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55)
“뭐, 뭐야?”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어진 다소 뜬금없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에 나도 모르게 의문을 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위의 풍경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나를 하얀색 공간으로 인도했다.
“후우우….”
숨을 고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뒤 천천히 눈을 떴다.
“….”
눈을 뜨기 전, 당연히 눈앞에 있어야 할 것이 1.5미터를 넘나드는 크기의 잿빛 늑대라 여겼다.
지난 몇 달 동안, 수도 없이 봐 온 것이 와일드 울프고, 이곳에는 놈들밖에 없었으며, 기절한 냥이와 그런 녀석을 둘러멘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도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린 괴물….
아니, 도저히 괴물이라 부르기가 뭐 한 존재를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멍해짐이 가시며 혼란이 일었다.
“Zzz….”
나를 혼란에 빠뜨린 그것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바닥도 아닌데 바닥처럼… 허공에 붕 뜬 상태에서 짧고도 앙증맞은 앞발 사이에 동글동글하고, 귀엽기만 한 얼굴을 폭하니 묻은 채였다.
“허….”
나도 모르게 기가 막힌다는 느낌의 반응을 표했다.
아무리 살피고, 들여다봐도 그런 반응밖에 나오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개? 아니지, 늑대겠지?’
개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가는 곧장 늑대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늑대보다는 개… 아니, 강아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게 사실이었다.
웅크리고 있는 탓에 정확지는 않지만, 끽해야 몸길이가 30센티미터를 넘지 않을 듯싶었다.
온몸을 덮은 연한 회색빛의 털은 후하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도 전혀 반항 없이 흩날릴 정도로 부들부들해 보였다.
또, 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코에서부터 미간과 이마를 타고 넘어가 등으로 흘러 꼬리 끝까지 이어지는 한 줄의 새하얀 털이 제대로 포인트가 되어 인상적이었다.
생김새는 늑대와 개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주둥이가 짧고, 얼굴이 둥글며, 귀여운… 아직 완전히 다 자라지 않은 탓에 정확히 어느 쪽이라 분간이 되지 않아 헷갈릴 뿐이었다.
정황상 개나 강아지 쪽은 아닐 테니, 와일드 울프의 새끼라고 치부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대체 이놈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짐꾼으로 생활한 5년여를 아무리 돌아봐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은 물론, 와일드 울프의 새끼가 있다는 얘기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불어 지난 몇 달간 내 집처럼 5구역을 드나들며, 천여 마리의 와일드 울프를 잡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심으로 생뚱맞은 등장도 그렇고, 전혀 상황도 파악이 되지 않기에 답답한 의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흐음….”
의문과 고민 속에 한동안 녀석을 계속 쳐다만 봤다.
녀석은 여전히 세상 편하게 잠만 처자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급함을 담은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고!]
[스킬 ‘교감’의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에에?”
나도 모르게 소리까지 내며 놀라움을 표했다.
경고 때문은 아니었다.
곧장 이어진 신비한 목소리의 다음 말… 녀석의 정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던 이름 때문이었다.
[대상(어린 와일드 울프 킹)과의 ‘서약’을 서두르세요.]
그랬다.
그저 와일드 울프의 새끼이고, 귀엽다고만 여겼던 녀석의 정체는 와일드 울프 킹….
수식어로 ‘어린’이란 단어가 앞에 붙기는 했지만, 누가 들어도 놈들의 왕이고, 이곳 던전의 최종 보스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한없는 놀라움의 끝자락에 의문이 하나 끼어들었다.
‘가능한 일인가?’
이곳은 분명히 코어가 파괴된 정화 던전이었다.
던전을 오 가는 게이트 너머로 괴물들이 드나들지 않았고, 5구역을 제외한 다른 구역의 괴물들을 죽여도 더는 수를 채우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최종 보스가 살아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긴 했다.
꼭 최종 보스의 몸에 코어가 심겨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앞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최종 보스의 몸이 아닌 곳에 있던 코어만 파괴하고서 떠났다는 가정이라면 충분히 설명도 되고, 가능도 했다.
더불어….
“흐음, 그래서 그랬던 건가?”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와일드 울프의 수를 채우는 5구역의 비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뭐,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던전의 룰이나 정보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과 현실이긴 했다.
하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긴 던전이니까.
‘하긴,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긴 하지.’
나뿐만이 아니었다.
평생을 던전 연구에 몸 바친 이들도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더 많다고 말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을 파헤치고 연구하며 싸워 왔지만, 던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이 없었다.
해서, 내가 떠올린 가설이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은 완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내,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히 채웠다.
‘갖고 싶다.’
녀석을 갖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귀염 터지는 모습으로 잠이나 처자고 있지만 보통 놈이 아니다.
아니, 특별함에 별표를 100개쯤 그려 넣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한 놈이다.
오식이나 냥이에겐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녀석들보다 몇 배나 더 가치가 있고, 그로 인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미치도록 들었다.
‘어째야 하지?’
욕심과 함께 마음이 다급해졌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서약을 맺기 위해서는 녀석이 좋아하는 걸 알아야 한다.
아니면, 냥이처럼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된다.
다른 방법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것이 방법이다.
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쓰읍! 뭐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나.”
녀석이 좋아하는 걸 알 길이 없었다.
프로필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약을 맺은 뒤에나 확인할 수 있으니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크으, 미치겠네!”
곧 신비한 목소리가 경고를 알리며 교감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 올 것만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짊어지고 있던 배낭을 풀어 안을 뒤적거렸다.
