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40)
활을 챙겨 들고는 플로리 밭으로 향했다.
이제는 완벽히 회복하여 멀쩡해진 오식이가 앞장을 섰고, 얼마 전부터 ‘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아처캣은 내 옆에서 함께 걸었다.
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냥아치’였다.
맞다.
‘양아치’의 그 냥아치다.
아처캣은 궁술 수업에서 온갖 잘난 척과 생색을 동반한 거드름을 피웠다.
악질 교관처럼 지랄을 떨어대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그러다가 밤만 되면 180도 바뀐 모습으로 내게 아양을 떨며,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어 늘어지게 자는 이중성을 보였다.
당연히 아처캣이 품을 파고드는 것을 거부했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수업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들게 진행됐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야?”
―절대로 아니다냥! 공과 사는 구분 되어야 한다냥!―
절대라고 단정하며, 아처캣은 발뺌했다.
아무리 봐도 아닌 듯했다.
그러나 반박하거나 내세울 물증 내지는 증거가 없었다.
당일… 피곤함에 지쳐 거부고 뭐고 간에 그냥 뻗어 버렸다.
아처캣은 허락도 없이 내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다음 날의 수업은 그나마 좀 수월했다.
“진짜 아닌 거야? 맞는 거 같은데?”
―오해다냥! 오늘은 어제보다 좀 나아서다냥!―
아처캣은 끝까지 발뺌했다.
‘젠장….’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허락을 하고 말았다.
아니, 허락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암묵적인 형태로 딜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그 뒤로 냥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속뜻은 얘기해 주지 않았다.
말끝마다 ‘냥냥’거리기에 그런 것이라 둘러댔다.
―냥이… 냥이… 너무너무 좋다냥!―
제게 이름이 생긴 것을 냥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식이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을 내심 부러워했었다고도 슬쩍 고백했다.
이름 때문에 호감도가 오르기도 했다.
더욱더 이름의 진정한 내막을 밝힐 수가 없었다.
뭐?
그렇게 힘들고 뭐 같았으면, 그냥 때려치우면 되지 않았겠냐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초반엔 거의 초 단위로 그렇게 할까 싶었다.
하지만, 능수능란한 냥이의 비꼼과 칭찬… 당근과 채찍질의 조련에 꾸역꾸역 이겨 내고 넘어갔다.
솔직히 칭찬보다는 무시가 더 나를 자극했었다.
그 또한,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진정한 냥아치 급이었다.
….
플로리 밭에 도착했다.
안전한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크륵….”
오식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
―왜 그러냥?―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어쩐지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인마, 괜찮아. 진정해!”
“크륵….”
녀석이 정곡을 찔린 듯 움찔하다가 이내 아닌 척을 했다.
―걱정하지 마라냥! 내가 있지 않냥!―
“크륵….”
이것들이 또 이루어질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
….
본격적인 사냥에 돌입했다.
조심스레 플로리 밭으로 들어갔다.
냥이가 내 앞에 서선 뛰어난 시력으로 버섯돌이를 찾았다.
나는 화살을 시위에 걸고서 대기했고, 오식이는 뒤쪽에 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저기 있다냥! 1시 방향이다냥!―
냥이가 손을 뻗어 버섯돌이의 위치를 가리켰다.
당장에 거리를 쟀고, 바람 방향과 세기를 확인했다.
“후우우….”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활을 들어 올렸다.
끼이익….
활시위가 지금의 내 긴장감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팅….
긴장감을 풀어내듯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쐐애애액….
태애앵!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정확하게 버섯돌이를 타격했다.
명중이 아니라 타격이었다.
굴곡진 버섯돌이의 대가리 모양을 타고서 화살이 튕겨 나갔다.
푸르르….
이내, 버섯돌이가 몸을 흔들며, 포자와 가루를 한껏 뿌려댔다.
만약, 근처에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터였다.
“이런….”
―괜찮다냥! 각도를 조금만 내려라냥!―
냥이의 조언을 받아 다시금 화살을 장전했다.
