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37화 (37/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37)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아처캣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나 역시, 신경을 쓰지 않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눈치를 살폈다기보다는 살짝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으음, 아무리 봐도 풍만함은 없는데….’

풍성함은 있었다.

그런 풍성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인지 풍만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꿈인 건가?’

어째 입맛이 씁쓸해지려 했다.

“에잇! 이건 뭐가 이리 딱딱해!”

곁을 지나던 중, 아무 의미 없이 만진 뿔토끼의 가죽에 화풀이를 했다.

햇빛에 말린 지 하루, 달빛에 말린 지 이틀이 지난 뿔토끼의 가죽은 완전히 쪼그라들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두질’을 해 주지 않은 결과였다.

이유를 알 길이 없고, 쓸모도 없어진 가죽을 발로 차 버리고는 던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처캣이 슬금슬금 뒤를 따라왔다.

….

던전 앞에 도착해서는 아처캣을 카드에 봉인했다.

오식이로 실험을 해 본 결과, 그대로는 정화 던전의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던전의 코어가 파괴되고 나면, 안에 서식하는 괴물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듯했다.

고로, 아직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활성화 던전의 게이트는 마음대로 드나들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던전 안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오식이를 꺼내 줬다.

“크아아아아앙!”

오늘도 우렁찬 포효와 함께 등장한 오식이가 재빨리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의미인지 감이 오기에 나직하게 말했다.

“카드 속에 있어. 웬만하면 너랑 같이 있게 하지 않을게.”

“크륵….”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콧구멍을 벌렁거린 오식이가 다시금 우렁찬 포효를 토해 냈다.

내가 오식이에게 한 말을 들은 아처캣이 말을 전해 왔다.

―꺼내 주면 안 되냥?―

“안 돼!”

―아아… 여긴 너무 답답하다냥.―

“그래도 안 돼!”

―얌전히 있겠다냥. 약속한다냥! 그러니 제발 꺼내 달라냥.―

잠시 고민했다.

어젯밤처럼 계속해서 징징대면, 온종일 피곤할 게 분명했다.

사냥에 지장도 있을 듯했고 말이다.

‘흠, 어쩌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오식이에게 저만치 앞서가라고 명령한 뒤에 아처캣을 꺼내 줬다.

―고맙다냥. 넌 역시 따뜻한 인간이다냥.―

밖으로 나온 아처캣이 아부성 멘트부터 날렸다.

이런 경우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착한’이 아니라 ‘따뜻한’을 사용한다는 게 이례적이면서도 오식이를 멍청하다고 놀릴 만큼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금 인지했다.

“그냥 이곳에 있을 수 있지?”

―아, 따라가는 게 아니냥?―

“쟤한테 죽고 싶냐?”

오식이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아처캣도 오식이를 쓱 보더니만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뭐, 딱히 겁나지는 않는다냥.―

“쩝! 아무튼, 둘이 붙어 있는 건 안 돼!”

―아, 알았다냥. 난 이곳에 남아 있겠다냥. 마침, 햇빛도 좋아 따뜻하다냥.―

“그래,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말고, 따뜻한 곳에서 잠이나 자라.”

말을 마치고는 돌아서려 했다.

그러다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너도 할 일이 있어!”

―뭐를 말이냥?―

“저쪽으로 가면 뿔토끼가 있거든?”

―안다냥. 어제 봤… 아으으! 또 생각나 버렸다냥! 저 멍청한 자식이….―

아처캣이 갑자기 흥분했다.

그러는 이유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조용! 아무튼, 점심 전에 뿔토끼 좀 잡아다 놔! 너보다 레벨도 낮고, 약하니까 할 수 있지?”

가만히 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뭐로 보나 나을 듯싶었다.

