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54)
타앗!
피잇! 핏!
빠르게 달려오던 놈이 급히 몸을 틀며, 내가 날린 화살을 모두 피했다.
하지만, 놈을 뒤따르던 다른 놈은 시야가 가려진 탓에 냥이의 화살을 피할 수가 없었다.
“깨앵!”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놈이 바닥을 굴렀다.
―앗싸다냥!―
“췟!”
입을 삐죽이고는 빠르게 화살을 재 장전했다.
그런 뒤 다시 더블샷을 날렸다.
바닥을 구르다가 이제 막 일어선 놈을 향해서였다.
티딩! 팅!
쐐애액! 쐐액!
연이어 빠르게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이번엔 제대로 명중했다.
고꾸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놈이 완전히 멈춰 섰다.
그런 놈을 향해 냥이의 두 번째 더블샷이 작렬했다.
“깨갱! 켁!”
처절한 비명과 함께 놈이 쓰러졌다.
“크아아앙!”
“컹! 컹!”
발아래 쪽에선 오식이와 와일드 울프의 1:1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로 엉겨 붙어 투덕거리는 것이 살벌함보다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현저한 레벨 차이에서 오는 오식이의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야야, 장난 그만 치고, 빨리 끝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일드 울프를 가지고 놀던 오식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내, 오른쪽 어깨를 슬쩍 뒤로 뺀 녀석의 펀치가 바람을 갈랐다.
휘이익!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악에 받쳐 오식이의 목덜미를 물려던 와일드 울프의 턱이 허공으로 휙 젖혀졌다.
빠르게 놈에게서 떨어지며 거리를 벌린 오식이가 허리에 차고 있던 모닝스타를 꺼내 들었다.
그 후 정신이 없는 듯 휘청이는 와일드 울프의 머리를 조준한 뒤, 아래에서 위로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파아앗!
웅장하게 바람을 가른 모닝스타의 굵직한 머리가 와일드 울프의 대가리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마치, 수박이 허공에서 터지는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
“크으….”
그동안 화살에 맞아 이마에 구멍이 뻥 뚫리거나 대가리의 어느 한 부분이 날아가는 등의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뭐, 목이 반대로 꺾여 덜렁이거나 악어만큼 입이 쫙 찢어지는 등의 광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놈의 대가리를 사정없이 터트리며 날려 버리는 것만큼 통쾌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함을 갖춘 장면은 흔치 않았다.
“크크크!”
매우 만족스럽게 크큭거리는 오식이의 웃음이나 표정도 인상적이고 말이다.
….
늘 그랬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이제는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사냥이 가능한 상태였다.
아니, 내가 끼는 것이 오히려 민폐랄까?
엎치락뒤치락!
오식이가 마치, 와일드 울프와 블루스를 추듯 엉겨 붙은 상황에서 냥이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쐐애액!
퍼억!
화살은 오식이의 어깨를 지나 와일드 울프의 왼쪽 눈을 뚫고 깊게 틀어박혔다.
거칠게 바둥거리던 놈이 순식간에 몸을 경직시켰다가 이내 부르르 떨어댔다.
“크르르….”
다소 심기가 불편한 듯한 으르렁거림을 흘린 오식이가 고개를 휙 틀고는 냥이를 노려봤다.
자신의 장난감(?)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불만의 표정을 한껏 드러낸 채였다.
―뭘 보냥? 하도 꾸물거리기에 도와준 거다냥!―
냥이가 오식이를 향해 툭 하는 느낌으로 말을 뱉어 냈다.
듣고 있던 내 미간이 절로 꿈틀거려졌다.
꾸깃!
냥이가 한 짓이 나쁜 의도가 있다거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른 건 아니었다.
조금은 위험할 수 있는… 나로서는 혹시라도 오식이가 다칠까 싶어, 아직은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짓을 전혀 망설임 없이 자신만만하게 해대는 냥이였다.
뭐,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는지라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빠른 사냥을 위한 일이었고, 오식이를 도와준 것이라 봐도 좋았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해도 어째… 쩝!’