그 뒤 거침없이 발사했다.
쐐애애액….
퍼어억!
전보다 완만한 각으로 날아간 화살이 이번엔 제대로 명중했다.
화살의 1/3쯤이 놈의 대가리에 박혔다.
“오예!”
―잘했다냥!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냥!―
“알아!”
즉시 흥분을 가라앉히며, 같은 각도와 세기로 화살을 날렸다.
쐐애액….
퍼억!
명중… 명중… 미스… 명중….
명중과 미스를 통틀어 열한 발.
그중, 여덟 발을 맞고서야 버섯돌이가 쓰러졌다.
“후아아… 더럽게 안 죽네!”
활로 첫 사냥을 성공했다는 기쁨보다는 진이 빠져 버린 것이 더 컸다.
해서,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향해 냥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실전파인거냥? 연습 때보다 훨씬 더 잘했다냥!―
뒤에 있던 오식이는 손뼉을 쳐댔다.
뿌듯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날아들며,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
냥이의 말대로 나는 실전파였던 모양이다.
뭐, 어떤 것이든 계속해서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일취월장이란 말처럼 내 실력은 빠르게 상승했다.
―이참에 아예 궁수 쪽으로 전향해 보는 건 어떠냥?―
전혀 빈말 같지 않은 냥이의 칭찬에 진지하게 고민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매일 같이 플로리 밭을 정리해 나갔다.
계획대로 철저하게 버섯돌이만을 잡았다.
어차피 플로리는 잡을 수도 없었다.
해서, 얼핏 보면 플로리만 한가득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에 구역의 범위가 넓어 앞으로가 더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어쨌든 간에….
5레벨인 버섯돌이를 잡다 보니, 어느새 4레벨에 오를 수 있었다.
뭐, 기대 반 포기 반의 심정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이전만큼 크게 짜증도 나지 않았다.
‘레벨을 올리는 의미가 있긴 한 건가?’
문득,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고, 5레벨엔 그래도 뭔가 있겠거니 여기며 넘어갔다.
그런 와중에 더 심각하고, 큰 문제도 생겼다.
나름으로 넘쳐 났던 뿔토끼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할 수준이었다.
“흐음, 고민이네….”
고기야 사다 먹으면 그만이었다.
아직 떵떵거리고 살 정도는 아니지만, 고기를 사 먹을 만큼의 돈은 충분했다.
문제는 왔다 갔다 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귀찮음이었다.
냉장고가 없기에 많은 양을 한꺼번에 사 놓을 수 없으니, 못해도 사나흘에 하루는 소비해야만 했다.
“열흘에 한 번… 아니,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이면 괜찮을 듯한데… 쩝!”
플로리 때문에 미처 회수할 수 없거나 아예, 망가져서 쓸 수 없게 되는 화살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외출은 해야 했다.
사나흘과 일주일 이상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하아… 어째야 하지?’
―지금 뭐 하는 거냥? 정신 차리지 못 하냥?―
집중에 집중을 더해도 모자라기만 한 사냥 중에도….
‘흐음… 이걸 먹고 나면 이제 얼마나 남은 거지?’
하루에 두 번뿐인 소중한 식사 중에도….
‘하아아… 미쳐 버리겠네!’
내일을 위해 피로에 찌든 몸을 쉬게 해야 할 잠자리에서도….
도무지 고민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젠장!”
아무리 고민해도 사나흘에 한 번 외출을 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결국엔 그렇게 하기로 하고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던 고민을 그만두었다.
다음 날.
고기와 화살을 사기 위해 외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그렇게나 고민하던 것이 너무나 쓸데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허, 이런 방법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
“흐흐!”
우리 앞에 한가득 쌓여 있는 먹거리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못 심각했던 고민을 단숨에 타파하고, 앞으로 뿔토끼 대신에 우리의 소중한 식량이 될 먹거리는 바로 ‘육포’와 ‘통조림’이었다.
육포를 질겅거리는 오식이를 향해 물었다.