그래 봤자, 점심으로 먹을 육포와 물이 전부였다.
“오식이라면 환장을 할 텐데… 쩝!”
손에 들린 육포를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그때였다.
곤히 자고 있던 녀석의 코가 벌름거리는 걸 봤다.
순간, 머릿속으로 강렬한 한 줄기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서,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에 들린 육포를 녀석의 코와 입 근처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또 한 번 녀석의 코가 벌름거렸다.
“호오!”
기대감이 확 하고 상승했다.
스윽….
약간의 힘을 주며 육포로 녀석의 입가를 문질렀다.
움찔….
작은 몸짓의 반응과 함께 녀석이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아, 안녕….”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메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다시금 육포를 들이댔다.
“먹을래? 맛있는 거야.”
녀석의 시선이 육포로 이동했다.
이어, 고개를 살짝 들고는 얼굴 앞에서 알짱거리는 육포에 코를 가져다 댔다.
작지만, 확실히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냄새도 맡았다.
“옳지, 괜찮아. 냄새 좋지?”
알아듣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어르고 달래듯이 말하며, 계속해서 육포로 유혹을 해댔다.
‘제발!’이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득히 담은 채였다.
그런 내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녀석이 조금 더 관심을 보였다.
“할짝….”
녀석이 옅은 분홍색의 앙증맞은 혀를 내밀어 육포를 핥았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시듯 쩝쩝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읏!”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심장 어택으로 저릿해진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사이, 녀석이 한 번 더 혀를 내밀어 육포를 핥았다.
“할짝….”
이어, 다시금 입맛을 다신 녀석이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게 다였다.
계속 핥기만 하고, 입맛만 다셨다.
관심도 있고, 마음에 든 것처럼도 보이는데, 더는 진행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너무 큰가?”
어째 그런 듯 보였다.
그래서 혀로만 핥고, 입맛만 다시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인을 위해 육포를 거둬들였다.
곧장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
“끼잉….”
자기 것을 뺏어갔다는 생각에 보이는 애처로운 울음소리.
그뿐만 아니라, 멀어져가는 육포를 따라 시선과 고개를 움직였고, 끝내는 제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아, 뺏는 거 아니야. 찢어 줄게… 크으!”
황급히 달램의 말을 전했다.
그러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동글동글한 눈에 촉촉한 물기가 어려 있었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애절하고, 애처로운 녀석의 눈빛에 다시금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더욱더 녀석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찌익! 찌익….
빠르게 육포를 찢었다.
작고 가늘 게 찢어진 육포를 손바닥에 올리고는 녀석의 얼굴 앞으로 조심스레 디밀었다.
살짝 움찔하며 몸을 뒤로 물렸던 녀석이 이내 코와 입을 들이밀었다.
“킁킁… 할짝… 할짝….”
녀석의 코와 혀가 내 손바닥을 자극했다.
간지러웠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사랑스러웠다.
귀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얼른 먹어 봐.”
내가 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닭살스럽고, 애정이 듬뿍 들어간 투로 말했다.
내 진심에 화답하듯 녀석이 마침내 육포를 먹기 시작했다.
한 번 더 심장에 타격을 받았다.
“흐흐… 잘한다, 옳지! 우쭈쭈….”
육포를 맛있게 씹어대는 녀석의 모습은 정말이지 귀여움의 절정이었다.
오물거리는 입 모양도 그렇고, 저절로 일그러지는 얼굴도 그랬다.
특히나 가끔 드러나 보이는 작은 송곳니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끼잉….”
간지러웠든지 아니면 자신을 예뻐하는 걸 알고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고개를 쳐들며 내 손길에 몸을 맡겨 왔다.
초승달처럼 감긴 눈도 그렇고, 계속해서 얼굴을 비벼대는 몸짓도 그렇고….
정말이지 애교 폭발!
멍뭉미 작렬이었다.
“아으, 죽겠네! 어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
“끼잉… 끼잉….”
“히히! 너 나랑 살래? 내가 진짜진짜 예뻐해 줄게!”
진심이었다.
또한, 녀석의 정체가 와일드 울프 킹이었기에 갖고 싶었던 마음은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그저, 녀석의 귀여움에 푹 빠져 버린 채 속마음과 진심을 전했을 뿐이었다.
이런 내 진실한 마음이 이번에도 통했다.
“끼잉….”
내 손에 얼굴을 비벼대던 녀석이 내 말에 대답하듯 작게 울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과 나 사이에서 강한 빛이 번쩍였다.
“으윽!”
방심… 아니, 녀석에게 완전히 빠져 있던 까닭에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눈뽕’을 맞았다.
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과 함께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마음만은 기쁘기가 한이 없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긋하게 ‘눈뽕’에서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귓가로 신비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대상(어린 와일드 울프 킹)과의 ‘서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대상(어린 와일드 울프 킹)이 당신의 카드에 봉인됩니다.]
….
원하고 바라던 녀석과의 서약을 마치고는 이전처럼 새하얀 공간의 압박을 받은 뒤,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흐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뽕’을 맞은 이후부터 계속된 웃음이었다.
좋은 의미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오식이였다.
―서… 누….―
녀석의 부름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는 거칠고 살벌한 소리도 들려왔다.
“컹! 컹!”
단박에 빠져 있던 나사를 돌려 끼우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오식이를 향해 무작정 내달렸다.
“너도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