아처캣이 뿔토끼를 미리 잡아다 둔다면, 오식이가 철갑 굼벵이 밭에서 뿔토끼 밭까지 오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그 시간에 사냥을 더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뭐, 살짝 걸리는 부분이라면, 아처캣의 주 무기인 활이 없다는 것과 뿔토끼와 비교해 덩치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접전에도 능하다는 프로필의 내용과 시원하게 오식이의 죽빵을 날리던 모습, 그리고 뿔토끼와의 레벨 차이나 특출난 민첩성 등에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덩치나 크기 부분에서 오는 문제점… 두 마리까지는 어찌 되겠지만, 그 이상은 분명히 힘들 것 같은 부분은 여러 번 오가는 것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없다냥!―

내가 걸려 하는 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처캣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일단 해 보라는 의미로 걱정을 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열 마리쯤 잡아다 놔. 불은 내가 와서 피울게.”

―알았다냥!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냥!―

그렇게 아처캣에게 점심 준비를 맡기고는 오식이와 함께 철갑 굼벵이 밭으로 향했다.

….

“지금이야, 뒤집어!”

“크르륵!”

훌러덩….

“이야압!”

콰직!

콱콱콱! 콰작콰작!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팀플레이로 철갑 굼벵이를 사냥했다.

쌓여 가는 마정석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없잖아 있었다.

“후우우… 진짜 저주캐인가 보네, 쩝!”

2레벨에 4레벨짜리 괴물을 상당수 잡았다.

오식이의 도움과 편법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경험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부분이었다.

철갑 굼벵이를 뒤집는 과정에서 놈에게 약간의 대미지를 입힐 수는 있어도 90… 아니, 적게 잡아도 95% 이상은 내가 잡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경험치 또한 고스란히 내가 먹는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이제 이틀째인데,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 건가? 아니야, 남들은 1레벨짜리 잡으면서도 금방금방 오른다잖아!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이 없어!”

그랬다.

1레벨 내지는 2레벨짜리 괴물을 잡으면서도 하루 내지는 이틀이면 2레벨에 오른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3레벨까지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3레벨짜리 뿔토끼를 잡아 겨우 2레벨이 되었고, 지금은 4레벨짜리 철갑 굼벵이를 잡는데도 어째 감감무소식이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지만, 생각할수록 짜증이 나는 부분이었고,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에효,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철갑 굼벵이를 무자비하게 잡아 족쳤다.

….

“밥 먹으러 가자!”

“크륵!”

오전 사냥을 끝내고는 던전 입구로 돌아왔다.

자신만만했던 것처럼 아처캣은 내 명령을 완벽히 수행해 놓은 상태였다.

“오오, 굉장한데?”

―후훗! 내가 문제없다고 하지 않았냥!―

아처캣이 턱을 치켜들고는 의기양양했다.

뭐, 충분히 그럴만한 수준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처캣이 잡아 놓은 뿔토끼는 너무나 깨끗했다.

오식이처럼 잡자마자 반으로 찢어 버려 피투성이에 내장이 질질 흘러내리게 만든 것과는 달리, 그냥 목을 비틀어 목숨을 끊어 놓은 상태였다.

―손질까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냥.―

“손질?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작은 칼 정도만 있으면 가능하다냥!―

“오오, 그래? 잠시만….”

발목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냈다.

괴물의 사체를 정리할 때 쓰는 용도의 단검이었다.

“이거면 될까?”

―충분하다냥!―

내게서 단검을 받아 든 아처캣이 능숙하게 뿔토끼의 가죽을 벗겨내고, 고기를 손질했다.

아처캣과 서약을 맺은 것이 너무나 뿌듯해지려 했다.

아처캣에게 고기 손질을 맡기고는 불을 피웠다.

그러고는 카드 속에 봉인해 놓은 오식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밥 먹을 건데,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

불과 몇 시간 전에 웬만하면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뭐, 둘 중 하나가 먼저 식사를 하고, 나머지를 이후에 꺼내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좀 번거로운 느낌이기에 일단 의사를 묻기로 한 것이었다.

“….”

고민이 되는지, 오식이는 곧장 답을 하지 않았다.