“오식아, 어때? 맛있지?”
―맛… 있… 다….―
“냥이, 넌 어때?”
―그만 좀 물어보면 안 되냥? 벌써 일곱 번째다냥!―
살짝 퉁명스럽게 말한 냥이는 꽁치 통조림의 국물까지 삭삭 핥아 먹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이것도 맛있기는 하지만, 난 저게 더 맛있다냥!―
“어떤 거?”
―이거 말이다냥! 완전 내 취향이다냥!―
냥이가 집어 든 통조림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왜 웃는 거냥?―
“아, 아니야. 네가 마음에 든다니까 좋아서. 그건 네 전용이니까, 너 혼자 다 먹어도 돼!”
―정말이냥? 진짜 나 혼자 다 먹는다냥!―
“그래, 그렇게 해. 하하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냥이가 들고 있는… 제 취향에 맞다는 통조림이 ‘고양이 사료’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 산 건데, 이토록 좋아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 외에도 다양한 통조림이 한가득 있었다.
용량부터가 다른 오식이 때문에 육포는 더 많았다.
그냥 고기보다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긴 했지만, 당분간… 아니, 앞으로는 식량 걱정이나 날짜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 * *
계속해서 버섯돌이 사냥을 이어 나갔다.
며칠이 흘렀는지 이제는 따지지도 않았다.
잡고, 또 잡고, 또 잡고….
그런데도 버섯돌이는 넘쳐 나기만 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않은 플로리는 더 넘쳐 났고 말이다
“후아아… 힘들다. 우리 조금만 쉴까?”
―저쪽에 있는 것 한 놈만 더 잡자냥!―
전혀 힘들 리 없는 냥이의 재촉에 눈을 살짝 흘겼다.
혀를 한 번 차고는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정확하게 버섯돌이를 조준해 화살을 날렸다.
쐐애애액….
퍼억!
여전히 여덟 발 정도를 맞춰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전보다 미스가 적어 사냥 속도는 줄어든 상태였다.
‘두울… 세엣….’
속으로 날린 화살의 수를 셌다.
습관으로 물든 것까지는 아니었고,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던 중!
‘다섯, 여섯!’
평소의 템포와 전혀 다른 타이밍으로 두 발의 화살을 연이어 발사하게 됐다.
쐐액… 쐐액….
퍼벅, 퍽!
거의 하나처럼 연결되어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버섯돌이의 대가리를 꿰뚫었다.
그러더니 놈이 홀연히 사라졌다.
“냐앙?”
“크륵?”
곁에서 지켜보던 냥이와 오식이가 나보다 먼저 반응을 보였다.
이어, 나도 이상한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뭐, 뭐지?”
손에 들린 활과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어떤 여운 같은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 다시 해 봐라냥! 저, 저기 있다냥!―
냥이가 말까지 더듬으며, 나를 재촉했다.
바로 목표를 확인하고는 화살을 날렸다.
‘하나… 두울….’
화살 수를 세는 것은 물론, 손에 남은 여운과 감을 계속해서 떠올린 채였다.
세 발까지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러다….
‘네엣, 다섯!’
네 발째와 다섯 발째에 직전과 같은 불규칙한 타이밍의 현상이 일어났다.
쐐액… 쐐액….
퍼억! 퍽!
연이어 날아간 화살이 버섯돌이에 명중했다.
이번에도 놈이 홀연히 사라졌다.
“헐….”
내가 하고서도 믿지 못할 상황과 현상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 내 머릿속으로 냥이의 말이 전해졌다.
―더, 더블샷이다냥….―
냥이를 쳐다봤다.
나보다 더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 한 번 더 해 봐라냥….―
“어, 어….”
주위를 둘러보며 버섯돌이를 찾았다.
다시 활을 겨누었다.
‘네엣, 다섯!’
이번에도 네 발째와 다섯 발째에 같은 현상을 재현했다.
떨림으로 가득한 냥이의 말이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너, 너… 처, 천재인 거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