥이를 카드에 봉인했다.

양손이 자유로워졌다.

천천히 허리춤으로 손을 뻗은 뒤,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처억!

사실, 이제는 검보다 활이 더 편하고, 능숙했다.

그러나 처한 상황이 상황인지라 활보다는 검을 쓰는 게 나을 듯싶었다.

‘췟! 이럴 줄 알았으면, 검술도 틈틈이 연습해 두는 건데… 쩝!’

늦은 후회와 함께 절로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시며, 아수라 스워드를 양손으로 힘껏 꼬나쥐었다.

내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인지, 오식이가 그제야 살짝이 몸을 틀며 움직였다.

이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명확히 들리도록 손에 든 모닝스타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위협적이고, 귀에 거슬리는 바람 소리에 으르렁거리며 틈을 노리고 있던 와일드 울프들도 반응을 보였다.

“컹! 컹!”

“크르릉….”

소리 높여 짖고, 더욱더 거칠게 으르렁거린 것은 물론, 우리에게 혼란과 혼선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함께 움직였다.

꽈아악!

한 번 더 아수라 스워드를 힘껏 움켜쥐고는 자세를 낮췄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자신감을 채우는 주문을 되뇌며, 계속해서 순서가 바뀌는 정면의 와일드 울프만을 주시했다.

‘달려들면 그대로 찔러 버린다. 어디 한 번 와 봐라!’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 놈의 목구멍을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깊게 찔러 넣겠다는 나름의 계획까지 세운 채였다.

타닥! 탁! 탁!

놈들이 조금씩 속도를 올리며 빠르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몸을 움찔움찔한다거나 앞으로 살짝 움직이며 곧 달려들 것처럼 페이크를 쓰기도 했다.

“꼴깍!”

마구마구 치솟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때가 임박했음을 느끼며, 더욱더 집중력을 높였다.

피로감이 확 느껴졌다.

그때였다.

와일드 울프 한 마리가 세차게 지면을 박차고는 우리… 아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례가 되어 나와 시선을 맞추다가 옆으로 돌아가며, 다음 차례의 놈에게 나와의 눈 맞춤을 넘긴 놈이었다.

“이잇!”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세 또한 검을 찔러 넣기에 편한 상태로 잡고 있었다.

정확하게 빈틈을 노린 놈의 움직임에 완전히 타이밍을 뺏겼고, 갑작스러운 달려듦에 억지로 몸을 틀다가 자세마저 어정쩡하게 되어 버렸다.

“크으….”

그냥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지랄 같은 상황.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것에만 대비한 내 실수가 분명했다.

게다가 놈이 생각보다 똑똑했기에 만들어진… 나로서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놈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오식이였다.

휘익!

나를 향해 달려드는 와일드 울프보다 오식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2, 3미터를 도약해 날아드는 것보다는 그저, 한 발짝 내지는 반 발짝을 옆으로 내밀어 몸을 트는 게 당연히 빠를 터였다.

이어진 어깨와 팔의 커다란 돌림.

그와 더불어 360도를 온전히 따라 돌아간 모닝스타가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부우우웅!

바로 옆에 서 있던 내 얼굴로 따가움을 동반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읏!”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빈틈을 노렸다고 여기며,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용감하게 날아든 와일드 울프가 견뎌야 할 끔찍한 충격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내 얼굴로 날아든 바람은 미풍이고, 산들바람 수준이었다.

엄청난 소리와 후폭풍을 일으키며 뒤에서부터 앞으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세차게 돌아간 모닝스타의 큼직한 대가리가 완전히 노출된 와일드 울프의 턱을 걷어 올리듯 후려쳤다.

쩌어어어억!

순간, 끔찍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만큼이나 파워와 놈이 받았을 충격도 어마무시해 보였다.

미세하지만, 진동의 여파가 느껴질 정도.

그러나 그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경악스러운 장면이 그것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모닝스타의 대가리에 맞자마자 와일드 울프의 턱과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감당하거나 흘려 내지 못할 정도로 남아버린 가공할 힘에 놈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반이나 뒤로 돌아갔다.

그런 놈이 지면을 박차며 튀어 올랐던 처음의 자리 근처까지 날아가 버렸다.

터엉! 텅!

놈의 몸뚱이가 지면에서 살짝 튀어 올랐다.

고스란히 받아 낸 힘과 충격은 좀 더 남아 있었다.

그에, 바닥을 쓸 듯 미끄러지며, 어느새 빙글빙글 우리의 주위를 돌던 움직임을 멈춘 다른 와일드 울프들을 향해 밀려 나갔다.

드드드….

타앗! 탓!

휘익! 휙!

놈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했다.

이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깨앵!”

“컹! 컹!”

단 몇 초 사이에 빠져나갈 틈조차 없어 보였던 놈들의 원형 진형이 무너졌다.

아수라장이란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광경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거, 어쩌면….’

불과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암담하고, 도무지 승산이라고는 없는 상황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뭐가 돼도 일단 해 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런데,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와 상황이라면, 얘기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크게 말이다.

주문을 되뇌며 애써 채우려고 노력하던 자신감이 훅하고는 치솟아 올랐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바로 생각났다.

“오식아! 포위부터 뚫자!”

큰소리로 외쳤다.

내 외침에 오식이가 곧장 몸을 움직였고, 이미 무너져 버린 놈들의 진형을 파고들며 모닝스타를 크고 거칠게 휘둘러댔다.

부우웅! 부우우웅!

앞서 모닝스타의 가공할 위력을 본 놈들이 몸을 사리며, 이리저리 피하느라 바빴다.

아직 완전히 놈들의 포위망을 뚫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점점 유리해지고 있었다.

놈들도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 듯했다.

하지만, 달라질 건 딱히 없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움직이던 놈이 갑자기 주둥이를 하늘로 세우고는 길게 울어댔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

다른 놈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한 울음.

하지만,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훗! 아무리 불러 봐라, 오는 놈이 있나.”

놈을 비웃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우우우우우….”

멀찍한 곳… 놈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는 그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또렷한 땅의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이어, 저 멀리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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