코끝을 찡긋거리고는 이번엔 아처캣을 향해 물었다.

“오식이랑 함께 식사해도 괜찮겠어?”

―나는 상관없다냥!―

오식이와 달리 아처캣은 대수로움을 넘은 쿨함을 내비쳤다.

다시 오식이에게 말을 걸었다.

“들었지? 쟤는 괜찮대. 너는 어때? 뭐, 정 싫으면 나중에 혼자 나와서 먹어도 돼.”

이번에도 오식이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틈을 주다가는 드디어 오식이가 말을 전해 왔다.

―먹… 는… 다….―

녀석의 대답에 피식하니 웃음이 나왔다.

“알았어, 바로 꺼내 줄게.”

곧장 오식이를 소환했다.

….

식사가 시작됐다.

약간의 긴장감과 어색함이 흘렀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아처캣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췟! 이러다가 내가 체하겠네.’

내가 제일 불편하지 싶었다.

그러던 중, 식사를 먼저 끝낸 아처캣이 오식이를 향해 슬쩍 말을 걸었다.

―야, 덩치! 할 말이 있다냥!―

오식이의 반응보다 내가 먼저 움찔했다.

곧이어 오식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런 녀석을 향해 아처캣이 툭 던지듯이 말을 이었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다냥.―

뜬금없는 사과에 오식이는 물론, 나까지 어리둥절했다.

아처캣의 말이 조금 더 이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냥? 그러니 화 풀어라냥!―

그러고는 잘 익은 고기 한 덩이를 들고서 오식이에게로 다가왔다.

나도 그랬지만, 오식이도 몸을 움찔하며 당황스러워했다.

―이거 먹어라냥! 맛있게 잘 익었다냥!―

아처캣이 고기를 오식이에게 내밀었다.

무겁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머뭇거리던 오식이가 아처캣이 내민 고기를 받아 들었다.

“후우우….”

긴장감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얼른 먹어라냥! 넌 의외로 먹는 모습이 귀엽다냥!―

아처캣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멘트까지 날려댔다.

아침에도 어렴풋이 느꼈고, 식사 전에는 더없이 느꼈지만, 아무래도 나보다 사회생활을 더 잘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둘 사이가 완만해졌다.

뭐, 이후로도 둘은 시도 때도 없이 티격태격했다.

그렇다고 견원지간 같거나 앙숙은 아니고, 애증의 관계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었다.

* * *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됐다.

나와 오식이는 철갑 굼벵이의 씨를 말려 가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처캣도 본인의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리고….

철갑 굼벵이 사냥 5일째에 드디어 레벨이 올랐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3레벨이 되었다.

“씨바… 대체 어쩌라는 거야?”

레벨이 오르는데도 짜증이 늘어나는 각성자는 나밖에 없을 듯싶었다.

“4레벨엔 뭔가 있겠지. 그래, 분명히 뭔가 생길 거야!”

확신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짜증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후아아… 끝났다!”

마지막 철갑 굼벵이를 잡았다.

철갑 굼벵이 밭으로 들어와 사냥을 시작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다음 구역에는 어떤 놈들이 있으려나?’

나름의 기대와 너무 강하지 않은 놈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구역을 향해 움직였다.

‘흠, 이거 불안한데?’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철갑 굼벵이 밭보다 어째 더 칙칙해지고, 어둑해지는 탓이었다.

“조심해! 그리고 뭔가 나타나거나 하면 바로 알려 줘!”

“크륵!”

오식이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점점 더 빽빽해지는 숲을 한참이나 들어갔다.

“…!!”

얼마쯤 더 들어갔을까?

살벌한 느낌이 뒤통수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아직 뭔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 앞에 무언가 굉장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식이가 커다란 제 몸을 가릴 만큼이나 큼직한 잎사귀들을 헤치고 나아가던 그때!

사뭇 굉장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녀석을 그대로 덮쳤다.

휘이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