그랬다.
말투가 문제였다.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냥이의 재수 없는 말투 말이다.
―나… 빠….―
―뭐가 나쁘냥?―
―나… 빠….―
―그러니까 뭐가… 에휴, 됐다냥!―
냥이가 오식이의 말을 무시했다.
오식이가 더욱더 인상을 구겼다.
“크르르….”
애초에 말싸움으로는 전혀 상대가 안 되는 일이었다.
생김새만 봐도 그랬다.
왠지 얍삽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느낌의 냥이와 아무리 뜯어봐도 무식함이 넘쳐나는 오식이였다.
뭐, 프로필에도 버젓이 박혀 있을 만큼 지능이 떨어지는 게 오크 종족의 단점이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편을 들고 싶은 안타까움이 앞설 지경이었다.
냥이에게 완전히 무시를 당한 오식이는 제 손에 붙들려 있는 와일드 울프에게 화풀이를 했다.
“크륵!”
이를 악물며 불만과 함께 양손에 힘을 주고는 놈의 주둥이를 단박에 찢어 놓았다.
쫘아아악!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미 숨이 끊어진 놈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쾅쾅 짓밟아대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냥이가 다시금 지랄 같이 핀잔을 줬다.
―적당히 해라냥. 왜 엄한 데다가 힘을 빼고 있냥?―
다행히도 오식이는 정신없이 화풀이를 해대느라 냥이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에, 냥이가 한 번 더 이죽거림을 날리려는 눈치였다.
‘흠….’
이제는 내가 나서야 할 차례였다.
먼저, 가만히 두면 와일드 울프를 땅속까지 박아 넣을 기세로 밟아대고 있는 오식이를 향해 말했다.
“오식아, 그만! 거기까지!”
“크륵!”
내 말에 오식이가 즉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슬쩍 보다가 한 번 더 와일드 울프를 짓밟았다.
쾅!
녀석의 발 구름에 땅이 흔들렸다.
내가 올라선 나무도 진동하다가 우수수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 몇 장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녀석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열이 받은 녀석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에휴. 무식도 자랑….―
본능… 아니, 습관적인 냥이의 이죽거림이 곧장 이어졌다.
재빨리 냥이의 말을 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도 그만해!”
―엥? 뭐, 뭐냥?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그러냥?―
자신이 하는 짓을 전혀 개의치 않고, 뭐가 문제인지도 인지를 못 하는 냥이가 억울하다는 듯 반응했다.
짧은 한숨과 함께 냥이를 노려봤다.
“후, 뭐가 됐든 그만하라면 그만해.”
분위기에 기가 죽을 리 없는 냥이가 다시금 억울함을 표하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빠르게 타이밍을 뺏으며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결정타를 날렸다.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결정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생뚱맞으면서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너무나 탁월했다.
―밥… 고… 기… 배… 고… 파….―
―벌써 점심 시간이냥? 그러고 보니 배가 홀쭉하다냥!―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당장에 식사와 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 늘 있는 일이었다.
‘에휴, 누가 누굴… 쩝!’
단순한 놈들의 반응에 코끝을 찡긋하고, 입맛까지 살짝 다셨다.
그저 돌아가는 분위기와 상황을 잠재우기 위한 미끼로 밥을 내세운 건 아니었다.
조금의 여유는 있었지만, 곧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 시간이었다.
당연히 그 전에 할 일도 있었다.
“일단, 화살부터 챙기자.”
우리가 자리를 잡은 나무 아래는 물론, 안전선 근처에 무수히 떨어지고, 박혀 있는 화살을 수거하는 일이었다.
―바… 압… 배… 고… 파….―
“알았으니까, 화살부터!”
나를 올려다보는 오식이를 향해 달래듯,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고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냥이는 벌써 내려와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뭐 해? 너도 얼른 가.”
“크륵!”
오식이가 쿵쿵거리며 냥이의 뒤를 따라갔다.
