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36)
검을 향해 뻗던 손을 멈췄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처캣이 뭔가 요염한 포즈로 서서는 히죽거리고 있었다.
저녁 내내 느꼈던… 그저, 고양이 특유의 간드러짐이라고 여겼던 얇은 울음소리와 행하던 몸짓 등에서 문득문득 전해지던 이질감, 직전의 마주 봄에서 느꼈던 묘함과 간지러움 등이 단번에 이해가 돼 버렸다.
“여, 여자… 아니, 아, 암컷이라고?”
―후훗! 그렇다냥!―
아처캣이 더욱더 요염한 포즈를 취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말 또한 왠지 뇌쇄적인 느낌이 풍기는 듯했다.
괴물들에게 암수의 구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대놓고 여성 내지는 암컷의 모습을 한 ‘서큐버스’, ‘세이렌’, ‘하피’ 등등의 괴물들이 있었고, 내 곁에만 해도 징그럽고 흉측한 것을 덜렁거리는 남성형의 오식이가 있었으니까.
하물며, 식물형의 괴물이나 ‘슬라임’ 같은 액체 괴물들도 성별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동물형인 아처캣도 암컷과 수컷으로 나누어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것을 따지거나 염두에 두는 일은 없었다.
괴물은 그저 괴물일 뿐이고, 찾아서 죽이거나 맞상대해야 할 적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벌어진 이 상황은 좀 다르다.
괴물과 친분을 쌓으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였고, 전혀 몰랐다면 모를까, 눈앞에 있는 아처캣이 여성… 아니, 암컷임을 알게 된 이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 나를 두고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처캣은 그저 고양이를 닮은 괴물이었으니까.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아니, 집에서 흔히들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았다면, 또 사냥 중에 마주친 적이었다면, 나 역시 전혀 문제 삼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 표현이 확실하고, 거의 사람처럼 행동하며, 나와 호의적인 관계에 있는 ‘지적 생물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끝까지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며, 나를 이상한 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
―많이 놀랐냥?―
아처캣이 사뿐한 걸음을 뽐내며 내게 다가왔다.
순간, 양쪽 손바닥을 내보이고, 뒤로 물러나기까지 하며 그것을 제지했다.
“오, 오지 마!”
―왜 그러냥?―
“모, 몰라! 아, 아무튼 가까이 오지 마!”
―흐음… 역시 넌 웃기는 인간이다냥!―
“웃기건 뭐건 상관없어! 그러니 다가오지 마! 아니, 카드 속으로 들어가!”
―아앗! 그건 싫다냥!―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아, 알았다냥. 가까이 가지 않겠다냥. 그러니 이대로 있게 해 달라냥!―
아처캣이 사정하듯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더 뒤로 가! 구석으로… 그래, 거기서 자!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마!”
―치이… 알았다냥!―
아처캣이 텐트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서는 몸을 말고 누웠다.
확인하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나도 자리에 누웠다.
‘흐음….’
바로 잠이 들 것처럼 피곤했건만,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별다른 기척이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등과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며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쩝….”
작게 입맛을 다시다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아처캣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딱히 확인할 건 없었지만, 프로필을 허공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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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처캣
타입: 동물형
속성: 풍
레벨: 6
묘족의 궁수.
궁술이 특기이지만, 근접전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출난 민첩성에 반사신경이 뛰어나다.
은신과 잠행에도 능하다.
좋아하는 것: 잠, 양지(또는 따뜻한 곳), 나비.
싫어하는 것: 답답함, 멍청이, 차가운 물.
스킬: 더블샷, 그림자 숨기기, 가늘게 뜬 눈.
호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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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기에 그냥 넘어가는 것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 등이 모두 들어 있었다.
‘음… 레벨은 역시나 반인가?’
오식이도 그러더니, 아처캣도 원래의 레벨보다 낮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활도 없어졌어.’
기절한 채, 오식이에게 잡혀 있을 때는 분명히 등에 메고 있던 활도 지금은 없었다.
‘그나저나, 오식이 자식은 레벨 6짜리한테 처맞고서 그 난리를 피운 거야?’
아처캣이 활 솜씨뿐만 아니라, 근접전에 강하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저보다 한참이나 낮은 레벨에게 맞고서는 죽빵이 돌아가고, 씩씩대던 오식이가 조금은 한심하게 여겨졌다.
뭐, 고양이답게 따뜻한 곳이나 나비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해가 됐고, 차가운 물을 싫어한다는 것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답답함을 싫어한다는 부분은 고개가 갸웃해졌다.
카드 속이 좁고, 답답하다면서 징징댈 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기도 했다.
‘고양이들은 좁은 곳이나 상자 같은 것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나?’
의문과 함께 슬쩍 아처캣을 쳐다봤다.
녀석… 은 일말의 미동도 없이 구석에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너무나 조용한 것이 잠이 든 듯싶었다.
“뭘 했다고 벌써 두 개나 차 있는 건지 모르겠네… 쩝!”
내심 좋으면서도 투덜대듯 작게 혼잣말을 흘리고는 아처캣의 프로필을 닫았다.
몸을 옆으로 돌려 웅크린 채, 조금씩 찾아드는 잠을 청했다.
….
졸졸졸….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날이 밝아 있었다.
소리는 밖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밖으로 나왔다.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소리의 정체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였다.
“흠….”
이딴 것에 왜 신경이 쓰이고, 집중이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해서, 그냥 돌아서려는데, 계곡의 상류 쪽에서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어라? 이런 곳이 있었나?’
