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51)
“흐흐….”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룸미러로 그런 나를 쳐다보던 택시 기사가 물어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네? 아, 네… 있죠. 하하!”
“뭔지는 몰라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택시 기사의 표정이 무척이나 궁금한 듯했다.
내 입에서 뭔가 더 얘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러나 사정을 얘기해 주지는 않았다.
이미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지만, 한 번 더 활이 든 상자를 끌어안았다.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끌어안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무려, 1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활의 이름은 ‘엘프의 활’이었다.
맞다.
익히들 알고 있을… 뾰족한 귀를 가진 미남 미녀의 그 ‘엘프’다.
그렇다고 정확히 그놈(?)이 그놈은 아니었다.
던전에는 엘프와 비슷한 모습과 습성을 지닌 괴물이 있다.
‘메르스’와 ‘에르스’라는 이름이었고, 남성형이 메르스, 여성형이 에르스였다.
놈들은 엘프처럼 숲을 지키며 활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
생긴 것도 예쁘장하게 생겼다.
다만, 한 손에 손가락이 3개씩뿐이며, 눈이 없다는 게 특징이었다.
그런데도 쏘는 족족 표적을 꿰뚫는 무시무시한 활 솜씨를 자랑했다.
놈들의 레벨이 40이나 되기 때문이었다.
해서,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도 그렇겠지만, 이전의 내가 놈들을 만나거나 봤다면,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며 사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엘프의 활… 정확한 명칭은 ‘메르스의 활’과 ‘에르스의 활’인 이 활은 당연히 놈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무기류의 던전템이었다.
참고로 내가 산 활은 에르스의 활이었다.
뭐, 이름만 메르스니 에르스지, 능력치나 모양새는 똑같았다.
던전템인 만큼 얻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기본 능력치가 뛰어났으며 옵션도 좋았다.
그러니 가격이 1억 원이나 하겠지?
확인차 감정 머신에 돌려본 결과, 공격력이 무려 50이나 됐다.
또한, 추가 옵션으로는 공격력 향상 20%, 연사력 증가 10%, 명중 보정 5%가 붙었다.
물론, A 클래스의 옵션이었다.
아직은 사용 전이라 얼마나 좋은 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옵션이 달려 있었고, 마음에도 쏙 들었다.
그렇다고 1억이란 거금을 선뜻 내고 살 수는 없는 법.
무기점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노트북을 빌려 시세를 확인했다.
최저가 9,800만 원부터 최고가 1억5천만 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야 해!’
주저 없이 1억을 내고는 엘프의 활을 샀다.
….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당장에 던전으로 향했다.
“쩝, 플로리를 다 잡은 게 아쉽군.”
활의 성능을 시험할 대상이 마땅치 않음에 입맛을 다셨다.
아쉬운 대로 뿔토끼를 잡아 보기로 했다.
끼이익!
화살을 장전하고는 시위를 당겼다.
비싸고, 좋은 활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기존에 쓰던 박정아의 활보다 가볍고, 다루기도 쉬운 듯했다.
팅!
쐐애액!
퍼버벅!
“와우!”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화살을 맞은 뿔토끼가 폭발하듯 터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까닭이었다.
한참이나 활을 들여다보며 놀라움의 여운을 만끽하다가 뒤늦게 냥이와 오식이를 소환했다.
두 녀석의 눈앞에서도 보란 듯 활의 능력을 선보였다.
―오오! 엄청난 활이다냥.―
냥이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놀림과 자랑의 투를 담아 물었다.
“그렇지? 어때? 너도 갖고 싶지 않아?”
―아니다냥. 나와는 맞지 않는 활이다냥.―
딱 잘라 말하는 냥이의 냉정함에 입을 삐죽거렸다.
….
만족스러운 활의 성능을 확인한 뒤, 임시 거처로 사용했던 절벽 부근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냥이를 시켜 절벽 틈새에 엘프의 활을 숨기도록 했다.
다시금 A 구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값비싼 활을 들고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거나 날치기라도 당한다면… 크으!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쩝!
솔직히 말하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 원래의 외출 목적이었던 화살과 식료품을 사는 걸 잊어버렸었다.
택시를 타고서 한참이나 지난 뒤에 그것이 떠올랐다.
차를 돌려 A 구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엘프의 활을 숨겨 놓고, 움직이는 게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제는 쓸 일이 없을 박정아의 활도 팔아야 한다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였다.
어쨌든.
다시 A 구역으로 향했다.
곧장 무기점부터 들렀다.
“어서 오… 어?”
무기점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뜸 그에게 들고 온 활을 내밀었다.
“이것 좀 팔려고요.”
“네? 아아, 난 또… 아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에? 왜요?”
“혹시나 마음이 바뀌셨나 해서요.”
“아아… 그럴 리가요. 사용해 보니 엄청 좋더라고요. 아주아주 만족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런 의미로 가격 좀 잘 쳐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무기점 주인이 활을 살폈다.
“활을 좀 험하게 다루셨네요?”
“그런가요?”
“네, 여기저기 까지고 긁힌 곳이 많네요. 시위도 제법 늘어난 상태고요.”
딱히 활을 소중히 다루지는 않았었다.
쓰기도 많이 썼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서 가격을 깎기 위한 장사치 특유의 수작질 냄새를 맡았다.
어쩌는지 보기 위해 대꾸 없이 기다렸다.
조금 더 활을 살핀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일단 도색도 다시 해야 하고, 활시위도 갈아야 할 것 같네요.”
다시금 수작질의 냄새가 진동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해서, 도색비나 수리비를 빼고 계산해야….”
내 그럴 줄 알았다.