절로 말려 올라가는 입술에 피식하고는 나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빨리빨리 하라냥!―
“크르르….”
안전선 근처에 떨어진 화살을 수거하면서 오식이와 냥이가 투덕거렸다.
괜히 놀리고, 시비를 거는 쪽은 냥이였고, 당하는 쪽은 오식이였다.
―어쭈? 인상펴라냥!―
“크륵!”
―그건 못생긴 얼굴을 더 못생기게 만들 뿐이다냥!―
이 또한 늘 있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쯧쯧!”
해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혀를 차기는 했지만,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말했듯이 늘 있는 일이었고, 진짜로 싸우거나 악감정으로 하는 짓거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그랬었다.
지금껏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직전에 있었던 사소한 다툼….
나와 냥이는 그저 그 정도로만 여겼던 일이 오식이에게는 상처가 되고, 앙금으로 남았던 것이었을까?
녀석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줍느라, 내 관심과 시선이 완전히 멀어지고 차단된 순간이었다.
나는 안전선 근처에 있었다.
연신 티격태격하던 오식이와 냥이는 뒤쪽… 안전선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크륵!”
성질이 난 것 같은 오식이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아니, 그보다 먼저 섬뜩한 느낌이 뒤통수를 찌르며, 내 신경을 자극했다.
스윽….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가 반쯤 돌아가고, 아직 오식이와 냥이가 시야에 잡히지 않을 즈음.
뭔가를 세차게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뻐어엉!
냥이의 비명? 울음?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소리가 이어졌다.
“냐악?!”
이내, 시야에 오식이가 들어왔다.
함께 있어야 할 냥이는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오식이는 오른쪽 다리를 쭉 뻗어 올린 포즈로 서 있었다.
마치, 축구선수가 공을 차고 난 듯한 모양새였다.
멀리 내다보는 듯한 시선도 자신이 찬 공을 보고 있는 듯했다.
표정은 굉장히 만족스럽고, 뿌듯해 보였다.
스윽….
나도 모르게 오식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고개가 90%쯤 돌아갔을 때, 뭔지 알 것만 같은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투웅….
“깩!”
상당한 충격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로 뱉어지는 처절 내지는 안타까운 비명과 함께였다.
이어, 완전히 돌아간 고개와 시선에 허공으로 살짝 튀어 오른 냥이의 모습이 잡혔다.
“….”
어떤 말이나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절로 입이 벌어졌다.
눈도 몇 번 깜빡여졌다.
그 사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던 냥이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고, 날아간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데굴데굴 굴러갔다.
잠시 귀를 자극했던 짧은 비명 외에 어떠한 소리도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상황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음에도 큰일이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면서 불길한 단어와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서, 설마…. 에이, 아니겠지….’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내 기절 정도로 수위를 낮췄다.
상황과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어느 쪽이 됐든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야, 인마! 너 지금 무슨 짓을… 미쳤어? 어?”
오식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직전까지도 뿌듯함과 만족감으로 웃고 있던 녀석이 내 반응에 놀라서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녀석을 진심으로 노려보고는 즉시 소리를 지르며 냥이를 향해 뛰어갔다.
“냥아! 괜찮아?”
그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와일드 울프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컹!”
“컹컹컹!”
한 마리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었고, 그제야 정면에서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온 놈들은 네 마리….
아니다.
더 많다.
겹쳐져 있는 통에 보이지 않고, 뒤늦게 반응하여 선두 그룹과 거리를 두고 달려오는 놈들까지 합치면 못해도 열 마리는 될 듯했다.
“이런, 젠장….”
바로 실수와 원인을 깨달았다.
냥이는 물론, 나 또한 안전선을 훌쩍 넘어 있었다.
그에, 놈들이 우리를 감지하고서 반응한 것이었다.
다다닷!
놈들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나도 냥이 곁에 다다랐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냥이를 안고는 몸을 반대로 틀었다.
막 발가락에 힘을 주며 지면을 박차려던 그 순간!
신비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특별한 상황에 의해 스킬 ‘교감’이 자동으로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