풀숲과 돌덩이로 가려진 계곡의 상류에는 제법 넓고,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완만하다 못해 멈춘듯한 물살과 적당해 보이는 수심의 너른 물웅덩이가 마치 수영장 내지는 커다란 목욕탕을 연상케 했다.
아마도 물웅덩이의 중심쯤에서 목욕을 즐기고 있는 아처캣을 발견했기에 그리 연상이 됐지 싶었다.
‘쟤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기도 하네.’
어깨를 으쓱거렸다.
기척을 낼까 하다가 그냥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처캣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풍성한 털들이 물에 흠뻑 젖어 축축 늘어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라?’
아니었다.
예상되던 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매끈한 피부의 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목 위… 얼굴은 분명히 털로 덮인 고양이와 비슷한데, 몸은 완전히 사람 같은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뭐야? 털을 다 민 건가? 아니면, 탈부착이 가능하다거나 아예, 탈의라도 할 수 있었던 거야?’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당연하겠지만, 무엇하나 정답이라 여겨지는 건 없었다.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나름 숨 막히는 뒤태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설마, 돌아서지는 않겠지?’
어떤 기대감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음흉한 내 기대감에 아처캣이 부응했다.
♪샤랄랄라…♬
느낌 있는 배경음 내지는 효과음이 들리는 착각도 들었다.
“꼴깍!”
다시금 한 움큼의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내 쪽을 향해 돌아서는 아처캣에게 시선을 강렬히 고정했다.
“허억!”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완전히 돌아선 아처캣의 아찔한 모습 때문이었다.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아처캣의 앞태는 아쉬움(?)이 좀 있었다.
위아래의 중요한 부위가 털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뭐, 이런 상황에서….
그러니까, 매끈한 뒤태에 앞모습도 그러려니 하며, 그에 걸맞은 엄청난 기대와 음흉한 상상을 하는 게 비단 나뿐일까?
진정 나만 쓰레기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다소 실망감을 안겨 준 아처캣의 앞모습.
하지만, 아찔하다는 표현과 함께 바람 빠지는 소리까지 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또 있었다.
비록, 털로 꼼꼼히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봉긋… 아니, 작은 체구에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풍만함이 바로 그 이유였다.
‘어쨌든 까비….’
아찔함이든 아쉬움이든 또 놀라움이든 간에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아처캣은 완전히 돌아섰고, 어느덧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당연히 나를 향해서였다.
‘어… 어… 어….’
점차 정신이 돌아왔다.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고, 고개나 시선을 돌려야 함도 마땅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머리로는 인지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처캣은 점점 더 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결국엔 내 앞에 서게 됐다.
“어버버….”
―후훗!―
“아, 아니 그게….”
―괜찮다냥!―
“어? 아… 어….”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가까이서 보는 아처캣의 풍만함은 정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알아챈 것인지, 한 번 더 후훗 하는 웃음을 발산한 아처캣이 심히 놀라운 제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왔다.
―어떠냥? 한 번 만져 볼 테냥?―
“헉!”
놀라움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런 나를 향해 피식한 아처캣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덥석!
아처캣이 내 손을 잡고서는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 어… 이, 이러면….”
머뭇거림을 표했지만, 거부의 의사는 솔직히 없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쳐댔다.
절로 넓어진 콧구멍으로 씩씩대는 거친 숨결이 들락날락했다.
스으윽….
투우욱….
아처캣이 잡아끈 내 손이 풍만함 위로 얹어졌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그 순간.
한 가닥의 털이 나풀거리며 날아와 내 콧구멍으로 쑥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재채기의 기운이 무자비하게 날아들었다.
“에, 에, 에취이!”
강렬한 재채기에 몸이 붕 뜨다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깜짝 놀라서는 진저리를 쳤고, 재채기에 자동으로 감겼던 눈을 번쩍 떴다.
“…??”
전혀 다른 세상… 직전까지 서 있던 계곡의 물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어리둥절했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고, 상황을 이해하려 애를 썼다.
‘꾸, 꿈?’
한참 만에야 내가 꿈을 꿨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텐트 안에 누워 있었고, 내 얼굴 앞에는 몸을 한껏 구부린 아처캣이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길쭉하게 뻗어 나온 아처캣의 털 한 가닥이 내 코끝과 눈앞에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아….’
한 번 더 상황이 이해가 됐다.
정신도 완전히 돌아왔다.
“흐음….”
꿈과 현실을 착각한 내 잘못이 크겠지만, 뭔가 사기를 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아처캣이 내 팔을 끌어다가 베개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에 팔을 확 잡아 빼며 소리를 꽥 질렀다.
“야! 누가 여기서 자라고 했어!”
큰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처캣이 몸을 아치처럼 구부리며 펄쩍 뛰어올랐다.
영락없이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를 내면서였다.
“꺄옹!”
바닥으로 내려온 아처캣이 황급히 텐트 구석으로 도망쳤다.
눈과 미간에 힘을 빡 주고는 아처캣을 노려봤다.
이내 사과의 말이 머릿속으로 전달됐다.
―미, 미안하다냥! 나, 나도 모르게 그랬다냥… 용서해 달라냥!―
너무나 정직하고, 빠른 사과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해서, 쏟아 내려던 화를 누르고는 그냥 텐트 밖으로 나와 버렸다.
‘뭐야? 어제랑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 거지?’
영문 모를 변화에 고개가 갸웃해졌다.