그가 점점 더 장사치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절로 가늘어지는 눈으로 말이 이어지고 있는 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시세대로 드리겠습니다. 손님은 저희 가게의 VIP이시니까요. 하하!”
시세니, VIP니 하며 떠들고, 웃기까지 하는 그의 얼굴이 가증스럽게 여겨졌다.
해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튀어나오는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나 되죠?”
“시세가 삼….”
내 물음에 답하는 그의 말에 바로 뚜껑이 열렸다.
뒷말은 듣지도 않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요? 30?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몇 달 전….
그러니까 정인영과 박정아와의 사건이 있었던 다음 날.
아수라 스워드의 정체와 시세를 알아봄과 동시에 활을 팔 기회가 있었다.
그때의 거래가가 분명 100만 원이었다.
뭐, 그때보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고, 그의 말처럼 활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반값도 아니라 겨우 30만 원에 가격을 후려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한 것이었다.
그것도 불과 몇 시간 전에 1억짜리 활을 산… 제 입으로도 VIP라 칭하는 내게 그런다는 것은 장사치의 도둑놈 심보 이상의 날강도와도 같은 짓거리나 다름이 없었다.
주춤….
내 불같은 반응에 무기점 주인이 놀라고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났다.
한바탕 더 화를 쏟아 내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틈을 타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고, 손님. 갑자기 왜 화를 내십니까?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상황이 그렇잖아요. 내가 뻔히 가격을 아는데, 30이라니!”
“예? 30이라니요?”
“방금 그랬잖아요! 이 활의 시세가 30이라고!”
“제가요? 언제요? 이 활의 시세는 300입니다.”
“그러니까. 삼… 에? 사, 삼백이요?”
“그렇습니다. 물론, 새 제품을 사시려면 500은 줘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고라서….”
무기점 주인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한참이나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빠르게 생각들을 정리하고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 아니, 반년 사이에 시세 변동 같은 게 있었나요?”
“아니요. 작게는 늘 있지만, 큰 폭으로 오르고 내린 적은 없습니다.”
“그럼, 이건 시세가 얼마나 하죠?”
허리를 틀며 아수라 스워드를 보여 줬다.
“혹시, 아수라 스워드입니까?”
“네, 맞아요.”
“호오… 궁수신데, 왜 그런 검을….”
“어쩌다 보니까… 그보다 이 검은 얼마나 하죠?”
“워낙에 희귀품이고 거래도 잘 안 되는 검이라 저도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한 5000만 원쯤 했던 것 같네요.”
“에에? 5000만 원이요?”
“네, 아마도… 잠시만요. 정확히 확인해 보겠습니다.”
무기점 주인이 당장에 노트북으로 시세 확인에 들어갔다.
그의 말대로 아수라 스워드의 거래 가격은 5000만 원 선이었다.
대애앵!
한 번 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흘렸다.
“이런 썩을… 비 오는 날, 개 패듯이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봤나.”
앞에 서 있는 무기점 주인에게 한 소리가 아니었다.
당연히 먼젓번의 무기점 주인을 향한 소리였다.
무지한 탓에 완전히 속아 버린 나도 병신이지만, 300만 원짜리 활을 100만 원에 사려하고, 5000만 원짜리 검을 3000만 원이라며 대놓고 나를 호갱 취급한 그 빌어먹을 자식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개자식! 조만간에 응징과 푸닥거리가 뭔지 똑똑히 보여 주마!”
계속해서 이를 갈며, 분을 표출했다.
“소, 손님… 제, 제가 뭘….”
오해를 한 무기점 주인이 난감함과 난처함, 그리고 약간의 울먹임까지 내비치며 오들오들 떨어댔다.
그에,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말했다.
“아, 아닙니다. 사장님께 한 소리가 아니에요.”
몇 번의 말이 더 오간 뒤에 간신히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 뒤 300만 원에 활을 넘긴 후, 무기점을 빠져나왔다.
* * *
대량의 화살과 식료품을 사고는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꽤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아이고, 힘들어라….”
A 구역까지 두 번이나 왕복했고, 나름의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던 터라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어째, 온종일 사냥을 한 날보다 더 피곤하지 싶었다.
해서, 하루를 더 쉬기로 했다.
다음 날.
든든하게 아침까지 챙겨 먹고는 와일드 울프가 있는 5구역의 그곳으로 향했다.
….
근 두 달 전보다 몸이 날렵해져 있었다.
해서, 냥이는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오르지 못했던 위치까지 나무를 탈 수 있었다.
그사이에 한층 숙련도가 높아진 가늘게 뜬 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확인하지 못했던 지형과 와일드 울프를 모두 살필 수 있었다.
“음… 예상했던 대로군.”
환 공포증을 떠올렸던 특이한 지형도 그렇고,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근처에서만 어슬렁거리는 와일드 울프의 움직임도 그렇고, 계속해서 상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 지형의 제일 끝에 난 가장 큰 구덩이의 크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흐음….”
그것을 그냥 일반적으로 큰 구덩이라 부르기에는 표현이 약했다.
그보다는 운석이 떨어져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를 떠올리면 좀 더 빠르게 이해될 듯했다.
“호오, 그 말도 사실이었군!”
팔자 편한 냥이를 윽박지르던 와중에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녀석이 변명하듯 털어놓았던 정보….
거대한 구덩이 중앙에 많은 수의 와일드 울프가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똑똑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물론, 전반적인 모습과 광경만이 확인될 뿐, 놈들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뭐, 일단 전부 다 쓸어버리면 뭔지 알게 되겠지!’
조사를 마치고는 안전한 곳으로 잠시 이동했다.
그러고는 놈들을 사냥할 작전을 최종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